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사랑 그리고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간다면?
길게는 아니고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 재충전을 하고 싶을 때 떠오르는 게 있다.
기차여행이다. 길 막힐 염려도, 미리 점검해야 할 자동차도, 주차 걱정도 없다.
마음 맞는 길동무, 기차표만 있으면 준비 끝.
9월 18일, 철도의 날을 맞아 기자가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자가 탑승한 기차는 ‘해랑열차 1박2일 씨밀레 코스’다. 기차에 ‘1박2일’이 웬 말인가 하는 분을 위해 먼저 해랑이 어떤 열차인지 설명하는 게 좋겠다. 처음 해랑열차가 만들어진 건 3년 전이다. 때는 바야흐로 2008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시점, 응원객들을 싣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경의선을 지나 중국까지 달리겠다는 소망을 담아 탄생한 기차였다. 그동안 한반도에선 달려본 적 없는 곳을 지나 대륙을 횡단하는 길이니 기차에서 숙식이 가능해야 했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 밤을 새워 기차를 달리면 어느새 다른 국경에 와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기차의 꿈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숙식이 가능한 명품기차’가 탄생했다. 기차 안에서 1박2일을 보내도, 2박3일을 보내도 충분한 편의시설을 갖춘 이 늠름한 열차는 대륙이 아닌 아름다운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달리기로 했다. ‘해와 함께’ 달린다는 뜻의 ‘해랑’열차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쯤 되면 궁금한 게 있다. 비용은 얼마나 들까? 일단 해랑은 그 몸값만 50억이다. 호텔식 관광열차답게 호텔에서 누릴 수 있는 편의시설을 기차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8량의 기차에 탑승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54명, 함께 탑승하는 승무원은 여섯 명이다(KTX의 경우 이용객은 900명, 탑승 승무원은 세 명이다.). 8량 중 6칸이 객실로 쓰이는데 객실은 스위트룸, 패밀리룸, 디럭스룸으로 나뉜다. 스위트룸에는 2인용 더블사이즈 침대와 테이블, 샤워실, 화장실, LCD TV 등이 있고, 패밀리룸에는 2인용 침대와 1인용 간이침대, 디럭스 룸에는 2인용 침대가 갖춰져 있다. 나머지 편의시설은 동일하고, 방마다 통창이 있어 시야가 넓다.
해랑열차는 2박3일 아우라 여행과 1박2일 해오름·씨밀레 여행으로 나뉘는데 스위트룸은 2박3일에 232만 원, 1박2일에 154만 원, 디럭스룸은 2박3일에 195만 원, 1박2일에 128만 원, 패밀리룸은 2박3일에 239만 원, 1박2일에 155만 원이다. 철도운임과 식사비, 음료비, 입장료, 보험료가 포함된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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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08:00 서울역
서울역에 도착하면 2층에 코레일 VIP 라운지가 보인다. 남색 제복을 입은 해랑 승무원이 오늘 탑승할 인원을 미리 체크한다. 8시 20분경이 되면 1박2일을 함께할 46명의 승객들이 모여 인솔 담당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해랑열차까지 안내받는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승객, 어머니를 모시고 온 아들 혹은 딸, 은발에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맞춰 입은 노부부, 친구들과 함께 모처럼 여행 분위기를 내는 중년의 신사들 등 다양하다. 탑승구로 내려가자 남색 바탕에 금색으로 ‘해랑’이라고 적힌 열차가 들어와 있다.
