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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황의각장로님!..
지난 4.6일 주일날 장로님의 에베소서 말씀을 듣고..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세상살며 감사한 일들이 많지만 귀한 말씀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가슴에 담을 수 있는것. 그리고 포에버중창단의 소박한 목소리의 찬송이 큰소리
로 울리는 역설을 경험을 하는 일도, 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민족사학의 교단에서 제자들을 길러낸 스승으로..
대한민국의 나라 살림살이 형편을 살피고 그 규모를 결정하는 중책을 감당하신 공직자로..
누구보다 민족의 통일을 소망하기에, 감상적 통일의 염원을 넘어 우리민족이 치뤄야 할 대가
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허술하고 허황된 장미빛 구호들을 뒤로하고.. 남.북한 경제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앞날을 준비한 시대의 석학으로..
불특정다수를 향한 경제강연과 대담방송 끝자락에 기독교인임을 밝히시어, 숨어야할 방패막
과 퇴로를 스스로 끊고 양심적 제자로서 삶의 기준을 세워 나가신 신앙인으로..
무엇보다 제게는, 비가 오면 사방이 진흙길로 변했던 허름한 건물에서.. 흠 많았지만 정직한
양심으로 시대의 소명을 감당할 꿈을 가진 개척교회 목회자와 무거운 멍에를 함께 지고, 그
어떤것도 보장되지 않았던 황량한 터전에 거친 땅을 일궈 작은 씨앗을 뿌리는 소박한 농군의
모습을 가진 장로님으로..
이제는 많이 주신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버릴수 있어야 가질 수 있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청지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며, 청지기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주인역할도
감당할 수 있다고 배워 온 저에게 '주인 같았던 청지기' 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절제되고 조용한 목소리로 전하신 말씀속에서.. 한문장 한문장 준비하셨을 장로님의 모습과
'누가 주인인지' 알고 있는 선한 청지기의 애통하는 심정도 함께 전해져 옵니다.
그리고
겉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생의 계단을 차곡차곡 올라 이제는 멀찍한 곳에서 지나온 길
을 되돌아보며 겉멋 부리고 사는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라는 것을 관조하는 지혜자들의 무르
익은 목소리의 찬송이.. 이토록 크게 울리는 것도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찬송이 한주간 조용히 울리고 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할지, 부담스럽다고 애써 외면해야
할지..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필요충분조건이 모두 다 갖추어진 듯 살아가며
근거도 불분명한 예화부스러기로 '좁은 진리의 문' 을 대문처럼 넓혀놓은 값싼 설교에 위안을
삼아 만족하고 있으니, 어찌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장로님의 말씀과 중창단의 찬양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장례식장을 다녀와서 맴도는
생각이 말씀과 찬양에 남아있는 울림으로 인해.. 이렇게 자판에 손을 얹게 되었습니다.
○ 장례식장에서...
몇일전, 친구의 부친상에 가서 조문을 마치고 오랜 친구들도 만나 그간의 안부를 묻고 세상살
아가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세상사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크고작은 갈등에 관한 문제
였으며.. 우리 사회가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골깊은 갈등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토록 선망한다는 국내 최고기업에 몸담고 있는 한 친구의 내면의 갈등과
상처는 우리들의 마음을 불편케 했고, 이 또한 최고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제법
긴 시간동안 빛바랜 사진들을 꺼내듯.. 오래된 기억의 보따리를 풀어내는 시간도 가질수 있었
습니다.
보고 싶은 그리운 얼굴들..
- 남몰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여학생에 대한 이야기들..
- 정의.자유.민주.평등의 거창한 단어들을 섞어가며 설익은 신념을 설파하던 모습들..
- 주일 오후면, 김밥등 간식을 준비하는 사랑의교회 젊은이들로 북적였던 영동프라자 주위의
안타까운 쇠락의 이야기.. 거리가 변하니 기억마저 사라진 것 같다는 한 친구의 말도 의미심
장 했습니다
- 80년대 후반. 공정한 대통령선거를 위해 일단의 젊은이들이 교회주변 도로에서 피켓을 들고
서명을 받다, 전원 연행되어 서초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고.. 당시 서초경찰서 경목(警牧)
으로 섬기시던 옥한흠 목사님과 장로님들을 당혹스럽게 한 이야기..
