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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내린 날에는 안부를
‘우르르쾅쾅’ 비가 오는구나 싶었는데 밖이 요란하다. 또 다시 ‘우르르쾅쾅’ 전투기라도 지나가듯 요란한 굉음에 불안해지는데 밖은 아이들 소리로 시끄럽다. 살짝 밀어 열어둔 창틈으로 바람이 차다. 문을 닫으려 창문 앞에 서서 틈새로 고개를 내미니, 온통 세상이 하얗다. 어느새 하얀 눈이 나뭇가지에도 아스팔트 위에도 수북하다. 밤하늘은 붉은 빛이고 눈밭으로 뛰어나온 아이들의 흥겨운 소리는 드높다. ‘아, 첫눈은 고요히 내리는 게 아니구나. 아이들의 환호 소리로 첫 눈만큼은 소란스럽게 내리는 거로구나.’ 생각했다. 문득 전화가 걸고 싶었지만 이제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관두었다. 마음 한 컨에도 시린 눈이 쌓이는지 속이 차다. 하지만 손은 오히려 창을 활짝 열어 제친다. 손이 시리다. 따듯한 코코아를 타서 마시지도 않고 손에 쥐고 내리는 눈 구경이다. 여러 상념들이 하얀 눈 위에서 눈발처럼 흩날린다.
첫눈이 오는 소식을 서로에게 30년간 알려준 두 사람이 있었다. 그 둘은 흔히 추측하는 남과 여가 아니다. 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수필집을 내놓고 시문학으로 돌아선 금아 피천득 선생이고 다른 한 사람은 월간 <샘터>의 창간자 김재순 선생이다. 그 둘이 맺은 인연은 강산이 세 번도 더 바뀐 세월의 때가 묻은 빛 좋은 상감청자 하나를 보듯 편안하다. 그 둘이 나눈 대화는 질그릇처럼 투박하면서도 정겹다. 자기를 알맞는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친구라는 금아의 말마따나, 그 둘의 우정은 금아 선생에게 우암(김재순씨의 아호)이 일본 출장에서 <시인을 위한 물리학>이란 책 한 권을 선물하면서 두터워지게 된다. 이 후 그 둘은 첫눈이 오는 날 연락하자고 한 그 약속을 피천득 선생님 이 세상 소풍을 마친 날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질그릇처럼 투박하면서도 오래 묵어 더욱 정겨운 우정이다.
첫 눈이 내린다. 손에 쥔 코코아 잔도 식어간다. 히로코가 떠오른다. 이와이 슈지의 영화 <러브 레터>에서 히로코도 두 손에 꼭 쥔 찻잔을 홀짝이며 말없이 내리는 눈을 응시했다. 겨울 산에서 조난을 당한 자신의 약혼자 후지이 이쯔기를 앗아간 설산. 그렇게 애인을 잃은 지 2년이 지난 다음에야 간신히 찾아온 설산에서 히로코가 외친다. “잘 지내요? 전 잘 지내요.”라며. 함께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보고 있던 그는 TV 앞에 바짝 다가가 쪼그려 앉은 채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이 어이없게 느끼진 내가 물었다. “슬퍼?” 그러자 그는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며, “그럼, 안 슬픈데 이러겠어?” 그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그리워해주겠구나. 그렇다면 이 사람하고는 살아도 되고, 헤어져도 되겠구나.” 그런데 그는 없다. 아무 곳에도....... 아름답고 완벽한 것들은 덧없이 사라져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 때 바라만 보아도 심장이 멎을 것 같던 사랑도 눈처럼 녹고 지상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예 없는 것 같다.
