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 가느냐고 묻는 집사람에게 문수산 간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7시30분 집을 나섰다.
8시30분쯤 창모네 집앞에서 창모를 태우고 검단, 양곡, 석정리로 하여 9시25분에
문수산 산림욕장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입장료는 1,000원이었다. 비는 올것같지 않은 흐린
날씨였다. 바로 앞서 도착한 차에서 준구가 내리고 있어 반갑게 인사하는데 준구는 같이 온
조광식을 소개시켜 주어 어정쩡하게 인사하였다.고등학교 동창이라 하였다. 계곡물이 흐르는
등산로입구 벤치에서는 서울에서 일찍온 금선, 동금이 자리를 잡고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미인들처럼 보였다. 세연, 점옥등 시골친구들이 잇달아 도착하는데
금강회는 총무인 준환이가 약속시간을 각색하여 10시로 통보하는 바람에 좀 늦을 것이라 하였다.
관심법으로 모여있는 친구들을 살폈더니 안올라갈 사람, 적당히 올라갈 사람, 제대로 올라갈 사람들로
확연히 구분이 되었다. 나는 생각했던 코스로 제대로 올라갈 사람들을 선별하여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갔다. 동행자는 준구, 창모, 광식, 중기였다.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계단은 쏟아진 폭우로
흙은 모두 쓸려 내려가고 나무계단과 돌들이 섞여 거칠거칠하였다. 햇볕은 없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한증막에 앉아 있을때처럼 숨도 차지 않은데 땀이 흘러 나왔다. 머리칼 빠진 구멍이 땀구멍으로
변한 것 같은데 나중에 진짜 그런지 조사를 해봐야겠다.
준구는 평소 운동이 부족한지 뒤쳐져 숨을 몰아 쉬며 쫓아 올라오기 바빴다. 홍예문에서 잠깐 쉬고
성벽에서 흉하게 변해버린 고향산천을 잠시 둘러보는데 어느새 헬기장 그늘막주점에 이르렀다.
지난주 나루산악회번개산행에서도 이 주막에 들러 막걸리 세사발을 들이킨적이 있는데 고향후배가
운영한다고 하였다.
일찍와서 평상에 자리를 잡고 있는 등산객들의 뒤편에 짐을 풀어 놓고 준구가 총무답게 사람들의
주문을 받았지만 고작 막걸리 두사발에 칡즙 두봉다리였다. 간신히 막걸리 두사발 나눠먹고 한사발
더 주문하는데 청룡회관방향에서 일찍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명석이, 경순이가 찾아왔다.
막걸리 다 먹고 짐을 싸는데 왼쪽 능선으로 올라온 준환, 점옥, 영환등이 합류하여 알아서 가라고
하고 명석, 경순, 창모, 중기, 광식과 일행이 되어 정상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정상은 무슨공사를 그리 오래 하는지 아직도 출입금지 상태였다. 날씨가 흐려 이북도 잘 보이지가
않아 실망이 컸지만 일행들은 고향산천에는 관심이 없는듯 발길을 재촉하였다.능선을 타고 가다
북문 2.8km라고 표시된 이정표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잠시 방황하다가 제대로 길을 찾아
북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광식은 처음이라 서먹한지 말이 별로 없고 앞서가기만 하여 순식간에 북문에 이르렀다.
그 동안에 한 이야기로는 시골친구들이 농어 10kg짜리를 잡아 먹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11시40분 북문을 통과하여 도로를 걸어 다시 산림욕장에 도착했을때 헬기장에서 만난 준환등은
아직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아 계곡물로 들어가 손을 담갔더니 시원하였다. 땀도 많이 나고 덥기도 하여
아예 웃옷과 양말을 벗고 들어가 물을 끼얹었다. 장마철이라 물이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시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미인들이 옆에 있어서인지 물로 들어 오지 않앗다.
잠시 후 준환들이 산에서 내려 오자 짐을 챙겨 성동리 검문소옆 농부와 어부 식당으로 향하였다.