담임하는 교회의 범법자 양들과 경목으로 돌보는 또 다른 경찰관 양들 사이에서, 과연 누구
의 이야기부터 들어주어야 할지.. 무척 곤욕스러웠을 옥목사님 얼굴도 생각이 났습니다.
(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새신랑 심정은 아니었을지...)
- 짦디짦은 치마입고 교회에 나오며 그토록 당당할 수 있었던 어느 여학생... 20여년이 흐른
지금의 새로운 평가는 '자신감.당당함' 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들은 경건의 칼. 정의의 칼 로
그 당당함을 죄악(?)이라고 규정하였지요. 그러니 그녀는 경건한 우리들에 의해 죄인의 굴
레가 씌워진 여인이 되었습니다.
다른이들에게 멋지게 휘둘렀던 그 경건의 칼은.. 내 마음에 들지않는 것들을 무릎꿇리고 정
당화시키는 '녹슬고 무딘 사람잡는 칼' 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이 칼날에 쓰러져 간 무고한 이들을 생각하며.. 속죄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 낯선서울. 좁은 자취방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던 가난한 시골학생들.. 아들의 친구들인 그
들을 집으로 불러 "먹는 폼새가 왜 모양들이냐! ".. 며 많이 있으니 먹고 더 먹으라고 내어
주시던 어느 권사님의 따뜻하고 넉넉했던 ' 한그릇의 곰탕 '
저도 그 촌놈들(?) 틈바구니에서 참 많이 먹었습니다. 20여년이 지났건만 그 곰탕을 잊을
수가 없으니 도대체 그 안에다 무엇을 넣으셨는지 궁금 할 따름 입니다.
권사님께서 남몰래 넣으신 '이상한 조미료(?)'
돈으로는 그 어떤 상점에서도 살 수 없었던 '사랑' 이라는 조미료를.. 당시 사랑의교회 라는
냄비안에 넣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몰래몰래 넣으셨기에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그저 곰탕
맛은 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함께 먹었던 사랑이라는 숨겨진 조미료를 아는데는 오랜시간이 필요했으니.. 사랑은 시간이
라는 친구와 늘 붙어 다니는 단짝친구라는 생각도 듭니다.
(권사님!.. 이상한 조미료가 담긴 곰탕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외국에서도 건강하세요)
- 민주화에 대한 진통이 절정에 다다른1987년.. 한 대학생의 죽음이 우리사회를 요동치게 했
습니다. 교회 울타리에 있던 우리들도 마음만은 자유롭지 못했고, 일부는 거리로 뛰어나가기
도 했으며 김수환 추기경께서 강론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 “ 너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 고 물으시니
가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라며 잡아떼고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의 아들. 너의 제자. 너의 친구. 너의 국민의 한사람인 "박종철이 어디 있느냐고?.. "
이 정권의 뿌리에는 과연 양심과 도덕이 있는지.. 하나님께서 지금 묻고 계십니다. 」
추기경의 모습은 비통했습니다.
얼마후 6월.. 쫓기고 쫓기던 400여명의 학생들이 들어간 명동성당. 실정법을 위반한 학생들
을 내어 달라는 공권력 사이에서 고뇌하시던 추기경께서는..
" 갈곳이 없어 들어 온 이들을.. 교회는 나가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쫓기다 보호받기 위해 찾아 온 어린양들을 쫓아내는 목자는 없습니다 ” 며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여러분이 그들을 데려 가려고 들어 온다면.. 맨 앞에 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 뒤에는 신부들이 있고 그 뒤에는 수녀들이 있고, 그 다음에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도 밟고 지나가야.. 학생들을 데려갈 수 있습니다 "
요즘 젊은이들은 추기경의 얼굴을 환한 미소 띤 모습으로 기억하겠지만, 당시에는 고뇌에 찬
추기경의 어두운 얼굴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 시대가 사람의 얼굴도 바꾸는 모양입니다 "
이렇듯 빛바랜 사진들을 한장한장 끄집어 내며 오래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전부 옮기려면 끝
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근동지방에서 매일 밤마다 풀어내는 한 가지씩의 이야기로 1,000일 동안
생명을 지켜낼수 있었던「아라비안나이트」의 여인을 생각하며.. 계속해서 두서없이 주절주절
펼쳐내는「강남역나이트」라도 시작한다면 몇일밤이 걸릴지 모르겠으며
만약 그리 한다면.. 누군가 제게 조약돌이라도 던질지 모르겠습니다.
