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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정 | 변 경 전 | 변 경 후 |
성지순례 | 풍수원 성당, 금대리 공소 | 풍수원, 금대리 공소, 횡성성당, 진부성당 |
점심식사, 장소 | 선재길 섶다리 계곡 안부 | 진부성당, |
걸음여행 코스 | 전나무 숲길, 선재길 1,2,3 | 전나무 숲길, 선재길2,3 |
‘ 제 61차, 작은 자들의 순례 & 걸음 여행 | |
사람들은 때때로 불합리 하고 비논리적 이면서 자기 중심적 이다.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 | |
일 시 |
2016년 7월 16일(토) |
평화의 인사 |
서로 인사를 나누고 덕담과 격려로 자비와 평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
오늘 기억할 형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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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성가 |
우리모두 함께 모인 이곳에 사랑이 피어나고/ 사랑이 넘치는 순간 순 간 우리는 한 형제 / 해와 달 땅과 바다 별과 하늘공기 바람, 프란치스코/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 찬미해/ 주님을 주 님을 찬미해/ 사랑해 주님을 주 님을 사랑해 |
시작 기도 |
우리를 떠받쳐 주는 흙, 물을 주는 숲과 강과 시내, 우리 의 병을 고쳐주는 약초와 생명을 주는 모든 곡식, 우리에게 열매를 주는 덤불과 나무, 태양이 졌을 때 빛을 주는 달과 별들. 항상 자애로움으로 대지와 사람을 내려 다 보시는 빛 가운데 계신 하느님! 그 안에서 만들어 주신 위대한 영에 감사드리며, 그 안에 선함이 이루어지고 평화가 우리의 마음이 되도록 도와 주소서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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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소개 |
서울- 풍수원 – 금대리 – 공소에절 – 장평- 진부- 월정사 – 전나무길 – 선재길- |
성지 안내 |
풍수원 성당, 1801년 신유박해 때 용인출신 신태보 베드로를 중심으로 40여명이 피난 와 정착한 교우촌, 80년 동안 성직자 없는 신앙생활 하다 1888년 르메르 신부님을 맞아 정식 교회가 세워 짐, 1889년 한국 3번째 신부이신 정규하 아우쿠스티노 신부가부임 중국 기술자 진 베드로와 함께 1905년 공사를 시작 1907년 준공 후 1909년 낙성식을 갖음, 당시 신자수가 2000명이었음 고딕형식의 성당은 한국에서 4번째 봉헌된 성당임, 또한 부제서품을 받은 후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 부임 후 사목하시다 양양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고 떠나신 성당 임. 금대리 공소는 풍수원 직할 공소로서 귀농신자를 위한 교육과 청소년을 위한 영농교육을 진행하고 있음. |
걸음 여행지 |
일주문 - 전나무 숲길 – 금강교 - 금강연- 선재길 – 동피골 주차장 (점심식사) - 상원사 |
마침 기도 |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백성들 가운데 작고 가난하고 겸손 하려 노력하는 백성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아름다운 빛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모든 만물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주신 모든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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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선 ! |
오전 7시 30분경 도착한 풍수원 성지.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물이 풍부한 곳이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고장 이름을 풍수원(豊水院)이라 부른 곳이다.