농부와 어부 식당은 월곳농우회모임으로 몇번 온적이 있다. 누군가 주인여자가 미인이라 헛돈쓰는
작자들이 많이 온다고 하였다. 농우회회원(대부분 80대)들도 조심해야 될것 같다.
식당에는 염불에는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 잔뜩 모여 있었는데 상준, 재환, 윤희, 원향, 종수, 치호등
서암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여자들은 서암출신들은 한명도 없고 마송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막국수, 소머리국밥을 취향별로 신청하였는데 성질급한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막걸리를 주문하였다. 운전때문에 두잔만 마시고 고사를 지내는데 종기가
순균등과 뒤늦게 들어왔다. 모두 자리를 잡자 준구총무 한마디 하고 다시 왁자지껄하며 주문한
음삭들을 먹고 막걸리를 마셨다. 상준이는 일찍부터 술을 마셨는지 취했다고 하며 내 옆으로 오더니
상인연합회회장 이범형이가 나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고 하며 조강거리로 가자고 하였다.
창모에게 운전을 부탁하였더니 안된다고 하고 종기한테 부탁하였더니 안된다고 하다가 술을 먹고
와서는 운전한다고 하였다. 얼굴도 벌겋고 종기습성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습성을 아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었다)부탁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상준부탁을 거절하기도 곤란하여 어정쩡하게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는데 흡연자들은 모두 모여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끊었다던 기완이도 피우고 있었다. 중기가 흡연실로 들어오더니 조강거리 두리하우소
로 갈것이라며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서암친구들은 모두 가야 한다고 하였다 .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모두 식당에서 나와 어디로 갈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가 일단 조강거리공영주차장으로 가가로
하였다. 나는 순균, 종기, 유재를 태우고 조강거리로 오는데 종기는 남의 속도 모르고 왜 차를 안바꾸느냐고
핀잔을 한다. 듣기도 거북하여 주차장에 도착하자 빨리 내리라고 하고 누나네로 차를 몰았다.
두리하우스에 갈것이냐 안갈것이냐는 누나네 도착해서 결정하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눈에 선하였다. "끝"
소요산 기행
(본 글은 2001년 10월 3일 본인이 처음으로 중학교 동창들의 야유회에 참석하여 하루동 에 일어났던 일들과 느낀 소감을 두서없이 적은글이므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2001년 7월 어느 몹시 무덥던날 인하대병원으로 범식이, 중찬이, 한선이, 충수등이 아버 지 병문안차 찾아왔다. 병문안후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중학교동창 관광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중 범식이와 한선이가 관광버스안에서 큰소리를 쳤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내용은 다음관광은 인천친구들이 담당하고 날짜까지 10월 3일로 정했다 는 것이었다.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이 들어 이왕 할것이면 멋있게 하자고 제안했더니 모두 동의했다. 다음달 8월모임(인천 통인회 모임은 매달 15일)에서 모든 친구들의 동의 를 얻고 목표인원을 50명으로 했고 비용은 불문에 붙였다. 다시 9월말에 모여 실무에 대해 협의했다. 버스는 한선이, 안주는 범식이등 각자 임무가 부여되고 김포와 서울친구 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유하여 목표인원을 달성토록 독려했다. 남은 것은 진인사 대천 명뿐......
드디어 10월 3일이 되었다.
집사람의 얹짢은 눈초리를 뒤로하고 귤현역으로 차를 몰았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 다. 벌써 인천친구들은 주차장에서 준비해온 물건들을 꺼내어 정리하고 있었다. 간단하 게 물건들을 정리하는데 중찬이는 연방 핸드폰을 걸어댄다. 목표인원이 걱정되는 모양 이었다. 잠시 후 중찬이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보니 목표치는 달성되는 것 같았다. 특히 여자동창들에 신경이 쓰이고 관심도 많은 것 같았다. 충수, 창모, 용원, 순자, 경순, 귀자 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긴장되는지 찬맥주 한캔씩을 벌컥 벌컥 들이켰다.
