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도 망운산에서

[고인돌(임종삼)]

 

남해도 망운산에서

  화마를 물리치는 봄비가 반갑게 내리는 2006년 4월 2일, 남해도 망운산 산행에 나섰습니다. 비가 오면 백두대간 산행이 어려울 것이어서 오늘은 남해도 망운산으로 산행의 방향을  바꾸어 잡았습니다. 오전 중에 전국적으로 날씨가 개일 것이라는 기상 위성의 일기예보를 신뢰할 수 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산악회 버스에 올랐습니다. 산악회 버스에 오르니 달포간 만나지 못하였던 반가운 얼굴이 많았습니다. 백두대간 산행을 한다고 한 달여 러셀산악회 버스를 타지 못하였기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삼부자 마라톤을 준비하는 이 대장과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인사를 끝내자마자 도대체 삼부자 마라톤이 어떻게 가능한 가를 서둘러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올해 춘추 76세이신 아버님께서 장호원 마라톤대회 10KM 코스에 참가하신다는 것입니다. 장호원이 고향인 이 대장의 아버님은 고향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였던 것입니다. 10KM가 주 종목이신 바, 해마다 빠지지 않고 달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아들과 손자도 함께 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라톤을 시작한 계기도 참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당뇨가 있는 체질 개선을 위해서 마라톤을 처음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마라톤은 건강도 챙기고 당뇨도 고치는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효과를 거두는 운동이었습니다. 아마도 4월 23일의 일간지에는 이 대장 삼부자 말아톤 소식이 화사한 꽃소식으로 전해질 것입니다.

  남해도에 도착하려면 적게 잡아도 4시간은 차안에서 기다려야 할 것이기에 배낭에서 시집 한 권을 꺼냈습니다. 이용환님의 시집「강과 백지의 세월」인바, 표지는 아무런 장식 없이 푸른 강물의 푸른 색과 하얀 백지의 하얀 색이 황금 분할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시집「강과 백지의 세월」의 주인공은 전북 남원 출생으로 공주사범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졸업 후에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휠체어를 타는 몸이 되었습니다. 2002년에 발행한 그의 시집에서는「낯선 프로필」이라는 제목의 시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낯선 프로필」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낯선 프로필

살만한 세상은 다 살아버리고

이제 다 닳은 신발 고이고이 신발장에 넣어두고

산맥처럼 누워, 산맥처럼 누워

젊은것들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유행에 뒤진 세월시(歲月詩)를 쓴다

내 볼에 흐르는 빛은 짜디짠 눈물이었네 

 이 시는 시집「강과 백지의 세월」을 여는 서시序詩와도 같습니다. 또한 그의 마음에 쌓인 앙금을 사실대로 들어내는 내면을 보이는 시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 시에서「산맥처럼 누워, 젊은 것들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유행에 뒤진 세월시를 쓴다」고 노래하고 있지만, 기실 그의 젊은 두 아들 딸은 올해 대구대 한의대를 나란히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몇 해 후면 그들은 어엿한 한의사가 되어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명의名醫의 길을 산길을 걷듯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시집 한 권을 후딱 읽고 나니 덕유산 휴게소였습니다. 아직도 짙은 안개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지만 나들이 차량이 많았습니다.

  육십령을 넘어서면 날씨가 맑아질 것이라는 모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침침한 눈을 감고 눈을 붙였더니 산행 버스는 어느새 남해도에 가까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남해대교를 건너며 주위를 둘러보니 날씨는 거짓말처럼 맑게 개이고 벌써 하얀 벚꽃이 봄동산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11시 40분경, 일행은 남해도 망운산 화방사 입구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망운산 화방사는 새롭게 단장하느라 꽤나 부산하였습니다. 그런데 화방사는 조금 답답하였습니다. 사방 빈곳을 남겨 두지 않고 들여 채운 부속 건물로 여유가 없었습니다. 단지 절위에 마련한 삼성각三聖閣이라는 스님들의 공부방 건물만이 겨우 여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삼성각은 외부인 출입통제를 하고 있는 뜨락이었는데 맞배지붕의 단촐한 건물이 울창한 대숲에 둘러 싸여 있어 한가하였습니다.

  망운산으로 오르는 산길에는 남녘의 풀꽃인 얼레지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습니다. 안개비에 가려 고개를 숙인 채 햇빛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대장과 나와 디자이너님은 너덜길로 올라 망운암으로 향하였습니다. 망운암에서의 전망이 좋을 것 같아 길을 잡았는데 구름 안개가 걷히지 않은 탓으로 남해군의 전망은 맑지 않았습니다.