추모식에서 후지이의 어머니를 만난 히로코는 후지이가 없는 후지이의 집으로 따라간다. 그곳에서 이츠키의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후지이의 옛 주소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비록 그 집이 사라지고 국도가 놓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녀는 편지를 쓰고 그 주소로 부친다. 죽은 애인을 살아있는 냥 믿고 싶은 히로코이다. 프로이트의 1917년에 발표된 [애도와 우울증]은 죽음 충동에 대해 다룬 논문이다. 우리 모두는 연인을 잃거나, 가족을 잃었을 때 견디기 어려운 슬픔에 빠진다. 그러나 다행이도 시간이 흐르면 상실의 상처에도 새살이 돋아 과거의 아픔으로 묻어둘 용기를 되찾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애도 없이 삶의 재생은 없고, 상실의 고통 없이 삶은 이어질 수 없다. 부족함이 없던 어머니의 몸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인간은 누구나 상실을 경험한다. 탄생은 역설적으로 최초의 상실 경험이다. 따라서, 인간은 상실을 극복할 힘을 어느 정도 갖고 태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뜻밖에도 죽은 애인과 같은 중학교, 한 반 친구였던 여자 후지이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리고 영화는 히로코가 후지이를 만나기 이전의 과거로 한 발 한 발 가까이 접근한다. 영화 속 시공간은 현실에서의 히로코가 여자 후지이와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과거 속으로 옮겨진다. 대략 10여년 전, 히로코가 후지이를 알지 못했던 시절, 여자 후지이를 좋아하는 남자 후지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도서대출카드의 뒷면에 앳띤 후지이의 모습을 그려 남겨놓는다. 갑작스런 아버지 상을 당하고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갈래 머리 소녀 후지이는 눈밭 속에서 여름날에는 훨훨 날아다녔을 잠자리가 고스란이 손상되지 않은 채 얼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다 식어 싸늘해진 코코아 잔을 잡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바로 이 장면, 이 장면이 내 마음에 가장 깊이 새겨져 있었다. 눈밭 얼음장 밑에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던 잠자리. 우리는 누군가를 추억할 때 그 모두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시간은 아픈 추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통해 좋았던 기억들도 서서히 망각되어지거나 억압된다. 그렇지만 한 사람 전체에 대한 기억이 어느 순간 온전히 재생된 듯 느껴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있다. 바로 눈밭에 얼어있던 '잠자리'가 불러들이는 여름날의 추억처럼.
여자 후지이는 남자 후지이가 전학을 간 뒤로도, 그가 자신을 좋아했던 것도 눈치 채지 못했을 뿐더러, 자신도 남자 후지이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조차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여자 후지이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끝마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죽은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콜록 콜록 기침을 하는 신경증을 앓는다. 장례식날 어린 후지이는 심한 감기에 걸렸고 영화의 말미에서도 아버지를 추억하다 아버지를 앗아가 독감에 걸린다. (그녀는 육체의 환자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죽음을 완전히 용납하지 않는, 즉 애도를 못 마친 신경증 환자 특유의 정신적 상처가 육체적 증세로 전이된 케이스에 해당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츠키를 회상하는 두 여인은 주고받는 편지 속에서 각자가 극복해야 할 과거의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해 나간다. 상대를 추억하고 추억하는 과정 속에서 그를 떠나보내는 것을 애도라고 프로이트는 위의 논문에서 발표했다. 히로코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 지속된 편지로 인해 여자 후지이도 자신의 기억을, 자신의 상처를 더듬거리게 되었고, 관객은 분석자의 입장에서 두 사람의 고백을 듣는다.
다행히 현실의 히로코에게는 그녀의 새 연인 아키바가 있다. 그는 이츠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히로코를 후지이가 묻힌 설산으로 데려가 마침내 이 모두를 인정하게 돕니다. "잘 지내요? 전 잘 지내요." 그녀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그런데 번지수 없는 곳에서 받은 편지나, 그녀가 산에서 들은 메아리를 이미 남자 후지이의 답변이라 할 수는 없다. 한편, 도서관에서 일하는 여자 후지이는 어느날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고교 후배들로부터 죽은 남자 후지이가 자신을 연모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때 여자 후배들이 전해준 책의 제목은 R.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마지막으로 여자 후지이는 히로코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내용은 이렇다.
“가슴이 아파서 더 이상 이 편지는 못 보내겠습니다.” 이 말은 즉, “이제 애도의 기간이 끝냈습니다”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아무리 괴롭더라도 애도의 시간에도 끝이 있기 마련이다. 상실한 모든 것을 애석하게 기억하면서, 마음이 찢기든 괴로움을 느끼면서, 우리는 추억 속의 그로부터 자아를 서서히 분리해 나가고, 추억 속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간의 괴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과거 속의 대상으로부터 성숙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가고 없다. 하지만 세월 속에 묻혀간 그와의 추억을 전부 애도했음에도 첫 눈이 내리는 오늘 밤, 문득 그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진다. 클릭 한 번으로 부칠 수 있는 인터넷 메일이 아닌, 우표 부치고 우체통에 넣어 보내는 그런 편지를 쓰고 싶다. 참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크리스마스 이브 갑자기 날리는 눈발을 보고 급한 일도 제쳐두고 찾아와 준 고마운 사람이었는데. 눈 내린 설악산을 두 손 꼭 붙잡고 올랐던 손이 따듯한 사람이었는데, 나 역시 영화 속 히로코처럼 다 쓴 편지 봉투에 적을 주소가 없다. 그래서 눈 오는 날은 참 힘들다. 게다가 첫 눈 오는 날이 내 생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눈 녹으면 언 땅에서 차디차게 이어 붙은 잠자리 한 마리 보일까봐 아직도 두렵다. 이제 코코아는 버려야겠다. 그리고 편지를 써야겠다. 히로코처럼 내게도 누군가가 이츠키가 되어주었으면!
