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샤티용쉬르센(Chatillon-sur-Seine) 근교의 은수자였던 성 알베리쿠스(또는 알베리코)는 동료 은수자들과 함께 몰렘(Molesme)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장상은 성 로베르투스 (Robertus, 4월 29일)였고, 그는 원장이었다.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엄격히 따르는 새 수도원은 성 로베르투스의 덕망과 명성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새 수도자들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지 못하고 부유함에 취하거나 나태해지자 그는 1098년 초 2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성 로베르투스를 따라 몰렘 수도원을 나와 시토(Cteaux) 계곡에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다.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충실히 지키며 동시에 청빈한 가운데 은수 생활을 하는 새 수도원은 성 로베르투스를 총원장으로 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몰렘 수도원과 문제가 발생해 1099년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교황의 중재로 성 로베르투스가 몰렘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성 알베리쿠스는 1099년 시토 수도원의 제2대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성 로베르투스가 제시한 수도원의 이상적 모습을 현실에서 실현하려 노력했다. 또한 수도자들에게 검정색 수도복이 아닌 염색하지 않은 천으로 만든 흰색 수도복을 입게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시토회 수도자들은 후에 ‘백의(白衣)의 수도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일하며 기도하라’는 베네딕도회의 정신을 따르며, 자선과 자급자족의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고, 엄격함을 추구한 그는 재임 기간 중 파스칼리스 2세(Paschalis II) 교황으로부터 시토 수도원 설립 승인을 받았다.
성 알베리쿠스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극도의 청빈과 힘든 노동의 표양을 보였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후임자인 제3대 수도원장 성 스테파누스 하딩(Stephanus Harding, 4월 17일)은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은 공경하올 사부님과 영적 지도자를 잃었지만, 나는 사부님과 영적 지도자뿐만 아니라 친구이자 주님의 동료 군사를 잃었습니다.”
성 로베르투스와 성 알베리쿠스, 성 스테파누스 하딩은 시토회의 공동 설립자이다. 성 알베리쿠스는 알베리히(Alberich) 또는 오브리(Aubrey)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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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慈悲와 사랑의 우리主 하느님 아버지 ,
오늘 이 세상에서 '알베리코'를
당신의 從으로 선택하시어 信仰을 꽃피우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모범을 받들어 언제나 福音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충실한 당신의 종,수도원장'알베리코'聖人의 轉求를 들으셔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 '문베드로'와 모든 患友들이
완전히 病魔에서 벗어나는 주님의 慈悲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恩寵을 베풀어 주소서.
+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