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지 45년만에 모교 졸업식에 초대되었습니다.
몇년 전 개교 80주년에 한 번 모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졸업식은 처음입니다.
재경 동창회장님,총무님,상임이사님과 함께 다섯명이 졸업생에게 장학금 수여 임무를 띄고 KTX를 타고 대구로 향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대구는 졸업식같은 큰 행사를 하기엔 좋지 않은 날씨였습니다.
강당에 들어서는 순간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졸업생이 앉아 있어야할 좌석엔 낯선 여성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굽높은 하이힐 구두,착 달라붙는 레깅스에 핫팬츠,초미니 스커트에 핸드백까지, 한껏 멋을 냈지만 어색하기만한 이 아이들이 오늘 졸업하는 후배들이란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45년전 우리는 단정하게 두갈래로 땋아내린 머리에 무릎까지 오는 검정색스커트 양쪽에 하얀 선(흰 칼이라 칭함)을 달고 검정색 상의엔 빳빳하게 풀먹인 하얀 칼라를 덧댄,단정한 모습으로 졸업식장에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기가 막히고 황당함,그 자체였습니다.
애국가 제창을 하는데도,심지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시간에도 떠드는 아이들,
시상을 하는 중에도 시장바닥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대고,교장선생님의 회고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젊은 선생님들은 이런 아이들을 그냥 방치하는 모습에서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45년전 우리는 단정하게 두갈래로 땋아내린 머리에 무릎까지 오는 검정색스커트 양쪽에 하얀 선(흰 칼이라 칭함)을 달고 검정색 상의엔 빳빳하게 풀먹인 하얀 칼라를 덧댄,단정한 모습으로 졸업식장에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기가 막히고 황당함,그 자체였습니다.
애국가 제창을 하는데도,심지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시간에도 떠드는 아이들,
시상을 하는 중에도 시장바닥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대고,교장선생님의 회고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젊은 선생님들은 이런 아이들을 그냥 방치하는 모습에서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까만 머리카락 그대로 둔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염색머리의 대세는 신종풀루 전염성보다 더 강했나 봅니다.
'전설의 고향'에나 나옴직한 헤어스타일이 대부분이었고,학교 주위 환경이 열악해 전체학생의 30% 정도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기 전까지는 분명히 고등학생신분일진데,단 하루를 못참아 완벽하게 기성세대 흉내를 낸 아이들의 심리를 제가 너무 모르는 것일까요?
교장선생님과 동창회 임원의 축사 후에 박수를 치는 장면에도 졸업생이 다함께
"우~~"하는 괴성을 지르는데 참 경박해 보이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48회까지는 시험으로 엄선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로 구성이 되었지만,국가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배정받은 학생들로 구성된 오늘의 후배는 우리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그러나 이 정도인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재경 동창회에서는 모교를 졸업하고 서울 명문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후배 4명에게 재경동창회 장학금 전달차 내려간 것입니다.
모처럼 방문하게 된 모교에 대한 자긍심과 사랑스러운 후배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이던 마음은 실망과 충격으로 싸늘하게 식어감을 느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교가제창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지휘하는 재학생의 차림새가 교복인 모양입니다.
교복의 형태도 바뀌었고 스커트 양옆에 흰선도 없습니다.
식을 마치고 교장실로 안내되어 환담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가장 묻고 싶었던 졸업생의 차림새에 대한 질문을 회장님께서 해주셨습니다.
"교복은 졸업 전에 후배들에게 물려 준다는 취지로 다 회수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교정에서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시간마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바로 교장선생님과 모교 동창회 임원들과 함께 점심식사할 '미가도'란 일식집에 도착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선 바로 이임인사를 하셨고 수고하셨다고 박수로 답했습니다.
즐기지 않는 생선회를 먹고 바로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얼마나 춥던지,을씨년스럽게 내리는 비에 뼛속까지 스미는듯한 한기에 한껏 몸을 움츠린 탓인지,기차를 타고부터 속이 거북해졌습니다.
