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피부과 의사 함익병 씨가 월간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플라톤도 독재를 주장했다. 이름이 좋아 '철인 정치'지 제대로 배운 철학자가 혼자 지배하는 것, 바로 1인 독재다. 더 잘 살 수 있으면 왕정도 상관없다고 본다……만약 대한민국이 1960년대부터 민주화했다면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저는 박정희 독재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독재를 선의로 했는지, 악의로 했는지, 혹은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
독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플라톤에게서 근거를 찾는다. 하지만 따오는 부분은 ‘철학자가 독재해야한다’ 뿐 철학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러한 국가를 어떻게 이룩할 수 있는 지까지는 고려를 하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오늘 날 『국가』가 고전으로서 빛을 발해야 하는 이유는 시도 때도 없이 남용되고 있는 저 하나의 문장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이다. 철학자가 독재하는 ‘왕도 정체(최선자 정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러한 국가가 왜 정의로운지, 정의로우면 왜 행복한지 결국 정의란 무엇인지 세세하게 읽어보고 생각하고 써먹어야 한다.
아리스톤의 두 아들이 벼랑 끝까지 몰고 간 정의를 구원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먼저 가상의 국가를 세워 큰 범위의 정의를 찾기 시작한다. 국가의 기원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협력자들의 단체이고, 그러한 필요로서 의·식·주를 언급한다. 의식주의 생산이 가장 효율적일 때는 각자가 한 가지 직업에 종사할 때임을 합의한 후 이를 전제삼아 필요한 직업과 상황들을 발전시켜 나간다. 이리하여 (말로만) 세워진 국가에서는 불의를 쉽게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글라우콘이 한 마디 언급한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들의 잔칫상에 산해진미는 없는 것 같네요.” 각자가 맡은 바 소임을 열심히 하고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는 국가에서 단번에 불의를 발견 하기란 쉽지 않다. 글라우콘의 말은 뻔히 보이는 불의를 사치로 포장시켜 ‘건강한 국가’의 틈으로 슬쩍 집어넣은 것이다. 결국 이 ‘산해진미’를 시작으로 국가에 각종 사치품을 집어넣고 ‘전쟁’으로 마무리 짓는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와야 했던 이유는 ‘수호자’ 개념을 만들어 내기 위한 포석으로 생각된다. 전쟁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직업인 수호자는 도구를 쓸 줄 알아야 하고 기개가 높아야 한다. 하지만 시민들을 보호해야하기에 온순함 또한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상극의 두 성격을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예로 잘 훈련된 경비견을 들었고 이를 위해서 수호자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 즉 지혜를 사랑하는 자(철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국가의 미덕은 지혜, 용기, 절제, 정의 4가지이다. 수호자의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의 지혜를 발휘하기 위해선 진정한 의미의 수호자들이 치자가 되어야 하고, 국가가 용감해지려면 수호자들이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절제는 치자와 피치자간의 합의가 이루어질 때 발휘되지만 ‘평범한 다수의 욕구들이 더 나은 소수의 욕구와 지혜에 의해 제어되는 것이 보이는가’ 로 보아 무게가 치자 쪽에 좀 더 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3가지 미덕을 통해 남은 한 가지를 알 수 있으니 지혜, 용기, 절제 이후의 남은 것은 바로 정의이다. 국가가 지혜롭고 용감하고 절제 잇기 위해선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아야 하며 이것이 곧 정의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큰 규모의 국가에서 정의를 찾았으니 개인에게도 이는 독같이 적용 될 수 잇다는 것이 최초의 가설이었다. 개인에게서는 혼이 국가와 같이 지혜, 용기, 절제를 담당하는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이 3부분이 균형을 이루면 정의롭고 올바른 자, 그렇지 못하면 불의하고 나쁜 자가 되는 것이다.
플라톤이 주장한 왕도 정체의 왕은 아무나 앉히는 것이 아니다. 아데이만토스의 의문에 답한 대로 철인 왕은 자신이나 특정 소수의 행복보다는 국가 전체의 행복을 고려해야한다.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드러낸 채 독재를 하게 되면 플라톤이 언급한 4가지 악덕 정체 중 가장 최악인 참주제로 급락하게 된다. 지금 전 세계에서 부르짖고 있는 민주주의 또한 플라톤에게는 참주제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 뿐인데, 과연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나라가 그나마 차악(次惡)인 민주제라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많다. 민주제의 껍데기를 쓴 참주제로 보아도 무방할 지금 같은 시기에 『국가』는 통치자가 가져야할 중요한 점을 짚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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