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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제임스1세가 발간한 <영어킹제임스성경, 1611년>의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번역은 빛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주고, 성스러운 땅이 보이도록 장막을 걷어주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우물덮개를 치워주는 것이다"
중세시대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여 일반인들이 읽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윌리엄틴데일은 로마가톨릭교회의 박해와 체포의 위협속에서도 유럽 대륙을 떠돌며, 라틴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원전에 의한 번역작업을 계속하였고,
결국 1526년 영어신약성경(영어틴데일성경)를 완성하고 독일에서 인쇄해 영국으로 보냈습니다.
이후 틴데일은 1535년 네덜란드에서 가톨릭교회에 붙잡혀 산채로 화형당하고 그의 '틴데일성경'은 잉글랜드의 제임스1세의 '영어킹제임스성경'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제임스1세는 47명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위클리프의 필사본성경, 윌리엄틴데일성경(1526), 대성경, 제네바성경(1560),비숍성경등을 종합적으로 참조하여 최고의 영어번역성경을 출판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영어킹제임스”(1611년)성경입니다.
아래의 도표에서 보는 제임스1세왕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6세왕이면서 동시에 잉글랜드의 왕이 되면서 제임스1세왕으로 불리게 됩니다.
아래의 계보도를 잘 살펴보시면 스코틀랜드의 제임스6세왕은 잉글랜드에서도 제임스1세왕으로 등극하여 대영제국(=Great Britain)을 다스리게 됩니다.
이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양쪽나라에서 제임스의 친증조모이면서 동시에 외증조모인 <마거릿>이라는 동일인물을 통해서 양국의 정당한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왕위계승권의 계보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스코들랜드의 제임스왕 6세가 어떻게 해서 잉글랜드의 제임스1세왕이 되었는지를 잘 살펴 이해하시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분명하게 아시게 됩니다.
가) 산채로 화형당하기 직전 윌리엄틴데일의 기도였던 "주여 영국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라는 1535년의 외침이 76년 후에 나온 "영어킹제임스성경(1611)"을 통해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 이때 틴데일의 기도속에 나타난 영국왕이 바로 잉글랜드왕 제임스1세인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6세임을 알게 되고
다) 바로 이 왕이 1535년에 성경을 번역하였다는 이유로, 산 채로 화형을 당한 틴데일의 기도의 응답으로 1611년 영국의 제임스왕1세를 통해서 '영어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되어 전세계에 보급되도록 역사하셨음을 알게 되며,
라) 영국함선을 통해서 1816년9월6일에 당시 알려지지 않은 이름없는 나라 지구반대편 아시아의 나라인 '조선'의 서천군 마량면의 '조대복첨사'에게
'영어킹제임스성경(1611년)'이 그대로 전달되어 조선땅에도 하나님의 복음이 바른 성경기록으로 전해지도록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였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역사적인 사실을 아시려면
충남 서천군에 의해 알려지고 있는 <한국최초성경전래지에 관한 명확한 사실>을 아래의 링크를 통해서 잘 정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https://cafe.daum.net/jesusthinking/6ElV/11
참고로,
1989년 2월 2일 우리나라에서는 '기독지혜사'라는 성경출판사에서 '톰슨한영대역성경'(발행인 강병도목사, 한글은 한글개역성경본문, 영어는 KJB1611흠정역영어성경본문으로, 2가지 본문간의 번역차이를 분명하게 대역 비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을 출간하여 당시 많은 성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군산크리스찬서적이라는 서점에서 1990.3.5.일에 구입한 이 톰슨한영대역성경을 통해서 영어킹제임스성경을 처음 알게 되었고 기존의 한글번역본들과의 차이점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선교단체인 CCC(한국대학생선교회)의 영원한 청년이셨던 고 김준곤목사(2009.9.29.일 소천받으심)는 생전에 여러 기회에 한국교회에 가)'창조과학을 가르치자'는 제안과 함께 나)'영어킹제임스성경(1611년)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1,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238¶m=category=K02
관련기사-2, https://cafe.daum.net/jesusthinking/6gIN/61
복잡한 영국의 역사를 좀 쉽고 간결하게 설명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가 잘 아시듯이 가)"신사의 나라"로 불립니다. 또 식민지를 워낙 많이 가지고 있어서 나)"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도 불립니다.
영국은 크게 4개의 영토로 나뉩니다.
1)잉글랜드(England)
수도는 런던(London)으로 영국전체 영토의 절반을 차지하고 인구는 83%입니다. 전세계의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영어(English)의 탄생지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영어를 원조영어로 알고 계시는 것은 오해!!!)
그래서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영국의 문화적인 것들은 대부분 이곳에 속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2)스코틀랜드(Scotland)
수도는 애든버러(Edinburgh)로 인구는 전체 영국인구의 10%이고요.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인 '킬트치마'를 입은 장면이 나오는 것은 이곳의 문화영향입니다.
3)웨일즈(Wales)
수도는 카디프(Cardiff)로 인구는 315만명이고요. 광활한 평야의 영향으로 목축업과 양모생산업이 발달되었습니다.
4)북아일랜드(North Ireland)
수도는 벨패스트(Belfast)로 종교전쟁의 아픔이 아주 많은 곳으로 19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의 4개의 자치국중 가장 작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일랜드섬 전체면적중에서 영국령으로 속해진 북부지역입니다.
영국은 FIFA에도 각자의 국가소속이름(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으로 출전을 합니다.