  망운암은 망운산 너덜지대를 헐어 세웠는 바. 경관좋은 너덜지대를 오염시키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12시 점심 공양의 예불을 드리는 모양인데 확성기로 틀어놓은 싸이키 전자음향의 목탁소리가 망운산의 귀청을 찢어대고 있었습니다.

  망운산 정상에 오르니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구름과 바람이 거세었습니다. 억새와 철쭉이 혼합된 서북 능선에는 바닷바람의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산등이를 향해 60-70도 각도로 기우러진 검푸른 해송이 이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일행은 바람이 가려진 송신탑 아래의 병풍바위 아래에 모여 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병풍바위 아래에는 뉘 어르신의 유택이 마련되었는바, 모두들 양지 바른 명당이라는 데에 이의가 없었습니다.

  이 대장이 오늘도 마가목술 한 병을 선보였습니다. 마가목술이란 설악산 등의 깊은 산중에만 있는 붉은 나무 열매나 나뭇가지로 담은 술인데 그 향기가 독특하였습니다. 지난 겨울에 맛을 보고 난 이후로 두 번째 맛보는 향이었습니다. 오대산 노인봉 털보 산장지기로 이름난 있는 대학 선배는 그곳에서 20년 가까이 혼자 살았습니다. 지난 겨울에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더니 이제는 하산 할 때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오대산 국립공원에서 산장을 폐쇄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습니다. 그가 강원도 산악회장이 운영하는 주문진 마린마초 횟집에서 일행을 위해 내놓은 선물이 바로 마가목술이었습니다. 좋은 술이다 보니 순식간에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걷는 길은 억새와 진달래 능선이었습니다. 망운산은 철쭉보다 자연스레 조성된 진달래 산행으로 소문을 내야 할 것이었습니다. 일주일 후면 만개할 진달래꽃이 능선을 따라 1Km는 늘어서 있었습니다.

  산 아래로 바닷가 예계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사는 가 궁금하기도 하여 마을로 내려가 보았더니 좁은 마당에는 이제 막 바다에서 건진 돌미역을 해풍에 말리고 있었습니다.

  남해도에는 비자 남해 스포츠센터도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국가 대표 동계 캠프장으로 운영되는 파란 잔디 구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천연 잔디 축구장과 야구장, 그리고 인조 축구장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인조 구장에서는 중고등학교 선수들로 보이는 청소년 축구선수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던 산악회 일행도 웃옷을 벗어 던지고 잔디구장으로 나섰습니다. 저마다의 허연 알통을 자랑도 하고 잔디밭에 엎드려 태극전사들의 쎄레머니도 흉내내는 촌극을 연출하였습니다. 참 재미있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명산의 기운은 보약과 같아서 사람의 몸을 가볍게 하고 명강의 기운은 음악과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는 구절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남도에는 파란 마늘밭 풍경이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보리밭이 아닌 마늘밭이 봄바람에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벌써 알이 들어찼을 굵은 마늘 줄기에는 마늘쫑이 솟을 때가 되었습니다. 중부 지방에 비하여 한 철이 빠른 고장이어서 이곳이 먹고 살기에는 훨씬 좋은 고장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채소 풍성하지요. 날씨 따뜻하지요. 생선 풍부하지요. 논밭 넓고 크지요. 이런 까닭에 마늘 캐어 팔고 벼를 심어 거두는 이모작 농사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황토 붉고 푸른 마늘밭에는 굴조개 껍질이 널려 있었습니다. 단양 마늘이나 의성 마늘 처럼 석회질 토양에서 잘 자라는 마늘의 영양소를 보충해주는 모양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조금 막히자 송형이 일어나 해삼씨리즈 강의에 나섰습니다. 항문에 문제가 있는 치질에는 해삼을 붙여 치료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경험담(?)에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어 스님 아들과 홀어머니 이야기도 참 의미있는 강의였습니다. 내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면 이웃도 사랑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주는 특강이었습니다.

  다소 먼 길 산행이었지만 소주를 권하는 우정이 있고 특강을 청하는 일행이 있어 남도 산행길은 오히려 가까운 길이었습니다. 

[Designer]

닳은 신발 신고 산맥을 뛰어다니고, 살만한 세상을 살고있음에, 또 이 글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청아]

고인돌님의 부드럽고 인간미 넘치는 작품을 대하니 마음이 편안함을 느낄수 가 있었습니다. 안전산행 계속 이어지시길... ^^*

[무한사랑]

고인돌님의 산행기를 읽으면 다시 산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해요

[산1946]

몸을 가볍게하는 명산의 기운이 많아지면...산맥처럼 누워있는 시간이 좀 지연 되겠지요...글 잘 읽었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