9시가 되어 노란색 관광차가 김포친구들을 태우고 도착했다. 세연이가 인원을 점검하 고 있었다. 준비한 물건들을 싣고 출발하려 하는데 K.J가 늦는다고 하여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기다리자고 했다. 항상 이해하기 힘든 사람은 있는 법이니까, 버스에 오 르니 동철이, 준환이, 영순이, 윤숙이등 낮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다시 버스는 쓰레기 도로를 달려 개화역으로 향하였다.
10시가 다되어 개화역에 도착하니 화려하게 등산복을 차려입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 었다. 등산복보다는 댄스복을 입고 왔어야 하는건데.....
H.S가 가장 반가왔다. 여자들중에서는 가장 만만한 친구니까, 군섭이는 옛날처럼 키가 커 보이지도 않았고 희진이라는 친구는 매우 커보였다. 서울에서 온 친구들중에는 알아 보기 힘든 친구들도 있었다. 다시 인원점검과 짐장돈을 마치고 출발하려 하는데 역시 늦게 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윤희가 늦게 오고 마지막으로 경연이가 버스에 탔다. 속으 로 욕하는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다. 후문에는 화장실갔다가 못타고 집으로 간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10시30분이 조금넘어 버스는 소요산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좌석이 거의 찬 것을 보니 40명은 되는 것 같았다. 예정스케줄에 따라 내가 하루의 일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의문 사항이 이으면 질문을 하라고 했다. 아무도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들은 모두 콩밭에 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천회장을 맡고 있는 중찬이가 인사를 했다. 인사 말을 밤새도록 작성하여 와는데 꺼내 읽지는 못하였다. 나중에 볼수 있는 기회가 있겠 지, 전체회장인 봉구가 인사를 했고 인천총무인 병헌이가 인사를 했다. 오늘 하루 자존 심을 다 버리고 서비스를 하겠다고, 이어서 전회장 명철이에게 그 동안 노고를 치하하 는 감사패가 봉구로부터 전해졌다. 친구들로부터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패를 받으니 감개무량하다고 답례했다.
간단한 세레모니가 끝나고 본게임으로 들어갔다. 각본대로 한선이가 사회를 맡았다. 미 덥지는 않았지만 믿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본게임을 재미있게 하려면 적당한 음주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범식이, 병헌이등이 술과 안주를 공짜로 팔았다. 인상때문인지 팔리지가 않았다. 다시 미인계를 써서 귀자, 영순이등이 앞장서니까 팔리기 시작했다. 역시 술은 미인(?)이 있어야만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좌석순서대로 노래를 불렀다. 만남, 찔레꼿, 울고넘는 박달재등 내가 알고있는 노래들 을 주로 불렀다. 노래도중에 범식이가 인사를 했다. 너무 감격했는지 평소에 비해 인사 말은 간단했다. 신뢰성을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거의 절반쯤 순서가 돌아갔을 때 노래를 끊고 디스코멜로디를 틀었다. 템포가 빠르고 흥이 나는 음악이었다. 아줌마고 아저씨고 체면가리지 않고 몸을 흔들고 박수를 쳤다. 옛날에 얌전하고 젊잖은 학생들이었다고는 생각할수도 없었다. 약 두시간반이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소요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중학교때 여행을 왔었다고 하는데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 다. 시간이 짧아 절까지만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음식과 술을 꺼내놓고 내려오는 친구들 과 한잔씩 하니 술이 취하는 것 같았다. 판을 걷고 H.S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려오는 데 핸드폰이 울렸다. 동철이가 산꼭대기에서 건 전화였다. 생긴것과는 다르게 산을 잘 탄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진동문들의 산행모임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기회가 있으면 언젠가는 추진하고 싶다. 음식점에 도착하니 산에 오른 시간은 한시간도 않되었다.
