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 논문과 이것 저것의 압박에 밀려 달랑 3편 쓰고 말았던 고고 유나이티드를 재개합니다 =_=]
[주, 되도록 실제인물을 묘사하려 하겠으나 그렇지 않은 상황은 가공된 인물임을 밝힘;;]
스페인 마드리드 국제공항을 미끄러지듯 떠났던 나의 몸을 실은 비행기가 서서히 목적지인 한국의 인천 국제공항으로 다가서고 있음을 눈앞에 큰 LCD화면의 깜빡거림이 알려주고 있었다. 장시간의 비행에도 불구하고 피곤에 지쳤을 법한 나의 온몸은 작은 떨림으로 일관된 설레임을 나에게 인식시켰다. 서른살 근처가 되서야 어머니의 조국인 한국땅을 밟는다는 사실도 나에게는 숨길 수 없는 설레임이었지만 더 큰 설레임은 내가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새로운 땅에서 내 커리어를 시작한다는 사실이 두려움과 겹쳐 더 큰 떨림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러한 설레임과 기대를 과연 나는 이곳에서 만족시킬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내 코치로서의 능력은 자신하고 있었다. 비록 첫커리어의 시작이긴 했지만 오히려 첫 시작이기에 무지함이 가져다주는 과신에 가까운 자신감으로 충만해있었다. 도리어 나를 불러들인 사람들에게는 매우 미안한 소리겠지만 이 시점에서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선택하고 불러들인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가 아닌 내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을 그 무엇을 찾으러 왔다는 점이었다. 유럽에는 볼 수 없는 그 무엇. 나는 과연 이 땅에서, 이곳에서 그려질 나의 필드에서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끊임없는 사색에 잠겼을 그 시간 동안 이미 비행기는 공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짐을 챙겨들고 입국심사대를 거쳐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일원을 찾기위한 팻말을 가슴 앞에 들고서 입국장 입구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자못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한쪽으로 비켜서 캐리어를 끌고 조용히 걸어나갔다. 그때 앞에서 익숙한 음성으로 나의 애칭을 불러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르~ 여기야!"
또박또박 익숙치 않은 억양의 스페인어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을때 스페인에서 나와 함께 코치수업을 받았던 영훈의 예상치 못한 말끔한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고 곱게 빗어넘긴 머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세련된 은테 안경을 쓰고 있는 영훈의 차림새에 나는 순간 어리둥절 해졌다. 도대체 저 사람이 몇년전만 하더라도 나와 함께 남유럽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필드를 뒹굴던 사람이라고 누가 믿는단 말인가. 나의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영훈은 나를 바라보면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들고있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영훈과의 재회포옹을 나누며 농담을 건넸다.
"에이전트가 돈벌이가 되긴 되나보군. 차림새만 보고 자네가 누군지 알아보는데 꽤 많은 노력을 하게 만들다니.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 대한 예의가 이 정도야?"
"이봐, 보자마자 너무 쏘는거 아니야? 자네의 독설도 여전하군. 하하."
영훈은 넉살좋게 내 농담을 받아넘기고는 내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아챘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영훈의 손을 말리려 했다. 그러자 영훈은 내 손을 점잖게 물리치고는 말했다.
"스페인에서 내내 나에게 한국특유의 정신에 대해서 물어봤었지? 이제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천천히 알아가길 바라네. 멀리서 온 손님을 맞이했으면 시중 정도는 들어줘야지.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랬다고.하하"
당췌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훈의 의도대로 하기로 하고는 천천히 공항로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항은 정말 국제공항답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영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지만 평소에도 워낙 넉살이 좋기로 동료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있던 그인지라 뭐 긴 여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의 날씨와 같은 소소한 이야기 거리들로 서로 주고 받았다. 그러다 문득 영훈이 걸음을 멈추며 낮게 한국말로 뭐라고 내뱉었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그러고는 영훈이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국말로 말했다.
"예상 외로 자네에 대한 기대가 큰 모양이야. 물론 내 일이기도 하고. 자네가 큰 기대를 받는다는게 나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자네가 앞으로 일하게 될 구단의 관계자가 공항까지 마중나온거 같군."
한국말과 쓰기는 서투르지만 듣는 것은 나름대로 가능했기에 영훈의 말을 알아듣고는 영훈의 눈짓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이내 작은 사내들의 무리가 시선에 들어왔고 영훈을 알아보고는 무어라 말을 건네며 곧장 다가왔다. 영훈과 그 무리는 서로 빠른 말로 무언가 주고 받고는 이내 나에게로 관심을 집중한 것 처럼 보였다. 나는 영훈이 안내하는 대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서투른 한국말로 말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에르미스 후안 카를로스라고 합니다."
첫댓글 오래기다렸습니다 ㅋ 건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