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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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ge〃─
24편.
옷깃을 다시 한번 여미게 만드는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내 온 몸은 후끈 달아오른다.
썩을. 이제 나도 한물 간 거야. 아주 가도 단단히 가고 만 거라고. 어떻게 걸려도… 아니,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닌데, 어김없이 같은 일이 반복 되었을 뿐인데 이렇게 긴장을 하냐고.
하루 종일 그 일에서 헤어나질 못하냐고!
그렇게 한참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신세한탄을 하고 있노라니 딸칵.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들어오는 모양이다.
“유다비다.”
방금 열린 문 쪽에서 머지않아 들려오는 굵고 나지막한 음성에 내 고개가 돌아가기에 앞서
흠칫 놀란다. 역시 난, 지은 죄가 많은 모양이다. 평소에.
그러나 다행이도, 내 시야를 매 꾸는 사람은 보조개 녀석이었다.
휴우~
“오랜만 이예요. 선배.”
“웬 한숨이야? 땅 꺼지겠다.”
“이만한 한숨으로 땅 안 꺼지네요. 뭐.”
보조개 녀석이 들어왔으니, 당연히 옆에 줄줄 매달려있는 떵강아지덜. 능구렁이와 어벙이.
그리고 화인선배.
저 네 사람은 늘 붙어 다니네. 참.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화인선배가 여자선배들이랑 노는
꼴은 못 본거 같은데. 저 성질머리 때문에 변변한 여자친구 하나 못 사귄 건가? 줄줄이 남자만
달고 다니게. 그러고 영주선배도 참 성격이 와일드하고 시원시원하니, 무늬만 여자였지. 쿨럭.
그러고 보면 내 주위 놈들은 이놈이나 저 놈이나 할 것 없이 참- 희한한 사람들이라니까?
하나같이 연구대상감이야.
“참. 선배! 저 찾으셨다면서요?”
“찾으셨다면서요?”
표정을 보아하니 별로 기분 좋아 보이지는 않네. 까딱하다간 무슨 사단이라도 날 것 같아
보이니 말야. 하긴- 아침에 호출했다는데 여지까정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 말도 없었으니
오죽하겠어? 내가 저 녀석이라도 가만 못 있지.
자우지간 나란 녀석도 웃음이란 놈이랑 거리를 두는 날이 다 있구나.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네. 쿨럭.
“누가 쥐방울 아니랄까봐, 말 한번 예쁘게 하네. 어째 거꾸로 되도 심하게 거꾸로 된 것 같지
않냐?”
“헤헤. 미안해요. 선배.”
“실없이 웃을 거면 차라리 미안하단 말을 하지 말던가.”
“그래도오~”
“어째 선배가 후배를 기다리는 꼴이라니. 처음부터 이러는데 앞으로는 과연 어떨는지.
정말 앞날이 까마득하다.”
“헤헤.”
“그만 좀 웃어. 임마!”
배시시~ 부글부글 끓는 속과는 달리 한참을 실없는 사람마냥 웃어 대다가 결국엔 한대 맞았다.
이마위에서 불이 번쩍 하는 것 같다. 썩을- 어째 내 주위에는 하나같이 이런 폭력쟁이들만
모여 있는 거냐고요~
“근데, 왜 찾았어요?”
“빨리도 물어본다.”
“쫌 전에도 물어봤는데.”
“썩을-”
“아얏! 아프다구요 선배! 그만 좀 때려요. 내 이마가 무슨…”
씨이~ 무슨 말을 못하겠네. 그렇게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고 내가 뭐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아… 았구나. 쿨럭.
어벙이나 능구렁이. 하다못해 화인선배도,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쪼매 만만한 게 사실이긴
하지만, 어째 이놈은 조심스러운지 모르겠다. 뭐랄까? 무언의 카리스마? 별 말 없고,
능구렁이처럼 촐싹이는 모습 따위를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게 말이야.
암튼 이 부드럽고~ 상큼하고~ 소프트 아이스크림(쿨럭)처럼 달콤해 보이는 보조개 녀석에게도
어떤 알 수 없는… 아닌 것 같으면서도 상대를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존재하는가 보다.
