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여자들은 나름으로 그리는 스위트 홈의 로망이 있다. 그림처럼 예쁜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흐뭇하게 평온을 누리는 장면, 안정과 평화가 모성의 본능이라는 가설이 맞다면 누구라도 엇비슷한 소망을 지닐 것이다.
그런 로망에 걸맞을 만큼 멋진 언덕 위의 펜션에서 오랜 지우들과 모임을 하였다. 창밖으로는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이 길게 펼쳐져 있고 오밀조밀한 실내는 격조가 있어 흡족하다.
옥계에 위치한 숙소에 먼저 도착한 이들이 짐을 풀고 바닷가에 나와 있었다. 오랜만에 참석한 수영씨, 향남씨, 진석엄마 그리고 지난 겨울 금원산에서 처음 만난 선강씨, 보기만해도 반가운 얼굴들이다.
남편과 결혼한 이후 알게된 이들이지만 이십수년이 지난 만큼의 정이 쌓여 그저 반갑기만 하다. 이젠 내게도 이네들이 죽마고우가 된 모양이다.
근처의 정동진에 들러 아직은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 위를 걸었다. 긴 시간을 같이한 사람들은 이렇게 모이는 걸로도 충분히 즐거운가보다.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세월이 가는 게 때론 아쉽고 안타깝지만 사람사이에서는 세월만큼 좋은 선물은 없다. 나이와 더불어 망가져가는 모습조차도 어여쁘고 간혹 있는 밉살스런 행동과 헛짓에도 딱히 비난하지않는 너그러움이 있어서 좋다. 낡아도 닳지 않을 우정이 있기에 그래서 많은 것이 용서가 된다.
밤새 해방된 마음들로 폭음을 하고도 이른 아침에 잠을 깬다. 일출을 보러 나간 부지런한 이도 있고 허기지다며 그 시간에 밥을 찾아먹는 이도 있고 이런저런 수선스러움이 철부지 십대들 마냥 귀엽다.
동해의 겨울은 곰치국이 별미란다. 묵호항 근처에 잘하는 맛집이 있다는 창규씨 누님의 조언에 아침을 그 곳에서 먹기로 하고 윤희씨와 완기씨를 남기고 나머지 열여섯은 차로 이동한다. 바다가 마주보이는 자그마한 식당, 그날그날 잡은 곰치로 끓여내는 곰치국은 처음 먹는 음식이지만 칼칼하면서 개운하여 뒷맛이 일품이다. 여하튼 해장으로는 그만이란 생각.
식사만 마치고 돌아가는 게 아닌지 묵호항에서 장을 보고 추암을 다녀오자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세수라도 하고 나올 걸, 몰골이 말이 아니나 에라 모르겠다. 가족과 친구들인데 부끄러울 게 뭐 있을까.
추암의 바다는 맑기가 그지 없다. 쪽빛이 이런 빛깔을 지녔을런지. 초록의 물빛이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이고 바닷속 바위로 물그림자가 비친다.
3월의 첫하루가 행복하게 열린다. 편안한 벗들과 맑은 바다, 삶을 채우는 날들이 이렇듯 늘 흡족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상이란 바라보는 크기 만큼만 열리는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대하면 그 만큼의 것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 삶이다. 나의 세상은 아직도 희망이다.
일정을 마치고 집을 향하여 먼 길을 돌아오는 동안 눈앞에는 해맑은 동해 바다의 푸른 파도와 묵호항의 싱싱한 삶이 어른거린다.
좋은 시간을 함께 한 벗들이여, 같이 할 수 있어서 기뻤고 언제나 행복하시고 늘 건강하시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