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헌법재판소를 방문한 일본 로스쿨의 직장인 학생들이 대심판정에서 헌재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맨 왼쪽은 이들을 인솔한 고상룡 교수. [신동연 기자] |
“소데스카?(그렇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일본 최고재판소와 달리 한국 헌법재판소는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적극 행사합니다.”
정주백 헌법연구관의 설명에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본 도쿄에 있는 다이토분카(大同文化)대 로스쿨(법과 대학원) 3학년 학생 4명이다. 이 로스쿨의 유일한 한국인 교수인 고상룡 교수의 인솔 아래 현장교육 차원에서 1주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특이한 점은 이들 모두가 20~40대 직장인이라는 것. 이들이 로스쿨에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10년 정도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스쿨이 생긴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후지사키 다로·34·이동통신업체 근무)
도쿄대 의대 출신으로 피부과 전문의인 마쓰우치 다카노리(37)는 “일본에는 의학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이 많지 않다”며 의료 전문 변호사의 포부를 밝힌다. 5%에도 못 미치는 사법시험 합격률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인생 2모작’의 꿈이 2004년 로스쿨 도입으로 눈앞에 다가오자 직장인들 사이에 로스쿨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로스쿨 공부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후 6시30분부터 9시40분까지 수업을 받고요. 토요일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45분까지 종일 수업을 받지요. 일요일엔 꼬박 예습과 복습을 하고, 리포트 과제물도 작성해야 합니다. 로스쿨 입학후 수면 중 무호흡 증상까지 생겼어요.”(나카가와)
하루에 얼마나 자는지를 물어봤다. 답은 ‘보통 3~4시간’. 성균관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이 로스쿨에서 한국법을 강의하는 고 교수는 “계약이나 법률행위 등 기본 개념은 건너뛰고 바로 민법총칙부터 친족상속법까지 훑는다”며 “학생들이 ‘목숨을 깎는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힘든 과정”이라고 말한다. 2~3학년 때는 판결문이나 계약서 등 법률서류 작성과 사례 중심의 실무교육을 받는다.
“입학 전후에 일정한 인증시험을 통과하면 수업을 덜 들어도 되기 때문에 2년에 마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보통은 법대 출신들도 3년의 미수자 과정을 택합니다. 그만큼 진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얘기지요. 학사관리가 엄격해 지난해엔 한 학년 정원 50명 중 20명이 학사불량으로 경고를 받았습니다.”
전업 학생들은 로스쿨 수업을 따라잡기 위해 연간 40만 엔(330만원)의 수강료를 내고 고시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다.
“일본에선 직장인이 야근을 할 수 없다는 건 치명적입니다. 회사에서 좋아하지 않지요. 로스쿨 수업만도 빠듯한데, 학원은….”
로스쿨 성적이 선두권인 후지사키는 “고단한 생활이지만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한다. 학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로스쿨에 내는 학비는 연 160만 엔(1300만원)가량이지만 교재비 등까지 합하면 졸업 때까지 700만 엔(57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사법시험 합격률이다. 당초 70~80%로 기대됐으나 로스쿨 도입 후 처음 치러진 지난해 시험의 합격률은 48.3%였다. 로스쿨 인가 대학이 74개로 늘고 로스쿨 입학생이 6000명에 육박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다음달 발표되는 올해 합격률도 40%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로스쿨 인가는 문부과학성에서 하고, 신사법시험 관리는 법무성에서 하다 보니 일어난 일이지요.”(나카가와)
더욱이 새로운 출제 유형인 단답식 문제에 대비하려면 고시학원에 다녀야 한다. 로스쿨을 도입할 때 내세웠던 ‘국제화·전문화’라는 목표는 퇴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 교수는 “신사법시험 통과에 급급해 의사법이나 비교법 같은 다양한 선택과목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다”며 “로스쿨이 40여 개로 정리되는 10년 후께나 그런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래도 로스쿨 학생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실무 교수 9명과 연구 교수 8명, 외부 강사 23명이 소수정예로 ‘법적 사고력(Legal Mind)을 길러주는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다이토분카대 로스쿨에도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 도쿄고검 공안부장, 재판관(판사), 사법연수소 교관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실무 교수들이 포진해 있다.
“대학(아오야마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요. 그때는 교수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만 가르쳤습니다. 반면에 로스쿨에선 다양한 실무교육을 받을 수가 있지요.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는데, 고객들에게 법률적인 부분을 설명해 드리기도 하지요.”(야나가와 마사키·27)
고 교수는 현재의 일본 로스쿨을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하면서 “한국 로스쿨이 일본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법조계와 교육계가 로스쿨 정원과 변호사 수 문제에 대해 접점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몇년 후에는 ‘로스쿨 낭인’들을 양산할 수가 있어요. 로스쿨 도입 취지도 무너뜨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