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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장편실록소설 <천강홍의장군 곽재우>대한
김복근 문학평론가의 "해설" 전문全文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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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사초에 기저를 둔 곽재우 의병 전사戰史,
그 돌올한 상상력과 유려한 언술
김 복 근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 문학박사
김현우 작가의 장편실록소설 『천강홍의장군 곽재우』는 우선 재미가 있다. 역사적인 사실과 작가의 돌올突兀한 상상력이 유려한 언술과 어우러지면서 박진감 있는 이야기로 실감나게 전개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70년대 후반에 우연히 발견한 『용사별록』을 해독하면서 저간의 역사적인 사실史實과 전설을 채록하여 주인공의 성격을 작가 특유의 문체와 사상으로 새김질하여 한 편의 환상적 드라마를 연출했다. 사초에 나오는 정사와 새로 밝힌 사료를 바탕에 두고, 사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지명조사와 현장답사를 통해 수집했다. 어렵게 확보한 사초와 사료를 적의한 시점에 전조와 복선, 진술로 실록이나 평전처럼 실감나게 구성하면서 재료에 불과한 스토리를 필연적인 플롯으로 전환하게 된다. 크고 작은 일화는 인과관계를 형성하면서 작가의 지성과 촘촘한 구성력으로 역사적인 사실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공간적⸱시간적 배경은 작가 특유의 문장력과 구성에 의해 사건과 사건으로 맞물리듯 이어지면서 그 당위성이 구조화되어 독자의 눈길을 강한 흡인력으로 견인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새롭게 밝혀낸 사초와 사료에 기저를 둔 서사적 진술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곽재우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기록하기 위해 외손자 신동망과 신시망이 임진 계사년 두 해의 행적을 『용사별록』으로 서술하고, 훗날 성이도와 신시망이 시문과 연보를 보충했다. 곽재우는 낙강에서 신응과 이도순, 조임도, 한강 정구와 뱃놀이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를 기록한 시화와 만록이 『망우집』이고, 부록으로 수록된 사료가 『용사별록』이다.
곽재우는 불세출의 영웅이다. 임진왜란에서 패퇴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간자에 의해 조선의 군사력을 다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순신의 해군과 권율의 육군, 명나라 군대가 원군을 올 것까지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러나 곽재우와 의병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의 사가현 가라쯔시 나고야성 박물관은 임진왜란의 실패 원인을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 이순신 장군과 수군의 활약”에 두었다고 평가한 결론을 영상물로 제작하여 방영할 정도이니 곽재우의 활약은 실로 대단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곽재우에 대한 영웅담만큼 소설도 여러 편 발표되었다. 그러나 『망우선자 곽재우』는 종래의 소설과 달리 일찍이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사냥과 놀이를 통해 군사훈련을 하였으며, 군사지략가임을 드러나게 하는 등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사전에 군량미를 비축하였으며, 활동 공간도 의령에서 의주와 한양, 북경으로 확장된다. 전투 공간은 의령을 넘어 낙동강과 남강을 따라 창녕⸱함안⸱현풍⸱고령‧영산‧밀양‧합천‧초계⸱삼가‧거창‧진주에서 울산⸱거제 등 경남 일원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훗날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를 가면서 그 활동 공간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사실 글쓴이는 이 글을 쓰는 데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다. 소설을 전공하지 않았고, 소설평을 해본 일도 없다. 사양하다 선배 작가의 강권으로 미력한 붓을 들게 됐다. 부족하지만 “사초에 기저를 둔 곽재우 의병 전사”라는 주제로곽재우에 대한 새로운 시선, 사료에 근거한 현대적 해석, 전조에 의한 유기적 구성, 우리말 구사와 유려한 언술로 나누어 언급함으로써주어진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1. 곽재우에 대한 새로운 시선
곽재우를 제대로 호칭하려면 “천강홍의장군 충익공 병조판서 망우당 현풍 곽공 재우 선생”으로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만큼 그의 업적은 크고 신비롭다.