“이따 5교시 전이나, 5교시 후나 잠깐 3학년 교실에 좀 다녀와.”
“사, 삼학년 교실? 왜, 왜요?”
“너, 3학년 교실이란 말에 왜 이렇게 당황 하냐?”
“쿠, 쿨럭. 그럴 리가요.”
이 상황에서는 당황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라구요. 더군다나 다른 조용한 날도 아닌
오늘같이 지은 죄가 많은 날은 말이죠. 썩어문드러질.
“반지환 선배님께 좀 다녀와라.”
“무슨 일 때문인데요?”
“이따 우리 교실 오면 내가 뭔가를 줄 거야. 그냥 그거 얌전히 전해 드리고 오면 돼.”
“그런 건 선배가 해도…”
“원래 그건 후배가 해왔어.”
“그, 그럼 다른 녀석이라도… 이를테면 아영이라던지…”
“부장의 임무야. 임마!”
쿨럭. 삼학년 교실은 어지간하면 가고 싶지 않은데, 거의 막무가내로 부장의 임무임을
강조하는 녀석. 빠져나올 구멍이 안 보인다. 썩을-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강력하게 부장의 임무를
거부하는 거였는데. 후회가 막심이다.
“바, 반지환 선배님이 며, 몇 반인데요?”
있잖아 지환오빠야, 제발 7반은 피해라. 제발…
그러나…
“7반.”
“커헉!! 콜록. 콜록. 코올록~”
“얘가 왜이래?”
“심하게 경기 하는데?”
“콜록. 콜록. 코올록~”
지환오빠가 7반이라는 소리를 들은 후로부터 내 몸에선 심한 거부반응이 나타난다.
그래 이건 분명 어벙이 말대로 심하게 거부하는 거다. 뇌에서 말을 전해 받아 그것을 깔끔하게
소화시키기 전에, 아니, 머리가 띵~ 하고 울리며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 허우적거리기 전에
내 몸부터가 심하게 거부하는 거란 말이다.
“다비야! 내가, 밥 가져왔어.”
그리고 그 때, 다시 한번 옥상 문이 열리면서 아영이와 보연이가 나란히 들어온다. 한손에는
빵 봉지로 추정되는 것 하나와 우유로 추정되는 것 하나를 들고 말이다.
그래도 친구라고 나 생각해주는 녀석들이 고마워야 하는 게 정상이거늘, 지금은 저 빵과 우유를
보는 것만으로도 언힐 것 같다. 젠털. 내가 어쩌다 요 모양 요 꼴이 나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정말.
“어? 안녕하세요?”
아영이는 무언가 부담스러울 만치 빛나는 눈동자 속에 알 수 없는 측은함을 담아 내게로
다가오면서 어벙이 일당과 화인선배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 옆에 있던 보연이도 살짝 쿵 고개를 숙여준다. 녀석들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둘의
인사를 받아줬다. 특히 능구렁이 녀석이.
“손에 든 건 뭐냐?”
“다비 점심이요.”
“점심? 점심을 왜 이걸로 먹어?”
“입맛이 없대요. 없을 만 하긴 하지만.”
“천하의 유다비다가? 말도 안 돼.”
“그러게요.”
하나같이 나와 아영이의 손에 들려있는 빵을 번갈아 보는 모양새가 심히 언짢아 진다.
“왜 말이 안 되는데요?”
“좀 신기해야지.”
“나도 사람인데, 가끔씩 입맛이 없을 수도 있지.”
“그래도 넌, 지진이 나고 땅이 갈라져도 하루 세끼는 꼬박 챙겨먹을 위인이잖냐.”
나란 인간에 대해 너무나도 정확하고 적나라하게 비꼬는군.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거늘 왜 이리 이상한 시선을 쏟아 붇는지 모르겠다. 한, 두어 번만 더
굶었다는 소리 들으면 아주 그 날 달력은 유다비다 인생 사상 최고의 역사로 기록될 분위기다.
젠털.
“근데, 없을 만 하다는 건 또 무슨 말이냐?”
