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울 동네도 물이 찼다. 울동네는 대부분 베란다가 높아 물이 집에 들오지는 않았다
햐 딸딸이가 이렇게 효율적인 신발인지 도망칠때는 몰랐다. 비오니까 죽인다. 물길을
헤치며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내가 출세하면 꼭 딸딸이 회사하나 차려야 겠다.
8월 7일.
비가 엄청 온다. 벌써 삼일째 내 수입은 0다. 빨리 비가 그쳐야 할텐데..엄마에게 엄마
아들은 일년 목욕안한 거지같다고 놀려서 돈을 타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에서
때타올이다 면도기다 치솔이다 산다는건 언감생심 상상도 못할일이기에 작은 대야에
집에서 쓰는거 담아가지고 갔다.
좀 쪽팔렸다. 하지만 잃어버리면 생명에 지장이 있기에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히 들고
들어 갔다. 백수 생활오개월에 내 몸무게는 변함이 없었다. 단지 구조가 좀 바뀌었을
뿐이었다. 팔다리는 가느러지고 나온건 배뿐이고.. 으..
하여간 오랜만에 담그는 뜨거운 물은 심신을 맑게 했다.
버릇이 되어 꼬마들과 냉탕에서 물장구치다 때밀이 한테 졸라 욕먹었다. 이제는
때밀이까지 날 무시하는구나.
오늘은 목욕을 했기 때문에 동네 도는걸 접어야만 했다. 때끼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8월 8일.
비가 더 많이 왔다. 어제비는 조족지혈이었다. 백수가 너무 유식한 말 쓰면 안되기에
내실정에 맞게 어제비는 오늘비에 비하면 람보앞에 방위요 그랜져앞에 티코다.
비를 맞으며 거리를 헤매는 실직자를 생각하며 시한편 쓰본다.
오늘도 창박 존나게 내리는 비를 보며
멍한 몽상속의 시간추 종소리를 듣는다.
덧없이 지나치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채..
하일없는 현재의 나른함과
막막한 미래의 불안감속에서
옆집 아줌마 아 패는소리에 허전한 마음 달래본다.
팽팽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속에
끝없이 몰아오는 비의 적막감을 날려보내며
자꾸만 쌓여가는 실업자의 아픔은
물고 있는 담배의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으면..
백수가 살아야 나라도 살텐데...
8월 10일.
아부지가 티비를 보시더니 껄껄 웃으신다. 무슨 재밌는게 하나 봤더니 뉴스다.
내년에 40만명이 사회에 나오는데 700명밖에 안뽑으니 적어도 39만명이 나같은 백수가 된다는 것이다.
아부지가 씩 나를 보시며 한마디 하셨다.
"내년엔 덜 쪽팔리겠다."
죽고 싶었다.
자살을 기도할까 생각도 했지만 사나이 태어나 백수로 죽는다면 그 얼마나 쪽팔린가..
열도 식힐겸 동네 한바퀴 돌려고 나갔다. 나가는데 엄마가 딴사람은 딸딸이 사면 적어도 일년은 싣는데 넌 어째 3개월도 못가냐며 구박을 하셨다. 처참해따.
사나이 그래도 존심은 있어 맨발로 동네 한바퀴 뛰었다.
그러다 누가 토해놓은 뭘 밟았다. .
내일은 엄마가 아무리 뭐래도 딸딸이를 신고 돌것이다
8월 16일.
그 백수녀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요즘들어 부쩍 얘가 나한테 친한척 하는거 같다.
왠지 불안하다.
자기 아버지가 자기보고 티비에 나온 유명인이 그 뭐시기 피시에스하나 없어서 되겠냐며 그거 사라고 해서 피시에스 샀다며 자랑삼아 전화를 했다.
당장 달려가 보았다. 여전히 방에는 X파일에나 나올법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진짜 피시에스가 있었다. 부럽고 아니꼬아 한마디 했다.
"너 이거 자랑할려고 누구한테 전화했어? 졸라 많이 했지?"
"아니 너빼면 고향에 계신 울아버지하고 짜장면 한그릇 배달시켜 먹는다고 한거밖에는 없어.."
순간 우리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소외된 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된걸까? 서로
부등켜 안고 끙끙 울었다.
둘이 머리를 써서 어디에다 걸까..아무리 고민해도 떠오르는 전화번호가 없다.
장난전화를 해볼려고해도 이 비싼 피시에스로 백수에겐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다..