《연려실기술》,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등의 사초에 의하면 곽재우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한가로이 시를 읊고 술과 낚시로 세월을 보내던 시골 선비였다.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그 인연으로 조식의 외손녀와 혼인했다. 1585년(선조 18) 34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응시해 뽑혔으나 얼마 후 글의 내용이 선조의 마음에 들지 않아 취소됐다. 이 일로 인해 곽재우는 벼슬에 대한 뜻을 접었다. 그런 그가 의병을 일으키게 된 것은 임진년에 왜군이 조선 땅으로 침략했기 때문이다. 곽재우는 무인 출신은 아니었지만, 군사를 일으켜 왜군과 맞서 싸웠다. 그는 훗날 현풍 비슬산자락 가태리와 영산 창암의 망우정에서 선인처럼 지내다가 1617년(광해 9)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익忠翼이란 시호를 받았다. 전쟁에서 스스로 떨쳐 일어나 적을 물리쳤으나 살아생전에 공을 마다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현우는 장편실록소설 『천강홍의장군 곽재우』에서 곽재우에 대한 사초와 『용사별록』이라는 사료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밝혔다.
지금까지는 책 읽던 선비가 갑자기 의병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학문과 함께 활쏘기, 말타기 등 무예와 서예, 산술, 언어까지 미리 준비된 상황에서 자신있게 군사를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1-①“사어서수射御書數, 곧 활쏘기 말 타기 같은 무예와 서예와 산술을 계수 곽재우는 과거 공부를 하면서 여가가 있으면 연마했다.”
의주와 중국을 드나들며 군사훈련과 편전이란 새로운 무기에 대한 사용법을 익혔고 중국말도 할 수 있었다.
1-②“박수덕 군관과 친해지니 자연히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교습을 받을 수가 있었다. 군 연병장을 들락거리면서 군사들이 사용하는 창, 칼, 활, 방패 등 실전 무기를 가지고 병사들과 훈련을 똑같이 받았다. 목사의 아들이라 박수덕 군관은 편의를 제공하려 했지만, 마다하고 군사들과 똑같은 자세로 훈련에 매진했다.”
1-③“이게 편전片箭이라는 겁니다. 평소에 쏘는 활은 화살이 백 보 이백 보를 나가지만 완력이 없는 군사들이 쏘면 화살이 가다가 그 힘이 꺾여 중도에 힘없이 떨어져 버리는 게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편전입니다. 이건 중국 사람들도 모르는 군사기밀입니다.”
1-④“1578년(선조11) 그가 스물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명나라 북경에 가는 기회를 잡기도 하였으며, 중국말을 알아듣게 되고, 말하기도 했다.”
1-⑤“명나라 장수 총병摠兵 유정劉綎이 군사들을 이끌고 성주 팔거현에 와 주둔하자 중국말을 할 줄 알았던 곽재우는 유정을 찾아갔다. 의병군 장수들과 함께였다.”
또한 임란 전에 범을 잡는다는 핑계로 자굴산에서 군사훈련을 했다.
1-⑥“곽재우는 고함을 치면서 화살을 날렸다. 거대한 몸집이었다. 흔히 용감하고 거센 싸움을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 했던가? 범을 향해 마주 선 곽재우의 자세는 바로 그와 같았다. 화살은 범의 머리 급소에 가 꽂혔다. 꼬꾸라질 듯하며 공중으로 치솟는데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이 빠르게 날아갔다. …… 사냥꾼과 몰이꾼들이 쏜 화살도 여러 발이 배나 가슴 급소에 꽂혔다.”
창녕군지(하.p.910)와 함안군지(p.196)의 기록에 의해 곽재우와 함께 활약한 의병장이나 용장들을 많이 찾아냈다.
1-⑦“이숙과 신초는 창의하여 홍의장군 곽재우 휘하에서 의병군으로 함안과 영산에서 협동작전으로 왜군과 싸웠다. 박진영은 고향에 돌아가 의병은 모으니 그의 부친 동천桐川 박오朴旿가 의병 대장이었으며, 함안 군수 유숭인 휘하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곽재우는 군량미를 구하기 위해 그의 자형 허언심을 찾아가 군량을 강제로 뺏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설득에 의해 확보하였음도 드러났다.
1-⑧ “곽재우의 끈질긴 강청强請에 자형은 결국 노복 수십 명과 양곡을 내놓기로 약속하였다. 또 앞으로 군량미 확보에 힘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하늘에서 내린 용마인 백마를 타고, 스미골 판관댁 아가씨가 준 궤짝 속의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었음을 밝히면서 전조에 의해 필연적인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1-⑨“곽 대장이 타고 다니는 용마와 색이 같은 백마 다섯 필이었다. 그 다섯 필과 함께 철릭 다섯 벌도 가져 왔는데 곽 대장이 입고 있는 붉은 색 옷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천강홍의장군 곽재우> 붉은 깃발도 다섯 개였다.”
