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수 없는가
저자는 북한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공부했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와 2017년 연세대학교에서 탈북 여성의 폭력 경험과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이라는 전체주의 체제에서 내부자로서 겪은 경험과 탈북 후 18년 동안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의 체제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북한 사람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북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접근법
첫째, 북한 사람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안정감을 느끼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인지, 불안지수가 다소 높은 환경인지, 혹은 생존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극한적인 환경인지에 주목하여 접근할 것이다
둘째, 북한 사람들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이미 한민족에 내면화된 정신세계에 주목하고 그러한 특징이 북한체제의 특수한 환경에서 어떻게 굴절되어 사회를 지배하는지 분석할 것이다.
셋째, 북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신경생물학 이론을 바탕으로 북한의 공포정치와 과시적•상징적 절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충효일심으로 덧씌워진 도덕주의자이자 정치적 생명체인 북한 사람의 탈을 벗겨낼 것이다.
이 책은 남북한 한민족이 살아가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에 주목하고, 북한 사람은 폭력적이고 불안한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현실을 전제로 한다.
왜 북한에서는 저항이 일어나지 않을까? 북한 사람들은 왜 억압적인 체제에 순응하고 있을까? 이것은 탈북민들이 흔히 듣는 질문이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북한은 인간이 적응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상상 이상의 폭력사회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공포정치에 얼어붙은 북한 사람들은 국가에 대해 만성적인 불안과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심각한 수동성과 맹목적인 의존을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1990년대 식량 위기를 겪은 이후 북한에서는 기존의 감시통제 체계가 틈이 생기고 장터를 중심으로 사적 담론의 공간이 확장되는 등 놀라운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체제개혁을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대감은 공포환경에 제압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강력한 자원이다.
조국과 민족의 영광은 곧 개인의 영광이라고 동일시한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자신을 초개와 같이 버릴 때 개인의 영광은 빛나며 정치적 생명체로 영원히 눈부시다고 강조하는 것이 북한 민족주의의 특징이다.
북한과 같은 억압적인 감시통제 환경의 압력은 집단 정체성과 집단효과를 훨씬 강하게 확립할 수 있다. 그들이 발현하는 집단효과는 생존 지향을 보여주는 처절한 몸부림의 산물이다. 이 집단효과는 외부환경의 압력이 약해지면 금세 사그라지는 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인민의 어버이로 완벽하게 창조하며 3대 세습의 체제 안정을 꾀하고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전체주의 북한의 폐쇄적•자폐적 정치문화와 북핵문제, 인권문제, 경제위기, 식량위기 같은 북한적 현상은 한반도 트라우마로 인해 발현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정학적 위기는 오늘날까지 전체주의 북한의 3대 세습과 절대 권력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요인이었다.
오늘날 남북미관계에서 김정은이 보여주는 웅대한 자기상, 한국에 을러대는 과도한 허세는 내면의 무력감과 불안, 수치심에 대처하는 방어기제일 수 있다. 한마디로 최고의 존엄의 공포와 무력감이 북핵문제의 근원이다. 북해문제는 지정학적 공포로부터 자기를 지키려는 최고 존엄의 생존 열망이 낳은 산물이다.
북한체제에서 조직적 저항이 불가능한 이유
1) 환경적 요인 ; 사회 연결망의 붕괴 - 오로지 최고 존엄 중심의 종속적이고 복종적인 일방통행식의 관계망과 조직만 존재한다.
2) 심리생리학적 요인 - 북한사람들은 환경과 자신을 차단하는 기능정지의 '얼어붙기' 반응으로 체제에 순응하면서 자신의 안전과 생존을 확립해왔다. 그들은 일체의 주도권과 분투를 포기한 채 절대적 복종과 의존, 심각한 수동성에 고착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이후 자생적인 장마당 경제체제 구축, 충성경쟁의 종언, 중간 엘리트의 생존논리에 따른 탈선, 감시통제 및 처벌 기능의 마비 또는 둔화 등의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