순간 텔레비젼에 방송되는것중에 이상한게 눈에 띄었다. 수재 의연금 700-0933 몇억.
저게 뭘까 엄청 궁금했다. 그러던중 이녀석이 한마디했다. 저기다 전화 걸면 우리같은
백수나 수재민같이 불쌍한 처지의 사람에게 몇억이 있으니 추첨해서 얼마를 준다는게
아닐까? 그녀석이 이런심오한 추리를 ..지딴에는 그럴싸하다.
저 녀석은 자기가 골똘하게 생각하고 난뒤 결과를 무조건 확신하는 버릇이 있다.
뚜두두 뚜두뚜뚜.. 여보세요..찰칵..
" 야 뭐라그래?.. 돈준데..?"
"감사합니다 한마디만 하고 끊어 버리는데.."
"야아 새키야 주소를 말해야지.."
뚜두두 뚜두뚜뚜..
"아 여보세요. 내가 말이쥐 피시에슨데 말이쥐.."
"뭐라 그래 ? 주소안갈켜줘도 된데?"
"아 이여자 성미 급하네 . 그냥 감사합니다 한마디 하고는 끊는데.."
"에이 이리줘봐 .. 티비 딴데 한번 틀어봐.. 799-0800.몇십억..
야 저긴 더 많네..
이렇게 우린 그날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수십차례듣고 끝내 주소를 말하지 못했다.
우리 둘다 분해서 울릴 가망성도 없는 피시에스를 들고 혹시 잘못걸려오는 전화라도
있나 낯선 동네를 몇바퀴 돌았다.
아 오늘 밤에는 잠이 안올것 같다. 그 감사합니다가 내 꿈에 나타날것만 같기 때문이다.
8월 20일.
백수친구를 불러 피서를 갔다. 날씨가 더워 집에 있기가 무모했기 때문이다.
피시에스를 자랑스럽게 추리닝에다 끼고는 그가 나타났다. 난 호떡을 준비했다.
에어콘 켜진 은행로비에서 호떡먹는 별미는 경험 못하고서는 느낄 수 없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사람들을 보며. 은행직원들에게 미소를 띠워주며 로비소파에서 호떡을 먹었다. 하하!
한동안 거기서 침흘리고 잤다. 일어나니 배가 고팠다. 가스총을 들고 있는 파란옷 입은 놈이 자꾸 쳐다봤다.
배가 고프다. 추리닝새끼를 시켜 뭐좀 먹을거 사오라고 시켰다. 순순히 갈놈이 아니었다. 2000원을 주었다.
밖에 나가더니 한참만에야 땀을 흘리며 들어선 그 백수새끼는 아무것도 가져온게 없었다
로비 복도에서 그는 자랑스럽게 피시에스를 꺼내었다.
"여기 **은행 일층인데요. 짜장면 두개 빨리요."
참내. 쪽팔리긴 하지만 저녀석과 함께라면 덜 쪽팔릴것도 같았습니다. 뭐 내가 다른
사람들 눈에 들어가겠어요? 저놈만 쳐다보지...
"어디 갔다 온거여?"
"짱개집 전화번호 알아 왔잖아."
전화번호를 알려고 짱개집을 갔다온 녀석이 황당했지만 그 전화번호를 여기까지 오면서 까먹지 않았다는데 대해 놀라웠습니다. 로비에서 짱개를 시켜먹었다. 결국 쫓겨났다.
그 은행 통장을 보여주었지만...
은행에서 냄새나는 음식은 시켜먹지 말아야 겠다. 내일은 동사무소로 가야겠다.
25살 백수일기 -12-
8월 21일.
병역 특례회사 갈려고 대학원졸업할때까지 군대를 안가고 있다가 아임에프 때문에 고급인력이 백수는 될수 없다고 가리늦가 군대를 간녀석이 짝대기 두개 달았다고 자랑겸
휴가겸 나왔다.
원래 첫휴가때는 집에서 돈을 많이 주는법.. 이나이에 짝대기 두개 달고 휴가나온
놈하고는 좀 만나기가 그랬다. 백수친구 그녀석도 좀 멈찟했다. 이 녀석이 멈찟한다는 건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쪽팔림이라는 증거다.. 그녀석과 나는 예비역 3년차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고픔은 모든 것을 카바해 주는가 부다. 여기서 그 백수친구가 한말이 가슴을
찔렀다.
"백수가 26살 짝대기 두개하고 만나는게 쪽팔릴까? 짝대기 두개가 백수만나는게 쪽팔릴까.?"
