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아바타>가 몇 차례 다시 언급해야 할 정도까지 훌륭한 영화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앞서 올렸던 <아바타>, 지긋지긋한 오리엔탈리즘의 향연’이라는 글에 의문이나 이견을 제기하는 분들이 계셔서, 어쭙잖은 글을 뿌린 책임으로 그 부분에 대해 다시 올립니다.
추상적인 단어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 보다는, 제가 극장에서 그 영화를 읽었던 방식에 대해 순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그 방식을 택했습니다. 아마 짧지 않은 글이 될 테지만, 그렇더라도 이는 제가 평소에 영화를 읽는 방법에 대한 간단 버전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1. 영화를 보기 전
1) 사회·정치적 배경
영화는 ‘개봉’함으로써 완성된다. 그래서 영화 산업적으로든, 영화를 읽기 위해서든 영화 개봉 시점의 사회·정치적 환경은 중요한 요소다. 이 영화의 1차 관객으로 설정되어있는 미국의 사회·정치적 환경, 미국민의 의식 상태는 특히 중요하다. 9/11 직후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제작을 중단하거나 개봉시기를 늦추었던 일을 기억해본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또한 최근 헐리우드 영화들 중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의 경향성을 미리 읽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이는 현재 미국민 대중의 선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8년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의 흥행은 그 변화를 읽게 해주기 때문에 주목해볼만 하다. 헐리우드의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는 대중의 경향을 잘 거스르지 않는다. 그래서 역으로 흥행작들의 분석을 통해서 사회·의식적 상태를 분석할 수도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미국의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략 전쟁과 오바마였다.
2) 제작자, 감독
내가 기억하는 제임스 카메론은 ① 상업적 감각이 뛰어난 감독이다. (영화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대중의 의식을 거스르거나, 앞서 가거나, 모험을 걸지 않는다. 주류 이데올로기에 지극히 순종적이다. 홍보비에 엄청난 돈을 들이붓는다. ‘낯설게 하기’ 등의 기법을 부정한다. = 몰입도가 높다. 등등) ② 특수효과 감독 출신으로 새로운 영상 기법에 상당히 치중한다. ③ 몰입이나 내러티브를 위해 과학적 논리를 종종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SF적인 요소를 자주 차용하지만, 정통 SF와 달리 과학적인 엄밀성이나 논리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④ 레이건 정권 당시 강한 미국 팍스 아메리카나의 상징이었던 <람보2>의 각색을 담당했었다. <람보 2>는 패배한 베트남전을 되돌리고 싶은 미국내 강경 우파의 판타지 압축판이었다. ⑤ <터미네이터 2> 에서 그는 강하게 ‘기술결정론적 세계관’을 드러냈었다. 난 그의 기술결정론을 경멸한다. (기술결정론이 뭔지 모르는 분은 참조 : 기술결정론과 사회결정론)
3) 폴 앤더슨의 < Call me Joe >
이 영화가 차용하거나, 빌려온 다양한 ‘소스’들에 대한 이야기가 무성하지만, 그 부분은 영화를 보기 전에는 찾아보지 않았으므로 < Call me Joe >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생략.
Call me Joe는 국내에는 아직 출판되지 않았지만(본래 작년에 출판될 계획이었는데, 출판사 사정으로 연기되었다), 1957년에 발표된 폴 앤더슨의 단편 SF로, SF의 ‘명예의 전당’에 올려져있어서 많은 SF 팬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그의 인공 생물을 원거리로 조종한다는 개념은 많은 SF 작품에 영향을 주었으며, 2009년 개봉한 <게이머>와 <써로게이트> 등도 이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이미 클리셰로 자리잡은 인공 생물 원격조종이라는 개념만을 차용했을 뿐, 소설의 골격을 가져다 쓴 것은 아니었다. 그 영화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표절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카메론은 그 개념이 들어있던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의 구성요소를 통째로 들어다 <아바타>의 주요 구성요소로 활용했다. 목성, 장애인 주인공, 푸른색 고양이형 인공 생물, 원격 조종을 통한 행성 탐사, 자아의 이동 등. 그래서 처음에 영화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나 뿐만 아니라 많은 SF팬들이 실제로 ‘Call me Joe'의 영화 버전이라고 기대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SF 팬들은 영화 <아바타>를 ’Call me Jake'라고 조롱하며, 크레딧에 폴 앤더슨을 포함시켜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를 만들 때에도 SF 작가인 할란 엘리슨으로부터 표절로 고소당해서 지금은 <터미네이터>의 크레딧에 할란 엘리슨의 이름이 올려져있다.