○ 고향 친정집
창고속 어디있는지도 모를 먼지묻은 보따리들을 풀어 헤치듯, 오래된 빛바랜 사진들을 한장
한장 끄집어 내는 일은.. 피곤함보다는 가슴속에 작은 무언가가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빛바랜 사진의 기억들을 주고 받으며.. 지금은 서초동 새 예배당에서. 작은 동네교회에서. 사
랑의교회 출신 목회자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그리고 지방과 외국의 현지/교포교회에서.. 각자
삶의 형편에 따라 몸담고 있는 교회는 달랐지만, 우리안에 간직된 사랑의교회을 향한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크고작은 교회들 중에서, 젊은시절을 함께 했던 사랑의교회를 향한 마음들은
어쩌면 시집 간 여인의 고향 친정집을 향한 그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
습니다.
교통이 낙후되고 국토가 광활한 중국.인도같은 나라에서는 결혼하여 먼 지방의 시집으로 길을
떠나면 평생동안 몇번이나 고향친정집을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가난한 신부들이 많
다고 합니다.그들중에는 평생 고향집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 가슴 아픈 애절한
마음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옥목사님의 남다른 관심과 당회의 결정으로 교회가 지급한 장학금을 받고 학업을 마칠수 있었
던 지체들의 그 마음은 우리들보다 더 하리라 짐작됩니다. 저는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담당 교역자외엔 어느 누구도 알 수 가 없었습니다. 그 사실은 훗날 알게 되었으며, 당시에도
작지않은 교회였음에도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 대한 배려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했었습니다.
그 의문은 경상남도 작은 바닷가 시골마을에서 '똥지게를 지고 걸어가는 소년'..
이 소년의 고등학교 시절 고백을 통해 풀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때마다 뒷산에 올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서로에게 위안을 삼던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남매
그 오빠의 고백입니다.
“ 나는.. 교복입은 여학생들을 보면 내 목에서 피가 올라 오려고 한다.
쟤들은 저렇게 교복입고 학교 다니는데, 고등학교만 마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나를 위해
지금도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내 목에서 피가 올라온다. "
이 상처받은 소년의 슬픔이 어디 옥목사님 한분만의 아픔이겠습니까.. 이 땅에서 모질고 힘든
시절을 살아낸 세대 모두의 슬픔일 것 입니다 .
이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아셨던 목사님께서는 자존심 강하고 예민한 시기에 마음의 작은 상처라
도 입지 않을까.. 염려하셨으며, 그것이 당신과 소박한 농군의 모습을 가진 장로님들을 통해 교
회가 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슬픔과 아픔의 상처가 열등감과 허영과 탐욕.. 교인들에게 자신을 바라보게 하려는
부패한 유혹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양심으로 자신을 늘 점검
하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 사랑의교회 "...
선한 청지기의 소박한 모습을 가졌던 장로님들.. 마음씨 따뜻했던 권사님들.. 절제할 줄 알았
던 성도들.. 그곳에서 제자훈련을 하며 씨름했던, 오고갔던 수많은 사랑의교회 지체들의 가슴
속에 간직된 고향집을 향한 마음도 새삼스럽게 그려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면 사방이 진흙길로 변했던 작은건물에서 첫 발을 내딛으며, 큰 교회가 되었지만 선한
양심을 지키다 우리곁을 떠나간 목회자의 목소리도 다시금 헤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 하나님을 가까이서 보는 이들은 자신의 추함을 볼 것이요
멀리서 보는 이들은 자신의 잘남을 볼 것이니
하나님 바라볼 눈으로 한낱 도구에 불과한 인간 바라보다
눈이 멀지 마십시요!.. "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요즘들어,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한 한국교회의 부작용들을 곳곳에서 접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밖에서 퍼붓는 비난들은 매섭다 못해 원색적이며 조롱섞인 비난도 있
는 것 같습니다.