그때 그 '감사합니다'가 한번에 천원씩 나가는걸 안 뒤로 그녀석은 그나마 좋아하던 호떡도 참아가며 하루에 천원씩 저금한다고 거의 굶고 있다. 이정도 쪽팔림쯤이야..
하여간 그녀석이 나오라는 주점으로 갔다. 약속장소에는 물론 배고픈 그백수하고 내가 먼저 도착한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때 누런이를 보이며 그 백수가 여기다라고 한다. 졸라 쪽팔렸다. 역시 추리닝에 그기다 흰양말 까만구두 .,추리닝
고무줄에 피시에스 연결고리 메달고.. 웃옷이나 내어 입었으면 꼴에 피시에스
자랑한다고 또 넣어 입었어요..
아 차라리 짝대기 두개가 덜 쪽팔리지..분명 저자식 지하철 타고오면서 얼마나 많이
피시에스 넣었따 뺐다 했을것이며.. 귀에다 대보고 여보세요? 내가 말이야 지하철안이야. 그런 소리도 했을 것이고..또 얼마나 많이 따다 따다다. 따다 따다다(밀양아리랑가락).
소리는 틀었을 것이며...안봤지만 눈에 환하게 어린다..
저놈이 지구인이 아닐것이라는 증거는 점점 늘어만 간다.
그 짝대기 두개도 나왔다. 지두 쪽팔린거는 아는지 군복은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과 킹카였던 모수모양도 나왔다. 공대 킹카라야 그냥 보는데 역겹지만 않으면 다
킹카 아니겄습니까.. 그래도 백수친구 이놈은 얘를 상당히 좋아 했었다.
하여간 술을 뽀자게 먹고 . 정신이 완전히 갈 무렵까지 마셨다. 인생이 뭐 별거냐..
다행히 모모정양이 정신이 말짱한데다 자기 자취하는 오피스텔이 예 근처라 그기서
하룻밤 신세지기로 했다. 자취하는곳은 다 이상한냄새가 나는줄로만 알았던 나는 야
이런데도 있구나 하며 견문을 넓힐수 있었다.
하여간 지집애 지는 지집이라서 침대에서 자고 우리는 바닥에서 군담요 비슷한걸 깔고 잤다..
끄러렁 끼리릭 퓨 드리푸르렁. 완전 서라운드로 골아 재친다. 지집애는 이빨갈고 짝대기 두개는 코골고.. 백수새끼 이새끼는 여전히 지구인이 아닌양 에어리언이나 낼법한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잔다. 차라리 술깰때까지 맞더라도 집에 갈껄...
가까스로 잠이 든 나는 아침에 이 지지배가 끓여준 국과 아침밥을 대접받았다. 순간 얘와 결혼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정도로 감격했다. 최모모가 그래도 맘씨 하나는 옛날부터
착했지 암.. 근데 백수 새끼 이새끼가 또 초를 친다..이 새끼도 아침을 먹어본지 오랠텐데..감격은 못할망정.. 아침부터 밥준다고 졸라 짜증을 낸다. 이자식이 굶더니 미쳤나!
하여간 우린 오랜만에 술이라는것과 아침밥 그리고 이성을 동시에 접할수 있었다.
집에 오는길에 지하철 안에서 이새끼가 또 피시에스 가지고 장난친다. 괜히 피시에스를 들더니 가만 앉아 있는 옆아가씨한테 갑자기..
"아빠래요.."
그런다. 어제 먹은 술이 확 깼다. 반경 10메타내의 사람은 다 쳐다본다.
한참만에야..자기도 시선을 의식했는지 실 잡아 넣는다. 그리고 아침에 왜 밥준다고
짜증을 내었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그녀석 왈..
" 나두 실은 감격했는데.. 감격한 모습 보이면 백순게 탄로나잖아.. 걔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점점 나의 확신이 굳어 간다. 자동문앞에 서서 문닫힐때까지 기다린거.. 버스카드 처음
나왔을때 신기하다며 버스한번 타고 충전카드 다 날린거 하며..(계속 데었다 땠다
그랬음). 신창원이 잡겠다며. 3일동안 창원가서 집에 안들어온거.. 코털 삐져나온거
라이타로 태우다 코 왕창태운거..
지나가다 개가 짖는게 자기한테 백수라고 놀린거라고 주인한테 따지질 않나..
하여간 이녀석은 분명 지구인이 아니다. 아주 질나쁘고 미개한 별나라 사람이 확실하다.
오늘도 나는 동네를 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