AM 08:30 해랑 씨밀레 코스 탑승
해랑열차는 8량으로 나눠져 있다. 1, 2, 3번 칸과 6, 7, 8번 칸이 객실이고 4번 칸은 카페 그리고 5번 칸은 휴식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이벤트룸이다. 열차에 탑승해 방을 배정받고, 카드키로 문을 열면 호텔방을 그대로 압축해놓은 듯한 객실이 열린다. 창은 일반열차보다 두 뼘 정도 높을 뿐인데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을 준다. 방에는 인터폰이 달려 있어서 언제든 승무원과 통화가 가능하고 객실 안 온도조절도 전화로 요청할 수 있다. 짐을 어느 정도 정리하면 방마다 설치된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벤트룸에서 해랑열차 탑승을 축하하는 자그마한 공연이 열린다는 내용이다. 좌우로 길게 소파가 놓여 있는 이벤트룸으로 편안한 실내화로 갈아 신은 승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오늘 여행에 동행하는 여섯 명의 승무원들을 한 사람씩 소개하고 그들이 직접 준비한 공연이 바로 이어진다. 첫 번째 공연은 가야금 연주. 해랑에서의 공연을 위해 1년간 수업을 받았다는 조수민 승무원은 가야금 현을 퉁기며 아리랑, 도라지, 꽃타령 등을 들려주었다. 뒤이어 마술공연이 이어졌다. “관객과 마술사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 곳은 드물다”며 승무원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승무원은 승객이 뽑은 카드를 섞은 후 물병 속에 넣는 마술, 딴 맥주의 속을 비운 후 다시 따기 전의 새것으로 만드는 마술 등을 능숙한 솜씨로 보여준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진다. 뜨거운 박수 속에 공연이 끝나고 승객들은 바로 옆 칸 카페에서 다과를 즐긴다. 과일과 쿠키, 차와 커피, 맥주와 와인이 무료로 제공되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노트북도 갖춰져 있다.
PM 12:00 전주역
공연을 즐긴 후 카페에서 쿠키에 차를 한 잔 마시고, 챙겨온 책을 객실에서 몇 페이지 읽고 나니 “해랑승객 여러분, 우리 열차는 20분 뒤에 전주, 전주역에 도착합니다.” 하는 방송이 들린다.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책도 여러 권 챙겨왔는데, 세 시간 반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벌써 도착이다. 앞으로 1박2일은 이 방에서 머물게 되기 때문에 지갑, 휴대폰 등 당장 필요한 물건 외에 다른 짐은 방에 두고 내린다. 전주역에서 인솔 승무원들을 따라 바깥으로 나가니 버스가 두 대 대기하고 있다. 1, 2호차로 나눠 타고 점심 식사 장소인 전주비빔밥 집으로 향한다. 투어 중 가게 되는 식당은 사전조사와 현지조사를 통해 선정된다.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면서 맛과 위생이 보장된 곳을 우선으로 꼽는다. ‘호남각’에서 맛본 육회비빔밥은 지역색이 살아 있으면서 반찬이 정갈해 승객들의 반응이 좋다.
PM 2:00 전주 한옥마을
버스는 이제 전주 한옥마을을 향해 출발한다. 1930년대 일본의 세력 확장에 반발해 교동과 풍납동을 중심으로 생기기 시작했다는 한옥마을은,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한옥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가정집과 가게들이 현재도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을 위한 유물이 아닌 실생활이 펼쳐지는 이곳은 그래서 활기차다. 짚신을 만드는 노인, 차를 우려내는 차 센터 등 일상과 전통이 접목돼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해랑열차 승객들은 여기서 당귀, 목향, 정향, 지단향 등을 담은 한방차 주머니를 하나씩 만든다.
PM 5:00 목포역
열차가 다시 출발한다. 이번엔 목포를 향해서다. 전주에서 익산까지는 전라선을 이용하고, 익산에서 목포까지는 호남선으로 선로가 바뀐다. 이번 1박2일 씨밀레 코스는 전주에서 익산, 목포를 지나 다음 날 순천을 둘러본 후 서울로 귀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승객들은 오늘 목포를 관광한 후 저녁을 먹고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제 제법 친해진 승객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은 기차 끝에서 끝까지 뛰어다니기도 한다. 한결 친숙해져서 더욱 즐거운 해랑열차 속 풍경이다.
