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선원 입문기(入門記)
이 글을 올리는 오늘은 제가 이공부에 입문한 지 1년 되는 날입니다.
“생각의 길이 끊기는 은산철벽, 마치 생쥐가 쇠뿔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해 생각이 옴짝달싹 못하는 때가 되어야 몰록하고 깨닫는 때가옵니다.”
얼마 전 소참법회에서도 그 설법이 등장했습니다. 소참법회가 끝나고 선생님께 다가가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그동안 법회에 참여하면서 생각이 은산철벽, 마치 쇠뿔에 갇힌 듯 오도 가도 못하는 답답함을 느껴 본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당시에 간곡하게 들리는 선생님 설법에 감화되고, 어서 동화되고 싶다는 생각들이 무성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어느 샌가 공부에 입문해 있으니 이건 어찌 된 것인가요?”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그러하시듯. 답해주십니다.
“거사님, 거사님이 월인선원 올 당시에 거사님 생활(삶)은 이미 갇혀 버려, 옴짝달싹 못했잖아요?....... , 공부는 법문을 듣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 그랬습니다.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은 가감이 필요 없는 은산철벽이고, 쇠뿔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해 옴짝 달싹 못하는 생쥐 그 꼴 이었습니다.
2014년4월26일(토)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내려왔다는 단어는 당시 내가 처한 상황과 모습으로는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대중교통으로 다섯 시간에 걸쳐 남원 월인선원을 오갔던 내 모습은 옴짝달싹 못해 내 의지로는 어찌해볼 수 없고 돌파구도 없는 그 상황에서 예까지 떠밀려 왔던 것이며, 살려고 버둥거리는 처절함 이었습니다.
이글을 쓰며 이제야 지나간 1년의 시간을 찬찬히 돌아다봅니다. 짧은 1년의 시간에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정신없이 지나온 것이 느껴집니다. 이 공부와 만남 에서부터 도움을 주셨던 주위 도반님들께 감사의 표현도 못하고 지내왔음을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먼저, 이 공부를 만날 수 있도록 월인선원까지 끌어주셨고, 도와주신 사가(私家)에서는 저의 세 번째 형이고, 월인선원 도반이신 여혜(如兮)거사님.
친동생이 처한 상황과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우셨을 텐데, 이제야 한숨 돌리는 여유를 갖고 보니 공부에 누를 끼치지 않았을까하는 미안과 고마움이 섞여있습니다.
그간, 월인선원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며 두 번이나 밑도 끝도 없이 선생님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얘기해 선생님에 대한 아부로 느끼셨을지 모를 도반님들이 계셨다면, 이 기회에 선생님을 생명의 은인 이라고 몸통만 말한 것에 머리와 꼬리까지 이야기 하겠습니다.
2014년 4월 26일 저를 첫 대면 하신 선생님께서는 여혜거사를 통해, 진오거사 공부 할 때가 됐다 하시며 밝은 눈을 드러내셔, 구석에 몰린 저를 그냥 품으셨습니다.
지금, 이 글의 초안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납니다. 울컥 넘어와 울먹였고, 울었습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글의 발단은 2014년 7월경부터 입니다.
그날 선생님은 저에게 가볍게 건네십니다. 혹시, 제가 부담을 안을까 하는 염려가 배인 말씀이신 듯했습니다.
“진오거사님, 거사님의 얘기를 찬찬히 글로 남겨보세요.”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선생님의 말씀에 한 번도 거부, 거절, 거역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지극하신 말씀이란 생각에 당시 그 자리에서 예~.하고 힘없는 답을 했지만, 내 글쓰기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저~, 제가 무위보살님 만큼이라도 글쓰기 재주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하고 퇴로를 준비하는데, 함께 계시던 여혜거사님께서 자르며 들어오십니다.
“진오 네가 무위보살의 글을 평가하는 안목이라면, 너도 쓸 수 있다는 거다” 하시며 제게 용기를 주는 듯이 선생님 말씀에 보태기로 굳히기를 하십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종은 울렸지만 일년 가까이 움직이지 않는 저를 보시던 선생님께서 월인선원 홈페이지에 동영상 법문 올리는 일에 저를 참여시키는 것으로 방편을 내셨습니다.
“월인선원 홈페이지에 무심선원처럼 우리도 선생님 동영상 법문을 올려보자!”
