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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열려진 감옥 문/행 5:12-16
성경본문 : 사도행전 5:12-16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행4:2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23.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행5:24
27.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행4:18, 행2:23, 행3:15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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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박해
본문은 초대 교회에 일어난 두 번째 박해의 내용입니다.첫 번째 박해는 4장에 있었습니다. 그 때의 박해 주동자들은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앞장 선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성전 관할권이 침해당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자기들의 교리에 없는 부활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체포하여 공회에 세웠습니다. 사도들에게 심문한 내용은 두 가지였습니다. 무슨 권세로, 누구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하였는가? 사도들의 답변은 분명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구원받을 만 한 이름이 없다! 공회는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풀어줬습니다.
두 번째 박해 역시 사두개인들이 주동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사도들을 붙잡아 공회에 세우고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 말라! 그런데 두 번째 박해의 과정은 첫 번째와 좀 다릅니다.
우선 그들은 공회의 심문이나 판결 없이 사도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들을 시켜서 사도들을 석방시키셨습니다. 이 부분은 잠시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중심이 된 유대인들은 풀려나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도들을 다시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사도들에 대한 심문 내용은 첫 번째와 동일합니다.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행5:28)
왜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 말라고 했는데 위반했는가?
왜 예수 죽인 죄책을 유대인들에게 돌리는가?
사도들은 당당하게 변론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29-32)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잠시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튼 공회의 판결은 첫 번째와 유사합니다. 사도들을 채찍질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석방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박해를 통해서 우리는 교회가 당하는 박해의 실상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박해의 원인은 복음 전파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 말라! 교회가 이 복음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박해는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박해의 방법과 결과도 동일합니다. 전도를 금지하고, 감옥에 가두고, 때리고, 심하면 죽입니다. 이와 같은 박해를 극복해야만 참 교회가 세워집니다. 박해를 이겨야만 복음이 전파되고, 영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시대 역시 형태는 다르지만 많은 박해에 직면해 있습니다. 세상의 반대와 도전을 이겨야만 합니다. 다시 본문을 봅시다.
임의 투옥과 천사들의 석방
박해자들은 사도들을 임의로 붙잡아 가뒀습니다. 법 절차 없는 체포나 구금행위는 불법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이런 종류의 박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체포당한 이유는 아주 유치합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17-18)
한 마디로 시기심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시기했습니다.
❃첫째로, 많은 군중들이 사도들을 추종하는 것을 시기했습니다.
왜 공회원이나, 성전 책임자, 혹은 제사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사도들을 따르는가? 안나스, 가야바, 원로들, 제사장들이 줄줄이 있는데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싫었습니다.
❃둘째로, 복음에 대한 시기심입니다.
부활도 없고 내세도 없다고 가르친 것이 사두개인들입니다. 그들은 영혼이나, 귀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기적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영혼 구원을 얘기합니다. 육체 부활을 가르칩니다. 귀신을 쫓아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병자들을 고칩니다. 셋째로 성전 관할권입니다. 성전은 사두개인들의 활동 무대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성전의 한 부분을 장악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왜 자기들이 관할하는 장소에서 임의로 집회를 하는가?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잡아 가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천사가 사도들을 석방시켰습니다. “주의 사자”란 말은 단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a[ggelo" kurivou”, “the angel of the Lord”입니다. 단수형으로 된 것은 이 천사가 특별한 임무를 띤 천사임을 보여줍니다. 그 특별한 임무가 뭘까요? 바로 사도들을 지켜주고 하나님 명령을 전달하는 임무 입니다. 특별한 천사가 나섰다는 것은 곧 이 싸움이 영적 싸움인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가 박해를 당하고, 박해에 대항하는 것은 육체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세상 권력 싸움이 아닙니다. 오직 영적 전쟁이며, 신령한 전투입니다. 천사는 사도들을 풀어주기 위해서 세상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신령하고 신비로운 방법으로 풀어줬습니다. 감옥 문도 열지 않고, 간수들이 불침번을 서는 가운데 감쪽같이 풀어줬습니다. 문이 잠겨있는 데도 몸은 구애받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간수들의 두 눈을 뜨고 지켜보는 데도 사도들이 풀려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초자연적인 역사로 사도들은 풀려났습니다.
천사는 사도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19-20)
사도들에게는 주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로,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전하라!
조금도 빼지 말고 주님이 주신 내용을 전부 전하라! 복음을 충실히 전하는 것이 사도들의 사명입니다.
❃둘째로, 성전에 서서 말하라!
숨어서 말하지 말고, 은밀히 말하지 말고, 당당히 말해야 합니다. 말씀의 전당인 성전에서 모든 사람에게 말해야 합니다.