이 비난에, 나 자신은 무고한 피해를 입은 사람인양 문제를 교회 지도자들의 탓으로만 그 책임
을 돌리며, 내가 그들을 향해 던질 돌만 가지고 있고 맞아야 할 돌은 없는지.. 스스로 반문하게
됩니다.
헌금과 십일조 생활은 지적하면서 교회밖에서 부당이익을 챙기고 불법과 편법을 행하는 교인
들에게 아무말이 없으며, 예배와 새벽기도. 봉사등 종교활동의 모양으로 경건의 수준을 가름할
뿐, 교회밖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교회를 편안하게 여기며 미소
짓고 앉아 있는 내 모습..
한주간 부끄럽게 산 것은 예배를 한번 드려줌으로 정산을 끝내고 열광적인 찬양을 부를때면 하
나님께서 지금 영광중에 나를 받으시며 기뻐한다는 감정에 취해, 자유함을 얻었다고 속 후련해
하는 모습..
교회 울타리을 벗어나는 순간 가면을 벗어 던지고 속물의 얼굴을 드러냈다가, 교회에 돌아오면
신속하게 가면을 뒤집어 쓰는 이중성은 교회생활을 오래한 내겐 조금도 어색함이 없으며, 시간
이 갈수록 세련되는 화장술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내 자신까지도 속아 넘어가, 종종 어떤 얼굴
이 진짜 내 얼굴인지 헷갈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
중세 유럽에서는 중죄인들에게 가죽이나 면직으로 된 가면을 얼굴에 씌워, 수십년이 지나면
가면과 얼굴이 눌러붙어 어찌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는데, 오랜세월 교회생활을 한 내겐 무
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를 자발적으로 찾는 대부분의 초신자가 주위 그리스도인으로부터 평소 받았던 선한감화력
때문에 교회에 나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삶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신앙인격과
평범한 일에 임하는 나의 얼굴빛의 온유함이 은밀한 감화를 미치고, 그 어떤 유창한 종교적 설
득보다 강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는 술자리의 치기어린 호기를 부리듯 이 세상을 모두 품은 넓은 가슴을
보여 주다가, 속이 한번 뒤틀리면 바늘 하나 꼽을데 없는 편협한 가슴에서 독기를 내뿜는 모습
목회자는 주일날 말씀으로 하나님을 말하고, 나는 세상속 삶의 제단에서 말해야 하는 것이 '만
인 제사장' 의 속깊은 의미임을 알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늑대가 되어 조금이라도 약한모습
을 보이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인간맹수들의 정글에서 온화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며
어쩌면 아프리카 정글에서 선교하는 일보다 더 힘든일이라고 변명하고 그 무모한 일은 은사
없는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며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특별한 은사를 받은 성도들의 몫이라고
숨어 버리는 모습..
이렇듯 정직한 내 모습이 이러할진데, 포에버중창단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
혔나니".. 라는 고백의 이 찬송을 어찌 마음 편히 듣고 있겠습니까! 차라리 모른다면 마음이라
도 편할텐데 말입니다.
교회안에서 종교활동과 봉사와 의례에는 제법 익숙하지만 교회밖으로 한발짝만 벗어나면 손에
든 성경/찬송가외에는 가지고 있는것이 없으니, 이 찬송을 함께하는 기쁨보다 뒤집어 쓴 종교적
가면의 두께와 세상풍조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저 그렇게 사는 변덕스러운 아저씨를 보는것
같은 자괴감이 밀려 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뻔뻔스런 단어를 다시 끄집어 냅니다. 끄집어내는 내 스스로가 얼마
나 뻔뻔스러운지 알면서도 이것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가 실
패하고 무너진 자리. 부끄러운 자기기만과 모순으로 절망하는 자리. 그래서 뻔뻔스런 고개를
들며 살며시 주위를 살피는 그 자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구하고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자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믿음이나마 의지하기에..
곧 있을 전쟁에 대해 집집마다「손자의 병법서」를 꺼내 읽으며, 저마다 전략과 전술과 대책을
논 하지만, 정작 전쟁터으로 달려가는 이들이 적음을 한탄하며..
