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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기행문은 초우산악회의 2009년 신년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중국 황산 산행을 초우의 모든 회원님들과 공유 하고자 허종수 고문님께서 기행문 형식으로 작성하신 것 입니다.
(참고로 신용석 이사께서 올리신 사진과 함께 하시면 더욱 실감이 나리라 생각 됩니다.)
黃山 스케치(2009.1.29~2.1:초우)
여행은 항상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설레임으로 가슴이 뜨겁다.
이번여행은 4일 일정으로 설 연휴를 틈타 황산을 중심으로 상해, 항주 일정을 마련 포커스에 의해 여행을 하게 되었다.
2009.1.29일(첫째날)
오늘은 오랜 가뭄으로 기다리든 단비가 내린다. 15:00 낙동초등학교 앞에 집결 인원점검을 마치고 산행대장(장태삼)과 이황기 전 총무님의 환송을 받으며 공항까지 버스로 이동 출국수속과 함께 17:50분에 부산을 이륙 상해(18:20분)에 도착했다.
중국은 한국보다 1시간이 늦단다. 오늘은 25시간이 되고 귀국하는 날은 하루가 23시간이 되는 셈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상해에도 비가 온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키가 작은 아가씨가 환영 “초우산악회” 라는 피켓을 들고 우리를 맞이한다.
대기하던 버스에 탑승 공항근처에 있는 동해식당이란 명패가 붙은 한식은 별로지만 기내식 덕택으로 배가 고프지는 않다. 식당 앞에서는 쌍십절(설) 4일째라 곳곳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듯 폭죽이 연속으로 터진다. 중국에서는 설 전날부터 1주일간 법정휴무일이고 가장 큰 명절이다. 그밖에도 노동절(5월1일) 광복절( 10.1일)이 유명하단다. 곧장 3시간에 걸친 버스이동으로 항주에 도착 숙박을 하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 된다. 비는 조금씩 오고 고속도로 주변에는 간판은 즐비하지만 가로등이 없고 주행시에는 소등이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도 물거품으로 중국시간으로 밤10:00경 호텔에 도착했다.
신세계호텔로 제법 큰 호텔인지 11층6호실에 방 배정을 받았고 첫날이라 이웃 8호실의 총무방에서 이국의 첫 밤을 시원소주와 김, 땅콩 육포등 한국안주로 첫날을 마무리했다.
2009.1.30일(둘째날)
오늘 일정은 무척 바쁘다.
조식은 호텔에서 정다운 사람끼리 오순도순 둘러앉아 뷔페식을 즐길 겨를도 없이 300km도 넘는 황산으로 이동하여 황산등정까지 마쳐야 하니 서두르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아침 7시 보고 싶은 곳도 많은 절강성의 성도이며 고도인 杭洲를 벗어나기가 아쉽지만 황산으로 이동하면서 중국의 역사와 전설이 묻어 있는 전단강 하구로 항주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西湖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유람선은 못타지만 호수주위의 길을 따라 버스로 관광을 하였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7세기 수나라가 건설한 남송시대의 수도로 있었으며 중국정권 수립 후 황폐해진 서호를 5년 동안 정비하고 호반의 별장들을 정리 대공원을 건설한 둘레가 15km 수심2.8m의 인공호수다. 그 중간지점에 남송초기의 학자이며 서예가로 유명한 장군 악비가 금나라 조사의 침입으로 북송이 멸망할 무렵 의용군에 참전하여 전공을 쌓고 호북성 일대를 영유하는 대군벌이 되었지만 무능한 고종황제와 재상 진회의 모함으로 39세의 혈기왕성한 꽃다운 나이로 살해되고 진회가 죽은 후 혐의가 풀리고 명예가 회복,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악비의 묘와 성역화된 지역도 시간이 없어 가이드의 설명만을 뒤로하고 즐비한 차 문화 공간이 있는 호수주위의 다방들을 뒤로 한 채 고속도로를 계속 달려 황산 맡의 출발지인 풍경구의 중심 탕구에 도착하니 11:00쯤 된 것 같다.
항주를 떠나 황산으로 오는 동안 날씨는 흐리고 안개가 끼었지만 차장주의는 올망졸망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경사가 심한 산등성이에는 거의 차밭이다. 우리의 가이드는 상해 양지국제여행사 국제부 소속으로 35세의 꿈 많은 조선족 처녀아가씨 김애란 씨로 8년째 상해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단다. 기사는 한족으로 금용객차인 55인승 버스와 함께 우리의 길 안내자이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 버스크기에도 13억이 넘는 사람을 태우려면 55명의 탑승 버스를 만들어 우리에게는 무척 비좁다.
