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하려다 오히려 가해자 된다?...애매한 정당방위 규정
방어 수단이 공격 수단보다 강하면 안 돼
보복심리 작용해도 안 돼
야간이거나 흥분 상태일 때 드물게 인정되지만
변호사들, “대부분이 쌍방폭행으로 종결”
이학준 기자
조연우 기자
입력 2023.06.20 15:29
작년 8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길을 걷던 A씨와 한 차주가 벌인 몸싸움 장면. A씨는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단을 비판하며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인터넷 캡처
작년 8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길을 걷던 A씨는 뒤에서 오던 차가 큰 소리로 경적을 울리는 바람에 혼잣말로 욕설을 했다. 그런데 이를 들은 차주가 차에서 내려 A씨 멱살을 잡고 몸을 밀쳤다. 이에 A씨도 차주 멱살을 잡고 함께 밀쳤다. A씨 입장에서 보자면 상대방이 먼저 육체적 위협을 가해 정당방위 차원에서 대응한 것이지만 법원은 이것이 필요한 수준의 방어를 넘어서는 공격성을 띤 과잉 방어라고 판단했다. 결국 A씨에겐 벌금 50만원의 구약식 처분이 내려졌다.
최근 범행 동기가 모호한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면서 호신용품을 장만해 내 몸을 스스로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관련 기사 연이어 터진 ‘묻지마 범죄’에 고가 호신용품 찾는 사람들) 하지만 현행 법에서 정당방위로 인정받으려면 법이 규정한 정당방위의 세세한 요건을 충족시켜야만 해서 스스로를 방어하려다 오히려 처벌받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 먼저 공격해도, 방어가 공격보다 강해도 안 돼
국내 형법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될 때는 ▲현재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것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법적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등 3가지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다. 법원은 이 요건을 기준으로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위협·폭행 같은 공격을 받기 전 상대방을 공격해서는 안 되고, 방어행위를 할 때 필요 이상으로 과잉 대응해서도 안 된다. 상대방에게 주먹 등으로 폭행당하는 상황에서 흉기로 상대방을 찌른다면 방어 수단이 공격 수단보다 수위가 높아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또 자신을 공격한 상대방에게 그대로 되갚아 주겠다는 보복심리에 따라 공격적으로 맞대응하는 경우에도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보복심리가 작용했는지 여부는 사건 경위를 보고 법원이 판단한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먼저 주먹을 휘두르거나 멱살을 잡고 위협을 할 때 이를 뿌리치려고 상대방 팔을 꺾어도 쌍방폭행이 되는 게 현실”이라며 “정말 심하게 때려도 이걸 뿌리치기 위해 밀치면 폭행이 되기 때문에 우선 뿌리친 뒤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현장을 이탈하는 등 도망을 가야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우 정당방위를 인정받기가 굉장히 까다롭고 어렵다”며 “호신용품도 살상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되려 흉기가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사용할 때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의 정당방위는 이처럼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을 때 ‘수비적 방어’ 를 하는 경우에 국한될 때가 많다. 하지만 드물게는 적극적 반격을 의미하는 ‘반격방어’도 정당방위로 인정될 때가 있다. 사건이 벌어진 시각이 야간이거나, 위협·폭행 등으로 인해 공격을 받은 쪽이 공포·불안·흥분 상태에 휩싸여 있다고 판단될 경우 과잉 대응하더라도 ‘면책적 과잉방위’에 해당해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다.
2018년 9월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던 B씨는 집 밖에서 들린 딸의 비명을 듣고 현관에 있던 죽도를 꺼내 딸의 팔을 잡고 있던 이웃 주민 C씨를 내리쳤으나 정당방위가 인정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C씨 어머니는 B씨를 말리며 “아들이 잘못한 건 맞지만, 공황장애가 있다”고 말했으나, B씨는 만류하는 C씨 어머니 팔까지 여러 차례 가격해 전치 3~6주의 상해를 입혔다.
법원은 잘못을 인정하고 상황을 끝내려던 C씨 어머니까지 폭행한 것은 과도한 대응에 해당하지만, B씨가 딸을 지켜야 한다는 흥분·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점을 감안해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정당방위가 쉽게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관련 사건을 다수 수임한 변호사들 이야기다. 이론과 대법원 판례상 ‘적극적 반격’도 정당방위에 해당하지만, 실제 이를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 정당방위 폭이 넓어 오히려 논란 이는 美
한국과 달리 미국은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해 오히려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이 소유한 집·토지·승용차 등에 누군가 침입하면 살상무기로 대응해도 괜찮다는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과 공공장소에서 위협을 느꼈을 경우 선제 공격해도 된다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맞서 싸우란 뜻)’를 채택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살던 16세 흑인 소년이 집 주소를 착각해 다른 집 초인종을 눌렀다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에 붙잡힌 집주인은 “남성이 현관문 바깥의 바람막이 문을 열고 집에 침입한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은 이번 총격이 정당방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수준만큼은 아니더라도 공격을 받기 전에 위험을 미리 차단하는 행위인 ‘예방적 방어’도 허용하는 등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위원은 “한국은 공격을 받은 뒤 하는 방어적 행위가 적극적 공격행위를 띠면 정당방위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며 “일정 수준 이상은 정당방위로 용인돼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게 형사사법 정의에 맞는 것”이라고 했다.
이학준 기자
이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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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2023.06.20 16:18:03
한국법은 랑간당해도 가만히 폭행 당해도 가만히 있어야 쌍방폭행으로 감옥 안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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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찬수
2023.06.20 16:43:54
우리들 法은 죽도록 얻어맞고 돈 버는게 최고인거야...어디서부터 그렇게 꼬인건지 모르겠어,.. 그러니 잉여인간 토착 악플러 종자 그놈들 무리도... 전혀 죄의식이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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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2023.06.20 16:55:29
한밤 중에 침입한 칼든 강도를 때려도 폭행죄, 죽이면 살인자로 처벌받는 건 잔짜 말도 안됨. 이런 나라는 선진국 중엔 없을 것. 우리 나라는 선진국이라는데 법이나 제도는 한심한 수준이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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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
2023.06.20 17:09:21
누가 판사 집에 방문좀 해주면 안되나? 어떻게 대응하시나 한번 보게 ㅋㅋ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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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2023.06.20 17:02:48
방어 수단이 공격 수단 보다 강하면 안 돼?? 불끄고 자는 한밤 중에 강도가 칼을 들었는지 총을 들었는지 어케 알아서 그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대응 수단도 골라잡아? 판검사들은 그게 가능한가 보네
답글작성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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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
2023.06.20 17:07:35
법제는 수준 이하이면서 선진국 운운하는거 보고있자면 ㅋㅋ 같잖네 한국이 선진국 ? OO ㅋㅋ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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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수
2023.06.20 17:14:57
죽고난 뒤에 방어하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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