' 늙은 말과 녹슨 투구를 꺼내.. 전장으로 향하는 늙은병사' 처럼 나만의 전장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옯기고자 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의 전장으로..
그리고 비록 큰 승전보는 전하지 못할지라도, 이 싸움을 기억하며 격려하고 위로해 주는이가
있으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 집사님.. 한주간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저는 기도하며 말씀보고 교회일하며 지냈습니다. 주일날 이렇게 집사님 얼굴을 다시뵈니
맹수들이 가득한 들판을 가로질러 목자를 찾아 돌아 온 어린양을 보는것 같아...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깊은상처는 없으십니까.. 제가 준비한 말씀의 양식이 집사님의 선한싸움에 큰 힘이
될 것이라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다시 들판으로 나가실 집사님의 뒷모습을 보면.. 늘 마음이 안스럽고 걱정이 됩니다.
집사님!.. 목회자라는 직분은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이토록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하기에
제 자식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부모된 솔직한 심정입니다.
한주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길 기도하며 말씀 준비하겠습니다. "
○ 불꽃놀이
오래전 일본에 체류하며 들었던 생각중 하나는, 자판기와 편의점이 많고 편의점에서 대부분의
일상적 물품구입이 가능하며, 특히 판매되는 도시락은 품질이 우수하고 다양해서 식당의 역할
도 소화함으로 편의점이 이처럼 많은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편의점이 늘어나 이제는 동네곳곳.거리마다 만나게 됩니다. 규모들은 다르지만 어
디를 가든 비슷한 구조와 직접 고르고 계산하는 방식. 고객과 직원 역할이 분명하다는 공통점
을 보게 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예전의 정겹던 다양각색의 동네
구멍가게와 비교하면 요즘 편의점들은 '비슷한 옷을 입고있는 쌍둥이들'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쌍둥이 같은 가게들.. 이같은 편의점의 4배에 이르는
숫자의 교회가 있다는 기사를 최근에 본 적이 있습니다.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영합하여 영광과 번영을 구가할 때, 성직는 세속적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선망
의 대상이 되고,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성직자가 되려는 사람이 급증했으며 중세교회가
부패했을 때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같은 역사실 사실과 편의점보다 많다는 이 땅의 교회를 보면서.. 제게 드는 일말의 의문이
나의 억측이길 바라지만 다양한 모양으로 드러나는 교회에서.. 이런 모습을 가진 교회도 생각
해 보게 됩니다
- 근거도 불분명한 예화부스러기와 코믹한 이야기. 만담수준의 설교로 꼭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도 될 것은 차고 넘치는.. 말의 향연장이 되어버린 교회.
-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실지도 모를 성전건축.. 집짓기를 가장 기뻐하는 일이라고 속여
가난한 교인들의 헌금을 빼내가는 교회.
- 세계적인 성장의 쾌거를 이루었다는 자랑 뒤에 온갖 부작용과 비리의 냄새가 가득하며
성령에 충만하지 않고 세상욕심에 충만해도.. 기도에 열심일수 있는 교인들을 키워내는
교회.
- 심각한 죄에 빠져 있으면서도... 설교는 감칠나고 멋들어지게 해서 교인들을 헷갈리게
하며, 범죄의 사실을 교묘히 감추고 애매한 말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고단수로
덮어버리며, 실체없는 모호한 고백을 통해 추종세력의 이탈을 막아.. 다시 일어선 개척
교회.
- 큰 건물을 지어 무리를 끌어 모으는데 온 에너지를 쏟고있는 교회.
- 실족하고 잘못이 있을지라도 회개의 자리에서만은 진실해야 한다고 믿고있는 성도들의
의 바람을 저버리고, 당사자와 교회전체의 회복이 회개의 목적임은 잊은 채.. 회개의 때
를 놓친 교회.
- 강단의 공적회개는 사실과 의문에 대해 밝히고 인정하거나 또는 부당하게 오해받는 점이
있으면 해명해야 하는등 분명해야 함에도.. 참인지/거짓인지 분간 못하는 감상적 온정적
순진한 교인들의 눈물 뒤로 숨어버려.. 결국 교인들의 생각과 마음이 나뉘어 중병을 앓고
있는 교회.
