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얘기를 나누면서 처음 알게된 사실인데
나는 그냥 아니타가 일반 회사의 직원일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아니타가 여행사의 사장님이었던 것이다!
와우!
월급받고 일하는 교육공무원으로서
자기 스스로 일을 개척하고, 소득을 창출하여 직원들 월급까지 주는
자리에 있는 아니타가 정말 신기하고 위대해 보였다.
커피숍에 들어가서
음료수를 주문했다.
지난 번에 콰이퐁에 가서 인터넷도 하고 커피도 마셨던
Pacific Coffee였다. StarBucks처럼 여러군데에 체인점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늘 커피집에 가면 시켜먹는 모카커피를 시켰고,
아니타는 녹차,
예진이와 상준이는 아이스크림,
메이메이는 쵸코 브라우니 케잌,
그리고 가가는 카페라떼를 시켰다.
아니타가 가가가 커피를 주문해도 아무 말 안 하는 것을 보면
평소에도 커피를 마시는 것 같았다.
내가 계산하고 싶었지만
아니타가 "No, I insist!"하면서
얼굴을 있는대로 무섭게 하면서 돈을 못내게 해서
하는 수 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니타가 언젠가 꼭 한국에 와서
스키를 타보고 싶다고 했고,
아니타는 빈소리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우리 나라에 꼭 올거라고 믿는다. 그 때 잘 대접해야지...
차를 마시면서
아니타와 나, 그리고 가가는 영어로 계속 대화를 나누었지만
문제는 꼬마들.
상준이는 몸을 배배꼬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메이메이도 지루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우리 착한 예진이는
눈만 껌뻑껌뻑하면서
우리들이 뭔소리하나 귀기울이고 있다.
상준이가 드디어 참을성의 한계를 느꼈는지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으그...챙피해서리...아니타와 얘기하다말고
얼굴은 웃으면서
그러나 할말은 정확하게.
"너 이리와서 안 앉아? 혼나. 알지?"
눈치 빠른 상준이가
후한이 두려워서 자리에 앉기는 했는데 거의 10분마다 한번씩
협박을 해야 자리에 앉는 것이다. 에구...
예진이가
물이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가서 언니들한테 달라고 하라고 시켰다.
예진이가 큰 용기를 내서
홍콩아가씨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워러 플리즈.."
그랬더니 "MMMMM Excuse me?"
당황한 예진이가 다시
"워러 플리즈..."
그래도 여전히 못 알아 듣는다.
"mmmmm Excuse me? What do you want?"
아니..물달라는데 어째 못알아듣는감?
안 되겠는지 가가가 카운터로 가서 도와줬다.
가서 홍콩말로 뭐라고 하니까
점원 아가씨들이
"아하..워터!" 하며 물을 준다.
음...미국 사람들 발음으로 t발음을 r로 발음을 하니까
전혀 못알아듣는 것이었다.
물은 워러..하지 말고, 워터..로 t발음을 정확하게 해 줘야 알아듣는 것이었다.
미국식 발음으로 영어를 말하는 나라는
미국과 우리 나라와 필리핀 정도 뿐이다...
외국인으로서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어설픈 미국식 발음보다는
정확하게 음가를 다 발음해주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우지간 물을 얻어마시고 돌아온 예진이.
얼굴이 발그레하다.
당황했나보다.
아니타와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영어 회화 공부하면서는 이 말이 문법적으로 맞는건가,
이 단어를 여기에다 써도 되는건가, 동사가 시제가 맞았나, 인칭은 맞았나
고민하면서 얘기를 하느라고
정말 진땀 뺐는데
신기한 일은
아니타와 대화를 하는 동안은 그런 신경을 하나도 안 쓰고
그저 마구 수다를 떨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영어 실력이 업그레이드된 것도 아니고...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어로 말할 때 영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과정을 집어넣지 않고
영어를 그냥 통째로 받아들여서 알아듣고 (못듣는 단어들은 신경쓰지 말고
핵심단어들로 그냥 의미를 받아들이고)
우리말로 대답을 생각하지 않고, 중심생각을 그냥 영어로 말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어쨌건
마구잡이 영어로도 훌륭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내 생각. 아니타는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
아니타는 정말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온라인 영어 학습은 물론이고, 매일 두 시간씩 영어학원에 다니며
외국인 선생님과 계속 영어회화를 배우고 있었다.
게다가 딸아이들도 너무나도 예의바르면서도 자립심 강한 아이들로
똘똘하게 잘 키워놓았다.
자기 일에 관해서도 매우 보람을 느끼면서
여행사를 잘 운영하고 있고...
정말 배울 것이 많은 친구다.
아니타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도대체 여기 홍콩 젊은이들은 어쩜 그렇게 애정표현을
사람들 신경도 안 쓰고, 지하철이건, 길거리건 찐--하게 연출하냐고.