사도들은 그 명령대로 풀려나는 즉시 성전에서 설교했습니다. 아마 사도들이 풀려난 시간은 한 밤중이거나 새벽녘인 듯합니다. 감옥과 성전이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지 사도들은 새벽기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설교했습니다. 일반적인 탈옥수들은 탈옥하는 즉시 어디론가 숨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세상이 불법 구금한 사람입니다. 체포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당당히 성전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사도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습니다. 첫째로는 교회에 대한 적대적인 세력들의 활동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반기독교적인 세력이 너무나 많습니다.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니까 더 좋아졌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교회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일부의 방송, 언론, 평생 성경 겉표지 한 번 안 읽은 사람까지 다 나서서 야단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봉사 활동 잘 하고, 목사는 코미디언 같이 즐겁게 해주고, 유일성이나 절대성을 말하지 않는 교회! 한 마디로 라이온스 클럽이나, 로타리 클럽 같은 교회입니다. 예배는 강조하지 않고, 예수가 유일한 구주라고 말하지 말아야 되고,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세상이 원하는 교회는 교회 아닌 교회입니다. 생명력 없는 교회, 예수님이 없는 교회! 유일하시고 절대적인 하나님이 없는 교회! 그게 교회입니까? 결국 그래서 소아시아 교회들이 사라졌고, 유럽의 교회들이 사라졌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할 일이 뭡니까? 세상의 요구에 부응하는 겁니까? 교회 체제를 세상 봉사단체 체제로 바꿔야 합니까? 아닙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교회의 본질을 지켜가야 합니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전도의 공동체입니다. 세상 교제보다 성도 교제가 우선되는 코이노니아 공동체입니다. 복음으로 양육되는 양육의 공동체이며, 마지막으로 주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봉사의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반대에 부딪치고, 비난을 받는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지키고, 참 교회의 모습을 지켜간다면 주님이 지켜주십니다. 천사들이 우리를 돕습니다. 하나님은 참 교회를 감옥에 가두지 않습니다. 참 사도를 세상에 패배하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어떤 감옥도 참 사도를 가두지 못합니다. 세상 눈치 보면서 교회를 변질시키지 맙시다. 세상이 뭐라고 요구하든지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따릅시다. 박해를 당당하게 이깁시다.
공회에서의 공방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사도들을 체포 구금했지만 임의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군중들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26)
정의로운 사람들은 군중 여론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통치자들은 여론을 무서워합니다. 요즘 정치인들 보세요. 여론 눈치 보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시청 앞 광장에 만 명이 모이든, 천 명이 모이든 상관 말고 처신하세요. 정의이면 행하고, 불의이면 행치 말아요. 국회의원은 때 되면 국회에 나가야 됩니다. 국회의원 뽑아 놓은 지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자기 집을 찾아가지 못합니까?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자기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소리 하지 말고, 헌법에 보장된 대로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나라를 잘 다스려야 됩니다. 모세가 만일 여론 정치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압도적 지지로 애굽으로 되돌아갔을 겁니다. 여론은 항상 변합니다. 참작은 하되 절대적 지침은 아닙니다. 아무튼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공회 앞에 세운 것은 사도들에게는 다행한 일입니다. 공회 앞에서 심문 당하는 바람에 공회원들 앞에서 설교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처신은 장차 교회가 박해를 당할 때에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지 그 분명한 지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박해에 대한 사도들의 대응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선이다!
앞선 첫 번째 박해 때에 사도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4:19)
가부간의 판단을 상대에게 맡겼습니다.
너희가 판단하라!
그러나 두 번째 박해 때는 오히려 강해졌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5:29)
어떤 박해가 다가올지라도 사람의 소리를 하나님 말씀보다 앞세우지는 말아야 합니다. 절대 유일의 하나님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절대 원리로서의 하나님 말씀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유일 구주이심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예배, 전도, 코이노니아, 양육, 봉사의 교회적 임무의 순서, 특히 예배 우선의 임무를 바꿀 수 없습니다. 어떤 박해가 다가온다 해도 먼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임금과 구주시다!
본문을 보세요.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30-31)
베드로 사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달아 죽인 것을 강조합니다. 나무에 달아 죽인 것은 저주의 표식입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3)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저주받을 자라고 여겨서 나무에 달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이 저주받은 것은 맡습니다. 그러나 자기 죄 때문에 저주받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죄는 세상 사람들이 짓고 저주는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오늘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십니다.
예수님은 저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높이셨습니다.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임금이 되셨습니다.
예수님 명령은 우리에게 절대 명령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습니다.
세상 임금이 우리의 임금이 아닙니다.
헤롯 임금이 우리 임금이 아닙니다.
빌라도 총독이 우리 통치자가 아닙니다.
어떤 권력자도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공회 앞에서, 사도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시다!”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라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공회원들에게는 모욕적인 말입니다. 너희가 권력이 있다고 왕인 줄 아느냐? 아니다! 너희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야 될 죄인일 뿐이다. 너희의 진정한 왕은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너희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님께 복종할 뿐이다! 모든 박해자들 앞에서 말하세요. 모든 반대자들 앞에서 말하세요.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주시다. 우리의 왕이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사건의 증인이다!
이제 사도들은 심문 받는 죄인이 아닙니다. 공회원들 앞에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거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32)
증인의 책임은 사실을 알리는 겁니다.
누가 말하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말하라고 한다고 해서 없는 말을 지어낼 수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집니다. 사도들은 누가 금하든지 말든지, 누가 때리고 가두든지 말든지, 심지어는 죽임을 당한다 해도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증인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들입니다. 사도들이 증인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목격했기 때문에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육안으로 예수님을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 증언해 주는 증인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사도들 역시 자신들만 증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32)
성령님도 함께 증언하신다!
오늘 여러분, 우리 배후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라고 증거 할 때에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감동 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깨닫고 영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박해를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가 갇히지 않도록 감옥 문을 열어주십니다. 담대히 말하도록 입을 열어주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담대한 증인들이 되십시오. 그래서 모든 박해자들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반대를 이기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 “이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반대로 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하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경배하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나내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세요. 기적을 일으키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꺼이 높이고, 즐겁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출 처| 김영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