1-⑩“곽재우를 만난 도원수 권율도 거제의 왜적을 치라고 요청했다. 그 자리에는 조방장 홍계남, 충청도병마절도사 선거이도 있었다. 김덕령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용맹스러운 기세로 승전을 장담했다. 견내량을 건너 그들은 이순신 통제사의 배에 올랐다. 곽재우는 이순신과 초면이었으나, 군사 정보를 위해 서신을 주고받은 일이 있어서 구면이나 마찬가지였다.”
김현우 작가의 『천강홍의장군 곽재우』는 지금까지 곽재우에 대한 평전과 소설, 극본에 언급되지 않은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곽재우는 남명의 제자로서 학문만 한 것이 아니라 무예와 서예, 산술을 연마했다. 특히 의주에서 군사들이 사용하는 병기를 가지고 병사들과 같이 실전훈련을 받았으며, 또한 쇠뇌나 편전 같은 병기 사용을 전수받아 후일 왜군의 조총에 대응하였다. 그가 의주에서 중국말을 배워 스물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나 후일 성주에서 명나라 장수 유정을 만났을 때도 중국말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임란 전에 범을 잡는다는 핑계로 자굴산에서 군사훈련을 했다.
이숙과 신초, 박진영, 조방 등 많은 의병장과 심대승, 배맹신 등 한 몸이 되어 싸운 17의장과 신갑, 손인갑 등 용장들의 활약상을 찾아냈으며, 군량미도 사전에 확보하였음이 드러났다. 또 정암진 싸움에 삼가, 의령 연합의병군의 분전과 의령읍성으로 진출하려는 왜군을 벽화산성으로 유인 궤멸하여 큰 승리를 거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도원수 권율과 홍계남, 선거이와의 수륙 협동 작전과, 견내량을 건너 이순신 통제사를 만나 군사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반가워했다는 사실과 정유재란 때 화왕산성 싸움을 성을 지키기만 해 “수성守城”이라 해 왔으나 왜군이 산성 동문 좌우 골짜기로 우회한 공격으로 인해 치열한 전투가 있었고, 수천 명의 왜군을 격퇴하여 산성을 방어했음도 또한 밝혔다.
이 이외에도 크고 작은 일화들이 씨줄과 날줄로 연결되면서 곽재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어 기록하는데 주력했다.
2. 사초에 근거한 현대적 해석
김현우의 『천강홍의장군 곽재우』는 사초와 사료에 기저를 두고 있다. “사료가 없으면 역사도 없다.”는 말처럼 사료는 역사의 근간이 되고 소설의 기저가 된다. 사초와 사료는 수없이 많이 있으며, 그 종류와 형태도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사료를 문자 기록과 구비전설口碑傳說, 실물實物의 세 종류로 구분한다.
문자 기록은 문자에 의해 기록된 문서를 말하며, 구비 전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문자로 서술되어 내려오는 사료로서 각 민족의 상고사는 대개 이러한 사료에 근거해 쓰이는 경우가 많다. 전설이라 함은 어떠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의견을 더하여 서술된 것을 말하고 실물은 유물이나 유품을 의미한다.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인식과 통찰력, 혜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역사소설은 60이 넘은 이후에 써야 한다.”는 이어령의 말처럼 역사 소설가에게는 역사적인 사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수집된 사료는 사실에 대한 진위眞僞를 확인해야 하며, 새로운 구성과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삶의 연륜과 지혜가 요구된다. 소설 『망우선자 곽재우』는 작가가 오랫동안 역사적인 사초와 사료를 취재하여 구성하고, 재해석한 결과의 산물이어서 신뢰가 간다.
2-①거룬강〔岐音江, 岐江〕 바로 그곳은 북쪽에서 흘러오는 낙강洛江이 동으로 물길이 돌아 흐르면서 ‘東’자 붙어 ‘낙동강洛東江’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오는 강폭이 갑자기 넓어지는 곳이었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진주를 거쳐 흘러오는 남강南江과 합류하는데 의령 쪽은 거룬강 나루, 영산 쪽은 창나루(倉날)라 불리었다.(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곳 기음강은 가야진이라 기록되어 있다.)