음식점에는 경춘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요산에서의 일정을 모두 책임지고 수행하는 중이었다. 그 옆에는 도곡동강(석린)과 성연, 고자가 눈에 띄었다. 역시 도곡동강은 라이방(썬그라스)을 끼고 서 있었다. 모두 음식점으로 들어가니 술과 음식(파전, 비빔 밥)이 준비되어 있고 중앙에는 넓은 공간과 노래방기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일정 을 소개하고 건배를 제의했지만 분위기가 어수선하여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사회는 서울친구중 윤희가 맡았다. 각 친구들의 과거소개가 끋나고 다시 춤과 노래가 시작되 었다. 청춘을 돌려다오, 흙에 살리라등 청춘과 사랑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들이었다. 분위기는 세연이, 중기가 리드했는데 그 동안 많이 해본 것 같았다. 술도 돌리고 노래도 돌리고 춤도 돌리고 돌려 돌려 또 돌려 계속해서 흥겨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모두 중앙 으로 나와 몸을 흔들었다. 이장도 나오고 동장도 나오고 사장도 나오고 면장도 나오고 아줌마도 나오고 나도 K.J, S.J등과 트롯트 사분의 삼박자춤을 추었다. 원래 나는 부르스리였지만 도무지 부르스를 출 기회가 없어 아쉬었다. 도곡동강은 여전히 나이방 을 낀채 드러누워 분위기만 감상하고 있었다. 잠시 담배를 사러 밖에 나오니까 동철, K.S, G.S등이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덧 다섯시가 되어 음식점 예약시간이 끝날때가 되었다. 각자 좌석에 앉아 남은 음식과 술을 먹고 나머지는 반납을 하고 계산을 한후 모두 음식점을 나와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를 때 경춘, 도곡동강, S.Y등 헤어질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였다. 다시 버스안에서 분위기를 정돈하는 의미에서 나는 목사와 시장, 과부와 홀아비의 고추농사 이야기를 했는데 잘 이해를 못했는지 웃지를 않았다. 사회를 충규가 김포친구들을 대표해서 맡았다. 체구는 작지만 목소리는 커서 잘 할 것 같았다. 남은 음식과 술등을 인천친구들이 나누어 주었는데 참으로 준비를 많이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몇몇 친구들 은 술이 취해 다른 친구들에게 계속 술을 권하며 앞뒤를 왔다 갔다 하였다. 다시 노래 가 시작되었는데 역시 고향과 사랑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노래의 분위기 는 덕종이가 리드하였다. 덕종이가 마이크 잡기전에 한곡조라도 불러야겠다고 생각하여 나도 한곡조 불렀다.
저산마루 쉬어가는 길손아
내 사연 전해듣겠소
정든고향 떠난 지 오래고
내 님은 소식도 몰라요, 아---뜬 구름 하나 김포로 가거든 정든임 소식좀 전해주렴 나도 따라 김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김포로 나는 가야해--
분위기가 흥겨워지자 또 다시 율동이 시작되었다. 나는 좌석을 옮겨 다니며 처음 본 친구들과 인사를 하였다. 나중에 앨범으로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율동 의 무법자가 통로를 휘젖고 다녔다. H.J라는 친구인데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이 역시 앨범으로 확인해 보는 수 밖에.....