2. 영화를 보면서
1) 일체감, 이 영화 속에서 관객은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게 되는가.
영화에서 일체감이란 관객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서,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기술적으로는 나레이션, 카메라의 시점을 이용한 일체감이 가장 많이 쓰이며, 가끔 소리를 이용해서 일체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 영화에서는 내러티브 뿐 아니라 나레이션과 카메라의 시점(제이크의 1인칭 시점이 자주 등장하며, 카메라의 앵글도 주로 제이크의 시점에 맞춰져 있다. 그가 휠체어를 타거나 누울 때는 로우 앵글, 아바타를 탈 때는 하이 앵글) 등 모든 요소를 이용해서 제이크라는 주인공에게 일체감을 부여하고 있다. 즉, 모든 사건을 제이크의 시선으로 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제이크는 퇴역 미해병이며, 관객은 그 퇴역 미해병에게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2) 카메라 앵글, 편집, 공간적 배경 등
- 카메라 앵글 : 제이크의 시선을 중심에 둔 앵글, 3D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Bird Eye View 앵글.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클로우즈업 => 이는 등장인물의 심리적 묘사에 관객을 조응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이다.
- 시간순으로 진행하는 단선적인 플롯, 연속편집 => 몰입을 위한 전형적인 장치들이다.
- ‘과학의 생산물로 둘러싸인’ 기지내의 모습과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행성의 모습 대비. 이는 기지내의 사람들과 판도라 행성의 외계인에 대한 관객의 이해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실재하는 미국인들과 비실재적인 눈 쭉 찢어진 외계인들.
2) 등장 인물
2-1) 기지내 인물들
- 기지내 주요 인물은 모조리 백인이다. 이는 현재 미국의 주요 인종 구성비(백인 85%, 흑인 11%)나 미군의 인종 구성(백인 75%, 흑인·히스패닉·아시안 25%)에도 배치되는데, 이것은 영화 속의 ‘우리들’을 ‘주류 백인들’과 동일시한 결과다. 현상태를 거스르는 이런 모습은 ‘목적의식적 배치’이거나 ‘백인 중심의 편견’을 드러내 줄 뿐이다.
- 제이크 팀 역시 1명의 여성(남미 백인 혼혈)을 제외하고는 모두 백인이다. 즉, 제이크를 중심으로 한 ‘우리’ 역시 대체로 백인이다.
- 판도라 침략 과정에서 ‘문화선전대’ 역활을 했던 시그니 위버도 ‘우리편’이다. 그 역할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성도, 회의도, 문제제기도 없다. (참고 : 미군의 아프간 비밀 용병, 문화인류학자)
- 영화내에서 성격과 가치관의 변화가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사람은 제이크 뿐이다. 다른 이들의 경우 피상적이거나 수동적인 변화, 혹은 평면적인 모습만을 보여준다.
2-2) 판도라 외계인
- 판도라 외계인들은 모두 아시아인과 흑인들의 모습을 띄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과거 ‘백인들의 눈에 비쳤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이 역시 ‘목적의식적’으로 배치한 인종 구성이다.