“후후. 그런 게 있어요. 선배.”
“뭔 대?”
“말 못해요. 이거 말 하면 다비한테 저 죽어요. 후후.”
저, 저. 백아영. 뭔가 알아낸 얼굴이군. 밥 먹으면서 보연이를 들들 볶아냈나? 아니, 아니.
3학년선배라는 보연이의 한마디 말로도 충분히 유추 할 수 있는 녀석이지. 저 녀석은.
“그런 눈으로 보지들 마요.”
“또 사고 쳤지?”
“…….”
선배들의 물음에 나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으레 당연하다는 식으로 바라보고 뭐라 반박 할
새도 없이 단정 지어 버리니, 거기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렇다는
말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임을 나는 안다. 쿨럭.
어쨌든 나는 서둘러 말문을 돌려버렸다. 그래야 했다.
“근데요, 지환오… 지환 선배님한테는 왜 가는데요?”
“우리 신입생 환영식 때문에.”
“그런 거라면, 토요일 날 이미 이야기 끝난 거 아닌가?”
“아니지. 그냥저냥 노는 것도 아니고 하룻밤 묵을 건데.”
“하룻밤을 묵다뇨?”
“우리 서클은 좀 특별 하잖냐?”
이게 도대체 무슨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소린가? 하고 바라보는 내 얼굴에다가 함박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한번 으쓱 해 보이는 녀석. 젠장. 무슨 서클 신입생 환영식을 하룻밤 묵어가면서
까지 한다는 건지…하여간 누가 특출 난 인물들 아니랄까봐 하는 짓 까지 특출 나기는. 쯧.
“자세한 건, 방과 후에 애들 모아서 다시 이야기 할 거야.”
“방과 후면 언제요? 야자시간에?”
“임마. 야자시간엔 공부를 해야지.”
“그럼 언제요? 청소시간?”
“그래.”
“알았어요. 선배. 5교시 끝나고 찾아갈게요.”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하나같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도무지 더 앉아 있어선 안 될 것 같아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버렸다. 내가 일어나자 보연이와 아영이도 자연스레 따라온다.
.
.
“다비야. 너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냐?”
어느새 해는 저물고 까만 밤하늘에 초승달 하나 덩그러니 떠있는데, 십분? 이십분? 암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짝지가 물어온다. 하루 종일 멍한 내가 어지간히도 신경 쓰여
공부를 할 수 없단다. 쿨럭.
“안 아프다고.”
“니 눈 장난 아니게 풀려 있는 거 알지.”
“내 눈이 풀리긴 왜 풀려?”
“혹시, 마약하는 사람들 눈 봤어?”
“무슨 말을 하려는 꿍꿍이야?”
자네의 표정이 언 듯 보연이보다 더 무서워지는 구료.
“봤어? 안 봤어? 대답이나 해봐. 얼른!”
“드, 들은 적은 많아.”
“니 눈이 꼭… 그 눈 같아.”
“썩어문드러질 악담이로구나.”
어쩜 짝지라는 녀석이 말을 해도 저따구 말을 할 수 있는지.
“얼른 가방이나 챙겨.”
“가방은 왜?”
“아홉시 되려면 30초 남았어.”
“쿠, 쿨럭. 그걸 다 제고 있었니?”
“그럼. 내가 또 시간은 칼 이잖냐.”
“참 대단하구나.”
짝지야, 짝지야. 너란 녀석도 죽어라 공부하는 척 하면서 얼른얼른 시간아 가라~ 하고 초바늘
움직이는 걸 열심히 살피는 괴짜였구나. 쿨럭. 너의 그 사람의 눈을 완벽히 속여가면서도
칼 같은 시간을 재가며 30초 동안 날렵한 솜씨를 발휘해 가방을 챙기는 모습이 과히 놀랍구나.
너도 예사인물이 아니었어. -ㅇ-
.
.
“어쩌다 그리 됐는지. 쯧.”
“제발, 제발 염장 지르지 마라. 가뜩이나 너 아니어도 괴롭다구.”
