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 저무는 서녁 하늘 아래 한 송이 백련의 자태가 아름답다
동서남북 사방의 수호신중 서쪽하늘은 백호가 주관한다
색으로 치면 흰색이다. 연꽃의 바탕색과 절묘한 궁합을 이룬다
공주 영평사 연못에서...

영평사는 여름에는 연꽃으로, 가을에는 구절초로 유명한 작고 아담한 절집이다
경내에는 여름 템플 스테이로 많은 불자들과 학생들로 붐볏는데 이방인이자 불청객인 나로서는
몹시 허기가 져 공양밥 한 그릇 얻어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영평사 경내와 절집 주변에는 연과 함께 다른 꽃들도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특히 여름을 대표할 수 있는 꽃인 능소화와 원추리가 많이 보였고
간혹 도라지도 그 틈새에서 자라고 있었다

비가 내린 탓인지 능소화가 푸른 하늘아래 물을 머금고 있다
현상소 아저씨의 실수인지 필름 하단에 스크래치가 보인다...ㅠ.ㅠ

대웅전 옆 소나무 아래 한 송이 원추리가 내 시선을 잡아 끈다
사진 찍는답시고 홀로 싸돌아 다니는 내 모습을 닮아서 그런가보다
청순하면서 고고한 자태는 날 사로잡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연못이나 강가에 비치는 사물의 모습은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고
사진으로 표현해보면 더욱 그렇다. 파란 수면이 깨끗한 필터 역할을 해서 그런가^^
호암 미술관 연못에도 붉은 연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오랜 시간 갖은 풍파에 귀퉁이 한쪽이 닳아버린 향천사 오층석탑
탑 주위로 이름모를 많은 꽃들이 친구처럼 다정하다
천년 세월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온 저 석탑은 산처럼 든든하다
부동여산(不動如山), 내가 살아가면서 닮고 싶은 이미지이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젤로 보기 조은건 연인끼리 혹은 가족들간의 다정한 모습이다
특히 젊고 아름다운 연인들을 보면 날카로운 비수로 심장을 후벼파듯이 몹시 아팠던
그 옛날 가슴시린 사랑이 너무나도 그립다.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조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떨어진 연꽃이 애처롭지만 그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빨리 시들거나 쉬이 마르지도 않는것 같다
아마도 고귀한 품성을 인생의 끝까지 가져가라는 부처님의 뜻은 아닐런지

제주에서 9년 그리고 북청에서 1년, 약 10여년간의 유배생활과 많은 고초를 겪으신 후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하고 독보적 대학자가 되신 완당 김정희 선생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예산 추사 고택에 피어난 붉은 꽃을 바라보며 나도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수원 화성을 답사하는 도중 가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우연히 바라보게 되었다, 기분 조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원화성 방화 수류정에서 바라본 동북포루
나라꽃인 무궁화가 궂은 날씨에도 활짝 피어 나를 반긴다
출사시 촬영한 7-8롤의 필름 중 유난히 한 두컷은 오래 기억에 남아
현상과 스캔 후 몹시 기대가 되는데 바로 이 이미지가 그랬었다
수원화성은 답사와 사진을 병행하기 조은 곳이다
근처 용주사와 바로 옆에 있는 행궁도 놓쳐서는 안될 장소이다
하루 다리품만 판다면 넉넉히 감상할 있다

팔달문을 지나 첫 출발지인 화성장대로 가는길에 화양루를 들러본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중에도 일부 시민들은 정조대왕의 숨결이 깃든 수원화성을
문화재 전문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답사하고 있었다
이곳 화양루로 가는길은 웬지 낯익은 장소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에 나왔던 곳이란다

수원화성은 여느 성처럼 사대문(동/창룡문, 서/화서문, 남/팔달문)이 있는데 그중 북쪽 대문이 장안문이다
장안문은 성곽시설물 중 제일로 크며 그 안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두 친구들이 조선시대 무관복장을
하고서 수문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둘이 잠시 쉬면서 담화나누는 도중 어깨에 걸친 관모(철립?)의
구슬장식이 유난히 눈에 띄어 다가가 양해를 구하고 한컷 담아본다