이곳은 신유박해를 피해 1801년 경기도 용인, 이천, 여주에 살던 교인들 40여 명이 신태보 베드로 중심으로 숨어들어 교우촌을 형성한 곳이다. 80여 년 세월 동안 성직자 없는 신앙생활을 하다 한불 수호조약 이후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자 1888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르메르 선교사가 들어와 초가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전교와 사목활동을 하던 곳이다. 이후 한국인으로서 세 번째 사제 서품을 받으신 정규하 아우쿠스티노 신부께서 1889년 주임 신부님으로 부임하신다. 이후 중국인 건축 기술자 진 베드로를 초청 1905년부터 현재의 성당 조적조 고딕 건물 신축공사를 시작하여 1907년 준공한다. 그리고 1909년 낙성식을 갖고 봉헌하기에 이른다. 당시 교구는 서울교구로서 벽돌 조적조 고딕형 성당으로서는 한국에서 4번째 봉헌된 유서 깊은 성전이다. 당시 교회관할은 춘천,홍천, 강원 일원과 경기도 지방 일부가 포함되어 신자 수는 2000여명이었다. 강원도 경기도 일대의 성당은 풍수원에서 분당되어 나간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와 같은 프란치스칸으로서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 후 이곳에서 약 1년 동안 사목활동을 하신 후 고향 양양으로 옮겨 가셨다. 그리고 양양 성당에 사목활동을 하시다 6,25 전쟁을 겪으시기 전부터 삼팔선으로 길이 막힐 것을 아신 후 38선 이북 공산치하에 고립된 성직자, 신자들을 피난시킬 루트를 만들어 월남시키기 시작하신다. 당신께서도 얼마든지 피신할 시간이 있었으나 한 마리의 양을 위하여 목자는 남아야 한다는 투철한 성직자 정신을 구현하시다. 결국 원산 교도소에 투옥되신 후 총살형으로 순교의 길을 걷게 되신다. 춘천교구에서는 디모테오 신부님의 탈출 루트를 디모테오 길로 정하고 매년 도보 순례를 하고 있다.
성전에 입당 한 후 각자 편한 자리에 앉아 묵상과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갖았다. 성모님 앞으로 다가가 오늘의 소원을 간구하였다. 불순한 일기 안에서 진행되는 순례와 걸음여행, 평화와 선의 시간 안에서 은총으로 매듭될 수 있도록 소원합니다 라고 기도를 드렸다. 성전에서 묵상과 기도가 끝난 후 묵주 동산에 올라 가 폭우속에서 기도를 드린 후 다시 내려왔다.
비는 전혀 끊칠 기세가 없었다. 그렇다고 순례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다음 일정인 금대리 공소로 향했다. 금대리란 지명은 국내에 여러 곳이 있다. 그 대표적인 한 곳을 설명하면 신림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치악산 남대봉으로 오르는 철교 아랫마을이 금대리다. 금대리 야영장으로 유명하고 영원사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는 금대리는 원주교구 관내 서원면 금대리 공소다. 관리도 충실하지만 불편한 영혼을 위해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영적인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항상 이런 느낌을 받는 곳이다. 고해소에 앉아 하늘을 향해 투정도 부려보고 매달려 보기도 하고 떼를 써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전지전능의 특혜를 받을 수 있는 작은 성전이라는..... 개인적인 피세 정염(避世靜念)에 알맞은 곳이다.
작고 아담한 그리고 마음속으로 편안함과 고즈넉한 울림이 다가 오는 공소다. 목공예로 장식된 제대와 감실. 사방이 은혜로 가득할 것 같은 공간, 겨우 발걸음을 옮겨도 고작 열 걸음도 안되는 공간이다. 이 정도 공간이면 숨이 막힐 것 같지만 천만에다. 하늘의 공간처럼 넓고 푸르고 푸른 열린 사랑의 공간으로 다가 온다. 신탁(神卓)과 인탁(人卓)이 마주하고 담소하듯 정겨운 시선이 느껴지는 곳이다.
아주 긴 시간 ( 다음 일정이 걱정될 만큼 ) 개인적인 묵상과 시간이 지속되었다. 작은 공간이라 사진의 화각(畵角)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해 그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오늘 촬영은 스마트폰으로 대체하기로 마음먹었다. 화질이 떨어지고 화각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지만 카메라를 꺼내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몇장의 사진을 찍은 후 다음 행선지인 횡성 성당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은 원래 풍수원 성당의 공소가 있었다. 1930년 본당으로 승격된 후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을 신축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져 현재의 건물을 건립하였다. 라틴십자형 평면의 석조 성당으로 미사 공간은 내부에 분절이 없는 강당형이며, 본채의 천장 상부 목조 트러스 구조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정면 중앙에 8각 종실을 마련하고 그 위에 돔을 얹은 종탑을 두었는데, 종탑에는 건축 당시 프랑스에서 들여온 종을 설치하였다.
횡성 지역에는 1830년대에 이미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고,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강원도에서 가장 교세가 성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체포되어 교우촌이 와해되고 다시 공소가 설정된 1880년대
이후에는 풍수원 본당 관할이 되었다. 1930년 3월
풍수원 본당 2대 주임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에 의해 본당으로 승격되었는데, 설정 당시 신자수는 약 400명이었고, 관할 공소는 모두 17개소였다.
