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는 우리가 티벳을 2주동안 여행하면서 함께 생사고락을 한 차량이다.일본에서 생산되는
이 차는 차의 크기는 중간형이며(우리나라 현대의 산타페 정도)개솔린 2,400cc급이다.바퀴는
브릿지스톤 스파이크형이고 내부는 요란하지 않다.우리가 티벳에서 만난 일제 차량의 종류는
많지만 이 차는 <명작>이었다.사실 이 차보다 크고 비싸며 성능이 좋다는 차는 많다.즉 많이
보이는 토요타의 랜드크루저도 차폭이 넓고 배기량도 많으며 편의성도 요란하다.그럼에도
이 차를 명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선 차량의 중량이나 차체의 규모에 비해서 매우 안정적
이다.실제로 토요타는 눈길에 미끄러져서 쑤셔 박혀도 이 차는 멀쩡했고 수없이 험난한 길을
말썽 한 번 없이 운행했다.그러다가도 아스팔트에 진입하면 잡소리 하나없이 정숙했다.자동차
매니아인 나로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연비와 파워도 무난했다.귀국 후 인터넷으로 검색
한 결과 5인승의 경우 이 차의 가격은 20,000달러 정도였다.관세가 없어 지고 일제차량이 본격적
으로 수입되면 이와 유사한 수 많은 크루저가 등장할 것이고 가격대도 우리와 비슷하기에 우리의
자동차 회사들은 좀 더 노력해야 살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아프리카와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의 오지와 극한 환경에서 과거 랜드로바나 지프를 밀어내고 입지를 굳힌 일제차들에게
<국산품 애용>이라는 안이한 정책으로는 일관한 과거 우리의 자동차회사들이 변하지 않으면
무너지리라는 생각이다.
25. 카트만두 - 파라다이스 베이스 캠프
코다리에서 나온 우리는 택시를 잡아 타야 하는데,모종의 모의에 의했는지 택시비가 비싸다.
사실 우리네의 물가에 비하면 절대로 비싼 요금은 아니지만,이미 네팔의 물가와 디스카운트
방법 그리고 거의 국제깡패에 가까운 나는 흥정을 통해서 미화 35달러에 카트만두의 우리
목적지인 킹스 웨이(King's Way - 왕궁앞 도로)까지 가기로 하여 출발했다.차량으로는 대략
5시간이 소요된다.마오바디들의 잦은 출몰로 경비가 심하다.가는 곳곳 군인들이 여권과 짐을
수색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선탑자인 마대장의 인상이 매우 중국틱하고 험상궂은 이유도
포함됐었다.이미 사진을 본 사람들은 아시겠지만.어쨋든 검문소마다 대한민국의 초콜릿과
사탕은 위력을 발휘하였고 군인들에게 마대장이 중국인과 네팔인의 혼혈이라는 농담으로 잘
통과했다(나중에 박 아무개로 선탑자를 바꾸자 검문이 없었다.)이 길 역시 두어시간은 험했고
중간에 뒷 타이어의 펑크로 시간이 지체되기도 하였다.
늘 그렇지만 느닷없이 들이닥친 우리를 발견한 비원의 형수님은 반색을 하였고,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내고 찌게를 끓였다.집으로 가겠다던 박 아무개의 마음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비원의 음식은 알아 준다.대개의 방문객들이 마누라를 데리고 와서
요리를 배우게 하고 싶다고 한다.에베레스트로 트레킹을 떠난 석우형은 아직 못 오고 있고
집으로 짐을 옮긴 우리는 목욕을 하고 대취하여 따스한 침대로 기어 들었다.따뜻한 침대.
카트만두 비원(최근 정원-Garden으로 개명)레스토랑
최대의 재래시장
옛 왕궁.외국인에게는 입장료를 받는다.샛길도 있지만 지불하고 들어갔다.
보우드넛 사원에서.가운데는 비원의 싸우니(안주인)윤기자 형수님.
보우드넛 사원의 스투파.(붓다의 눈을 형상화한 탑) 이 사원의 스투파는
세계최대를 자랑한다.이 티벳불교 사원은 중국에 침공당한 후 살상과
박해를 피해 망명한 티벳인과 승려들이 U.N에서 난민에게 지원하는 자금으로
세울 수 있었다.이 사원에서는 오체투지를 하고,사원 주위를 코라(시계방향)한다.
보우드넛의 풍경들
정운하의 오체투지.마대장이 루피(네팔 화폐)를 주지 않아서 중국돈 10위안을 헌금.
파탄 왕국에서
파탄의 유명한 녹두빈대떡과 창과 고기를 파는 집.이른 시간이라 녹두빈대떡은
없었고 창(막걸리)과 삶은 감자만 먹었다.그날 먹은 창으로 모두 고생했다.
사진은 야크고기를 썰어서 훈제하는 모습.
26. 포카라 - 안나푸르나와 부처님의 고향 룸비니의 관문
포카라로 가는 붓다에어 경비행기(15인승)의 내부
기내에서 보이는 마나슬루(Manaslu-8,156m)
이틀을 지체한 우리는 합의에 의해서 포카라(Pokahra)행 국내선에 올랐다.육로도 있지만
길도 나쁘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차를 타는데 지긋지긋했던 우리는 주저 없이 비행을 선택
했다.25분만에 도착하여 호수 근처의 뚝배기집에 짐을 풀었다.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
도시라서 그런지 상가나 시설들이 네팔에서 가장 앞섰다는 느낌을 받았다.다음날 일찍
안나푸르나 내원 트레킹을 출발하기로 했으나 <번다>란다.갈 수 있는데 까지는 가겠지만
장담은 못한단다.이래저래 번다때문에 제약이 많다.어쨋든 청국장과 비지장으로 소주를 시작.
포카라,포카리는 호수(湖水)를 뜻한다.이곳은 해발 800m인데 그 크기가 상당한 호수가 있다.
타원형으로 길게 연결된 호수는 네팔에서는 아주 귀하고 물도 맑으며 안나푸르나(Annapurna-
8,091m)의 트레킹이나 등정을 할 수 있는 관문이다.또한 차로 몇 시간을 가면 싯달타의 고향인
룸비니가 있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휴양지로 온다.특히 겨울에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이
포카라에 몰린다.트레커나 일반 여행자들도 꼭 들르는 명소다.
네팔에는 네팔인이 거의 없다.인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전체의 80%이상이고,티벳에서 박해를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이주한 사람이 15%정도이다.종교도 마찬가지로 인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이유로 전 국민의 95%이상이 힌두교,불교는 3~4%로 집계된다.부처님의 고향인 이
본토에서 불교인구가 극소수라는건 아이러니다.국민소득은 대단히 낮아서 300불 내외.
자국내의 불교 사찰의 규모보다도 외국의 불교사원이 규모도 크고 포교도 더 적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