- 기지내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판도라인들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내부의 모습, 내부의 의사소통 과정 등은 거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이는 내부의 ‘이유’, 논리, 논쟁, 갈등, 소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지내 사람들과 대비를 이룬다. 철저히 외부 관찰자적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다. 이는 ‘백인의 눈에 보이는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에 대한 현재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 판도라 외계인들은 외부에 ‘반응’만을 할 뿐 스스로 기획하거나, 계획하거나, 주체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 첫 번째 대규모 침략 때, 판도라 외계인의 제사장은 침략자의 일원이었던 제이크에게 구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 판도라 외계인은 ‘전사’를 존중하고 ‘전투적’이지만, ‘전쟁’에는 무지하다.
- 첫 침공으로 족장과 삶의 터전을 잃었음에도, 이들은 시그니 위버를 구하기 위해 전 부족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 시그니 위버는 ‘우리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그는 족장보다도 중요하다. 외계인들에게 조차도.
- 다른 판도라 부족들과 연대하자고 제안한 것은 제이크이고, 다른 부족들을 설득한 것도 주로 제이크였으며, 전투도 제이크가 지도한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실제 미국 원주민들은 스스로 단결했고, 자신들의 힘으로 싸워나갔다. 그게 궁금한 사람들은 리틀빅혼(Little Bighorn) 전투를 찾아보길 권한다.)
- 판도라 외계인들은 제이크가 ‘전설의 용(혹은 새) 투르크’를 데려오자, 일시에 모든 거부감을 떨쳐내고, 그를 ‘지도자’로 받아들인다.
3) 갈등과 대비
- 갈등 : 이 영화에서 주요한 갈등은 탐사대와 판도라 외계인의 갈등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주요한 갈등은 퀴리치 대령과 제이크이고, 판도라 외계인들은 그 갈등의 배경을 이룰 뿐이다. 이 이야기는 탐사대 ‘자신들’ 내부의 이야기다. 퀴리치 대령은 이 갈등을 무기와 폭탄으로 해결하려 하고, 제이크는 원주민을 동원해 해결하려 한다.
그리고 퀴리치 대령의 죽음으로 주요 갈등이 해결되자, 그 외의 '소소한 갈등'인 탐사대와 판도라 외계인의 갈등, 제이크와 외계인 약혼자와의 갈등, 판도라 행성 부족 간의 갈등 등은 모두 녹아서 사라진다.
- 제이크와 퀴리치 대령 : 퀴리치 대령은 <지옥의 묵시록>의 킬고어 중령이다. ‘전쟁광’으로 다시 부활한 퀴리치 대령은 2008년까지만 해도 헐리우드에서 최고의 영웅 캐릭터였다. <트로이>의 아킬레스, <알렉산더>의 알렉산더, < 300 >의 레오니다스도 모두 아시아를 토벌했던 전쟁광이지만, 그 영화들에서는 영웅으로 묘사되었다. 다시 그 캐릭터가 영웅에서 전쟁광으로 변화한 것은 오바마 정권의 등장을 전후해서 전쟁과 부시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제이크 역시 ‘자발적으로 입대했던’ 해병 출신이다. 그의 해결 방식은 ‘투르크를 이용한 권력 쟁취, 외계인에 대한 지도와 계몽, 선동, 전쟁’이었다. 외계인들은 제이크의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대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는 오바마가 ‘무력으로 권력탈취, 계몽(?), 지배’의 과정을 ‘정의로운 전쟁’이라 불렀던 것과 일치한다. 오바마에게 있어서도 이라크과 아프카니스탄은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시켜줄 ‘대상’일 뿐이다.
3. 결론
이 영화는 부시 정권의 침략 전쟁을 부정하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전쟁을 오바마 정권의 ‘정의의 전쟁’으로 새롭게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백인 우월주의와 흑인과 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영화 속에 녹여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나 현재 우리들,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민중들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그게 바로 오리엔탈리즘의 본질이다.
* 글을 올린 후 관련해서 찾은 자료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