보연이는 방향이 달라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아영이와 나란히 집을 향해 한걸음 또 한걸음을
옮기는데, 그래도 야자시간까지만 해도 무덤덤했던 마음이 점점 더 초조해진다. 썩을.
“그냥, 싹싹 빌어.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그래.”
“그게 통할 위인이면 이런 걱정 따윈 안 한다고.”
“그럼, 다유오빠한테 도움을 청하는 건 어때?”
“친구야, 친구야.”
“왜?”
“넌 아직도 모르니? 다유가 다반이한테 꼼짝 못한다는 사실을.”
“그래도… 다유오빠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도움이 되기에 앞서 오히려 염장이나 지르지 않는다면 다행이지.”
그게 은근히~ 사람 염장 지르는 솜씨 하나는 타고 났거덩.
“후후.”
아아~ 이 일을 정말 어찌한담? 유다반 그 녀석이 한동안 잠잠 했었는데… 왜 또 갑자기
터트리려는 건지. 왜 또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차라리 이렇게 나올 거, 첨부터 쉬지 말고 주구장창 그 괴팍한 성질을 부리던가. 차라리
조금조금 나눠서 성질 피우면, 그나마 감당이라도 되지. 한번에 몰아서 성질부리면 어지간히도
피곤한 노릇인데… 썩을.
“어? 지금 집에 가는 거야?”
“어? 선배.”
딱히 마땅한 대책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터벅터벅 힘없이 집으로 향하는데, 누군가가 불쑥~
끼어든다. 가만히 올려다보니 어벙이 녀석이었다.
가만… 가만 보니까, 오늘 이 모든 일이 이 화상 때문이 아니던가? 썩을~ 왜, 괜히 보이지 않던
표정 지어 보이면서 사람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모자라, 괴상망측한 놈들을 달고 다니는지…
토요일 날, 나를 데려다 준 사람이 왜 하필 이 녀석이어서 이런 일 까지 만들었는지…
괜스레 저 얼굴 보니까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근데, 왜 혼자지? 다른 선배들이랑은 방향이
다른가?
“왜 혼자예요?”
“재훈이는 일이 있어서 일찍 갔고,”
“화인선배랑 우주선배는요?”
우주선배는 몰라도, 화인선배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집인데. 저 앞에 모퉁이 돌아가면
이었지? 암튼, 한솔아파트에 사는 걸로 알고 있는데. 쩝!
“둘이 같이 날랐어. 이미.”
“같이 날 다뇨?”
이 사람들이 땡땡이라도 쳤나? 둘이?
“데이트 갔나보지 뭐.”
“데이트?”
“응.”
근데 이게 무슨 쌩뚱맞은 소리야? 데이트라니?
“몰랐어?”
“뭐, 뭘 몰라요? 좀 시원하게 말을 좀 해봐요.”
“이런~ 정말 몰랐나보네. 좀 난감하네.”
“뭐가 또 난감해 진다는 거예요?”
“그, 그게…”
“아~ 정말! 답답한 거 알죠?”
“내일 화인이한테 직접 듣는 게 어때?”
아니, 이 사람이 왜 자꾸 말을 뱅뱅 돌리지? 두 사람 사이에 뭔가가 있나? 에이~ 설마.
뭔가가 있다기엔 화인선배 성격도 성격이지만… 가만, 데이트라면… 설마가 아니라 정말 뭔가가
있다는 거잖아? 설마로 넘기기엔 겸연쩍은 머시깽이가 있는 게 확실하잖아.
“설마…”
“그, 그게 실은…”
“…….”
“휴우… 맞아.”
허억! 이, 이게 대체 무슨!!
“그러니까 지금, 그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맞다?”
“어어…”
오우~ 마이~ 갓뜨~
정말이지 놀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군.
오늘 하루가 정말 무슨 날이긴 날인가보네. 여기저기서 어마어마한 일들이 연속으로 터지는
모양새가 말이야. 제대로 썩어문드러질 기분이군.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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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1.
[ 장편 ]
왈가닥 그녀, 어벙한 그 놈 사로잡기 ♥ 24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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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1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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