언어, 언어학의 역사
언어는
다른 생물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몇몇 수단을 사용했따면 그 생물은 '언어'를 사용한 것으로 인정된다. 언어가 생물의 보편적인 능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 정의하면 언어란 '정보교환 매개체'를 의미한다.
모든 언어에서 양수형보다는 복수형이, 복수형보다는 단수형이 더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즉 인간의 뇌는 어떤 특별한 유형의 집단보다는 보통의 집단을, 보통의 집단보다는 구체적인 단위를 우선 인식한다. 모든 언어에서 단순한 표식이 복잡한 표식보다 중요시된다는 강력한 보편소를 이런 사실에서 추론해 낼 수 있다.
인간의 뇌가 이러한 객관화와 생산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하다. 실생활 속의 대상에 자의적으로 소리가 붙어서 오록스나 불, 성기 같은 단어들이 생겨난다.
사고와 언어체계는 '자기 지시적'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인간의 언어에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조사나 접속사 같은 특별한 위치의 단어가 존재했다. 이렇게 바깥의 객관적인 세계와 전혀 관련이 없는 고순위 단어들이 새롭게 생겨나서 예전의 저순위 단어들과 연결되어 복잡한 문장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한 문장들이 역동적인 다단계 사고의 기반이 된다. 현대의 인간 언어는 구문체계에 의해 구성된다.
구문체계란 어떤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구절과 문장을 이루는 단어를 배열하고 연결하는 규칙을 말한다. 구문체계는 인간의 언어에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야생의 동물 '언어'에는 없는 요소이다.
진화 생물학의 용어를 차용해서 만든 '단속 평형' 모형은 과거에 오랜 기간 동안 사회적 균형이 유지되는 중간에 어느 특정 지역에서 언어적 특징이 확산되어 다른 언어들이 생겨났다가 다시 공통의 기어로 수렴되는 상황을 말한다. 하지만 가끔식 이 균형 상태가 위에서 언급한 외부적이거나 내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급작스러운 변화에 부딪히면서 '단속(단절)'되는 것이다. 이 단절의 시기에 인구가 늘고 그들의 언어도 갈라져서 결과적으로 언어의 '가계도'가 형성된다.
지역적 분화와 내부적 조정 과정에서 오는 변화와 수렴을 거치게 된 것이다.
자극 전파(stimulus diffusion: 개념이나 관습이 어떤 민족에서 다른 민족으로 전달되는 것)'를 통해 문자의 유용성과 관련 기법이 전래되면서 이웃 민족도 그와 비슷한 문자체계를 창안하게 되었다.
문자체계의 가장 큰 변화는 어떤 언어 사용자들이 자기들 언어에 잘 들어맞지 않는 문자체계를 차용해 개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일례로 음절문자적 성격의 상형문자는 레반트의 서부 셈어 사용자들에 의해 그 지역의 자음지향적인 셈어를 더 효과적으로 재현하는 자음기호로 바뀌었다. 이것은 나중에 그리스인이 인류 문화에 찬란한 업적(모음과 자음 모두를 나타내는 기호를 갖춘 순수 알파벳)으로 이어졌다.
모든 문자체계는 아무리 소중하고 혁신적이어도 불완전하고 인습에 구해를 받기 마련이다. 거의 모든 문자는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근사치에 불과하다. 모호성, 즉 애매함과 불분명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의미상의 불확실성은 음절문자와 알파벳 문자에서 자주 나타난다.
지난 수천년 동안 분명 거대한 흐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들 언어중 상당수는 언어의 융합형태에서 고립형태로의 이행 과정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즉 공통기어는 문법을 나타내는 어미를 사용하지만, 파생 언어들은 그 어미들을 버리고 대신에 불변화사나 전치사를 동반한 고정적인 어순을 채택한다.
거의 모든 언어 변화는 주기적이다. 즉 언어는 융합상태, 교착상태, 고립상태 사이를, 그리고 핵어 표시형,의존어 표시형, 구와 문장의 엄격한 구문론적 배열순서 사이를 오간다. 약 3000년 동안 이집트어는 융합상태에서 교착상태로 이행했고, 다시 융합상태로 회귀했다. 모든 언어는 변화를 겪으면서 비슷한 유형학적 주기를 그린다.
