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2:16-23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불순종과 징계의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징벌을 받고 나서야 뒤늦게 참회하고 구원받았다가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범죄하는 것을 반복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세우신 대책이 사사였습니다.
사사들을 세우심(16-18)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압제에 시달리면서 구원을 요청하는 아우성을 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일시적으로 구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고서도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 이스라엘은 다시 사사의 영적 지도를 받지 않고 사사의 말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신들을 음행하듯이 섬기고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신앙의 유산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 신앙정절을 지키며 살았지만, 사사가 죽으면 다시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사사가 죽은 후에는 열조보다 더욱 타락하여 이방의 신들을 정력적으로 따라갔습니다. 이런 집요하고 뿌리 깊은 이스라엘의 패역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조상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십니다.
사사들이 죽은 후에는(19-2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범죄하면 그들을 회복하려고 사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사사가 살아있을 때에는 바르게 살았으나, 사사가 죽은 후에는 또 다시 죄악으로 돌아가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였습니다.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죽을 때 남겨둔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지 않고 이스라엘의 순종 여부를 그들을 통해서 시험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방 민족을 가나안 땅에 두신 까닭은 예상되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사사가 되십니다. 그분께 순종하고 모든 생각을 그분의 뜻에 맞출 때 밝은 장래가 보장됩니다. 역경 속에서 믿음으로 걸어가면 하나님을 경험하고 확실한 증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시험을 허락하시는데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한다면 정금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사사 시대에서 이스라엘이 배워야 할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적용: 세상의 것을 좇다가 영적인 나태함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과학시간에 사용하던 리트머스 시험지는 산과 염기를 구별하는 지시약으로 가장 알려진 것입니다. 오늘날 리트머스는 전체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가장 간편하게 사실관계나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처럼 관용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의 리트머스는 무엇일까요?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교회 밖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는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참 그리스도인인가? 사회에서 아무리 인정받는 존재라 해도 가정에서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어린 시절 집에 돌아오면 “엄마!”라고 부르며 확인하듯이, 나의 가족들에게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런 평안함을 주는 존재인가? 가정에서 가족들이 나를 보는 눈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의 리트머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