초대 주임 양덕환 신부는 본당 설립 3년 후인 1933년 5월 현 사제관 자리의 초가집을 매입하여 성당으로 개축하고, 4년
과정의 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1939년 춘천 지목구의 신설로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사목을 담당했다. 맥마흔 신부는 1955년
미군의 도움을 받아 전쟁 때 파손된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해 이듬해 5월 봉헌식을 거행했다.1969년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로 소속이 바뀐 횡성 성당은
2000년 10월 본당 설정 70주년을 맞이하여 교육 복지관을 준공했고, 2002년 9월에는 성당 뒷동산에 십자가의 길을 조성했다.
횡성 성당은 화강석 석조 건물로 전쟁 직후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감안해 서양 로마네스크 양식을 간략화하고 성당 가운데 종탑과 함께
주출입구를 배치했다. 건축 당시 프랑스에서 수입한 종과 천장 상부 목조 트러스 구조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사각형 평면 위에 팔각형 공간을 설치한 뒤 그 위에 돔을 얹어 구성한 종탑이 매우 특징적이다. 내부 바닥은 마루이며, 1984년 제대 양측 창에 유리화를 설치했다. 건물 폭과 높이에 비해 길이가 매우 길며, 천장이 가운데는 평평하고
양쪽으로 경사진 형태를 하고 있다. 부속 건물에는 변화가 많았으나 본당의 외형은 비교적 잘 보존되었다. 2008년 2월 문화재청으로 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71호로 지정되었다.
성당에 도착하자 김영진 바르나바 주임 신부님이 다가오셨다. 반갑게 환영한다고 맞아 주셨다. 그리고 신부님께서는 우중인 오늘 남성 구역 교우들과 배론으로 피정을 가신다며 배낭을 메고 계셨다. 성령의 힘이 가득한 성전이니 기도로서 은혜와 성령으로 입은 후 다녀가라고 격려해 주시며 자리를 떠나셨다.
김영진 바르나바 신부님은 2011년 9월 16일에 횡성 성당에 부임하셨다. 군사도시이며 1군 사령부가 있는 원주교구 영향과 군종신부로서 최전선 전방에서 오랜 세월 근무하셨던 영향이신지 조국과 민족의 상징인 태극기 사랑이 남다르시다. 주임신부님으로 부임하신 후 그때부터 성당 제단에 대형 태극기를 24시간 걸어두고 미사를 집전하시는 태극기 사랑이 남다른 신부님이시다. 성모 승천 대축일이 되면 태극기를 들은 학생 선두로 6명의 복사가 뒤따르고 이어서 신부님이 입장하시면 400여 명의 교우들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시는 신부님이시다. 그리고 모든 미사를 마치신 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신자들에게 들려주신다.
오늘은 성모님 승천 대축일이자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기도 하여 경사가 겹친 아주 의미 있고 뜻있는 날입니다. 요즈음 종북 세력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가까지도 부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거 큰 일났습니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비판받을 수도 있습니다만, 애국 애족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거 큰 걱정입니다. 나라 없이 우리가 안정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선조들이 일제의 36년간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나라를 사랑합시다. 신부님의 고향은 서원면 금대리 공소 부근이다. 금대리를 들러 왔다고 하니 신부님께서 그곳이 고향이라고 알려 주셨다. 영육 간에 항상 건강하시도록 순례단원들은 기억해 주시기 당부드려봅니다
횡성지역 성지를 순례를 모두 마친 후 1시간 걸려 진부 성당에 도착하였다. 원 계획은 선재 길 중간 동피골 계곡 안부에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지속적인 비가 내려 진부 성당 마리아 홀을 빌려 점심을 배식하고 함께 나누려 계획을 바꾼 것이다. 신자들을 통해 총무와 연결되어 빌릴 수 있었다. 조촐한 점심이지만 진부 성당 주임신부님 점심을 담아 총무님께 드린 후 배식을 끝내고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식사 중 주임 신부님께서 내려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다시 사제관으로 올라가셨다.
총무님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오후 일정을 위해 월정사 일주문으로 출발하였다. 문화재 관람료를 지불하고 일주문에서 모두 내렸다. 전나무 숲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비는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길이다.