피터의 편지
대체로 첫눈은 기별만 알리고 살그머니 녹아 사라지는데, 올 겨울 첫눈은 유난스럽다. 번개까지 동반하고 사정없이 내린 첫 눈, 그리고 동장군의 실력 행사가 잠시 누그러진 사이 또 다시 제법 소담스럽게 눈이 또 내린다. 연이틀에 걸친 첫눈행렬이다. 내게는 눈 내리는 날이면 꺼내 보는 그림책이 여럿 있지만 애즈라 잭 키이츠의 눈 오는 날』만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아이를 깨우는 소박하면서도 천진한 그림책은 드문 것 같다. 눈 오는 날』의 풍경을 담아낸 멋진 그림책은 많지만 눈 온 날의 설레임을 아이의 마음으로, 아이의 활동으로 그려낸 그림책의 백미는 역시 애즈라 잭 키이츠(Ezra Jack Keats)의 눈 오는 날』다. 하여, 생각난 김에 눈 오는 날』을 책장에서 꺼내 보았다. 역시 정겹다. 주인공 피터는 어린 시절 내 모습 같기도 하고, 오늘 낮에 보았던 아이들 같기도 하다. 내친 김에 피터가 주인공이었던 또 다른 그림책도 보고 싶었다. 맞춤하게 이야기 또한 편지를 다루고 있기에. 책장을 빼곡하게 채운 그림책 중에서 책등만 살펴 피터의 편지』를 뽑아내는 일이 우편물 더미에서 내게로 온 연애편지를 찾아내는 사랑에 빠진 소녀의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눈에 띠지 않을수록 초조해지는 내 마음이 내게도 신기했다.
피터의 편지』는 편지를 쓰는 피터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아무한테도 편지를 쓴 적이 없는 피터의 모습이 피터 엄마 눈에 낯설다. 하지만 피터에게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 꼭 참석해 주었으면 하는 친구가 생겼다. 이름은 에이미. 에이미는 피터의 말마따나 “그-렇-지-만-요, 이번엔 좀 특별”한 여자 친구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기는 했지만 성급한 마음에 피터는 봉투에 우표를 붙이는 것도 깜박했다. 심지어 생일 파티 시간을 적는 것도 엄마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마저 적지 않고 에이미를 초대할 뻔 했다. 밖은 비가 내릴 듯 잔뜩 찌푸린 날씨이다. 노란 비옷을 걸친 피터는 편지를 손에 들고 집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우체통으로 가는 길에 있는 에이미의 집 앞에서 피터는 멈춰 섰다. 에이미의 방 창문을 흘끗 보았지만, 에이미는 보이지 않았다. 피터는 혹여 생일 파티에 초대된 에이미를 보고 남자애들이 뭐라고 할지 생각하자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친구들의 놀림이 걱정이 되었다. 그 대 갑작스레 하늘이 번쩍 하던 천둥 소리가 났다. 그리고 거센 바람이 피터의 손아귀에 있던 편지를 날려버렸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편지를 잡으러 쫓아가는 피터를 약올리듯 편지는 자꾸 자꾸 날아갔다. 좀체 잡히지 않는 편지를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마침내 약해진 바람이 놓아준 편지가 땅바닥에 내려앉았지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에이미가 길모퉁이를 돌다 또 다시 불어대는 바람에 날리는 편지를 보았다. 둘은 편지를 잡으려 달리다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피터가 편지를 붙잡았다. 엉겁결에 피터는 옆에 있던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그 모습에 마음 상한 에이미는 울며 뒤돌아 달아나 버렸다.
피터는 낙심했다. 자신의 어리석고 용기 없던 행동 때문에 에이미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에. 또한 생일 파티에 에이미가 와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피터의 발걸음은 빗물에 젖은 운동화처럼 무겁기만 하다. 드디어 생일 파티 날, 피터의 속내를 모르는 아이들은 어서 빨리 파티를 시작하자며 성화이다. 시무룩한 피터는 자신의 생일날 웃을 수 있을까? 즉 에이미가 피터가 우체통에 넣은 편지의 오해를 풀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피터는 속으로 소원을 빌고 케이크 촛불을 한 번만에 껐다. 그림책 속의 주인공 피터처럼 오늘이 내 생일이었다. 고맙게도 내 생일을 기억해준 고등학교 동창의 축하 전화가 있었고, 동료들의 축하 인사가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식구들이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피터처럼 소원을 불고 케이크의 촛불을 껐다. 네 번만에야 껐다.
