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구멍을 통해서 들어온 빛이 반대편 벽 위에 거꾸로 된 상(像)을 투영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루네상스 시대라고 한다. 화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근거해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 어두운 방)를 만들어 여기에 설치된 거울과 렌즈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像)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렸다.
사진기에서 만들어진 상을 종이 위에 정착(定着)시키는 작업은 화학적 반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필름이 나오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쳤으며, 빛을 잡는 감광재료가 발명된 후에 비로소 사진이 나오게 되었다. 빛으로 그리는 사진술은 감광지 위에 빛이 직접 작용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러한 사진을 얻기 위해 종이 위에 상을 얻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려야 가능했다.
사진기의 발전이 먼저인지 필름의 발전이 먼저인지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본격적인 상업사진은 코닥(Kodak)에서 만든 롤필림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조지 이스터먼()은 1880년에 건판제조업자로 시작하여 1888년에 만든 코닥((Kodak) 사진기에 롤필름을 장전하여 판매하였다. 이 롤필름이 나오면서부터 사진기의 무게와 부피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스트먼은 1889년에 오늘날과 같은 투명한 셀롤로이드(celluloid)필름을 만들어 최초의 상업적 롤필름의 시대를 가져왔고 이것은 곧 35mm 사진기의 시대를 열게 된 시발점이 된 것이다.
35mm필름은 원래 영화 촬영기에 사용하는 70mm필름을 반으로 잘라서 쓴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필름은 코닥에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의 조수인 월리엄 딕슨(William Dickson)이 만들었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딕슨은 코닥에서 만든 70mm필름을 반으로 쪼개 35mm 폭의 필름을 만들었고, 이 필름 양쪽 옆에 구멍을 뚫어(이송 구멍 : Perforation), 기계적 장치에 의해 필름이 돌아가도록 고안하였다. 그래서 이 필름의 폭은 35mm이지만 사진에 이용되는 실제 폭은 24mm이다. 이 35mm 필름이 결과적으로 영화촬영의 표준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35mm 필름이 처음부터 통에 들어있던 것은 아니다. 라이카에 처음 필름을 장전할 때는 찍는 사람이 암실에서 작업을 해야 했는데 36컷을 표준으로 만들었다. 이 필름은 나중에 코닥에서 통(카세트)에 넣어져 나와 밖에서도 장전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라이카사진기가 나오기 이전부터 코닥에서는 많은 사진기를 만들었고 그에 맞는 필름을 만들었는데 새로운 사진기나 다른 크기의 사진기가 나올 때마다 필름 상자에 그 롤필름에 맞는 사진기의 이름을 표시했고 필름에는 고유번호를 부여했다. 코닥에서 처음으로 상용화시킨 필름은 No. 101로 시작되었는데 필름의 종류는 30여 가지에 이르며, 중형 사진기에 쓰는 120필름은 필름의 넓이가 아니라 코닥의 고유번호가 No. 120인데서 연유한 것이다.
20세기 초 까지는 사진기의 부피가 크고 무거워 장거리 이동에 불편하고 길이 험한 곳에는 가져가기가 무척 어려웠다. 소형 사진기도 있기는 했지만 조잡하여 전문가들이 쓰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성능이 뛰어난 소형사진기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35mm 사진기의 원조로 알려진 라이카사진기를 설계한 사람은 열광적인 등산가 오스카 바르낙(Oscur Barnack)이었다.
그는 알프스 산을 등산하면서 자신의 여행을 기록할 소형사진기를 만들기를 원했고, 이 소망은 그가 1911년 라이츠사에 입사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바르낙은 콤팩트하면서도 용도가 다양한 사진기를 설계했는데 이것이 라이카사진기의 시발점이다. 1913년에 바르낙이 만든 우르 라이카(Ur-Leica)는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으며, 그것으로 찍은 사진은 크게 확대해도 좋을 만큼 정밀하게 만든 것으로 라이카의 원형(原型)이 되었다.
라이카는 오늘날의 35mm 사진기의 선조로 인식되고 있는데 화면 사이즈는 현재의 표준인 24mm x 36mm이다. 여기에 사용되었던 코닥 필름의 고유번호가 No. 135여서 35mm 필름을 135필름, 이 필름을 쓰는 사진기를 135사진기라고도 한다.
처음의 라이카는 필름감기 놉을 돌리면 필름이 돌아가면서 셔터가 장전되는 방식을 고안했고, 렌즈는 고정되어 교환할 수 없는데다가 목측으로 거리를 판단하여 초점을 조절하는 단순 방식이었으나, 점차 발전되어 거리를 측정하는 레인지파인더가 장착되고 렌즈를 교환할 수 있게 만들어 35mm 사진기의 표준을 확립하게 되었다.
라이카가 35mm 사진기의 표준으로 자리를 확고히 잡아갈 때에 차이스 이콘에서 라이카에 대항할만한 정밀기기인 콘탁스(Contax)Ⅰ을 생산하였다. 1932년에 생산된 콘탁스는 광범위한 교환렌즈와 렌즈와 연동하는 빠르고 정확한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레인지파인더를 장착하였다. 라이카가 최고 셔터스피드를 1/500초로 했을 때, 콘탁스는 1/1000초로 하여 더 빠른 셔터스피드를 자랑하였다.
1930년대와 1940년대를 거치면서 두 사진기는 폭 넓게 수정되고 발전하여 35mm 사진기의 전문화와 대중화를 이루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일반인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많은 유명 사진가들이 이 사진기들을 사용함으로 해서 2차 대전 중에는 35mm 사진기가 뉴스와 보도사진의 표준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34년에 나온 코닥의 레티나(Retina)는 한번 쓰고 버리는 35mm 필름카세트를 도입하여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 35mm 필름카세트가 사실상 35mm 필름의 표준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35mm 사진기의 왕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안반사(SLR)의 사진기가 상용화된 것은 레인지파인더 형식보다 한참 뒤인 1949년이다. 최초의 일안반사 형식 35mm 사진기는 1935년에 소련에서 나온 스포츠(Sport)이고, 1936년에 키네 액재타(Kine Exakta)가 나왔지만 사용하기가 불편하여 오늘날과 같이 쓰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반사경의 복원문제, 상이 좌우가 바꿔 보이는 문제 등을 안고 있었는데 이런 단순한 문제가 해결되는 데도 여러 해가 걸려 1950년대 후반에 와서야 사용하기 편리한 사진기가 나오게 되었다.
1949년에 나온 콘탁스S는 차이스 이콘의 발명품으로 오늘날의 일안반사 사진기의 프리즘 형식과 비슷한 펜타프리즘을 장착하여 좌우역상(左右逆像)이 아닌 좌우정상(左右正像)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1957년에 등장한 아사히 펜탁스(Asahi Pentax)는 사물이 똑바로 보이는 프리즘 파인더와 퀵 리턴 미러(quick return mirror)를 장착했는데 이 사진기가 오늘날의 일안반사 사진기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 다른 업체들은 이 펜탁스 사진기를 모델로 하여 보다 정교한 장치들을 추가해 나갔다. 일안반사 형식의 사진기는 독일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전후 일본에서 꽃을 피워 오늘날 35mm 사진기의 총아가 된 것이다. 이 사진기들은 처음에는 전문가들로부터 외면당했지만 보다 빠른 셔터스피드와 모터드라이브의 장착, 렌즈를 통한 노출 측정 등의 발전에 힘입어 뉴스와 보도사진에서 레인지파인더 사진기를 몰아내고 오늘날의 위치를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진기의 교체를 뜻하기보다도 사진기 산업에 있어서 독일과 일본의 자리바꿈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