언어 변화에서도 일종의 위계질서를 찾아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언어적 요소는 다른 언어적 요소보다 더욱 쉽게 변한다. 음운론적 변화는 언어 변화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유형이다. 형태론적 변화, 즉 단어 형성의 체계적인 변화와 문법적 형태의 변화는 그보다 빈도가 낮다. 구문론적 변화, 다시 말해 구나 문장의 어순에서 나타나는 체계적인 변화도 드물기는 마찬가지이다. 가장 드물게 나타나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단어의 강세이다. 한 단어의 강세는 아의고적인 경향이 있는데, 덕분에 언어학자들은 파생 언어와 조어를, 그리고 차용한 단어와 원래의 출처를 비교할수 있다.
언어의 기원 문제에서 모방(자연을 흉내 내는것) 대 관습(사회의 대립 (스토아학파는 모방을 선호했고,아리스토텔레스는 관습 쪽에 기울었다)과 마찬가지로 변칙(anomaly, 불규칙성) 대 유비(analogy, 규칙성)라는 사상적 이분법도 언어의 중요한 주제였다.
중세에는 1200년에서 1350년 사이에 동일한 이론적 입장과 언어학적 개념을 공유한 여러 저자들이 집필한 "의미의 양상에 관해"라는 똑같은 제목의 '사변문법' 서적들에 힘입어 언어학적 전통(혁신은 아니다)이 면면히 유지되었다.
이른바 '양상론자(Modistae)'들은 프리스키아누스와 도나투스가 기술한 라틴어 문법과 스콜라 철학을 통합했다.(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카톨릭 신학에 통합한 철학 시조였다).
양상론자들은 라틴어를 간략히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라틴어의 구성 요소와 범주를 다룬 더 심오한 이론과 더 명료한 정당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철학이 문법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대상의 명확한 성격을 주의 깊게 고려하면서 문법을 발견하는 장본인은 문법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이다."
이 같은 학리적인 분위기에서 모든 언어에 적용할수 있는 '보편문법' 개념이 생겼다. 최초의 사변문법서의 저자 중 한 사람인 영국의 로저 베이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문법은, 그 본질상, 하나이고, 모든 언어에서 동일한 것이며, 모든 언어에서 오직 우연에 의해 변화될 뿐이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이론 언어학자들은 '보편문법"을 찾는데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양상론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문법이었고, 그들은 철학적 문법의 일관성 있고 완전한 체계를 설명하기 위한 정교한 용어를 창안했다. 그들은 프리스키아누스의 3 단 순한 기술적 라틴어 분석에 그치는 대신 거기에 설명적 차원을 제공하고자 함으로써 그와 결별했다.
예를 들어 양상론자들의 구문론 체계는 특정한 품사의 기능의 측면에서 훨씬 명쾌했고, 덕분에 품사에 대한 한층 적절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양상론자들은 문장구조와 구문분석에 관한 포괄적이고 일관적인 이론도 정립했다. 언어 이론의 측면에서 양상론자들은 언어의 종류와 무관하게 인간의 정신이 추상화, 숙고, 의사전달 같은 작용을 똑같이 수행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같은 이론은 인도유럽어에 속하지 않는 언어를 접한 뒤 무너지고 말았다. 아직 오늘날의 형식문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양상론자들의 '사변문법'은 고대와 근대를 잇는 다리로 볼 수 있다.
경험론자들과 합리론자들은 언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았다. 경험론자들은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거부한 채 관찰된 사실을 강조했고, 합리론자들은 감각이 인지한 바를 신뢰하지 않은 채 인간의 이성이 예증한 바를 믿었다. 그렇지만 양쪽은 모두 철학적 추론의 바탕을 수학과 뉴턴의 학설에 두었다. 이 시기의 모든 언어 연구는 경험론 - 합리론 논쟁에 영향을 받았다.
영국의 경험론적 언어학이 내놓은 결과물은, 최초로 영어의 음성조직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것과 프리스키아누스의 라틴어 학설로부터 벗어나 영어 문법의 형태적 분석을 시작한 것이었다.
포르 루아얄 학파의 이교적인 고전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으로 인해 이들 합리론적 문법서는 '보편문법(단 이떄의 보편문법은 라틴어의 모범이나 이상형이 아니라 각국의 언어에서 표현된 일반적인 문법이론이었다)'을 제안했다.
인간의 사고를 전달할 떄 쓰이는 모든 문법의 기저에 흐르는 통일성을 밝히는 것이 포르 루아얄 학파의 목표였다. 이들은 이를테면 부사를 구조적으로는 단지 단축된 전치사구로 간주하는 등 무엇보다도 품사를 의미론적 차원에서 완전히 재해석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포르 루아얄 학파의 문법학자들은 심지어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그리고 당대의 여러 유럽어에 기초한 일반 문법서를 집필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이론적 가설이 현실에도 존재한다고 믿었기 떄문이다.