발안자 : 금현스님,
촬영담당 : 주도사님,
편집과 (you tube)에 올린 후 선원홈페이지 링크담당 : 진오.
아! 빠뜨릴 뻔 했습니다. 저에게 동영상 편집프로그램사용법과 (you tube)에 올린 후 그것을 월인선원 홈페이지에 링크시키는 것까지. 이 모든 일에 깜깜 이였던 내게 기술 이전을 해준 우리선원 테크니션, 무설거사님까지요.
월인선원 홈페이지에 동영상법문을 올린사람 이름은 올라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두루 애쓰시는 도반님들 이름이 없어 이렇게나마 소개시켜 드리니 좋습니다.
4월초부터 참여한 선생님 법문을 동영상으로 선원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을 하면서 그전에는 sns 나, 홈페이지라는 온라인매체에 무심했던 저는 (you tube)의 파급력과 (홈페이지)의 힘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러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선생님과 했던 약속이 마치 갚지 못한 부채(負債)처럼 떠올랐습니다.
글쓰기를 어떻게 풀어 나아갈까? 머뭇머뭇 하는 나에게 무착거사님은 “시작하기로 했으니, 다소 이이야기 분량이 늘어나더라도 진오거사 스스로가 벌거 벗듯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얘기하듯이 해보세요.”라며 조언하십니다.
금현스님은 “ 이야기를 시간 순서보다 사건(얘깃거리)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힌트를 주십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게으름 피던 저를 채찍 하셔 그날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셨고, 주위 도반님들은 부족한 제게 많은 도움을 주시네요.
기본적으로 저의 미흡과 때로는 부족함이 드러나겠지만, 어제의 나처럼 힘들고 괴로워하는 이가 있어 이 글을 보고 작으나마 희망의 불씨로 여겨 이 법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5.06.18.
진오 합장.
첫댓글 정식 안면은 없지만 왠지 가슴이 뭉클하네요.
이자리에서 벗어난 적도 없으면서 왜그리 분리감을 느끼면서 외롭고 슬퍼했을까요()()())
어제, 선생님으로부터 보살님이 월인선원 도반이시라 들었습니다._()_
누구나 특별하지만 거사님이 선원에 찾아올땐 헤엄치지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잠깐 코가 밖에 나왔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가진거라곤 가지고 다니기가 더 힘겨운 반쪽인 육신뿐이었죠. 거사님이 불법의 효험을 증명했으니 믿지않을수 없지요.
"감사합니다." 이 단어로는 담을 수가 없습니다. _()_ ^*^
글은.... 재주가 아니라 진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지요. 솔직하고 진정어린 진오거사님의 글에 저도 뭉클합니다. 난 아직도 멀었구나 싶은 마음도 생기구요.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멋져요^^!
진심 담긴 담 글이 기다려집니다!!
정말로 감동 그자체입니다 성불하세요
처음 정진법회에서 뵈었을때...그다음에...그다음에...찿아가고 계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대화는 없었지만 많이 많이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손도 잡아주고 싶고 했더랍니다. 감사드리며~~~
보살님,인사가 넘 늦었습니다. 보살님 법명과 얼굴이 바로 얼마전에 일치돼서 지금에야 인사드립니다. 공부 갖 시작한 저를 눈여겨 봐 주셨었네요. 요번 정진법회 신청서에 박거사님과 함께신청 돼있는거 보고, 지난 겨울정진법회 때를 떠올리며 퍼즐 짝 맞추듯 어렵게 보살님을 알아보게 됐습니다.
일취월장하시는 느낌으로 떠오르는 진오거사 님을 바라보면서
가뭄에도 끄덕없이 잘 자라는 지리산의 숲속 한그루 잣나무 같아 부럽기도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가물은 냇가의 시들어가는 초라하게 낙오된 자신을 보며 ....
요즈음 나의 삶은
방랑시인 김삿갓이 읊었다지요.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눈팅만 하고 다니다 반가운 진오거사님 그것보고 한숨 흘리고갑니다
거사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못뵌지 오래인데,여기에서라도 인사드리게돼 반갑습니다. 이 시를 10여년전 알게돼 당시 참 좋아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친근한시를 거사님 통해서 오랜만에 보는 고마움에 인사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