2-②‘곽郭장군과 천병’. 요괴를 쫓아내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사용한 의병(疑兵), 홍의, 철립, 장도와 병서가 든 궤櫃를 얻게 된다는 창녕지방에 구전되어 오는 전설.(창녕군 구전문학. p.235.)
2-③이때 왜적을 토벌해 순절한 장졸들과 백성의 원수를 갚지 않는다면 얼마나 분한 일이겠소? 그래서 죽더라도 백성의 도리를 다하여 회한悔恨이 없도록 창의하여 싸우고자 하오! 곧 왜적을 토벌하여 나라에 보답하겠다고 선조님을 모신 사당에 어제 가서 고유하였소. 또 적과 싸워야 할 수령 방백이 겁을 먹고 적을 피해 다니기만 하니 비록 초야의 서생書生일망정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고 무인武人도 아니지만도 어찌 나서지 않을 수가 없겠소?”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사실이라도 그것을 분류하고 재정리하지 않으면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가 없다. 김현우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자료를 수집했고, 발굴된 자료를 정리하여 재해석했다. 사료가 전하는 역사적 사실은 극히 일부의 정보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 내용 또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것을 만들거나 남긴 사람에 의해 선택된 것이어서 편견이 있거나 불완전한 경우도 많다. 사료는 역사를 구성하는 근본이 되는 것으로 사적 진실이 갖추어지지 않거나 확실하지 않으면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구명하고, 곽재우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밝히기 위해 작가가 활용한 사초와 사료는 실로 다양하다. 문자 기록과 구비 전설, 향토사를 연구하면서 찾아낸 지명과 지역에서 사용하는 토박이말을 사료로 활용하여 역사적인 진실을 밝히는 데 주요한 구실을 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료에 의해 사실을 밝혀나가는 작가의 소명의식이 예사롭지 않다.
3. 전조에 의한 유기적 구성
전조前兆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타나보이는기미나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미리 예상하도록 하는 현상을 말한다. 유사한 술어로는 복선伏線이 있다. 복선은소설에서 앞으로 전개될 사건을 미리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사건의 가능성을생각과 감정,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미리 암시하는 것이다.
소설 문학에서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 행동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연은 원인을 밝히지 않고 결과만을 제시했을 때 생긴다. 우연히 반복되거나 원인을 제시한 직후 결과까지 제시하게 되면, 독자는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결과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원인을 서술한 다음 독자들이 원인을 잊어버렸을 때쯤 그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실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현우는『천강홍의장군 곽재우』에서 적의한 시점에 전조와 복선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소설 읽기의 재미를 강하게 유발하는 효과를 준다.
3-①“며칠 후에 만나세. 곧 계수 자네 오늘내일 기이한 인연을 만날 운수네. 하나는 악연이고 하나는 좋은 인연인데 자네가 대처를 잘하면 불운을 피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악연이 따라다닐 걸세.”
3-②어제 문호장이 그랬다. 쓸데없는 의협심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악연을 만드니 신중히 처신하라던 말이 문득 떠올랐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요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주위에 눈에 띈 것이 강가에서 빨래할 때 빨래판 대신 쓰는 둥글납작한 돌덩이였다. 그 무거운 걸 번쩍 들어 요귀를 향해 던졌다.
3-③“부디 가져가서 잘 간수해 뒀다가 장사님께서 큰일을 하시거나 난관에 부닥쳤을 때 황금색 궤짝을 열어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붉은색 궤 안에 든 것도 꼭 필요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평소 하신 말씀이 이 궤짝에 든 물건들은 나라에 큰일이 생겼을 때 아주 긴요하게 쓰일 것이라 하셨으니 앞으로 큰일을 하실 장사님께 꼭 드리고 싶습니다.”
3-④곽재우는 벽장 속에서 보관해 두고 있던 스미골 김 판관네 아씨로부터 받은 붉은색과 황금색 궤 두 개를 꺼냈다. 먼저 붉은색 궤를 열었다. 홍포紅布를 들어내니 그 아래에는 칼 두 자루가 있었다. 먼저 꺼낸 칼자루에는 충의근왕忠義勤王, 또 하나에는 정도향응正道響應이라 새겨져 있었다.