제발 집에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괜찮기를 마음 속으로 빌며 견뎠습니다.
오후 6시가 좀 지나 집근처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먹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입덧으로 고생하는 임신부처럼 속이 매스껍고 느글거려 남편 저녁상 차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밤새 뒤척이며 고생하다 만 24시간이 지난 이제야 겨우 죽 한그릇을 먹었습니다.
후배들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며 놀란데다 식사후 추위에 노출되어 체하게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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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덕님 실망처럼 동감해요 .보는듯 합니다 얼마전 손녀 졸업식엘 가봤더니 서울 강남 압구정 고등학교 역시 엄숙하한 분위기는 아니였어요. 그래도 염색 머리는 없었지만요.시대의 변화로 된 모습이니 너무 속끓이지 마요. 명문이 이제 큰 인물이 얼마큼 나오는 가에 있지 않을까요? |
2010.02.21
박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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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미장원에서 검고 윤이나는 머리칼을 가진 새내기들에게 자기들의 매상을 위하여 염색을 권하는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던 적이 있어요. 본래의 모습을 예쁘게 가꾸도록 훈도하지 않고 디립따 자본주의 상술에 휩쓸리도록 그냥두는 어른세대들도 문제예요. 제가 늙어보니 여고시절 한창 피어오르던 그 청춘의 색깔이 그립기만 하더이다. 옥덕선배님의 수고로움과 실망이 제게도 그대로 전달되네요. |
2010.02.13
장인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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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제 막내 시동생 밀가루 떡칠을 본 졸업식에도 놀랐는데, 요즘 여고생들 졸업식장도 난장판이로군요. 옥덕님, 저도 그다지 생선회를 즐기지 못하는데, 추위까지 큰 고생하셨습니다. |
2010.02.12
손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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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마치고 교복을 회수하면 다 걷어지지않을까봐 미리 한 모양이지요 명문 경북여고로 다시 거듭나야겠습니다 |
2010.02.12
30회 안혜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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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때 눈이 퉁퉁붓도록 울던시절이 생각납니다.재미동호회에서 그동안 큰돈은 아니라도 십시일반으로 모은 장학금을 보낸다더니 아무말이 없는것을 보니 아직 송금하지 못한것 같습니다.자랑스럽던 흰칼도 없어졌고 이곳 졸업식에 가면 그런대로 숙연한데 좀 심한것 같습니다.이번 동창회 임원들 대구까지 내려가서 수고가 많았읍니다.옥덕님은 항상수고하듯 사진 잘보아 반갑습니다. |
2010.02.12
윤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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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덕선배님의 글을 보고 너무나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 제가 대신 부끄럽고 죄송함을 느끼며, 선배님의 말씀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요즘 세대의 졸업식광경은 일부 매스컴에서도 문제제기가 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 듯 합니다. 세대의 차이로 치부하더라도 저희 세대조차 이해가 어렵고 참담한 심정이라 선배님들께 죄송합니다... 49회 황보숙 |
2010.02.12
황보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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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손자놈의 졸업식에 가서 제가 느낀 소감과 비슷하여 공감이 가는글입니다.그래도 그학교는 교복은 입었는데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의 말씀이던 그 누구의 축사이던 아랑곳 않고 떠들고 잠시도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며 한심했으며 그걸 방치하는 선생님들도 이상하게 여겨졌지요.옛날 우리들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 화가 치밀더군요.장차 우리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옥덕님의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가며 함께 통탄할일입니다.수고했어요.옥덕님~~ |
2010.02.11
28회 최숙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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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덕님 졸업식 관경을 보고 기가 차지요...나도 위에 글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서글퍼집니까...내 모교가 그렇다니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 아우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우리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이지요. 세대가 달라졌지만 눈에 그슬린다고 타이르는 말은 입에 담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자니 속이 안 편하지요. 옥덕님 기분이 안좋으면 꽉 채합니다 ㅎㅎ 졸업식장에 경북여고 졸업생 못 말리겠네요. 모교가 걱정됩니다. |
2010.02.11
28회 서혜숙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