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산행일지
2/8(토)
봄을 재촉하는 비인가!
적지 않게 내린다
전주에서 13:20경 출발한 우리 일행은 15:20쯤에 반선의 일출 식당에 도착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가 듯 언제나 반선에 오면 들르는 식당이다
일행은 동동주를 4초롱을 비우고 난 저녁술이 맛이 없을까봐 맥주 한 병으로 떼운다
원래의 산행계획은 <심원-(중간에 비박)노고단-문수대-임걸령-대소골> 이었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려 비박장소와 코스수정을 했다
<군막터비박, 심원-대소골지류-돼지평전-임걸령-대소골-심원>
막 일출식당을 나서려는데 서북능 산행을 하고 온다는 ‘한상철’님이 들어온다
비에 촉촉이 젖은 모습이다
일행이 달궁에서 기다린다기에 같이 합승하여 달궁에 내려드리고 우리는 군막터로..
16:35경 군막터에 도착하여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반선에서 카드를 사온다는걸 깜빡하고 그냥왔다
(밤도 긴데 훌라라도 해야지..)
일행은 내려 비박준비를 하고 나만 다시 반선으로....
차를 돌리는데 50대 후반은 족히 되어 보이는 등산객 2명이 내려오며 간절한 눈빛으로 히치를 원한다
그 심정 모를까, 타시라고 하니 얼른 오른다
대충 봐도 전문은 아니고 안내산행으로 오신 분들 같다
나 : “어디에서 오십니까?”
등산객1 : “중산리에서 오는데요 내려가면 버스있어요?”
나 : “????...중산리요?? 내려가는 목적지는 어딘데요”
등산객1 : “어제 중산리로 올라와서 어디선가에서 자고 노고단으로 왔는데....버스가 기다리기로 했는데..”
등산객2 : “그 어디더라 무슨 재라켔는데...”
나 : “성삼재요???”
등산객2 : “아, 맞다맞다..”
대강 앞뒤를 맞춰보니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종주산행을 단체로 오신 분들인데 원래는 버스가
성삼재에서 기다리기로 되어있는데 눈 때문에 올라오지 못하고 천은사부근에서 기다리는데
이 분들은 엉뚱하게 반대 방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알아듣게 설명을 드리니 당황하며 빨리 내려 달란다
가이드가 누군지 원......
18:30경 군막터
비는 이제 잦아들어 어쩌다 몇 방울씩 떨어질 뿐, 그나마 다행이다
비박용 키바 텐트와 비닐 지붕을 만들어 놓으니 한결 아늑하다
모닥불은 비에 젖어 몽글거리며 연기만 품어댄다
‘최대장’과 ‘만복대’는 모닥불용 나무하느라 분주하고...
‘강대장’은 불 살리느라 정신이 없다
요리와 밥 짓는데는 프로급인 ‘산딸기’는 저녁준비에 여념이 없고...
나는 그냥 주머니에 손 넣고 어슬렁 거린다 헤헤~
모닥불 앞의 ‘산딸기’와 ‘강대장’
19:00경 그 유명한 산내의 삼겹살을 안주삼아 빨간딱지 대포알(25도 소주 1.8ℓ)로 저녁 시동을 건다
백화수복을 중탕으로 덥혀 같이 곁들이니 신선이 부러우랴~~~
모닥불은 이제 본격적으로 제 모습을 들어내 혀를 이글거리며 내두른다
군막터에 밤은 깊어가고 우리도 술에 젖어든다
군막터의 저녁식사
‘만복대’가 사온 밤을 모닥불에 묻는다
쩝, ‘만복대’하는 짓이 그렇지 몇 년이나 묵은 밤을 사왔는지 구워지는 게 아니라 채 익기도
돌덩이 같이 굳어버린다
암튼 ‘만복대’에게 뭘 시키면 불안하다
5천원어치 밤을 하나도 못 먹고 다 버린다
하긴 잘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눈땜에 먹이도 없는데 산짐승 먹이라도 할테니...
삼겹과 밤구이
22:30이 넘을 무렵 ‘최대장’과 ‘산딸기’는 모닥불 옆에서 남은 술을 기울이고...
‘강대장’과 ‘만복대’와 나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훌라를 한다
23:00가 넘으면서 빨간딱지 대포알 2병이 없어지고 정종 대둣병 한명도 밑바닥이 보인다
모닥불도 서서히 사그라지고 우리는 침낭 속 깊이 몸을 감춘다
지금부터 걱정할 일은 ‘만복대’의 우뢰소리......
