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쉽게 볼 수 없게 된 수작업으로 된 극장 간판의 모습은 이제 블러그를 통해서나 겨우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손으로 그린 극장의 간판은 영화 홍보의 최고 수단이었고, 미술가들에게는 당대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전망 있는 직업이었죠.
이제는 대형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이제 찾아보기 힘든 수작업 영화포스터!
요즘은 영화 마케팅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인 그야말로 화려하고 선명한 영화 포스터들이 많이 제작되고,
큰 극장에서는 거의 이러한 포스터를 확대한 작품들이 걸려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중,고등학교 다닐때만해도 극장간판으로 붙는 포스터들은 원작 포스터들을 극장간판을 그리는
전문화가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었습니다.
물론 첨단기술로 포장된 요즘의 그것들과 비교하면 많이 촌스럽고, 빨주노초 선명한 색상하며,
주인공을 전혀 닮지 않은 그림들이 어설펐지만 촌스로움이 주는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지 오래지만 원주의 1군사령부에서 관리운영하던 '군인극장'은 당시에 내로라하는 전국의
개봉관중의 하나로 상영작이나, 예고작의 극장간판을 그린 군인은 당대의 걸출한 젊은화가였다는 짐작이
가는군요..
그러니 왕년에 극장가로 유명했던 국도극장, 피카디리나 단성사, 대한극장 같은 개봉관에서 간판을
그린다고 하면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을테죠.
그들에게는 그만큼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싼 임금도 높았지만 극장 간판을 그리는 미술가들에게는
임금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영화배우들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하고 싶어하듯 미술가들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종로의 극장가에 걸리는
명예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극장에 걸리는 영화 간판은 디지털 프린트로 인화돼 걸리기 시작했고,
복합영화관이 생기면서부터 극장 간판을 그리는 미술가들은 한 명씩 사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극장 간판은, 특성상 해당 영화가 끝나면 흰 페인트를 칠해 다음 영화를 준비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안타까운데 극장간판을 그린 화가님들의 마음이야 오죽했을까요.
일화 한마디 소개할게요.
한 번은 어느 영화 포스터를 그리는데, 신성일씨가 주연이고 김추련씨가 조연이었답니다.
이 화가가 장난삼아 일부러 김추련씨 얼굴을 더 크게 그렸는데...며칠 후 작업실에서 작업중인데,
아침에 느닺없이 신성일씨가 극장의 작업장으로 들어 닥치더니 화를 내더랍니다.
신성일씨 얘기인 즉은 '자기가 주인공이고, 김추련이가 조연인데 왜. 자기 얼굴을 작게 그렸냐'고....
그로부터 항의를 많이 받았지만, 그 화가는 오기로 그린 포스터를 종영까지 놔뒀는데...
얼마 지나고 보니, 김추련이가 세간에 더 떠있더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일화를 보더라도 극장간판은 실제 배우의 인기와도 직결되는 모양이었나 봅니다.
첫댓글 ㅎㅎㅎ양지님의글 잘 보았네여...마자요 우리가 학교 다닐적 군인극장옆에 화실에서 그림 그리는것 살며시 틈으로 본적이 한두번 아닌데 옛 생각이 나는 군여...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저도 군인극장에서 단체영화 많이 봤습니다. 기억나는건....들국화는 피었는데....인가 반공영화, 그리고 메리포핀스 이런것들이 생각나는군요~`
참말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것 같군요 군인극장이라 ㅎㅎ옛생각 나는군요 사슬에 젖어 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