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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성경을 버리고 공동번역판을보자
유태교의 경전(구약)에 등장하는 야훼(여호와라는 말은 중세에 등장한 단어로 야훼가 원어에 맞다)의 모습에서 인간사랑, 또는 전지전능한 신으로서의 무한한 포용력, 나약한 인간이 의지하고 또 받들어야하는 당위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기독교신자들은 자신도 의식치 못하는 사이에 목사에게 쇄뇌당해서 집단 환각에 빠져있다.
그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앞으로 나아가는듯 하지만 언제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유아들에게나 적합한 신화들을 역사적 사실로 믿고있으며, 과학을 부정하며 노아의 방주를 찾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걸 믿는자들이 성격마져 비뚤어져서 단군은 역사적 실존성이 희박하고 단군숭배자들을 곰의 자손들이라고 비난한다.
유대인의 토속신 야훼는 기독교신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대상이다.
유대교의 경전에 나오는 지극히 소인배의 밴댕이속을 갖고 있는 야훼가 진정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기독인들은 바이블을 읽어야 한다.
기독인치고 바이블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 과연있는가?
그렇다고 기독교인들이 바이블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고 부끄러워 할일은 아니다. 교활하기 그지없는 목회자들이 개역한글판이라는 유래없는 괴상한 책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개역한글판의 기괴한 번역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이었고, 1937년에 기존의 번역성경을 한차례 개역 한뒤, 1952년에 한글 맞춤법에 의해 수정되어 나온 것이 오늘날의 개역한글판 성경의 본체이다. 최악의 번역서의 랭킹을 매기라면 개역한글판이 당당히 1위를 차지할것임이 두말할 나위없다.
우선, 원문과는 정반대되는 표현이 한두개가 아니다.
예를들어 '내'가 '네'가 되고, '은'이 '금'이 되고, '하지 아니 하는 자'가 '하는 자'로 되는 등 인쇄과정에서 빠뜨렸거나 교정과정에서 실수한 점이 셀수도 없이 무수하다. '각각 금 한조각과...'(욥42:11)은 '각각 은 한조각과...'로, '거류하는 자같이'(렘14:8)는 '거류하지 아니 하는 자같이'라야 하고,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시50:5)는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로, 또한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진멸하니라'(삿20:42)가 아니라 '각 성읍에서 나온 자들이 그들을 진멸하니라'로, '내가 장수함으로'(시 91:16)는 '내가 그들을 장수케함으로'로 바뀌어야 한다.
두 번째로 어설픈 번역으로 알수 없게 내용들이다.
"비느하스가 너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되었도다"(민25:11)라고 한 표현은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에 대한 정성이 지극하므로 나의 분노를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돌이켰나니, 내가 질투심에서 그들을 벌하려던 거서을 거두었노라"라고 번역해야한다. 즉, 알기 쉬운 내용을 서투른 번역으로 어렵게 번역했다.
또 예로 들어보면,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소년들로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 하자."(삼하2:14)라고 한 구절은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일부 청년 장정들로 하여금 우리 앞에서 맞붙어 격투하게 하자."라고 기록되었어야 한다.
또 역대상 25장 3절에서는 다섯명을 열거해 놓고 "...여섯 사람이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인쇄과정이나 교정과정에서 '시므이'가 빠져서 생긴일이다.(영어 성경과 대조해 보면 분명해진다.)
셋째로 이미 고어가 되어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무제한적으로 남발되고 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니라"(사9:6)란 번역은 "(유일무이한)훌륭한 선생이니라."라고 해야 쉽게 알아들을수 있다.
그런 예를 들어보자면 '신칙하다'(출19:21)/(경고하다), '자여손'(출34:7)/(자손의 자손), '전집하다'(신24:6)/(담보를 잡다), '번병의 체번'(삿7:19)/(보초 교대), '보장으로'(삿9:46)/(대피소로), '선만하게 하다'(느9:18)/(모독하다), '준승'(욥38:5)/(측량줄), '불가승수'(대하12:3)/(부지기수), '반구'(아2:12)/(비둘기), '보발군'(렘51:31)/(전령), '보의 물'(겔31:4)/(물줄기), '어눌한 자'(사32:4)/(말더듬이), '어거한 자'(욥39:7)/(모리꾼) 등등 셀수도 없다.
(2) 비열한 표준새번역
성경이라는 것이 원래 한문으로 기록된것도 아니고, 조선시대의 한국인이 기록한것도 아닌, 외국의 번역서인 마당에 아직도 개역한글판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고 새로운 번역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공동번역판과 표준새번역성경이 있다.
공동번역판의 경우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번역했으나, 개신교측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아 공동번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정도로 천주교에서만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역한글의 번역이 괴팍하다는 여론이 끊이질 않자 개신교에서는 표준새번역이라는 성경을 내놓게 된다.