- 사람들을 압도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과 그 속에서 파이프오르간과 오케스트라와
성가대가 어우려져 장엄하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찬양을 통해.. 마치 하늘문이 열리고
주님의 영이 당장이라도 임할 것 같은 은혜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교회
그리고 이 은혜로운 분위기가 외형은 화려하고 거창한 것 같지만, 내면의 영적인 공허함
과 허약함을 감추려는 탁월한 종교적 연출일지 모른다는 분별력있는 성도들의 의심어린
눈초리를 받고있는 교회.
- 오래 설교하면 영혼의 옷이 한꺼풀씩 벗겨지고 벌거벗음이 드러날 수 밖에 없어, 영혼이
빈곤하고 허약한 이에게는 끔찍하고 두려운 일임에도.. 설교자의 영적빈곤을 잘 알아채
지 못하는 교인들이 고마운 교회.
- 어린시절의 실패와 상실감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발동하고, 세상에서 못 이루었던
바램을 교회에서 성취하려는 무모한 성장의 열정에 사로잡혀, 종교적 야망과 자기왕국을
이루기 위해.. 성도들을 섬김의 대상보다 수단의 도구로 삼기 쉬운 교회.
아울러..
- 교회가 추구해야 할 성장은 대기업을 닮은 성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성장이라고
믿으며, 탐욕과 성장제일주의. 암몬의 장단에 춤추지 않고.. 거대한 물결을 거슬러 올라
가는 교회.
- 순진한 영혼들을 홀려서 종교적 야심을 채우려는 목회자들이 발붙일 수 없도록.. 분별력
있는 성도들을 가르치고 키워내는 교회.
-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 의사. 사회의 병폐를 고치는 법률가. 영혼의 병'을 다루는 성직자
를 세상의 3대 전문직으로 여겼던 서구전통의.. 그 영광되고 무거운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한시도 잊을 수 없는 목회자의 교회.
- 영혼의 크기가 그 끝을 알 수 없을만큼 커서 작은 교회도 마다하지 않으며, 목회자로 빛을
내지 못하고 묻혀 지낼지라도..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그 일 자체가 행복한 목회자를 바
라보는 성도들의 교회.
- 자신의 약함과 허물은 절대 드러나지 않도록 신비의 두께운 베일로 가리며, 그것이 교인들
의 추종을 끌어내는 방법임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단교주의 자기숭배적 죄악을 꿰뚫어
보고, 자신의 탁월함은 감추며 오히려 허물과 약함을 숨기지 않음으로서, 교인들이 하나님
만을 온전히 바라보게 하여.. 사람 바라보다 눈이 먼 성도들이 없는 교회.
생각해 본 몇가지 교회의 모습으로 편의점보다 많다는 이 땅의 교회모습을 가름하는 것은 어리
석은 일이며 개교회주의 전통의 성격이 강한 개신교 교회에서.. 처한 상황과 여건이 상이하여
편의점보다 외형적 통일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것
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극단적인 세속주의와 물질숭배 문화로 이곳저곳이 온통 병들고, 죽음의 문화와 우상
숭배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작은 예수로 세속에 물들지 않은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세상보다 더 큰 힘이 존재한다는 증거임을 알리는 교회들을 곳
곳에서 만나길 소망하게 됩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IT산업을 필두로 첨단 과학문명과 의학의 발전.사회복지 제도.경제력.군사력..
그 어떤것을 동원해도 전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인간과 죄'.. '삶과 죽음'.. '속박과 자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기도.. 하나님과의 만남인 기도밖에는 없으며 교회가 기도하는
집이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교회..
예수님께서 성령의 소원과 거룩한 갈망이 가득해야할 교회에.. 육신의 욕망과 시장의 가치관
이 채워질때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장사치의 소굴로 경고하셨듯이.. 우리들의 교회가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멀리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게 됩니다.
이 기도하는 집에서 기도하며 거룩한 갈망을 구해야 함에도, 기본적 신앙인격도 갖추지 못한
교인들간의 교제가 서로에게 상처만을 안겨주는 갈등의 장으로 변해 버린 곳..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을 확인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장소가 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가면벗기가
가장 위험한 곳이 되어 버린 곳. 드러난 허물진 내 얼굴을 보면 주위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고
율법주의적 돌팔매를 맞을 두려움을 안고 있는 곳..