항산의 탕구에 도착하여 새로운 황산 가이드를 만난다.
중국은 행정구역을 4등급으로 나누고 1급은 4개의 직할시(북경,천진,상해,중경)와 23개의 성과 5개의 자치구(내몽고,신강위구르,서장,광서장족,영화회족)와 홍콩, 마카오등 특별자치구로 나뉜다. 안휘성(허베이)에 위치한 황산의 안내는 가이드도 황산가이드만이 안내할 수 있단다. 황산의 안내자 신영국씨 역시 조선족으로 남자 가이드다. 황산입구의 해금강식당 3층에서 삼겹살을 곁들인 한국식 음식으로 때우고 간단한 옷가지와 산상에서 하루를 머무를 수 있는 옷가지만 준비한 배낭을 메고 (가방들은 식당에 맡김)우리버스는 뒤로한 채 황산지역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해발800m지점의 운곡 케이불카 있는 지점까지 굽이굽이 돌아 버스로 올라가지만 가는 차장에는 큰 대나무만 안개사이로 언뜻언뜻 보일뿐 시야를 가로 막는다. 안개 보러 여기까지 온 것인가 걱정이 태산이다. 버스에서 내려 황산입장료를 사고 또 케이블카에서 별도로 입장료를 사서 6명씩 한조가 되어 높이 800m를 더올라가는 백아봉을 오른다. 오르는 도중 바깥시야는 안개속에서 간간히 웅장하고 수직으로 뻗어있는 암벽사이로 소나무가 조화롭게 운치를 더하지만 막힌 시야가 기대에 못 미친다. 백아봉에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시신봉에 오른다. 여기는 핵심구라는 간판이 보인다. 핵심구란 황산의 경치가 핵심이란 뜻인지 나만의 생각이다. 시신봉은 황산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소문같이 믿을 수 없지만 운곡사로부터 처음으로 오르는 길목 시신봉을 올라야 비로소 황산풍경의 기이함을 믿는다는 시작할始, 믿을信을 붙혀 始信峰이라 한단다. 시신봉도 우리를 시샘하는지 함부로 풍경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이드는 내일도 황산일출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황산의 길목은 온통 조각같이 깎아서 만든 계단으로 미끄러움을 방지하도록 돌을 쪼아서 일정하고 높낮이도 알맞다. 그리고 길목 옆에는 수시로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자연으로 조화롭게 쓰레기통을 만들어 놓았으며 쓰레기를 줍고 모으는 사람이 자주 눈에 뛴다. 관음봉에서 전망도 뒤로한 채 시신봉을 돌아 흑호송, 부부송, 황산의 개발을 시작하게 한 북해병관 앞의 등소평의 사진과 강택민의 등정기념사진, 그 앞 계곡방향의 몽필생화를 흐릿하게 보고 숙소인 서해반점(호텔)에서 방 배정을 받았다. 서해반점은 보기보다 깨끗하고 분위기도 좋다. 작은 짐까지 숙소에 두고 가벼운 몸으로 황산 탐방에 나선다. 구름도 배회한다는 배운정(황산의 기암과 일몰을 관상하기 좋은 곳)에서 서해대협곡의 탐방로길이 있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위험하다는 핑계로 500m까지만 서해대협곡의 탐방로가 열려있어 갈 수 있는 곳 까지만 갔다 배운정에 되돌아와 광명정으로 향했다. 배운정에서 3km를 가는 동안 중간지점의 飛來石(거대한 돌이 하늘에서 떨어진 모양)에 오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다시 1.5km를 지나 드디어 光明頂(1,860m)이다. 광명정은 3대주봉의 하나로 두 번째로 높은 봉이며 산정은 높고 평탄하여 일조시간이 길다고 하여 광명정이다. 실제로 서서보니 황산의 연봉들이 거의 다보이며 건너 최고봉이라는 연화봉(1864m)과 바로 옆에 옥병봉이 지척에 보인다. 앞산에 해당하며 연화봉은 2010년에 개봉이 된단다. 연화봉과의 사이에 天海병관과 해심정이 보이고 저너머 이름모를 연봉들이 즐비하게 저마다의 자태를 나타낸다. 光明頂 기상대 뒤로는 우리가 타고 왔던 케이블카가 움직이고 안개 걷힌 시야는 더욱 선명하다. 카메라가 없는 나에게 온갖 정성으로 사진을 찍어 주는 이사 신용석부부가 고맙기만 하다. 단체사진으로 발자취를 남기고 북해병관 옆으로 방향을 정하여 숙소로 오니 저녁이 준비 되어 있다. 말로 듣기보다 식사가 훌륭하다. 중국 코스요리를 먹는 분위기와 산장의 운치로 여행의 자부심과 보람이 절로난다. 어김없이 저녁만찬도 그냥 보낼 수 없는 것인지 부부간의 호젓한 분위기도 빼앗고 총무 방에 둘러앉아 산정의 분위기를 마음껏 누리며 선명한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2일째를 보냈다.
