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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의 결과(문둥병에 걸린 웃시아왕)
역대하 26:16-21
26:16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26: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26:18 웃시야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26: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26: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6:21 웃시야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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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사람의 성도로서
세상을 살고 싶지만
세상이 대단히 복잡하게 진행되니까
매우 답답한 심정을 갖게 됩니다.
내가 세상사람인지,
그보다 못한 사람인지
분간도 않되는 심정이 시도때도없이
찾아옵니다.
성도로서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냐 하고
고민 할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세상을 대단히 좁게 봅니다.
물론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서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세상을 단순하게 파악하실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도
성경대로 세상을 좁게 보는
그런 눈을 가져야 됩니다.
세상을 좁게 보면
세상의 실체가 아주 간단 명료하게
눈에 잘 띄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원리원칙을
간단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그 동안 우리가 너무 사소한 일에,
기가 죽어 있었고
다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좁고
거기서 일어나는 일도 이렇게 간단한 것을
내가 몰랐기 때문에
이것도 큰일, 저것도 대단한 일이 되어서
나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면
자연 스트레스가 많은
허약한 모습이 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에서 우리 세상을
아주 압축시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세상이라고 간단하게 언급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짐도 아주 가벼워집니다.
따라서 우리도 세상을 가볍게 보고
간단하게 보는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도
지푸라기 같이 가벼운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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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도 내용을 뜯어보면
역시 간단합니다.
오늘의 대의가
교만의 결과라 할수 있는데
웃시야라는 왕은
처음에는 제대로 잘 나갔습니다.
선지자가 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왕이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사는 날에는
그는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하나님 뜻대로 사니까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는 겁니다.
어느 정도로 형통한가가
6절에서 12절까지
아주 복잡하게 나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8절에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심히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웃시야가 사는 날 동안에
유다 나라가 아주 강건해지고
12절에 보면
군사력도 증강되어
싸움에 능한 자가
삼십만 칠 천 오백 명의 아주 건장한 군사가
갖추어져 있고
각종 무기들도 있고
15절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이 요새화 되어 가지고
다른 나라들이
기가 죽어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을 잘했는데
16절에 오니까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되"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세상에서
뭔가 자기 뜻대로 잘 된다 싶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이제는
하나님 없이도 산다는 마음으로
곧장 변하더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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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인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준 나라는
아무리 축복 속에 살더라도
그 축복된 나라 자체는 왕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건강하다,
그러니까 건강한 나는
내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로 교만한 거란 말이죠.
하나님께 이런 도움을 받았다는 말은
이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뚝 잘라버리고
도움 받은 것 가지고
내 혼자 자립해서 살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용납을 안 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지금 이 웃시야 왕이
왜 이렇게 교만했느냐 하면
이 축복 받은 나라가
내 것이라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달라진 거예요.
"이게 다 하나님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라는 마음으로 있다가
모든 것이 잘 되면
하나님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두둔해주는 사람들로
가득차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 잘한 덕으로
성공했으니 자기덕이라는 겁니다.
신앙 생활로 인해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니
그 나라가 자기 것으로 보이고
그때부터는 하나님도 눈에 안 들어오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통로로 내려 왔는지도 안보이고
자기가 돛대가 되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가 하는 일은,
자신이 가진 것 많으니까
하나님이 구태여 안 도와 주셔도
자기가 갖고 있는 힘만으로도
적들을 능히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을 얕잡아 보면서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건방지게 제단에다가
분향을 드리겠다고 나선 겁니다.
그렇게 나서니까
그 때 대제사장이
팔십 명이나 되는
다른 제사장을 데리고 들어와서
웃시야 왕을 가로막으면서 하는 말이
"왕이여 왜 이러십니까,
왕은 왕이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도
분간 못합니까,
분향하는 일이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 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예요?
제사는 아무나 드리는 게 아닙니다.
민수기 16장에 보면
같은 레위 지파 가운데
제사 할 수 있는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그 제사하는 데 있어
보조역할을 하는 자들도 있는데
이들이 레위지파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보조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자기네들이 가만히 보니까
같은 지파인데 아론계열에 사람들은
제사장 직을 독점하고 있으니까
기분이 나쁘잖아요.