카돌릭 신자들은 성전에 입당하기전 성수로서 신심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절차를 갖는다. 불교신자들도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그런 의식을 갖는다. 모든 절은 일주문을 세울 때 흐르는 물 옆에 세운다. 속계에서 선계로 들어 설때 심신을 흐르는물에 정화하고 들어 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이다. 천천히 걸어 나가면 숲 여기 저기 불교 경전에 있는 내용을 형상화 시켜 놓은 형상물이 설치되어 있어 깨달음을 얻도록 도와 주고 있다. 중요한 부분만 선택하여 설명을 이어나가며 걷다 보니 어느새 성황당 앞까지 도착하였다.
어느 종교든지 전교를 하다 보면 토착 신앙과 대립의 각을 세우기 마련이다. 토착 신앙을 배려한 내용들이 불교에서도 존재한다. 산신각, 칠성각, 성황당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런 설명도 전하며 숲 향기에 도취되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느새 금강교와 금강연을 지나 만월교까지 왔다. 그리고 선재길로 들어서는 다리에 서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아름다운 미를 연출하며 모여 있는 한옥의 모습을 보며 서로 감탄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오대천을 끼고 걸어 나갔다. 물은 질풍노도처럼 거침 없이 흘러 내려갔다.
이젠 본격적으로 들어설 천년의 길 선재길, 그 길에는 인간의 삶 안에서 근본으로 여기고 살아도 좋을 깨달음 얻고 그것을 진리의 소중함으로 여기며 살아도 인간도리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생각으로 다리 앞에 서자 통행금지 표찰이 붙어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지체없이 금강연 주자창에 대기시킨 이영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린 차를 타고 동피골 부근에 있는 오대산 산장으로 갔다.걷기에 불편하신 분들은 이곳에서 잠시 쉬도록 하고 나머지 형제, 자매들은 후반부 선재길을 걷기로 조치하였다. 출발하기 전 더운 차를 시켜 한 모금씩 챙기도록 하였다. 비오는 날 한 모금의 더운 차는 컨디션을 조절해 주는 능력이 있다. 또한 심적인 여유로움도 동반해 주기도 한다. 차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작은 여유의 시간을 갖고 다시 비 속을 걷기 시작하였다.
총무님께서 연주해 주시는 하모니카 소리 숲 속에서의 운치가 음율에 실려 비와 어울려 요정들을 춤추게 하는 것 같다.
다시 숲으로 들어서자 마자 나리꽃이 다가 왔다. 화초는 사람이 키우지만 들꽃은 하느님께서 키워 주신다. 손으로 슬쩍 쓰다듬다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먼저 앞서 간 후 촬영 포인트가 있으면 기다렸다 오시는 순서대로 촬영해 두었다.
다들 행복한 얼굴들이다.
맨 후미 팀이 도착하였다. 항상 뒤에서 작은 순례자들을 살펴주는 파스칼 형제님과 체칠리아 자매님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 후미를 확인하는 촬영을 끝낸 후 다시 대열 앞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거의 극상림 수준인 숲 속을 마음의 마당 삼아 산책을 즐겼다. 여러 형태의 물소리가 정겹고 큰 나무 위에 매달려 있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목덜미 안으로 스며 들어도 그냥 기분이 좋았다.
상류로 오를수록 청량감이 숲 속 가득했고 흐르는 물소리도 벼락치는 소리로 변했다. 다시 막아 놓은 선재길 우회하여 다시 선재길과 접속하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는 것 만으로도 여독을 정리할 순간이 되기도 한다. 나는 촬영을 갖는 시간으로 그것을 걸음 여행자들에게 제공하곤 한다.
여러 구도로 지체하며 사진을 찍어 두었다. 배경과 구도와 빛 그리고 찍는 자의 감성이 깃들어야 제대로 된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우중에는 빛이 없어 곤란하지만, 물기어린 모습을 빛으로 대체할 수 있는 분위기 연출은 가능하다.
토끼와 인연이 깊으신 총무님 모시고 기념사진을.....
숲과 인간과 어울림, 아니지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 조화롭다.