군막터의 밤은 이렇게 우리를 꿈에 빠트리며 또 하나의 지리를 뇌리 한쪽에 선명히 새겨놓는다
숨 막히는 더위에, 좁은 침낭 속에서 몸을 꼬며 옷을 벗어 발밑으로 쳐박는다
팬티바람으로 침낭 쟈크를 살짝 내리니 아~ 그 서늘한 공기가 훑고 가는 감촉이란....
(이틑날 들으니 ‘강대장’은 추워 디지게 떨었단다 그러게 침낭을 좋은 것 써야지..)
2/9(일)
눈을 떠 시계를 보니 05:35 아직 한 밤중이다
잠은 이미 달아났지만 따뜻한 침낭 안에서 몽골거리며 있는 게 너무 기분 좋다
어릴 적, 비가 억수같이 오는 스산하고, 쌀쌀하고, 걱정스러운 어느 늦가을
궂은 날씨에 형은 학교에 간다고 나서는데 난 개교기념일이라고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행복감에
젖었었던 그때의 그 기분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06:35경 변의가 느껴진다. 에이, 참자 이따가 아주 일어나서 보자
사실 겨울 비박할 때 제일 고역이 소변 마려울 때다
깔때기 달린 긴 호스생각이 간절하다
‘만복대’를 깨우니 꿈틀거리기만 할 뿐 안 일어난다
도리어 “혁아~~!!!! 일곱시다 밥해라”하며 ‘산딸기’만 불러댄다
07:00 ‘산딸기’만 일어나 아침준비를 한다
잠시 뒤 ‘만복대’가 일어나 죽은 모닥불을 다시 지핀다
‘강대장’과 ‘최대장’은 대포알에 맞아 아직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오늘도 이른 산행은 물 건너갔군)
저녁에 끓여 놓은 돼지찌게를 달팍~ 엎어버린 ‘산딸기’ (아침에 다시 콩나물국을 끓임)
08:15경 ‘산딸기’가 정성스레 끓이고 지은 김치콩나물국과 밥을 먹다
비박을 하고나면 정리하고 배낭꾸리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서두른다고 했지만
이미 9시가 다되어있다
아침식사
09:14 심원 삼거리에 도착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온통 빙판이라서 차가 못간다
출발준비~~~!!! 출발~~~
09:32 심원마을 마지막 민박집인 토담집
점심반주용 소주를 한 병 산다
‘강대장’과 잘 아는 여주인이 깜짝 반가워라하며 위험하니 올라가지 마라한다
우리는 못 돌아오면 신고해달라는 농담을 뒤로 남기고 산행을 시작한다
심원의 아침 숲
09:44 대소골로 직등하는 계곡 건너는 길과의 갈림길이다
디디면 꺼지겠지??? 아래로 우회할까?? 위로 돌을까??
우리는 일단 노고단으로 가는 길을 잡아타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대장’에게서는 술냄새가 풀풀~나고 ‘최대장’은 머리가 깨지게 아프단다
‘만복대’는 빼고 ‘강대장’‘최대장’‘산딸기’ 모두 힘이 넘쳐 러셀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단지 그놈의 숙취가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하긴 1-2시간 땀 내버리면 말짱해 지는 게 숙취이니....
틈만 나면 숙취로 누워버리는 ‘강대장’과 물을 마셔대는 ‘최대장’
10:15경 반야봉 중봉쪽으로 휘돌아가는 대소골을 버리고 우측의 지류를 탄다
생각보다 눈이 많다
‘최대장’, ‘강대장’, ‘산딸기’가 교대로 러셀을 하고 ‘만복대’는 공 먹는다
나는 뒤에서 사진 찍는다는 핑계나 있지...
날씨가 따뜻해서 눈 밑에 숨어있는 계곡의 얼음이 푹푹 꺼진다
진행이 생각보다 너무 더디다
아침을 뚫고, 계곡을 건너.....
11:02 첫 번째 휴식
<목마른 늑대들>
이제 겨우 고도가 950m이다
아무래도 이런 속도라면 하산계획을 다시 잡아야 할 듯
너덜지대에서 빠진 발을 꺼내려 헤매다보면 조릿대가 걸리적거리며 미끌리고
계곡의 바위가 앞을 막고 있는가 하면 깨진 얼음이 발을 잡아당기고...
눈은 고도를 더해갈수록 점점 많아진다
계곡을 거슬러.....