그래서 파당을 만들어 가지고
대번에 제사장에게 대들었습니다.
"너희들만 레위인이냐,
너희들만 거룩하냐,
거룩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신다"라고
반발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저 못된 놈들을 내가 다 죽일 테니까
모세와 아론은 빨리 피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입니까?
하나님이 지정한 거룩한 사람에게만 드린다는
그 분향하는 향로를
그 못된 고라 자손들에게도
하나씩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백 오십 명이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모세와 아론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이백 오십 두개의 향로를 하나님 앞에 놓고
드디어 하나님께 불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그 이백 오십 명의 향로를 갖고 있는
고라 자손을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이백 오십 명을 죽이는 게 아니고
회중 전부를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이 빌어서
이백 오십 명만 죽이는데,
그들을 어떻게 죽이느냐 하면
그들이 향로를 가졌던 그 땅이 쫙 갈라지면서
갈라진 그 틈 밑에서 불꽃이 솟아 올라와
그 불꽃으로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었던
그 건방지고 교만한 레위 자손들을
다 죽이고 맙니다.
죽이고 난 뒤에
땅에 완전히 파묻고
땅이 다시 합쳐지면서
완전히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일은
이런 뜻을 이스라엘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다,
아무나 하나님을 어기고
아무나 거룩한 곳에 분향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은
나를 보고 복이 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 대신 희생하신 예수님보고
우리한테 복이 오는 거예요.
아무나 제사장이 아닙니다.
우리의 제사장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 당시에 제사장이 하는 일은
우리 죄를 위해서 제물을 바치고
죄를 씻는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죄 있는 사람한테
결코 은혜를 안 줍주십니다.
우리 옆에서
어느 누가 우리 죄를 씻어 주었기 때문에
우리한테 복이 오는 것인데
우리가 이 점을 잊고서
혹은 우리 옆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희생하고 고생하고
고난받고 몸을 내어주신 것은
생각하지 않고서
내가 구원받고 복 받은 것으로
내가 어느 정도 섰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인간을
가차없이 저주해 버립니다.
지금 이스라엘 구조가 어떠냐하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인도하시긴 하지만
인도하시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 모세 언약인데
그것이 뭐냐하면
저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제사장이 나서서
거룩한 곳에서 무서운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면서
희생의 제물, 속죄의 제물을 바친다는 조건 하에서
이 백성들을 살리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느 인간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 몇 십 년 다닌다고
천당 가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자기 몸을 드리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용서받고 죽으면
낙원에 가는 겁니다.
우리는 돈벌고 살기 바빠서
그저 매일같이
내 잘난 것에만 익숙해져 가지고
내 대신 희생하신 그분의 생각은
하루일과 동안에
거의 안하고 살아갑니다.
내 것이 있다는 것이
든든한 힘이 되고
남에게 기죽지 아니하고
남에게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니까
얼마나 자만심이 높아지겠습니까.
그러니깐 우리 성도는
제가 감히 장담하건데
교회에 한, 두 번만 안 나와버리면
사람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복음을 한번 들어버리면
다시 뭐가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되고
하지만 또다시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면
또 세상사람 다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에
"모이기를 힘쓰라, 자주 들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에도 있지만.
이게 뭐냐하면
우리는 자기 힘으로 세상을 살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 방어 하다보니까
세상이 좁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그렇게 복잡해 보이고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러나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면
"아, 세상 구조가 이렇게 간단한 걸
왜 모르고 쓸데없이
남들 살아가는 흉내낸다고
같이 복잡해지고
같이 걱정하고 있었을까"라는 후회가
막심하게 되지요.
돌아서면 마찬가지만은.
자, 그래서 고라 자손 이백 오십 명이
그 현장에서 완전히 매몰되어 죽고 말았지요.
그래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향로를 쳐서
하나님이 이처럼 무섭다는 것을
대대로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해서
진노의 불이 나왔던 그 아론의 향로를
편철로 만들어서 제단에 입혔습니다.