남은 음식을 저녁겸 먹었다. 원래 계획에는 중간휴게소에서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던 것이었는데 어쨋거나 시간도 절약하고 돈도 절약하고 또 노래와 율동도 맥이 끊어지지 않으니까 결과적으로 일석삼조가 되었다. 어느새 아쉬운 시간은 흘러 차창밖은 깜깜해 지고 가로등불만이 이따금씩 얼굴에 스쳤다. 흥에 지친 친구들은 졸기도 하고 지겨운 집에 들어갈 생각도 하고 이별을 아쉬워하기도 하고 율동도 계속하여야 하고 각양각색 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장식할 때 관광차는 원당에 이르렀다. H.S가 친구들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며 차에서 내렸다. 내가 상상했던것보다 훨씬 명랑하고 밝은 성격을 지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기뻣다. 노래도 잘하고 율동도 잘하고 그래서 생활도 긍정적 이고 배워야 할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가, 잘가, 또봐 한마디씩 인사를 하고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데 어느새 B.S가 술잔을 들고 통로를 왔다갔다 하며 친구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 참으로 피하기가 힘들어 마시라면 마시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율동을 하라면 율동을 하고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조금만 있으면 헤어질텐데 기쁜 마음 으로 어울렸다. 나도 술이 취하였다.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는 노래가 많은 것을 보니 좋아하는 사람도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불빛이 흐르는 거리를 지나 어느덧 관광차는 개화역에 도착하였다. 서울 친구들아 잘 가거라, K.S, H.J등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왔다. 서울 친구들이 모두 내리고 나니 차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제는 모두 피곤한가 보다, 떠들기도 싫고 노래하기도 싫고 집생각도 나고 집에 들어 가기 싫기도 하고 관광차는 터덜터덜 쓰레기도로를 달려 귤현역에 도착하였다. 저녁 아홉시가 되었으니까 출발한지 열두시간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남은 음식과 차안의 쓰레기를 대충 정리하여 차에서 꺼내고 인천친구들은 차에서 내려 김포친구들을 싣고 고향으로 떠나는 관광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모두 지쳤지만 사고없이 하루의 임무를 완수한것에 대해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각자 분승하여 집에 가고 나는 박촌역에서 전철을 타는데 H.S, M.K등 귤현역에서 탄 친구들이 보였다. 대강의 이야기를 하면서 부평역까지 와 내가 내려서 한잔 하자고 했더니 모두 싫다고 하였다. 나도 좋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권유하지도 않고 집으로 곧장 왔다. 집사람표정 이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용한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가 듣고 싶었다.
첫댓글 두번째 동창 들 여행을 갔던 소요산 여행이 생각 나게 하는 글이네 그때가 50명이 모였던 여행인데.
그때만 해도 대단들 했지.
평소 운동이 부족해서 숨이 찬 것도 맞지만, 초장에 약간 앞서간 너희들 따라 가느라고 내 Phase를 잃은 것이 더 큰 문제였다네 ~~~
땀으로 목욕하고 힘은 들었지만 기분은 정말 상쾌 했고 더구나 헬기장 그늘막 주점에서 마신 막걸리 한 사발은 정말
일품이었지~~`
아 ! 글구 왠 보너스 까지? 덕분에 얼떨결에 오늘아침 소요산까지 갔다 왔네그려, 그것도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이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말일세~~~하여튼 10년 전 산행일기를 읽자니 나이도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해서 잠깐이지만 착각속에
기분이 좋았다네~~~그런데 깨보니 지금의 내 모습은? 아! 그 때의 팔팔했던 내 청춘은 다 어디로 갔는지 ? ------
총무 대단히 수고 많았어. 그리고 아주 좋았어!!
대단하다. 이군의 글을 읽고 나니 그 때의 추억이 아른거린다. 세월이 벌써 10년이란 성상을 가졌단 말인가? 이 jiayou는 올 초 그 추억을 더듬어 수중궁을 한 번 갔었다네.
Woainimen은 무엇이고 jiayou는 또 무엇인가? 소요산에서 모두 가무를 할때 혼자서 라이방 끼고 마루에 누워
거만떨던 도곡동강 아닌가? 차에 태워 신주같이 모시던 고자, 성연등은 잘 있는가? 그때 몰려 다니던 으바리들은
잘들 지내고 있는가?
'워아이니먼'은 중국어로 '그대들을 사랑함'이란 뜻으로 좀 점잖은 글을 쓸 때 필명이고 '쨔유' 역시 중국어 이며 그 뜻은 '화이팅' . 이 필명은 외설적인 글을 쓸 때 사용한다.
1회.2000.7월운악산(회장명철),.2회 01년소요산(회장봉구).3회 003년7월일동갈비집(회장봉구).3회계룡산(회장용익).4회수덕사(회장 순균),5회07년단양구인사(회장 신호).6회08년9.7홍천 팔봉산(신호)7회09년4.4경주여행(회장규자).8회10년8.22군산새만금(회장규자)9회11년8.20월악산 송계계곡(회장 경윤)기억이 맞느지 모르지만 태안여행도 있어지 (금강회통인회합동)?
기록들을 잘 보존하였다가 졸업60주년 기념 앨범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