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타야 할 차는 25분에 온다는 알림이 떠 있다
그 시간까지 묵주 두 꼭지는 하겠다 싶어 부지런히
묵주 알을 짚어 가며 속으로 읊는다.
주문진 버스 떠나고 휴게소 의자엔 다섯 명의 노인들이
(나까지 포함) 남았다 조용하다.
휴게소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묵주 한 알 두 알 넘기는데
자동문이 열리며 땀에 홈빡 젖은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신다.
숱 없는 생머리 단발이 땀에 젖은 홀쭉한 관자 쪽에 착 붙었지만
짙은 화장으로 봐서 꽤나 멋을 아시는 분인 듯,
콧등에 형광색 하얀 샤도우까지 일자로 좍! 내려그어 본인의
콧대 도드라지게 할 의향임은 알겠는데 환한 대낮이라
유난이 그곳만 튀는 게 의도한 바를 이루긴 한 셈이라 해야 하나,
휑한 정수리와 홀쭉해진 뺨, 화려한 무늬의 목이 파인 윗도리 위로
드러난 탄력 잃은 파삭한 목 주변 살점들
서 있는 나와 마주 보는 자세라 안 볼 수도 없어 그냥 눈가는 대로
내 버려둔다.
우리는 서로 늘어진 눈꺼풀 치뜨며 마주 보기로 하는데 나는 하던
묵주로 혼잣소리 읊조리는 걸로, 그녀는 뭔가 참을 수 없는 간절한
시선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음악 틀어도 되겠지요?
라는 말과 동시에 폰에서 소리를 내보낸다.
곧이어 시끄러운 트로트 송이 휴게소 좁은 공간을 메운다.
들어야 하는 사람은 나까지 넷, 나야 원래 착하지만? 셋도 엄청
순딩이들이다 순한 눈망울에 귀는 착 접어 소리를 차단하고
무표정으로 버스 오는 건너편 길만 주시한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가수가 부르는 것이 아닌 할머니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온 거 같다. 늙은이가 내는 소리라는 걸 막귀인 우리라고 모를까
물기 부족한 성대가 힘껏 내지르는 비명같은 고음, 의치를 거쳐서 배출되는
야무지게 씹히지 않은 가사 마디에서 흐미터분 넘어가는 거 하며,
출입문이 열리며 서너 사람이 들어 온다. 앞장서서 들어 온 남자 노인
1명이 그녀를 보고 반색을 그녀 또한 공중 부양하듯 풀썩 뛰며 반기고.
”아이구! 노래자랑 나가신다더니 어떻게?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게 에~~” 지금 연습이 한창인데 이거 들어 봐요. 짠~~짜라짠~~오 ~~느을은 ~
남자는 심사위원이 되고 그녀는 폰의 볼륨을 한껏 높힌다
휴게소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차고 내가 탈 버스도 알림판에 떴다.
물기 빠진 노인의 성대에서 나오는 빽~소리와 가빠하는 호흡이 화음으로
이어지는, 전국 노래자랑 예선에 나갈 노래 준비에 열공하는 멋쟁이
할머니 그녀,
덥고 시끄러운 곳, 입도 떼기 싫은 한여름 낮의 정류장 군중의 침묵 속에도 아랑곳 없이
본인이 부른 트로트 곡조에 맞춰 연습에 매진하는 열정적 삶의 주인공 그녀
타야 할 버스의 푸른 이마가 저만치 가로수 잎 사이로 보인다.
자동문을 나서며 그녀 할머니 가수를 쳐다보니 땀으로 화장은 다 지워지고
콧등에 일자로 바른 눈부신 화이트 샤도우 자국만 선명하게 보인다.
전국 노래 자랑
저도
용기 내어 한번 나가 보고 싶긴 한데
방법을 모르겠어요~ㅎ
기본 실력 있음 지역 예선에 나가 보세요 응원은 염려 마시구요 ^^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포즈로 하실 건지 묻고 저도 심사의원이 되었을 것 같네요. ㅎ 왜냐하면 젊은시절 두번의 예선 전에 나간 경험이 있거든요. ㅎ
580명 나온 자리에서 1차 무반주로 80 명 뽑고 그 뒤 피아노 반주로 열명 정도 뽑았던 것 같아요. ㅎ 두번 다 80명 안에는 들었었는데 예선 통과를 못했어요. ㅎ 그 할머니 그정도로 남 의식 안하시면 인기상 타실 소질은 충분해 보이시네요. 😄
표현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잘해주시니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느끼입니다. ㅎ
운선 작가님. 글의 아우라가 대단합니다. 여운이 남네요. ㅎ 잘 읽었습니다.^^*
ㅎㅎ 카렌님 고맙습니다 그 분도 무반주 말씀하면서 "아 내가 무반주로 불러온 세월이 얼만데! 다들 잘한다 했지. 그 분은 노래 외 특별한 장기가 있을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