자, 이렇게 되었을 때
그 다음 백성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아이고 하나님 잘 믿어야지,
저토록 무서운 줄 몰랐다,
정신 차려야지", 이렇게 해야 정상일텐데
민수기 16장 41절에 보면
오히려 백성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모세와 아론에게 달려듭니다.
"모세여 당신이 믿는 하나님 때문에
애매한 사람 이백 오십 명이 죽었다,
어떻게 할거야, 무서워서 못 섬기겠다,
우리의 공포심에 대해서 책임져!"하고
이런 식으로 대듭니다.
45절에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저 백성들을 다 죽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저희 제사를 받으시고
저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빕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저 백성을
죽이겠다고 하시고
전염병이 돌게 합니다.
모세가 급하게 제단에서 나와서
백성들을 돌아보니까
벌써 죽은 사람이 일만 사천 칠백 명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이백 오십 명이 죽었지요.
모세와 아론이
그 백성을 죽였다고 원망하니까
일만 사천 칠백 명을 또 죽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이 빌었기에
그 정도에서 전염병이 그쳤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있기에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동시에
이 하나님을 몰라보는 저 이방나라들은
하루아침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날아가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유황불을 떨어뜨려 다 죽일 수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기도 덕분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요.
그 정도로 무서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
다음부터 정신 차리라고
모세가 썼던 지팡이를 성전 앞에 모시라고 하니까
하루 지나고 그 이튿날이 되니까
모세의 지팡이에서
살구열매가 맺혔습니다.
단 하루만에 살구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힌 아론의 지팡이를
하나님께서는 언약 궤 앞에 두어라,
다시 말해서 "사실 너희들을 다 죽일 수 있는데
모세 때문에 그 정도하고 살려둔다,
그 정도로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다,
그러니까 세상사람 믿지 말고
이 하나님을 믿어야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거야" 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 민수기 16장, 17장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웃시야 왕은 우습게 여기고 있는 거예요.
왜? 자기한테 군사가 많고 재산이 많고
나라는 평안하고 질서가 잡혀있고
외부의 적들은 자기들한테 겁을 먹고 있으니까
천하에 무서울 게 없고 겁날 게 없잖아요.
이만하면 하나님 없이도
혼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건방지게 하나님의 그 무서운 성전의 분향을 드렸다
이 말이죠.
제사장이 말렸지요.
그러니까 웃시야 왕이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고
화를 낼 때에 본문 20절에 보니까
세상에 놀랍게도
그 많은 부귀영화 다 놓쳐버리고
그 잘 지어놓은 왕궁 다 떨어져 버리고
자기 몸에 문둥병의 저주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잘 지어놓은 왕궁에
살지도 못하고 거기서 쫓겨나서
별채에서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건 내 것이라는 소유의식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이 흔히 하는 사고방식,
"이것 내 힘으로 모았다,
내 능력으로 이만큼 살아왔다,
무조건 이건 내 거다,
이것 믿고 오늘도 기쁘게 살아간다,
내 것 내 마음대로 하는데
하나님이 왜 간섭하나",
이게 교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요새
우리는 그렇게 사는데
왜 문둥병이 안 걸리느냐고 질문하겠지요.
그 문둥병을 대신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 죄의 무게 때문에
주저앉은 거예요.
우리 죄의 무게 때문에
주님의 손에서 피를 흘려야했고
몸에서 피가 쏟아져 나온 겁니다.
우리가 당할 문둥병을
그보다 더하게
예수님이 당한 셈이 된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아, 내가 교만했었구나,
내 자식 내 남편이 내 것이 아니고
내 몸도 내 것이 아니고
내 인생도 내 것이 아닌데
그저 주어진 선물인데
내가 건방지게 하나님을 상대하면서
애들 상대하는 것처럼 까불어댔으니
이렇게 큰 죄가 어디 있느냐"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마지막 21절에 보니까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 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그 화려한, 그 때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형통케 하시고
큰집을 짓고 심히 강성하고
많은 싸움에 능한 군사들이 많았고
망대를 지었고 큰 성을 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다가
16절에 와서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 무서운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으로 변하게 된 그 이유가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십자가 지신 분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두고두고 잊지 말고
신앙생활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