홍콩 풍습이냐고.
그랬더니 아니타가 웃는다. 자기 세대에는 전혀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젊은 애들이 점점 더 그런다고 했다.
아니타도 학생 때, 그렇게 어디에서건 남자 친구와 뽀뽀도 하고 그랬냐고 물었더니
"No, no, no!"한다.
ㅋㅋㅋ
아니타는 제주도를 꼭 와보고 싶다고 했다.
제주도의 풍경을 인터넷이나 사진으로 자주 보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한다.
또 스키여행도 오고 싶다고 했다.
어디가 스키 타기에 좋냐고 물어보는데
끙....스키를 타봤어야 알지...
그래서 강원도 쪽이나 무주 쪽이 좋다고 대충말해주었다.
그랬더니
한국에 오면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에 머물면서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동네는 쓸만한 호텔이 별로 없어서
차라리 서울에 있는 호텔이 나을 것이라고 얘기해주었다.
서울에 있어야
멋진 500년 역사의 현장들을 많이 볼 수도 있고,
교통도 매우 잘 연결되어 있어서 서울에서 움직이는 것이 훨씬 좋을것이라고 말해줬다.
아니타는
북한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얘기하자
아니타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 가족끼리 만나겠다는데
왜 나라에서 그것으로 무엇을 달라고 하는지 정말 이상하다고 했다.
맞다.
정말 이상한 일이
우리 한반도에서는 너무나도 자주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타는 가끔 엄마로서 자기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말 어째야될지 모르는 순간들이 많다고 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얘네들이 내 애들 맞나 싶게
이해안가는 면들이 점점 더 보인다고 한다.
엄마로서 정말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홍콩에서 가 본 곳이 어디냐고 해서
이곳 저곳 다 얘기해주었더니
아니타가 아주 기특(!)해 하였다.
안 가 본 곳은 오직 한 곳. Ocean Park뿐.
아니타가 오션파크 근처에 산다고 하면서
자기 식구들과 같이 오션파크에서 하루 날 잡아 같이 놀러다니자고 했다.
고맙지만 어머니가 워낙 쑥스러워하시는지라
미안하다고했더니
그럼 열심히 놀다가 다 놀고나서 저녁식사나 같이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무지 적극적인 아니타!
오션파크는 정말 잘 만들어진 놀이공원이라고 하면서
꼭 한 번 들러보라고 했다.
우리 나라의 지하철과 홍콩 지하철의 차이점을 설명해주었더니
큰 딸 가가가 무척 신기해하였다.
지하철 플랫포옴에 커피 자판기가 있다고 하니까 눈이 휘둥그레 진다.
원래는 못하게 하지만 지하철 안에 커피나 먹을 것도 가지고 들어가서
수다떨며 맛있게 먹는다고 했더니
그렇게 좋은 나라가 어디있냐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홍콩 MTR은 음식은 못 먹지만 대신 청결하고 깨끗해서 좋지않느냐고 했더니
꼭 한 번 한국에 가서 지하철 역의 음료수를 마셔봐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가가 했다.ㅋㅋㅋ
그리고 모든 지하철역에 화장실이 있다고 했더니
감탄을 한다...당연한 건데...없는 홍콩이 이상한 건데...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수다떤지 어언 3시간이 흘렀다.
이제
상준이가 버틸만큼 버텼는지
몸살을 한다.
아니타에게 귀한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지하철역까지 바래다 주면서
아니타가 '뺨'인사를 하는것이다.
에구, 이런 서양식 인사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너무 웃겼던 것은
원래 내 오른쪽 뺨하고 아니타 오른쪽 뺨하고 대야하는건데
내가 고개를 어찌 돌릴지몰라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고 인사하는게 아니라
한방향을 보고 뺨을 대는
무지 웃기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좌우지간
인사를 마치고
아니타와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한마디도 말을 못하겠는거다.
왜냐하면
목이 너무 아파서...
목이 왜 이리 아프냐 하고 예진이한테 얘기했더니
"엄마 목소리 무지 컸잖아요"
하는 거다.
아흐....챙피해라.
너무 열심히 얘기하다보니
내 목소리가 커피숍에 울려퍼졌나보다....
이메일만 주고받던
아니타와
헬렌과
만나면서
역시 나라는 틀려도
기본적인 생각과 생활은 너무나도 비슷한 것을 확인했고,
'영어'라는 도구를 통해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의
겉부분만 말할 수 있는 실력밖에 안되는 현재의 영어수준을
좀더 깊이있는 대화까지 나눌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아주
아주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결심또한
오늘의 수확이었다.
첫댓글 아~~~여행사사장 乃 분명이 좋은 대화긴 한것같은데 지루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니..ㅡㅜ 내가 그맘을 아는데.
^ㅡ^ 오늘도 홍콩을 여행한 기분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