이 그림책 속의 피터는 서양 그림책 속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흑인이다. 눈 오는 날』에서부터 등장한 피터는 일련의 그림책 속에서 성장을 하고 여섯 번째로 상자 속 여행』을 마지막으로 청소년의 모습을 보이며 그림책 계를 떠났다. 이 작품의 작가 에즈라 잭 키이츠의 본명은 제이콥 에즈라 카츠(Jacob Ezra Katz)이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는 유대인이다. 그가 그림책 계에 입문했던 1950년대, 당시 고지식한 미국 출판계는 유대인 신출내기를 곱게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는 이름을 에즈라 잭 키이츠로 바꾸었다. 그렇다고 그가 소수민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이나, 소수민족으로서의 타민족, 타인종에 대한 관심을 무시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미국 땅에서 유대이민자로서 당당하게 살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림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그림 대회에서 인정받은 그의 재능을 애써 무시했다고 한다. 경제공항기, 실업자가 넘쳐 나는 시대에, 커피 가게 종업원으로 근근이 가족을 부양하던 유태계 폴란드 아버지의 입장을 헤아려 볼 때, 아들이 지의 행동이 너무 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미술의 길로 들어서 에즈라 잭 키이츠의 성공을 정작 그의 아버지는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 때까지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던 오해도 가난한 아버지의 유품인 지갑 속에 들어 있던 꼬짓해진 신문 기사 때문에 풀렸지만, 에즈라 잭 키이츠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을 고백할 수 없었다. 대신 이를 계기로 더욱 자신과 같은 처지인 소수민족을 보살필 것을 결심했다. 뉴욕의 하층민들이 사는 차이나타운, 리틀 이탈리아를 뒤져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닌 에즈라 잭 키이츠는, 어느날 <라이프>지에서 흑인 꼬마의 사진을 보고, 자신의 책 주인공 피터를 만들어냈다. 에즈라 잭 키이츠 이전에는 미국 그림책 작가로서 흑인을 그림책의 주연으로 발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회적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된 흑인 꼬마 피터의 기용은 에즈라 잭 키이츠에게 그림책계의 아카데미 감독상이라 할 수 있는 칼데콧 메달을 안겨주었다. 그 책이 바로 1963년 발표된 눈오는 날』이다. 또는 피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어린이들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심리의 변화를 다양하게 조명한 공로가 인정되어 1970년에는 아카데미 명예상 격이라 할 수 있는 칼데콧 아너를 피터의 안경』으로 수상하게 되었다. 소수와 어린이를 위해 평생 노력한 그의 예술혼에 마땅히 주어져야 했던 상이기에 피터의 편지』를 소개하는 동안 내 마음도 뿌듯하다.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
첫 눈 치고 제법 많은 눈이 내린 뒤 떨어진 기온으로 눈길이 빙판길이 되었지만, 동네 꼬마 녀석들은 마냥 신이 났다. 공터 마다 아이들이 한가득 모여 사내아이들은 빙판 위를 지치고 계집아이들은 삼삼오오 어울려 나무 그늘에 녹지 않은 굳어진 눈덩이를 손으로 모으며 깔깔거렸다. 강풍이 불지만 아이들 웃음소리에 추위가 잠시 물러서주었던 눈 내린 날 정오의 풍경. 절로 미소가 입가에 떠오르고 눈길이 아이들에게 머물렀다. 그 때 인형처럼 예쁜 여자애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그 애 뒤로는 첫 눈에 보기에도 그 애를 짝사랑하는 듯한 남자애가 뒤따라왔다. 풋풋한 감정이 하얀 배경 탓에 더없이 순수해 보였다. 그리고 뇌리를 얼른 스치고 지나가는 영화 한 장면, 에릭 시걸 원작을 바탕으로 아더 힐러 감독이 만든 영화에서 눈밭에서 구르는 연인 올리버와 제니퍼의 모습.