누구든 용서와 사랑이 있는 곳에서만 허물진 얼굴을 드러내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가면을 벗을
수 있듯이..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용서와 사랑으로 극복하는 교회의 모습을 소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긍휼과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그 에너지를 예수님의 마음과 눈
길이 머물렀던 곳.
가난의 고통과 질병의 아픔. 소외의 멸시와 영혼의 상처로 신음하는 사람들...
깨어진 가정으로 거리를 배회하며 가슴속에 독기를 품고 희망보다 절망을 먼저 배워 버린
아이들...
인권이 유린되고 착취당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을 기다리는 외국인 노동자들...
쏟아지는 상품의 홍수속에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이 없어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소외된 이웃들...
이 사회에서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우리의 교회가 사랑의
관심과 물질의 헌금을 힘써 모아 흘러 보내는 거대한 저수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보답도 댓가도 기대할 수 없는 그들에게 교회의 사랑과 관심과 물질를 아낌없이 쏟아붓는
일은 '준 만큼 받아야 하고, 준 것보다 더 받는 것이 똑똑한 것'.. 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의 가치
관에는 무모한 바보짓처럼 보이겠지만..
고아와 과부를 돕고 자신을 돌아보아 지키며, 세상풍조에 물들지 않는것이 '경건' 이라고 야고
보가 말했듯이, 우리 주위에 댓가를 기대할 수 없는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함께하는 그 자체가
무서운 암몬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물들지 않은 온전한 교회의 모습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를 삼키려는 맘돈 우상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고 싶습
니다.
이 바보들의 행진에.. 편의점보다도 많다는 이 땅의 교회들이 크고작은 띠를 이루고 큰 물결이
되어 함께 나아가는 것은 우리시대에 꼭 필요한 일이라 여겨 집니다. 그리하여 이 싸움곳곳에
서 들려올 크고작은 승전보가 세상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징표라 여기며 사람들의
칭찬과 환호와 기쁨의 잔을 뒤로한채, 겸손과 무명의 자리로 내려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묵상하며 신을 고쳐 신고 이 길을 따르는 일이,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제
자들의 길이며 그 발걸음 속에서 차 오르는 기쁨이 세상은 알지 못하는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주어진 조건들이 하나님께서 맡겨준 선한청지기의 삶을
배우게 하시는 축복이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우리사회에서 평균 이상의 것을 받았고 가지고 있는 우리 사랑의교회가.. 이 바보들의 행진의
선두에 서서 깃발을 펄럭이는 모습은, 비가오면 사방이 진흙길로 변하던 작은건물에서 큰교회
가 되었지만 선한 양심을 지키다 우리곁을 떠나간 목회자가 그토록 바라던 모습일지도 모르겠
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의교회는.. 한때 많은사람들의 관심과 박수와 환호를 받는 화려한 "불꽃놀이" 를 연출하고
메케한 냄새와 희뿌연 연기만 남긴채 사그라지지 않을 것임을...
사랑의교회가 무너지고 실패한 자리.. 절망하고 통회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구하고 다시 시작할 것임을...
비록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을지라도..
암몬과 탐욕. 우상숭배적 가치관. 성장주의. 거대주의. 기복주의. 패배주의.. 그 어떤 세력도
사랑의교회의 선한뿌리마저 송두리채 뽑아 버리려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을 것 입니다.
그리하려면...
'늙은 말과 녹슨 투구를 꺼내.. 전장으로 향하는 늙은병사의 심정' 을 가진 은퇴장로님들.
맨앞에 서 있는 그들을 밟고, 그 뒤에 서 있는 사역장로님들을 밟고, 그 뒤에 서 있는 권사님
들도 밟고, 그 뒤에 서 있는 지하예배당에 모인 성도들도 밟고..