2009.1,31 (여행3일째)
황산의 일출로 아침을 연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북해병관, 사림반점을 지나 사자봉(누운 사자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고 이름 지어진)에서 일출을 본다. 해 뜨는 반대방향으로 원숭이가 운해를 바라보는 모습의 후자관해도 보인다. 선인봉, 망선봉 넘어 해가 뜨기 직전은 잔잔하고 고요한 운해가 발아래에서 세상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 평온하다. 6시50분경 붉고 선명한 자태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여명이 황산 천지를 밝히며 아름답고 선명한 연봉들을 하나하나 붉게 물들인다. 황산은 연중 250일 이상 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다는데 오늘은 비가 그친 뒤라 구름 한 점 없는 선명하고 또렷한 일출은 초우인의 축복인가 보다 바위와 조화를 이룬 소나무의 운치가 명산임을 보여주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숙소로 오는 길에 대왕송, 단결송등 황산10대 안에 드는 소나무를 보고 식사가 끝나고 하산을 목적으로 움직인다. 일행 중 3명(가이드포함4명)은 케이블카로 내려오고, 나머지는 전원 백아령 까지 올랐다가 6.5km의 운곡 매표소 까지 수만개의 계단으로 이어져 있는 길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황산은 온천지 길이 계단이며 6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내려오는 도중 특이한 것은 산상호텔이나 산상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을 운반하는 짐꾼들이다. 인건비가 비싸지고 경영효율화를 외치면서 밤마다 케이블카를 싫어 나르는 현상은 언제일지 모르지만 국가에서는 실업자 구제책으로 반드시 물품은 인력으로 운반하라는 정책과 아직도 그 일자리가 없어 경쟁이 치열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무섭게 80kg 이상의 무게의 짐을 양어깨에 걸치고 올라오는 짐꾼들을 격려하며 동정어린 모습으로 너도 나도 1000원씩을 쥐어 준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산상을 오르내리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오고 월수입 50~60만원으로 생활하는 것이 일반인의 2~3배정도라니 가상하고 안쓰럽다. 이제 황산등정도 끝나고 운곡매표소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우리버스와 맡겨진 짊을 차에 옮기고 70km떨어진 시내로 와서 점심과 피로를 푸는 발 맛사지로 황산일정은 끝났다. 황산지도에 보면 우리가 간곳은 극히 일부분이다. 앞산을 통한 주사봉,천도봉,연자봉,연하봉,옥병봉,자광객과영객송,송객송,봉황송등의 10대명송의 이름 있는 산들은 앞산에 있다. 황산은 사방250제곱km에 1990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명나라때 저명한 지리학자이며, 여행가였던 서하객은 30년에 걸쳐 중국산하를 여행한 후 황산에 대하여 말하기를 “5악(태산,항산,형산,숭산,화산)은 평범한 산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나 황산은 그 5악이 또한 눈에 차지 않는다.”라고 했단다. 황산의 아름다움을 표시한 함축적인 말이다. 황산시에서 점심과 발 맛사지로 피로를 푸는 동안 계획에도 없던 상해 황포강의 유람선을 타기로 합의를 보고, 황산시를 뒤로한 채 다음일정을 향해 500km가 넘는 먼 길을 한번휴식(소변)의 강행군으로 상해까지 오니 가까스로 8시30분 마지막 유람선을 탈수 있었다.
소문만 듣던 상해 야경은 홍콩과 싱가포르 야경과 같이 아름답다.