3-⑤배맹신이 홍포를 헤집다가 궤짝 바닥에 있는 족자 한 폭을 발견해 펼쳐 보였다. 그는 족자에 적힌 글을 큰 소리로 읽었다.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옷을 입은 장군이라!”
“바로 계수 곽재우가 기강 돈지에서 낙강을 지킬 용이요 남쪽을 지킬 적제신장이니 하늘에서 내려온 장군이라네! 그래서 낙강 용왕이 용마도 보낼꺼네. 이제 나아가 왜구와 싸울 때는 홍의장군이라 쓰인 홍포를 깃발로 만들어 당당하게 들고 나가게. 저 깃발만 보고도 왜구는 벌벌 떨걸세.”
3-⑥“저 할멈이 그냥 늙은이가 아닐세. 요괴네! 오래전에 곽 장군 자네가 열아홉 살 때 거룬강에서 만났던 그 청의요괴 말일세!”
“악연이로구만! 악연!”
전조는 독자의 흥미를 강하게 유발함으로써 재미를 강화하거나 심리적 준비 단계를 거치게 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사건이 우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의 단편적인 예이지만, 김현우 작가는 복선과 전제를 소설의 전편에 깔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면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이야기를 읽을 때 다음에 일어날 일을 미리 추측하고 예상하면서 글 속에 숨겨진 단서를 찾아 읽으면 글의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단서’와 ‘복선’은 모두冒頭에 나오는 이야기의 전제가 되어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의 실마리가 된다는 점에서 제도적 장치를 단단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예는 소설의 군데군데서 크고 작은 일화로 연계되어 필연적인 사실로 연결되어 소설 읽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4. 우리말 구사와 유려한 언술
『천강홍의장군 곽재우』의 또 하나 특징은 우리말 구사와 물 흐르듯이 유려하게 흘러가는 문장력과 언술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오랜 기간 향토 지명사를 연구한 전문가답게 소설의 전편에 새롭게 느껴지는 지명을 구수한 입담으로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다음 장면에 전개될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장을 넘기게 유도하는 내공이 남다르다. 얼마나 많이 읽고 쓰고 사유하였는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4-1-①자굴산 깊은 골짜기인 쇠목재 아래 갈골(乫谷: 加乙谷, 지금의 가례면 갑을리로 ‘가블’이라 불리기도 한다)에 있는 큰절이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세간리에서는 유곡동 깊은 골짜기와 신덕산의 정삼이재 갈골버재 같은 높은 고개를 여러 곳 넘어야 보리사가 있었다,
4-1-②이두문吏讀·吏頭인 기음강을 사람들은 거룬강, 거름강이라 불렀다. 기강은 곧 낙동강의 갈림길(岐), 갈라진 강이란 데서 유래하는데 산청 근처 상류는 경호강, 진주 부근은 남강, 의령 부근에서는 정암강, 더 하류는 기강이라 불리지만 본류를 통칭하여 남강으로 불렀다.
4-1-③똥뫼(:獨山)란 들판이나 늪 가운데 둥글게 솟은 야산으로 나루터 인근에 여러 곳 있었다.
4-1-④아홉 번 싸워 아홉 번 이겼으니 싸움은 치열했지만 의병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의병의 결사 항전을 알려 주듯 후일 옻고개산 이름을 구진산성九陣山城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으니 곧 아홉 번 진陣을 쳐 아홉 번 다 이겼다는 내력이 담긴 산성 이름이었다.
눈에 뜨이는 몇 개의 문장을 예로 제시하였지만, 토속적인 지명과 나루터, 산이름 등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온다. 문장력도 마찬가지다. 서정적인 표현과 함께 구체적인 사실을 짜임새 있는 문장으로 서술하여 공감을 사게 한다.
4-2-①호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눈앞에 번쩍! 하고 세찬 회오리바람을 뚫고 강물 속에서 강렬한 빛이 솟구쳐 올랐다. 강물이 회오리바람에 말려 오르기 시작했다. 우르릉! 우레가 울리고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칼날 같은 번개가 쉴 새 없이 번쩍거렸다. 둘은 겁이 났으나 문호장의 호령에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버티고 서서 소용돌이로 끓고 있는 강물과 연달아 벼락이 떨어져 꽂히는 용화산을 응시하였다.