그리고
원근각처. 방방곡곡. 세계곳곳에서 몸된교회를 섬기며.. 고향 친정집을 향한 마음을 간직한
오고갔던 수많은 사랑의교회 지체들의
그 마음마저... 짓밟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색이 뱌랜 오랜 앨범의 사진들을 한장, 한장 넘겨 보는 심정으로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언젠가 제게 겸손의 말씀으로 얼룩말 타법이라고 말씀을 주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룩말이 아닌 명마의 질주, 자주 뵐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산타할아버지와 함께 눈길을 헤치고 찾아온 거북이를.. 꽃이 피는 이 봄에
다시 뵈니.. 정말 반갑습니다..
거북이들은 잘 지내고 계신지요.. 혹시, 거북이가 토끼로 변하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해가 지나.. 901년이 되셨을.. 토끼같은 거북이가 평안하고 건강하시길 소망합니다.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귀한글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나의 약함과 치부(恥部)마져 신중하게 일깨어 들어 내시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기개(氣槪)로 쓰신 글을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제 모든 것을 잊고 조용히 뭍쳐 지내고 싶다는 늙은이 안일한 생각이 허공을 치네요.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참 각오가 되어 있기나 한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나도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내가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노라고 말 씀 드릴 수 있으려는지...아무튼 주신 글 많은 것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케 하는 것들 마음에 담고 갑니다.
여러가지를생각하게하는 글 감사드립니다...
깊은 감동이 밀려오는 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지독하게도 간절하고 처절하기까지한 소망...모두를 자각에서 일깨우시는 내용이 너무 좋습니다^^
조그만 책자로 만들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감사^^
@잠언 동감입니다. 너무나 귀한 글 입니다. 마음에 늘 간직하며 깊이 새기고 싶은 글입니다. 우직하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로만 걸어가는 우리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답답한 현실에서 늘 침체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요즘~~
기러기가 차분히 제 마음으로 날아와
다시 힘내라고 격려하네요
우리의 암울했던 70년대의 그시절이 아련히
기억 저편에서 나를 일깨워줍니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웠던 그때에 더
정이 넘치고 믿음도 순수했고 무슨 말씀이던 순종했고 목회자를 존경했습니다
정든 지체들 ~~모두가 그립습니다
비록 센터에 몸담고 있는 그들을 위해
기도의 끈은 놓지않겠습니다
기러기님 귀한글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기도하며 제가 할 수 있는 길을 묵묵히 가고 말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귀한글 너무 감사 합니다.
비가 내리는 밤에 읽어내려가며 마음의 감동이 밀려옵니다. 모처럼 수필한편을 읽은 느낌입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깊은 감동, 눈물이 앞을 가림니다.
폐부를 찌르며 영혼을 깨우는 글! 가슴에 고히 새겨 기꺼이 밟히며 살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많은 울림과 떨림이 있었습니다. 참 귀한 글 감사합니다. 기도하고 생각을 정리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의지하며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돌보시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님과 같은 소망을 가진 분들이 마당에 많으시기 때문에 비록 교회가 새상의 비아냥을 밭는 시절이지만
머지 않아 마당기도회의 여러분들이 "남은 그루터기"가 되어 여기서부터 새싹, 여리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흠없는 모습으로 당차게 일어날 줄 믿습니다.
촉촉이 내리는 봄비처럼 다가오는 글입니다.
바른 신앙의 유전자가 다음세대에게 전수되기를 바라며 감사를 전합니다^^
글 읽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저 역시 과대 포장되어 무슨 훌륭한 사람처럼 보여지는것, 보이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회개하면서 말입니다. 더욱 정진하여 교회 바로 세우는 일에 열심히 하겠습니다.
울컥합니다
저보고도 열심히한다고 칭찬받을때가
제일 힘듬니다
더욱 낮은자세와 주님이 주시는 음성으로
갱신에 힘을 보태겠읍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귀한 믿음의 유산을 받은 자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꿈과 현실을 다시 생각하며 놓치고, 잃어버린 원형을 그려보게 합니다. 공동체로서와 나 개인으로서의 하나님의 꿈이었을 교회, 그 아름다운 이름과 영광을 위해서 오늘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자리로 먼저 나아가야겠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기억이 있는 사랑의교회..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지켜내기위해 모인 한 분 한 분이 너무도 귀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눈물로 쓰셨을 귀한 글 눈물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