상해는 국제적인 상업도시로서 1942년 남경조약으로 개항된 이후 국내외의 새로운 문물을 흡수해 국제적인 상업도시로 발전하였으며, 영국에서의 최초로 개방된 첫 항구도시로 별다른 진전이 없었으나 등소평에 의해 90년대 이후 중앙정부가 집중적으로 투자를 시작 또 다른 홍콩을 꿈꾸기 시작 지금은 세계적인 경제중심도시가 되었다. 상해의 다양하게 디자인된 고층빌딩이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으며 과거 조계지로서의 흔적이 남아있는 영국총독부나 시계탑 건물같이 100년이나 200년이 되는 건물들이 현재의 건물들과 공존하는 외탄지역과 강 건너편의 강가의 갈대밭으로 있던 포동지역의 들쭉날쭉 솟은 현대적 고층빌딩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상해의 상징 동방명주탑, 1988년에 완성한 88층의 금무대화 빌딩, 쇼핑백같이 생긴 101층의 최근작SWFC(상하이 월드 파이낸스 센터)등과 그 외 고층건물들이 제각각 새로운 조명과 맵시로 밤하늘을 수놓는 이곳 신천지를 보고 김정일이 천지개벽이란 명언을 남긴 황포강 유람선관광은 모두가 만족하며 탄성을 자아낸다. 숙소로 오는 중간지점에 중국식 식당에서 상하이식 정통식사를 하였지만 우리의 입맛은 기름기가 많아 별로다 그리고 오늘은 허정식 부회장의 안주인 황양금씨의 생일이란다. 재치 빠른 가이드가 언제 식당에 연락을 했는지 벌써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다. 촛불을 끄고 함께한 일행들의 생일송과 박수로 축하를 한다. 또한 옆자리에 앉은 중국 어린이가 축하인사를 하고 빵을 달란다. 오늘은 마지막 여행지로서 상하이의 밤 호텔은 어떨까 궁금하다. 도착하니 금용호텔로 상당히 규모가 크다. 6층11호에 배정을 받았다. 방배정이 흩어져 있고 피로가 겹쳐서인지 오늘밤은 조용하다.
2009.2.1일(여행4일째 마지막날)
오늘도 비행기 일정이 바쁘다.
상해의 중심부에 있는 옛 거리 예원관광이 있다. 일찍 호텔 뷔페식을 마치고 7시에 출발 도착했지만 8시30분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재래시장과 차이나타운을 본다. 차이나타운은 건물전체가 온통 붉은 색으로 도배를 한 3~4층의 건물로 화려하게 단장하고 옛 거리를 재현하여 상가로 구성된 건물들이다. 문이 열리자마자 처음으로 입장하여 예원으로 들어갔다. 어느 효심 깊은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18년 동안 지어진 오랜 정원으로 건물 하나하나마다 지워진 배경과 건축과정을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으로 열을 올리지만 인공적으로 만든 집과 연못 돌들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에게는 별로다. 입장료가 40엔, 우리돈 8,000원이 넘는다. 돈이 아깝다. 공항 일정이 바빠 어제 갔던 야경의 중심지 황포강의 다리인 남포대교를 넘는다. 그리고 저 멀리 아치형의 다리가 보인다. 아치형의 다리는 호주의 하버브리지와 같이 교각위에 전망대가 있는 세계에서 두 개밖에 없는 전망대가 있는 다리란다. 그리고 공항부근의 기념품상 라텍스매장과 깨, 잣등 농산물을 파는 곳에서 쇼핑을 하고 서둘러 공항 수속을 밟아 한국에 오니 부산도착 4시50분이다. 4일전 우리가 설레임으로 여행한 상하이 항공의 보잉737 여객기, 오늘도 몸을 의지할 승객이 많을 것이다. 공항에서 일부는 가족의 승용차로 귀가하고 나머지는 왔던 버스로 사하구청까지 무사히 잘 왔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한 면면들을 보면 박정화(유종성)회장, 허정식(황양금)부회장, 박명자(김봉수)총무, 김종수(최인성)부회장, 배준호(조순옥), 신용석(이연옥)이사, 김태규(황잠덕), 허종수고문, 배인환, 신명숙, 김경순, 이영, 박영란, 장옥란, 김경미, 장순옥, 황재분, 이명예, 선순임, 김필남, 남혜경, 김선이, 이철용기사, 강청수마운토피아사장, 박미자, 이오남, 이천숙, 김계자, 박덕교, 김진호, 송방수포커스사장 이상 38명은 우정과 사랑으로 여행에 협조했고 무사히 다녀온 것에 축하드립니다.
특히나 회원주선에서 부터 끝까지 마무리에 온몸을 던지신 총무와 회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행은 일상생활에 있어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합니다. 함께 다녀온 우리들의 발자취를 남기니 좋은 추억으로 함께한 우정을 오래 기억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2월2일
초우산악회 고문 허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