앞서가는 걸음여행단을 불러 세운 후 샷다를.... 스마트폰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지만 인증 샷으로..... 드디어 선재길 후미인 관대걸이에서 상원사까지 0.3km 남은 지점에서 잠시 쉬며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관대걸이와 문수보살 그리고 세조와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설명하자 바로 후미가 도착하였다. 다시 숲길로 들어 서서 걷기 시작하였다.
숲 길이 끝나자 새로 만든 상원사로 가는 계단이 나왔다. 옛적 이곳은 절의 텃밭이 있던 자리였는데 절의 입구로 변해 있었다. 옛적 입구는 출구로 바뀌었다.
상원사 범종을 둘러 본 후 문수전을 살펴 보고 세조와 연관된 고양이 석상을 살피고 당간지주에 걸려 있는 황금빛 봉황을 보며 커진 상원사를 보며 옛 상원사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문수전 뒤로 가 추녀끝에 서서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차경하고 서 있었다 소나무와 만초들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 때 다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검푸른 소나무 숲과 만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오늘 걸음여행 일정을 추수리기 시작하였다.
안개빛이 스며들고 장대비는 우산 천을 진절머리 나도록 두들긴다.
샘에서 목을 축인 후 꽃밭을 앞에 두고 전각과 숲을 배경에 둔 후 몇장의 사진을 준비했다.
목우당이란 전각이 참 아름다웠다. 방자한 용모의 동자승은 귀엽고 ....
마음을 닦는 선수행(禪修行)의 과정을 그린 십우도(十牛圖)는 보통 대웅전 외벽에 그려져 있는데, 인간의 본성을 소로, 마음을 닦는 일을 소 기르는 일에 비유하여 수행자가 정진(精進)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깨달아 가는 참선공부의 과정을 10가지 장면으로 그린 선화(禪畵)다. 십우도(十牛圖)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의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가르침을 나타내는데, 이는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과 자비의 실천을 의미한다 깨달음을 구해 나가는 과정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소를 찾아 나서다 (심우 / 尋牛) 2.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다 (견적 / 見跡). 3.소를 보다 (견우 / 見牛) 4. 소를 얻다 (득우 / 得牛) 5. 소를 기르고 길들이다 (목우 / 牧牛) 6.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기우귀가 / 騎牛歸家) 7. 소를 잊고 사람만 남다 (망우존인 / 忘牛存人) 8. 소와 사람 둘 다 잊다 (인우구망 / 人牛俱忘) 9.근원으로 돌아가다 (반본환원 / 返本還源) 10. 저자에 들어가 중생을 돕다 (입전수수 / 入纏垂手)
참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났던 선재동자 수많은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다. 믿음은 다르지만 진리를 얻어 깨닫고 회개하며 진리를 실천하는 길은 유사하다. 비가 많이 오는 날, 강원 영서 초입에 있는 횡성 서원면 소재 성지와 평창 진부 소재 성지를 참례한 후 걸음을 옮겨 마음에 달이 드는 月精寺 일주문 앞에 서서 불가의 깨달음을 빌려 전나무 숲을 걷기 시작하였었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옛길, 상원으로 가는 길이며 선재가 진리를 밝히려 걸었던 깨달음의 길이기도 한 곳이다. 불어난 계곡물 영향으로 선재길 전반으로 걸을 수 없었지만 선재길을 퍼줄 맞혀 나가듯 걸으며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참 삶이 무엇인가 사색하고 재속의 삶에서 쌓여있던 우려(憂慮)를 잠시 내려 놓고 걸었던 길, 참으로 아름다운 걸음이었다. 우리식으로 자연은 창조적인 질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온갖 것들의 생명의 환경이다. 창조적인 질서 안에서는 모든 자연의 개별성들도 평화의 인연으로 시작되고 매듭되는 생멸의 시간을 보낸다. 다만 과한 인간의 생존을 이유로 인간 방식대로 간섭하기 시작하면 질서는 파괴라는 위험에 노출되고 혼란을 부추기게 된다. 자연(自然)은 이름 그대로 스스로 이뤄 나가도록 자연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좋다. 창조적 질서의 아름다움을 잠시 빌려 기쁨과 행복 안에서 걸었던 기억만 챙기고 창조적 질서의 모든 것은 다시 제 자리에 돌려 놓고 떠나는 것이 작은자들의 걸음여행의 근본이다. 오늘은 극상림이 존재하는 숲에서 수많은 나무와 숲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 소나무와 만초가 어울려 아름다운 숲을 만든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보낸 걸음여행이었다. 시간이 지나가도 오늘 여정은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오늘의 길을 빌려 주신 불가에 감사하며 상원사를 떠났다.함께한 작은 자들이신 형제, 자매님과 오늘의 기쁨을 공유하며 오던 길을 되짚어 사하촌으로 물러났다.