공동번역판과 표준새번역은 둘다 현대의 한국인이 읽기쉽도록 쉽게 번역되었으나, 표준새번역의 경우에는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 판단에 의해 외곡된 부분이 있다.
예를들어 표준새번역에서는 '여호와'라는 명칭이 사라졌다!
'엘로힘' 또는 '엘'은 '하나님'으로, '야훼'는 '주'로 번역된 것이다.
도데체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이 왜 사라졌을까? (영어성경에도 야훼나 여호와를 빼버리고 LORD라고 기록된 것이 많다. 양키들을 흉내내기 시작한 것일까?)
수많은 안티들이 야훼가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도둑질해갔다고 지탄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 스스로가 여호와라는 명칭을 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만물의 창조주이며 형용할수 없는 존재인 신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잘 알고 있는셈이다.
결국 원래의 성경에는 절대없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계속해서 사용하다가, 급기야 '여호와'라는 명칭을 버리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번역과정에서 '여호와'보다는 '야훼'가 히브리 원어에 맞다는걸 알자, '야훼'라는 명칭이 일반 개신교신자들에게 친근감을 줄수 없는 괴상한 발음이라서 결국 그 명칭을 버렸을수 있다.
성경에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면서 개신교 신학자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신의 명칭까지도 헌신짝처럼 내버릴수 있는 이단자들임을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한가지는 표준새번역이 현대의 한국인에 맞게 쉽게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구절을 고의적으로 감추는 시도를 햇다는 것이다.
안티바이블에서 지적했던 성불구자에 대한 비하와 관련된 개역한글판 신명기 23장 1절의 '신낭'(불알,고환)이라는 단어가 표준새번역판에 여전히 등장하고 아예 한술 더 떠서 '신경'이라는 단어까지 새로 등장한다.
영문판 NIV에서는 '거세하다'라는 뜻의 'emasculate'라는 단어가 나오고, NASB에서는 'male organ'(남근)이 'cut off'(잘린)사람은 주의 집회에 올수 없다고 분명히 나와있는데, 현대에 쉽게 번역했다는 표준새번역에서는 아직도 '신낭'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나마 '신낭'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것이 남성의 음부를 표현하는 단어라는걸 확인할수 있는데, '신경'이라는 단어는 과연 무엇인가?
야후의 국어사전을 검색해도 '신경'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알고 있는 설명밖에는 안나온다.(더 좋은 국어사전을 봐야하는가?)
개역한글판에 비해 표준새번역판이 읽기는 쉽다.
그러나 표준새번역에는 번역한 사람의 비열한 눈가림과, 신의 명칭까지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이단자들의 냄새까지 난다.
정말로 쉽고 솔직하게 번역된 것은 공동번역판이다.
(3)성경을 읽어야 한다!
표준새번역이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온지 오래인데 보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역한글판보다는 읽기 쉽지 않은가?
바로 목사들이 교단에서 설교를 할때 표준으로 삼는 것이 계속해서 개역한글판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목회자들의 잘못된 권위의식 때문이다.
그 잘못된 권위의식이 찬송가책 마저도 경전으로 만들어 놓았다.(정말 유치하고 헤괴한 찬송가들을 막가파목사 시리즈에서 다룬적이 종종있다. 요즘 '찬미예수'등에 수록된 복음송가중에 좋은곡들이 많지않은가? 찬송가마져도 교회의 표준을 정해놓고 경전화 시켜 개정할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는다) 찬송가 마저도 경전화되어 손댈 수 없는 상황이니 개역한글판을 누가 바꾸려 하겠는가?
또 한가지 이유로는 목사들은 신자들이 쉽게 번역된 성경을 읽고 성경의 어두운 면을 보게될까 두려워 한다는 점이다.
개역한글판은 그점에서는 최고의 경전이다.
개역한글판으로 창세기 앞부분만 조금 읽다가 뒷골이 팍 땡겨버리는 바람에 포기한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을것인가?
설사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 뜻을 이해한 기독인은 얼마나 될것인가?
중세시대때 로마카톨릭은 평신도들이 혼자서 성경을 읽는 것을 금지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목회자들은 평신도들로부터 성경을 멀리치워 놓았다.
개역한글판 성경은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만족감만을 주는 예배할때의 준비물에 지나지 않는다.
정녕 성경이 진리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면 쉽게 번역된 새버전의 성경을 구입하여 꼼꼼히 읽어보아야 한다!
필자는 공동번역판을 권장하지만 표준새번역도 권장할 만하다.
쉽게 번역된 성경으로 진리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경전을 꼼꼼히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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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이블 공부를 엉첨 하셧네요 굿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