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바뻐요~ 많이 아니고, 엄~청~(하하) 매일 비디오 컨퍼런스도 하고, 수업이랑, 논문이랑”
낯설기만 한 한국 땅을 밟게 된 콩고민주공화국 왕자 출신인 출신 욤비토나. 콩고 내전을 피해 구사일생으로 한국에서 난민이 된 그는 인천에서 거주하다 광주에 거주한지 1년이 훌쩍 넘었다.
한국에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해오던 욤비토나는 지난해 8월 광주대에서 러브콜을 받고 자율융복합전공학부 교수로 활동중이다. 그렇게 그의 가족들의 광주 정착기가 <시민의소리>에 소개된 바 있다.
최근 욤비토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26개국 200개가 넘는 NGO가 참여하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 난민 인권네트워크 대표로 선출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년 임기동안 난민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국제적인 활동을 한다. 국제적인 조직인 만큼 욤비토나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그는 “난민 인권 뿐만 아니라 국적이 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지원을 하고 있어요”라고 매일 주말까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1년이 지나 다시 광주대 행정관에 위치한 욤비토나 연구실을 찾았다. 1년 전 텅텅 비어있던 연구실은 어느새 논문, 강의 자료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연구실 벽면을 차지한 욤비토나의 캐리커처 현수막도 눈에 들어왔다.
현재 광주대 자율융복합전공학부 교수인 욤비토나는 학교에서 인권, 이주난민, 성과 인종, NGO등 총 4과목 강의를 하고 있다.
욤비토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들은 인권수업을 듣는 1학년 학생들이다. “1학년 학생들 쪼끔 어려워요~ 재미도 있어요. 제가 실제로 겪은 스토리로 인권을 설명하고, 엄청~ 재미있는 수업이에요. 그런데 처음에 1학년 학생들이 오면 난민은 가난하다고 생각해요.”
“난민은 가난해. 돈없어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수업 듣고 나면 아니에요. 생각 많이 바뀌어요.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난민 NGO가 어딨어요. 인터십 하고 싶어요. 와서 물어봐요”
그렇게 욤비토나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과목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11월께 광주대에 UN 난민기구 대표가 방한해 욤비토나와 스페셜 강의가 있을 예정이다. 왜 UN 기구가 생겨났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대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한편 광주에 정착해 생활하고 그의 가족들의 근황과 무국적으로 걱정을 했던 막내딸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막내딸 여전히 그대로요. 무국적이 걱정되요. 그러나 할 수 없어요. 한국 법 그대로에요. 콩고 법도 그대로에요. 그런데 외국과 달리 한국은 여기서 태어나도 국적 안 나와요”
한국에 와서 인천에서 생활해 아이들의 학교 문제로 염려했던 부분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인천에서 광주로 올 때 더 많이 걱정 했어요. 인천보다 광주가 더 시골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 (생각과 달리)반대로 대해줬어요. 광주사람들은 5.18때 이웃들에게 Support(지원)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그는 인권도시 광주가 타도시에 비해 정말 살기 좋은 도시라는 점을 예찬했다. 그래서 난민 상담이 오면 “광주로 오세요” 라고 추천할 정도라고 한다.
또한 함께 일하는 광주대 직원들도 세계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다 똑같이 대해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욤비토나의 광주 적응기에 대해 점점 빠져 들어갔다. “아이들은 학교 문제없이 잘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라비(첫째 아들)는 진짜 친구들 많아요. 주말에도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와요”
맛의 고장 광주의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광주 음식은 정말 맛있어요. 아내는 원래부터 한국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았어요. 그런게 광주 음식은 다 먹어요. 특히 김치 잘 먹어요. 우리 집에 김치 없으면 애들 다 밥을 못먹어요~(하하)”
광주대 김혁종 총장이 욤비토나 가족들을 위해 매주 1번씩 김치를 지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원래 김치 1주일에 2번씩 지원 했어요. 우리 가족 진짜 김치 너무 많이 먹어요. (하하)”
그리고 광주에서 1년밖에 생활하지 않았지만 욤비토나의 아이들은 어느새 광주사람이 다 됐다고 한다. 비밀이야기를 할 땐 사투리로 대화를 한다. “우리 아이들이 광주와서 광주사투리 많이 써요.(하하하) 그런데 사투리 쓰면 저랑 우리 아내는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에요. 비밀 이야기는 자기들끼리 무조건 사투리로 해요~”
지난 해에 만나 인사를 나눴던 라비와 조나단, 파트라샤의 목소리가 떠오르면서 정겨운 광주사투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그렇게 욤비토나의 가족들은 인권도시 광주에서 따뜻하고 정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첫댓글 에효
난 우리 대한민국이 제일
내가 태어난곳
욤비토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