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니반메훔"을 일념수행의 방편으로 선택하여서 첫 단계 수행인 삼매 성취수행을 할 경우에, 삼매성취 수행 즉 정행 수행은 관념수행이므로, 항상 관법수행을 일념법 수행에 앞세워서 먼저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호흡관법과 일념법 수행을 같이 하라고 설하신 바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입출식사띠경[ānāpānassatisuttaṃ, 입출식념경(入出息念經)] 법문입니다.
해당되는 경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사띠[Ānāpānassati]를 어떻게 익히고 많이 닦을 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속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비어 있는 곳으로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입가에 사띠[기억]를 확립한다. 그리고 그는 사띠[기억]하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사띠[기억]하면서 숨을 내쉰다. |
위 경문(經文)은 같은 팔리어 문장을 두고 스승님 법문에 근거하여 제가 한글로 직역을 한 것입니다. 숱한 경학자들이나 쟁쟁한 스님들께서 오래 전부터 이 경전을 번역하거나 해석한 것들이 있습니다만, 위과 같이 이해하거나 해석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장 큰 차잇점 중 하나는 ‘사띠’를 일념수행 행위인 ‘기억하다.’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승님 법문에 근거하여 스승님 법문 이후로 제가 누누이 밝힌 것들 중 하나가 ‘사띠’의 어의가 ‘기억’ 혹은 ‘기억하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문제는 일념수행 행위에 해당되는 ‘사띠’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부처님께서 친히 설하신 정행 자체가 다 샛길로 샐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또 한 가지, ‘숨을 한 번에 훅 하고 들이마시고, 반드시 순간 멈추었다가, 일념수행 방편인 옴마니반메훔을 염송(念誦)하면서 열 번으로 맞추어 들이마신 공기를 다 내뱉으라.’고 가르치신 스승님과 달리,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에서 본 경문과 같이 ‘사띠하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사띠하면서 숨을 내뱉으라.’고 설하시는데, 이 차이에 대해서 아뢰자 스승님께서는 ‘그리 해도 되겠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 저도 상황에 따라서는 숨을 들이마시면서 옴마니반메훔을 염(念)하기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소리내면서 수행방편을 생각하거나 기억하는 염송(念誦)의 경우에는 소리내면서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두 분 대아라한께서 가르치신 방식 중 어떤 경우에도, 중요한 점은 관법수행과 일념법수행을 함에 있어서 빈틈이 생겨서 순간 찰나라도 무기심에 빠지거나 수행방편 외의 번뇌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이런 내용의 말씀을 자주 하셨고, 부처님께서는 이런 내용의 말씀을 하신 것을 제가 찾아서 보게 된 바가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정행수행 방식을 잘 음미해 보면 굳이 이런 점을 말씀하지 않으셔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 가르침대로 삼매성취 수행을 할 때에는, 관법수행인 결인관, 호흡관, 설관을 전제(前提)로 먼저 시행하고 바로 이어서 일념법수행을 하게 됩니다. 이 때 빈틈을 두지 말고, 빈틈이 생길 수 없도록, 관법수행인 호흡을 들이마시고 순간 멈춘 후 즉시로 일념법 수행으로 이어가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도 수행 초기에는 관법수행과 일념법수행이 분명하게 그 차이가 인식되지 않았습니다만, 이제는 명확하게 이 두 가지 수행이 너무나 다른 수행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바, 관법수행인 호흡관에서 일념법수행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법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은 역시나 호흡법이라 하겠습니다. 가령 지식을 한다거나, 숨을 다시 들이마시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호기상태를 만들어서 일념을 하는 것들이 지금 저에게는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