웨일즈의 국가대표축구선수로 '카레스베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4개의 자치국들이 서로 오고 갈 때 출입국신고도 하지 않고 여권도 하나로 쓰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른 의회와 법을 각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서로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한 나라가 된 것일까요?
우선 현재의 영국의 정확한 명칭은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입니다.
이제 영국역사의 오래전으로 조금만 더 자세히 들어가 봅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웨일즈 이상 3개를 합친 섬에는 '켈트족'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독일 북서부에 살던 앵글로색슨족이 '켈트족'을 침략했고, 현재의 잉글랜드 지역을 앵글로색슨족이 장악합니다.
그래서 켈트족은 싸움에서 밀려서 스코틀랜드,웨일즈,아이랜드로 쫒겨나고 맙니다.
그러다가 12세기에 잉글랜드가 아일랜드를 침공하여 잉글랜드의 속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16세기에는 헨리8세가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려고 <로마카톨릭에서 성공회>로 종교개혁을 한 헨리8세는 계속 카톨릭을 믿고 싶어하던 아일랜드와 전쟁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잉글랜드가 대승을 거둡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왕의 혈통은 혼인관계로 얽혀 있는 상태인지라,
<후사가 없는 처녀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죽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6세가 잉글랜드 왕(제임스1세)을 겸하게 됐고, 동일한 군주 아래 2개의 국가가 결합하게 됩니다.
결국 1707년 연합법('스코트랜드왕국과 잉글랜드왕국이 합병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될 것을 결의한 법') 제정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새 출발합니다.
1801년에는 속국이였던 아일랜드까지 합쳐서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그레이트 브리튼 아일랜드연합왕국')으로 명칭을 고칩니다.
한 나라로 합쳐진 후에도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은 아일랜드를 침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일랜드의 농산물들을 훔쳐오는 일을 합니다.
그 결과 먹을 것이 없어진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주식을 삼습니다.
그러나 이 감자때문에 100만명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게 되는 데요. 이유는 1845년부터 1850년대까지 유행한 감자역병때문입니다.
감자씨가 모두 말라가면서 아일랜드사람들은 기근에 허덕이게 됩니다.
이런 아일랜드의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도 중앙정부는 '신의 뜻을 거스른 아일랜드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라고 하며 도움을 외면하였고,
결국 이 큰 기근을 참다못해 아일랜드인들은 미대륙으로 건너가는데 이 때 아일랜드에서 200만명이 이탈한 것들중 100만명은 기근으로 사망했다면 100만명은 미국으로 이주해서 삶의 터전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감자가 미국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일랜드인들이 자신들을 '한의 민족'이라고 하는 데는 다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참다 못한 아일랜드인들은 1919년 아일랜드독립전쟁(1919.01.21.~1921.07.11.)을 일으키고 영국과 합의해 북아일랜드를 뺀 영토를 들고 독립합니다.
그래서 1927년 아일랜드 중 북아일랜드만 차지한 영국은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 되어서 이 국명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스코틀랜드가 꾸준히 독립을 요구하고 있고요.
300년 넘게 미묘한 관계가 지속되긴 했지만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인 시기는 1970년대부터인데요.
스코틀랜드에서 북해유전과 천연가스가 발견되면서 "우리도 분리독립 할 수가 있다"는 명분이 스코틀랜드에게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전체의 원유 및 천연가스 자원의 95%를 차지하기 때문에 중앙정부는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잉글랜드에 대한 스코틀랜드인들의 반감은 점차 커지고 1997년 자치의회 설립을 위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는데 70%가 넘는 주민들이 자치의회설립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스코틀랜드는 독자적인 의회를 갖게 됩니다.
2011년 드디어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Yes Scotland'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부유한 복지국가를 세울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2013년 주민투표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지만 2014년에 실시한 '분리독립에 대한 주민투표결과'는 반대 55.3%, 찬성44.7%가 나와서 근소한 차이로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시도는 무산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브렉시트(Brexit)로 인해 스코틀랜드는 또 한번 독립의지를 불태웁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 주민의 과반수이상이 유럽연합에 남을 것을 희망했으나 브렉시트는 결국 이뤄졌고, 이후 스코틀랜드 어업은 높은 관세탓에 EU(유럽연합)시장을 잃고 맙니다.
더불러 코로나19의 최대피해국으로써 중앙정부의 대처에 실망한 스코틀랜드는 이 덕분에 분리독립이 다시 정치권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합니다.
이에 현재의 <보리스 존슨>총리는 '국민투표는 적어도 한 세대에 한번만 치러져야 한다.'라고 하며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주장에 선을 긋습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승인없이도 다수당인 스코틀랜드는 이번 2021년 5월 스코틀랜드의 의회선거에서 과반을 득표할 경우 분리독립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었습니다.
<당시 스코틀랜드 초대장관의 말>
'올해 2021년 5월, 스코틀랜드를 더 나은 나라로 만들 수 있도록 국민여러분께서 믿음을 주시길 부탁드릴 겁니다. 지난 발자취를 평가하시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지지해 주시길 부탁드릴 겁니다.'
지난 스페인 카탈루냐 독립투표 때 물리적 충돌이 일어난 것을 생각해 보면서, 또 한번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영국을 단지 가)신사(Gentleman)의 나라 나)세계에서 가장 멋진 영어를 들을 수 있는 나라로만 생각하십니까?
감사합니다. 주님이 항상 동행해 주시는 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아주 잘 정리되어 있어 영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