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다녀온 후 애들과 처는 신경이 예민해지고 무척 우울해하는 기철를 여간 조심하여 대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는 것이 오히려 기철을 더 서글프게 한다.
기철을 더욱 괴롭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 정체성이 무너져 버렸다는 것이다. 30여 년을 사회생활 하며 쌓아 온 정체성, 정직하고 열성적이며 노력하는 사회인이라는 그리고 사회발전을 위해 일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기가 싫다.
회사를 위하여 일하다가 그렇게 되었지만 어쨌든 자기는 안전사고자, 비리 연루자로 낙인찍혀 지금까지 자기를 알던 사람들의 자기에 대한 이미지가 무너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나?
그들 앞에서 나는 위신을 세울 수 있을까?
인생의 삶이 이런 것인가?
이를 위해 30여 년간을 건설인으로 자부하며 피나게 현장을 뛰었나?
결국 나는 부패한 건설인의 표본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깊어가는 가운데 기철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렇게 자기 연민에 빠져 괴로움이 깊어가면서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안전사고 때 현장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환영이 꿈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꿈에 피를 흘리며 나타난 환영들은 자기들이 기철의 부주의로 죽었으니 다시 살려내라고 덤벼든다.
시련으로 좌절에 빠져 마음이 약해지며 이런 꿈을 꾸는가 보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그날 밤은 뜬 눈으로 새워야 한다.
무서워서 잠을 청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교도소에서 조금씩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던 우울증이 점점 깊어져 갔다.
그러나 식구들에게는 심약한 자기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 건강한 척하지만, 식구들이 조금만 섭섭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금방 시무룩해지고 우울함에 빠지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수인 생활과 검찰 조사에 시달린 후유증이라고 생각하던 식구들도 그 증상이 심해지며 오래 지속되자 걱정이 생기고 남편의 증세를 염려한 영희가 남편을 끌다시피 하여 병원을 데리고 가 진찰을 받게 하는 바람에 남편의 우울증이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침내 아들과 딸이 아빠의 병을 알게 되었다.
걱정이 된 영희가 그 후에도 계속 기철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으나 기철의 병은 호전이 되기는커녕 우울증이 더 깊어졌다.
발병 초기에 항상 가정의 가장으로 활달하기만 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던 식구들이 교도소를 다녀오고 검찰수사 후 갑자기 달라지는 아버지의 변모에 제대로 대하지 못하고 다소 당혹스러워하던 것도 기철의 병을 키우는 일이 됐는지 모르지만, 2년의 교도소 생활과 비리 관련으로 받은 15일간의 검찰수사로 피폐해진 기철의 정신이, 자기의 이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자존감에, 탄탄하기만 할 것 같던 남편으로서의 위치와 아버지의 존재감에 가해진 깊은 상처가 기철을 점점 힘들게 하고 병이 깊어지게 한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기철이 직무와 관련하여 일어난 일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을 텐데 그때에는 괜찮던 기철이 어째서 이번 일로 우울증까지 앓게 되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공사에 관련된 문제는 항상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 자기의 노력이나 주위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다시 말해 공사에 관련된 일은 직접적이고 심각하게 자신의 생애에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고 또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해결 방안을 찾기 때문에 서로 협조하고 돕는 동지들이 있어, 위로가 되고 그보다도 다행스럽게도 기철의 경우 수감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왔으며 어쩌다 다소 어려웠던 일이 생겨도 잘 해결이 되는 바람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남들보다 빠른 승진을 할 수 있었다.
그랬던 사람이 이번 일, 자기의 삶의 대한 치명적인 문제가 되는 그 일을 당해 결국 전과자라는 어쩌면 인생의 막다른 길에 떨어지자 정신적인 고통이나 모욕감, 배신감, 패배감이 크기 때문에 기철을 좌절하게 만들고 그렇게 좌절한 상태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쉽게 말해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갖지 못했다는 말이다.
특히 토목기술자라는 자기의 직업과는 다르게 문학을 좋아하는 감수성 많은 기철의 성격이 어려움을 당한 기철을 더욱 여리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더해가는 우울증은 처음에는 모든 것이 귀찮고 시들해지더니 다음에는 사람을 피하게 되어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게 되고 나중에는 집안 식구들까지 피해서 한 날을 자기 서재에서만 보내게 되었다.