불가의 연꽃을 빌려 심적 정화를 시킨 후 걸으며 느껴던 깨달음 소중하게 생각하며 절집을 나섰다.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얻기 위하여 수많은 고난을 선으로 극복해야 비로서 참 평화를 만날 수 있다. 그 진정한 평화의 마음을 마음의 방생으로 내려 놓고 목례로 절을 한 후 사하촌으로 나가는 길로 내려섰다.
우리들의 심신은 맑고 새의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리고 마음에는 은은한 빛이 모여 있었다. 그 빛이 모여 겸손하고 가난한 삶의 빛이되어 세상과 어울리며 사랑과 평화의 바탕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 일이다. 좋은 시간을 함께 마련해 주신 동행한 모든 형제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이름으로 샬롬! 또한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세상을 편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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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밤새, 내리는비는 새벽에도 끝칠줄모르고 세차게 내린다...
새벽 4시 30분 찰밥이 도착 배달하신분이 신속히 뒤트렁크에 실어주셧다,,,,
장마비 대비 우비와 여벌옷을 먼저 챙기고,,
만남의 장소 도착 어김없이 밝은모습들.....
일찍출발 했기에 7시 30분 풍수원 성당도착.. ,,수녀님께서 성전문을 열어주셔서,,,마음모아 기도드릴수 있었다
십자가의길 동산에 올라가 기도드리고,,,금대리공소,,아름답고 엄마의 품속같은 느낌.....횡성성당 신부님께서
반겨주시며,은혜로운 시간이 될수있기를..격려해 주셨다,,,,
점심을 계곡에서 할려했지만,,,,계곡접근이 어려워 ,,고심 끝에.........
현명하신 리더님께서 진부성당으로가서 점심할수있도록 도움을 청하니 성당총무님께서
친절히 배려해주시고 신부님께서도 일행을 반겨주셨다.....
오전일정을 맞치고 본격적으로 트레킹 시작.....
알록 달록 우비옷을 입고 오대산 전나무숲길을 시작으로..내딛는 발걸음은..너무도 가벼웠다...
아름다운 선재길,,,걸음팀을 안전하게 인도해주시는 세베리노 리더님.....
순간 순간이 감탄과 감사함,,,성전에들러 기도덕분인지..비를맞으며 걷는 발걸음이 너무도 가벼워
나자신도 모르게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황홀한 체험을 할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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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러하셨지만 철저한 계획과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걸음팀을 이끌어주셔서,,,오늘하루도 모두가 행복할수 있었기에 감사드립니다,,,,,,
새벽에 눈을 떠니 밤새 내리는 비~ 오늘은 그만, 마음이 망설어 졌지만...
총무님의 배려로 정신을 차려,
사랑하는 걸음팀을 만난다는 기쁨을 마음에 담아서
Go Go~
이른 아침에 도착한 풍수원 성당과 십자가의 길은 은혜와 은총이 쏟아지는 길이 었습니다~~
오전에는 묵상과 기도로 그동안 묶였든 마음을 하느님께 모두 털어 놓을 수있는 시간 이었습니다.^^
월정사 선재길 전나무 숲길은 너무나 아름다운 길~~~~
폭포수 물소리와 숲향기에 취해 발걸음도 가볍고.
내리는 비는 아량곳도 없었습니다.
아~ 이런 아름다운 길을 걷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7월에도 알찬계획과 수고로 걸음팀을 리더해주신
대장님께 감사 드립니다~^^
항상 바쁘신 와중에도 완벽한 총무님께도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앗!
몸 커디션으로 상원사까지 함께 걷지 못한것
쬠은 아쉽습니다.~^^
걸음팀 형제 자매님들께도 사랑 전합니다~
샬롬~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