훔불토는 평생 동안 언어에 관한한 다방면의 글을 발표했고, 언어이론을 전개하면서 모든 인간의 타고난 언어 능력을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단어와 문법을 창조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지구상의 모든 언어 하나하나는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창작품이고(innere Sprachform), 즉 언어의 내부 구조는 일정한 양식과 규칙을 부여하는데, 일부 양식과 규칙은 언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또 어떤 양식과 규칙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언어 보편소).
각 언어는 지나간 언어들의 그림자이고, 한 언어의 각 단어는 구문론적,문법적 틀 안에서 해당언어의 완전성을 전제로 한다. 언어들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소리의 차이가 아니라 전체적인 벨트한지히텐(Weltansichten), 즉 세계에 대한 태도와 이해의 차이이다. 훔볼트는 19세기 최고의 이론 언어학자였다. 그는 특히 20세기 초반의 독일 태생 미국 언어학자들과 20세기 중반의 유럽 언어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21세기 초반인 지금도 훔볼트의 innere Sprachform은 다양한 소수민족 공동체들이 언어를 통해 서로 다른 정신적 현실에서 살수 있는지, 그리고 상이한 사고체계를 포용할 수 잇는가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틀을 보편적인 언어이론에 제공해주고 있다. 홈볼트가 언어이론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한 바는 지배적인 문법 단위로서의 '단어'에 기초해 언어의 유형을 고립어(중국어), 교착어(터키어), 굴절어(범어)로 나눈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문법학자의 주장은 기계적인 과정으로서의 모든 음성변화는 동일한 언어 안에서는 결코 예외가 없는 법칙에 일어나는 것이고,그러므로 동일한 환경에서의 동일한 소리는 항상 동일한 양상으로 발전하는 것이었다.
이런 입장은 인도유럽어에 속한 여러 언어 사이의 형식적 대응체계 이면에 있는 질서를 인식함으로써 더욱 강화되었다. 비교언어학과 역사언어학의 토대는 시간적 흐름에 따른 인간 언어의 음성변화에 내재한 규칙성을 인정하는 것인 듯했다. 신문법학자들은, 만일 음성 변화의 규칙성이 없다면 임의적인 변화가 지배할 것이고, 따라서 언어학이라는 진정한 과학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문법학자들의 활약으로 언어학적 탐구는 과학의 한 분야로 탈바꿈했다. 언어학적 탐구에는 당시 싹튼 자연과학에 동원된 수단만큼 정밀한 수단이 쓰였다. 오직 자료와 그 자료를 지배하는 법칙을 다루는 것이 중시되었고, 언어에 대한 사변적인 태도는 폐기되었다. 훔볼트의 작업을 비롯한 언어의 구조적 개념에 관한 여러 귀중한 연구는 이 같은 새로운 언어의 '기계화' 분위기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신문법학파에 대한 합당한 비판도 많았다. 특히 국지적이고 일반화되지 않은 수준의 용법에서 언어의 상당한 불규칙성을 발견한 방언학자들의 비판이 거셌다. 심지어 프랑스의 저명한 방언학자 쥘 질리에롱은 "모든 단어는 나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완벽한 진실이다.그러나 각 단어는 더 큰 체계에 속한다. 그리고 당시 신문법학자들이 다루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체계였다.
기술언어학자들은 형식주의자(formalist, 대표적인 예까 촘스키 학파), 즉 이미 알려진 자연어가 아니라 이론적으로 모든 언어에 적용할 수 있는 더 깊이 있는 언어학적 보편소를 토대로 새로운 언어모형을 창조하려고 애씨는 '비기초이론'의 옹호자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기술언어학자들은 형식주의자들과는 절대 타협이란 없다고 단호히 주장한다. 그것은 완벽한 언어이론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떄문인데 그들이 보기에 형식주의자들에게 있어 '분석'이란 '언어를 자신들의 공리적인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학은, 그것이 탐구하는 언어가 그렇듯이 지속적으로 진화한다. 이것은 새로운 통찰 덕분이기도 하고, 언어 연구의 진로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변화, 이해관계, 우선순위 같은 요인 떄문이기도 하다.
20세기 후반기에는 사회구조의 복잡한 재편성 과정이 일어났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쩔 수 없이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어법을 포기하고 그간 존중했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 대체로 이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비교적 사소한 변화에는 인간에 의한 변화를 위한 변화, 즉 혁신 자체의 새로움을 선호하는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