불치의 병으로 죽은 제니퍼를 그리워하는 올리버는 눈밭에 앉아 이렇게 회상한다. “25살에 죽은 여자에 대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차르트와 바하, 비틀즈, 그리고 나를 사랑했던 여인입니다.” 올리버의 소개처럼 그가 사랑했던 제니퍼는 레드클리프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재기발랄한 여대생이다. 빵집을 운영하는 평범한 집안의 제니퍼와는 달리 하버드 대학에 건물을 기증할 정도로 유복한 배릿 가문의 올리버이다. 이 둘은 사랑은 신분을 뛰어넘지만 죽음까지는 뛰어넘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 만의 힘으로 결혼을 한 이 두 젊은 연인이 생활에 안정을 이루게 되자 찾아온 불청객은 죽음의 선고였다. 1971년 개봉된 영화로 이미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지만, 오늘처럼 눈이 수북하게 쌓인 날 보는 느낌은 각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눈을 배경으로 나누는 둘의 사랑놀이는 정전이 되어버렸다. 이 장면을 시각적으로 뿐 아니라 청각적으로 완성도를 높여준 데에는 프란시스 레이(Francis Lai)가 작곡한 ‘러브 스토리’의 주제가와 ‘눈싸움(snow frolic)'의 기여도를 무시할 수 없다. 눈송이를 뭉쳐 태연작약하게 먹는 제니퍼, 죽어가는 그녀 앞에서 스케이트를 타보이는 올리버.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이 두 곡의 선율은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미 귀에 익숙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선율은 제니퍼가 연주회에서 하프시코드를 맡아 현악기들과 함께 연주한 바하의 협주곡 3번, D 장조(concerto No.3 in D Major)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제니퍼의 모습과 그녀를 바라보는 올리버를 번갈아가며 비춰주는 카메라 워크도 좋았지만, 그녀가 사랑한 바하를 매개로 그녀를 더욱 알게 되는 올리버의 진지한 모습 에서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읽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또하나의 대사가 있다. 아버지와 화해하라는 제니퍼와 싸운 올리버가 제니퍼를 찾아 연습실을 돌아다니다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현관계단에 앉아 울고 있던 그녀를 발견하고 미안한 마음에 용서를 구하는 장면에서의 제니퍼의 말이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예요.” 그런데 이번에도 이 말뜻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랑이 무엇인지, 용서가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내 자신을 만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죽음의 침상을 뒤로 하고 병원을 나온 올리버가 눈길을 걸어, 자신이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지켜봐준 제니퍼가 앉았던 야외 스케이트장 스탠드에 앉아 있는 올리버의 뒷모습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며 길고도 쓸쓸한 여운을 남겨준다. 여전히 잔잔한 ‘러브스토리’의 주제가는 흐르고 있다.
첫눈이 이틀째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깨끗한 아침이다. 아직은 눈밭으로 뛰쳐나온 아이들이 없는지 고요하다. 간밤에는 제법 굵은 눈발이 날렸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는 중간, 마음이 먹먹해져서 코트를 걸치고 잠시 바깥바람을 쐬러 나갔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 위를 디딜 때 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그렇게 잠시 눈밭을 서성이다 돌아와 마저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면 편지지에 무엇을 써야하나? ‘잘 지내나요? 저는 괜찮아요.’라고? 어제 오늘은 소개한 두 영화에서처럼 눈이 내렸다. 그림책 주인공 피터처럼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내게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있다. “가슴이 아파서 더 이상 이 편지는 못 보내겠습니다.” 라고 쓰고 눈물방울로 얼룩진 편지를 봉투에 담고 그대로 봉했다. 그런데 이제는 어디로 보내야 할지 막막하니 눈밭에 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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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어요. 그 동안 거울의 그림책 이야기를 읽지 못해 섭섭했는데, 앞으로는 많이 써 주세요.
사실 요즈음은 그림책 공부를 소홀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 그림책부터 시작한 어린이책 공부이니만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차근히 공부할까 생각중입니다. 관심 가지고 지켜봐 주심에, 기다려 주심에, 하염없이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님의 글을 읽다보니.. 러브레터 도 에즈라 잭 키이츠의 <눈 오는 날>도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는 길에 비디오 가게에서 러브레터를 빌리고 우편물 더미에서 내게로 온 연애편지를 찾아내는 사랑에 빠진 소녀의 기분으로 책꽂이에 꽂혀있을 눈오는 날 을 만나야 겠습니다^^*
경지의 필력이십니다. 스크랩합니다. 저는 새롭게 가입한 신규회원입니다. 검색해보니 거울님은 2년 동안 새로운 글이 없네요. 아쉬워요. 이야기밥에 올라온 거울님 글을 모두 읽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보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군요. 거울님의 마음이 느껴지고, 제 마음도 느껴집니다. 저는 2년 전 거울님 마음이 되었지만, 지금 거울님은 또 다른 마음이겠구나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생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그리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