자연 식구들이 기철이 앞에서는 언행에 주의하고 되도록 기철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지속적으로 기철의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특히 영희는 기철을 설득하여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회사에 기철의 건강상태를 말하고 몇 개월 휴직 기간을 늘려달라고 하여 회사에서는 기철이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복직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기철의 병은 조금의 차도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져 이제는 죽음에 대한 유혹을 느끼기 시작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 분노도, 창피함도, 원망스러움도, 보기 싫은 사람도, 귀찮음도 모두 없어지는 것. 그렇게 만사가 해결되는 것 이런 생각이 많아지며 죽음에 대한 생각도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인터넷에 자살 싸이트가 있다는 생각이 든 기철은 그 싸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싸이트에 가입되어 있고 모두들 생에 대한 어려움과 회의를 느끼고 죽음에 대한 매력 또는 유혹을 느끼며 같이 자살할 동지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겉으로는 건전해 보이는 사회가 내부적으로는 중병을 앓고 있다는 애기다.
그 중에도 기철의 눈길을 끈 것은 50대 대학교수가 이끌고 있는 구룹으로 그 대학교수는 유명한 00 대학의 교수이다.
그가 간단하게 자살 싸이트를 연 동기를 소개했는데, 그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둔 대학 교수로 온갖 권모술수와 비리가 난무하는 사립대학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 남에게 1억여 원이 넘는 돈을 빌려 교제비로 답례로 써서 교수가 됐는데 교수가 되고 나서 얼마 안 돼 마누라는 춤바람이 나고 19살 먹은 고3인, 맏아들이 백혈병이란 것이 판명되어 가정생활은 엉망이 되고 불어나는 이자 돈도 벅찬데 아들의 병원비까지 겹쳐 파산지경에 처하자, 춤바람이 났던 처는 가정을 떠나고 아들놈은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늘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죽음을 호소하고 그 아들 밑에 고1과 중2 이였던 딸과 아들도 가출해서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지경까지 된 것이 원인이란다.
처음에 기철은 그 구룹을 이끄는 사람이 교수라는데 호감을 느껴 가입하였다.
물론 이름은 바꾸어, 자살을 생각하면서도 공개적으로 자기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싫었던 모양이다.
그리곤 같이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며 자살을 이야기하며 구룹 회원들이 같이 모여 함께 자살하자는 모의를 하다가 어느 날인가 회원 중의 한 사람인 갑자기 자살 싸이트를 탈퇴하며 글을 남겼다.
그 사람은 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27살 먹은 청년인데 일을 끝내고 포장마차를 끌고 집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두 팔을 잃은 사람으로 컴퓨터는 입에 문 볼펜 같은 것으로 치는 사람이다.
처음에 자기의 가난한 처지와 교통사고로 두 팔을 잃은 슬픔과 절망으로 죽음을 결심하고 자살 싸이트에 들어왔지만, 어느 종교 단체에서 보낸 도우미의 도움으로 발로 책을 보고 글씨를 쓰는 방법을 익히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 시작했고 특히 발로 쓰는 붓글씨를 배우며 생의 목적도 생기고 이즘에는 그런 자기를 사랑하는 애인도 생겨서 이제는 자살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며 죽을힘과 그 마음을 가지고 살면 못 할 것이 무엇이냐, 열심히 살면 정말 하늘이 도와주는 것 같다며 그동안 자살을 생각했던 것이 어리석게 생각된다. 현재 자기를 누르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을 하고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여 그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차근차근 풀어가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자기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니 주변의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다 보면 차츰 보람을 찾게 된다고 하며, 내가 생각하기에 어려움 속에서나 즐거움 속에서나 인생은 살아 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옛말에 이르기를 시궁창에서 굴러도 이승이 저승 보다 났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삶의 고통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고비이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남겼다.
그 글로 인해 그 카페의 회원들 사이에 이견이 생기고 복잡해지자 흥미를 잃은 기철은 그 싸이트 탈퇴를 했다.
식구들은 기철이 자살 싸이트까지 뒤지는 것은 몰랐으나 기철의 행동에서 우울증이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아 모든 식구가 기철의 우울증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특히 영희가 기울이는 정성, 기철이 늘 편안하고 즐거우며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하고, 보다 유명하다고 이름 있는 병원을 찾아 치료받는 등 노력의 결과 기철의 병은 다소 차도를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나자 많이 호전되는 것 같았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