4-2-②산은 차가운 강을 베고 누워 있었다.
4-2-③왜적들이 육지의 공격에 정신을 뺏긴 틈에 기름을 부은 보릿짚을 실은 조각배는 쇠나리 왜선 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 역시 요강나루 왜선에도 불이 붙었다. 동시에 배맹신의 군사들이 불화살을 쏘았다. 쇠나리 북쪽 산기슭에 숨어 있던 안기종 군사들과 요강나루 신초 군사들도 왜선을 향해 불화살을 날렸다.
4-2-④나무마다 복숭아가 열려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 바다로 흘러가는 시내가 있는데 그곳에 네다섯 아름이나 될 속이 빈 고목과 그보다 조금 작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무성하게 잎을 달고 서 있어 여름 한 철 그 그늘에서 보내면 좋을 듯하였다.
4-2-⑤곽재우에게는 집 앞 장강(낙동강)이 도道요 구름에 잠긴 산은 법이었다.
낚시는 기다림 거문고는 어짐(賢)이며, 솔잎는 비움(空) 술 한 병은 부드러움이며,
탁상의 종이와 붓은 울림(鼓) 벽의 칼과 활은 의(義)요 빛남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문장이란 학식이 속에 쌓인 다음 문장으로써 밖으로 표현되는 것과 같다. 마치 고량진미가 창자 안에서 퍼지면 기름기가 피부에 나타나며, 맛 좋은 술이 입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빛이 얼굴에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김현우 작가의 문장은 자신이 고구한 사초와 사료를 바탕으로 마치 고량진미처럼, 잘 익은 술처럼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형상화되어 유려한 언술로 표출된다.
5. 사초와 상상력의 혼융
머리에서 말한 바 있지만, 김현우 작가의 대하실록소설 『천강홍의장군 곽재우』는 우선 재미가 있다. 그 뿌리에는 역사적인 사실과 작가의 돌올한 상상력이 유려한 언술과 어우러지면서 박진감 있는 이야기로 실감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역사소설은 역사로부터 빌려온 사실과 소설적 진실성을 지니는 허구를 접합하여 역사적인 인간의 경험을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으로 전환하는 문학 양식이다. 이러한 전환에 필요한 작가의 상상력이나 의도를 조절하는 주제는 역사적 사실을 변형, 수정, 가감하는 기준이 된다.”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김현우 소설은 실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먼저 곽재우에 대한 새로운 시선으로 평전과 소설, 극본에 언급되지 않은 사실을 밝히고 있다. 곽재우는 학문만 한 것이 아니라 무예와 서예, 산술, 중국어를 연마했다. 특히 의주에서 박수덕 군관을 만나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교습을 받았으며, 편전이라는 새로운 군사 무기를 전수받기도 했다. 스물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갔으며 중국말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임진왜란 전에 범을 잡는다는 핑계로 자굴산에서 군사훈련을 했으며, 견내량을 건너 이순신 통제사를 만나 군사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반가워했다는 사실 또한 새롭다. 우연히 의병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어떤 필연성과 사전 준비에 의해 의병이 일어났음을 밝히고 있다.
흔히 소설을 허구적 진실이라고 하지만, 김현우 작가는 우연히 발견한 『용사별록』을 해독하면서 사초와 사료에 바탕을 두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 주력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사실史實과 전설을 채록하면서 오랜 세월 자료를 수집했으며, 발굴된 자료를 정리하여 재해석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곽재우와 의병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밝히기 위해 작가가 활용한 사초와 사료는 다양하다. 문자 기록과 구비 전설, 향토사를 연구하면서 찾아낸 지명과 지역에서 사용하는 토박이말을 사료로 활용하여 역사적인 진실을 밝히고 있으며, 주인공의 성격을 작가 특유의 문체와 사상으로 새김질하여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 작가의 소명의식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작업을 했다.
소설 『천강홍의장군 곽재우』를읽으면서 직접 작품 세계로 유영할 것을 권하고 싶다. 「사초에 기저를 둔 곽재우 의병 전사」는다양한 인물 설정과 전조와 복선이 크고 작은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시점마다 작가의 숨은 의도가 퍼즐처럼 배어 있어 읽는 이의 눈길을 오래 머무르게 할 것으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