11:45 고도 약 1,000m쯤에서 대소골의 우측지류가 다시 나뉜다
지류에서 우측으로 치면 노고단 쪽이고 좌측으로 치면 돼지평전 쪽이다
우리는 돼지평전 쪽인 좌측을 택한다
고도를 더할수록 속도가 느려진다
러셀하는 선두의 교대시간도 점점 짧아진다
아직도 계곡의 눈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주능이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헤매는 ‘만복대’ 사진 모음>
12:23 고도 1,100m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마땅히 라면 끓일 공간이 없다
가다가 적당한 자리가 있으면 먹기로 하고 계속 전진
빨간 리본이 있어 자세히 보니 ‘서울대부속남부림‘이라 쓰여있다
어차피 길 없이 차는 산꾼에게는 필요없지만 길 찾는 등산객들에게는 착각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13:27 고도 1,200m
황당하다 눈 없는 산행에서는 100m당 10분인데, 100m를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니....
능선에 다가갈수록 눈이 많아지니 앞으로는 더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러셀도 점점 더 힘들어진다
사선을 뚫고....
13:38 라면 끓일 장소는 못되니 우선 간식들로 대충 때우고 점심라면은 노고단대피소에서
먹기로 괘도 수정을 했다
임걸령으로 해서 대소골로 떨어지기는 너무 시간이 늦을 것 같다
야간 산행을 하면 되겠지만 그것도 시간을 예측할 수가 없으니....
빵, 햄, 땅콩샌드, 맛살, 귤, 쵸콜릿, 찰떡파이....간식도 가지가지다
난 꼴랑 0.5ℓ 물 한 병이 전부인데....
맛있게들 먹는다
‘저런걸 왜 먹지??’ 그러다가 문득 심원에서 산 소주 생각이 난다
“어이, 재홍(최대장)이 소주있지? 그것이나 좀 줘”
소주에 안주로 햄 한 조각 먹으니 기분이 좋다
간단한 점심(앞에서부터 ‘만복대’,‘강대장’, 최대장‘, ’산딸기‘)
13:53 간식을 충분히 먹은 다음 출발
쉬고 먹었지만 눈이 붙잡는 속도는 어쩔 수 없다
14:20 고도 1,300m
돼지평전이 눈앞에 뻔히 보인다
이제 눈은 무조건 허벅지 이상 빠진다
한 사람이 5분 이상 러셀을 하기가 힘들다
눈이 아니고 꼭 떡 반죽해놓은 것 같다
사진 찍을 것도 없고 해서 미안한 마음에 처음으로 내가 러셀을 한다
눈이 쫀독거려서 무릎러셀이 아니면 치고 나갈 수가 없다
(‘만복대‘는 끝까지 단 10초도 러셀 안했음)
15:28 주능, 드디어 돼지평전이다
오른쪽에 왕시루봉 능선이 희뿌연 개스를 뚫고 뻗어내려있다
러셀된 주능을 밟으니 완전 비단길이다
16:06 노고단 대피소
대피소 취사장에서 라면 5개와 아침에 먹고 남은 밥을 누룽지로 끓여 허급지급 먹는다
길 따라 간다는 생각을 하니 영~ 재미가 없다
이제 낙은 하산주 먹는 것뿐,
16:45 대피소 출발
↑ ‘사총사’....누구를 달타냥으로 할까???
↑ 성삼재로 내려오는 길에 본 고리봉과 만복대
17:18 성삼재
성삼재 도로에서 ‘만복대’가 자기도 이제 러셀을 한다고 재롱을 떤다. 킥킥~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중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가 올라갔던 계곡선이
뚜렷이 보이는 것이었다
↑ 반야봉과 대소골...(아래 등산로 표시 참조)
↑ 황색선이 우리 등산로(계속 계곡등반임), 녹색이 대소골, 흰색이 노고단가는 능선길
17:58 심원 삼거리
차량 회수하여 돌아오는 길 어제보다 훨씬 많이 녹아있다
달궁-성삼재 통행도 가능하다
반선의 일출식당에 들러 사장님에게 들은 말,
이끼폭포-묘향대-반야봉으로 오른 지리산통신팀이 저녁 7:30이 넘어야 도착한다고...
그 분들도 눈땜에 고생이 심하셨으리라...
19:20경 전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운전하고 모두 쿨쿨~ 잔다
자는 것은 좋은데.....‘만복대’는 코까지 곤다
그런데 코 골아서 좋은 점은 내가 깜짝 깜짝 놀라서 졸지 않고 운전을 한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