PM 6:00 목포해양유물전시관
각 여행지에는 문화해설사가 함께한다. 이번엔 목포를 안내해줄 가이드가 버스에 동승한다. 지금은 조용한 도시처럼 보이지만, 목포는 일제 말 근대화 시기만 해도 6대 도시에 들 정도로 번창했다는 설명을 들으며 버스는 해안가에 도착한다. 너른 마당에 배의 모형이 전시돼 있다. 한때는 바다를 누볐을 이 배들은, 남쪽 바다에 난파되었다가 건져 올려졌다. 목포해양유물전시관은 바다 밑에서 발굴된 선박들의 유해와 그 배가 싣고 있던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여기에는 먼 바닷길을 달려 해외의 귀족들에게 전해졌을 도자기, 장신구, 모형 등이 수백 년이 지난 후 건져 올려져 전시되어 있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안선은 1323년 일본과 중국을 오가던 무역선이다. 이 배에서는 1만 2천 점의 청자, 7백여 점의 금속제품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영롱한 빛을 간직하고 있다.
PM 7:00 유달산 기슭
저녁 메뉴는 민어회. 유달산 어귀의 조용한 한정식 집에서 승객들을 위한 저녁이 준비되고 있다. 식전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야채와 팥떡이 테이블마다 세팅되어 있고 곧이어 메인 메뉴인 민어회가 등장한다. 뱃살, 몸통 등 다양한 부위가 먹기 좋게 썰어져 있다. 민어 자체의 맛이 강하지 않고 담백해 남녀노소 누가 먹기에도 부담 없는 맛이다. 떡갈비, 전 등 다른 반찬도 푸짐해 어린아이들이 먹을 반찬도 넉넉하다. 메인 요리를 먹고 나자 된장찌개와 조기구이로 차린 밥상이 들어오고, 모두 달게 비운다.
PM 9:00 낭만이 쏟아지는 밤, 취침
오늘의 일정도 끝이다. 객실에 돌아와 더운 물로 몸을 씻고, 침대에 몸을 누인다. 기차가 덜컹거리면 혹여 잠을 못 이룰 승객이 있을까 하여 취침시간에는 기차도 멈춘다. 숙소가 기차니 아침에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스르르 눈을 뜨면 기차도 잠에서 깨어나 순천을 향해 달리고 있을 테니까.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일찌감치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으며 휴식하는 사람도 있다. 해랑에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기차여행 체험상품
바다열차 1일 6회, 1시간 20분 소요
강릉에서 정동진을 지나 망상, 묵호, 동해, 추암, 삼척해변, 삼척역으로 돌아오는 바닷길 열차. 전면이 커다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기찻길을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함께 달린다. 의자 역시 창을 향해 설치되어 있다. 일반 1만 원, 특실 1만5천 원, 프러포즈실 5만 원(2인 편도)
wine & cinema train 1일 1회, 오전 9시 출발 오후 8시 30분 도착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서울에서 출발한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개봉영화를 관람하고 와인을 마시는 건 세계 최초다. 새마을호를 개조해 바, 원목 테이블, 회전식 소파 등을 설치했다. 와인객차 4량, 영화객차 3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동에 내려 점심을 먹고 나면 와인족욕 등도 체험할 수 있다. 총 320명까지 수용 가능하며 비용은 8만 8천 원.
팔도장터 농심체험 기차여행 상시운행(코레일 홈페이지 참조)
전국 5일장이 열리는 곳을 찾아가는 기차여행이다.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를 가리지 않는다. 지역에 도착해서는 과일 따기, 감자·고구마 캐기, 산나물 채취 등 체험활동도 가능하다. 비용은 3만 원에서 5만 원 사이.
줌마렐라 녹색 기차여행 상시운행(코레일 홈페이지 참조)
여성을 위한 기차가 탄생했다. 아줌마와 신데렐라의 합성어인 ‘줌마렐라’ 기차여행. 무궁화호 특실 7량과 이벤트실 1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차의 외관은 데이지, 장미, 코스모스, 수선화 등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기차에 타면 네일아트, 피부미용, 핸드마사지 등이 제공되고 멸치축제, 은어축제, 탈춤축제 등이 열리는 지역과 연계되어 축제를 관람할 수 있다. 열차운임, 연계버스, 중식, 입장료 포함 3만 원에서 5만 원 내외.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올 가을에는 단풍 구경 계획중인데 기차로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