주말마다 이상하리만치 비가 자주 내린다
갑사 삼성각 앞에 서 있는 나무가 바람에 몹시 시달리는 모습이 심상찮다
먹구름이 무섭게도 몰려오더니 급기야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요사채 마루에 앉아 비가 긋기를 기다리다 비를 맞고 그냥 걸어가 본다
등줄기가 시원한게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든다

뒤돌아보건대 내 유년기와 학창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의 힘든 사회 생활을 조금이나마 이해했었더라면 근처 약수터라도
모시고 가 많은 대화라도 나누어볼걸 하는 때늦은 후회가 뼈저리다
그런데 정말 알 수 없는 것은 날 그리도 구박한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는 것이다
40대에 요절한 아버지께 나는 당신 살아 생전 "사랑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드리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구박이 말 못할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그리고 마니 사랑했습니다"
아들과 여행을 하면서 왜 이리 옛 생각이 마니 떠오르는지... 나도 늙어가나보다
경복궁 경회루 앞에서 미소짓는 둘째 아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기특한건 우리집에서 젤로 키가 크다는 사실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면 나는 이놈에게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런지

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과 대화를 나눈다
시원한 차 한잔 마시며 파란 하늘 바라보니 지친 몸의 피로가 풀리는것 같다
주위 사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원추리가 날 바라보며 눈 웃음 짓는다^^
꽃의 미소 덕분일까 ? 펜탁스 표준렌즈가 마치 라이카처럼 묵직한 색감을 뿜어낸다

공주에서 예산으로 가는 길
여름 장마로 평소에는 조그만 시내가 물이 불어나 강처럼 변했다
해는 완전히 넘어가고 여명에 잠깐이나마 산마루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먹빛 하늘아래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묘한 4차원의 시공간에 빠져버린 느낌이다
자동차 라디오에서는 박정현의 노래가 흘러 나오고~~
이 순간 나는 우주속에 혼자가 되버린, 그러나 너무 행복한 감정에 휩싸인다
멀리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이런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더욱 부추긴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가면서 한동안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본다
담배를 꺼내 물고 로모카메라에 필름을 장전한다
영평사에서 연꽃을 좀더 가까이 찍을 요량으로 연못에 놓인 수조에 한발을 내 딛는 순간
쭈욱 미끄러지면서 흙탕물에 무릎 깊이까지 왼쪽 발이 그만 푹 빠지고 만다
깨끗하고 정갈한 마음을 지녀야 할 신성한 절집에서조차 욕심을 부리니
부처님의 노여움을 받는건 당연할 터...헐
그래도 카메라가 젖지않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은건 부처님의 자비심일게야^^
니콘 F 75 / AF 24 - 85 G
니콘 F 301 / Micro Nikkor 55mm 2.8
펜탁스 ME / smc-m 50mm 1.7
야시카 Electro GSN
로모 LC-A
후지 리얼라 100 / 수퍼리아 200
아그파 비스타 200, 400
미쯔비시 MX 100
첫댓글 오랬만이네요. 자주들려 좋은 사진, 구수한 얘기 많이 들려주세요. 미네르바님 사진이 곧 부처네요.
회장님도 조은 사진 마니 올려주시고요^^ 반갑게 맞이해주시니 고맙습니다,꾸벅~~
제 발자국 머물다 간 자리에 미네르바님이 ...또 그 자리를 제 발자국이 머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다음 발길이 허락한다면...추사고택 담벼락에서 하트모양의 돌을 찾아봐 주시고 향천사 우측 약수터를 지나 오르며 만나게 되는 연리지에도 눈길이 머물기를 바래봅니다



향천사 주차장에서 우측 흙길을 따라 오르다 만나는 약수터는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맛 참 조았는데, 그리고 이날 향천사는 석축 공사로 몹시 시끄러웠다는...ㅠ.ㅠ
갈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미네르바님의 사진성에 박수를 보내며, 진정한 사진의 맛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사진세계로 저를 이끌어주신 전 교수님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 드립니다 아직도 부족한 저에게 앞으로도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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