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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오디세이 5. 안티고네 , 신의 법과 인간의 법
부제 : 문학 작품에 대한 철학적 해석의 한 사례
◉ 줄거리
안티고네는 본래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이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장녀이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예언을 받는 비극적인 인물이었다. 오이디푸스의 비밀이 밝혀지고 그는 왕위에서 쫓겨나고 테베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장녀 안티고네는 눈먼 아버지를 돕게된다. (근친상간 incest의 문제 발생)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뽑고 그리스 곳곳을 배회하다 아테네에서 죽게된다. 아버지를 장사지네고 나서 안티고네는 테베로 돌아온다. 안티고네의 두 오빠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처음에는 번갈아 가며 왕좌를 차지하기로 했으나 에테오클레스가 이를 어기고 계속 왕위를 차지하려고 하여 분노한 폴리네이케스는 이웃 나라의 군대를 동원하여 형을 물리치려고 했다. 그런 중 두 형제는 모두 전사한다.
그들의 뒤를 이어 왕이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는 국가에 충성을 하다가 죽었으니 마땅히 예우를 갖추고 장례식을 치러주어야 하고 반대로 폴리네이케스는 국가를 배반한 매국노로 치부하여 장례식마저 치루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둘 다 오빠라고 하며 국법을 어기고 밤에 몰래 성을 빠져 나가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찾아서 홀로 장례식를 거행한다.
이를 알게된 크레온은 분노하여 안티고네를 지하 감옥에 가두게 한다. 거기서 안티고네는 자살을 한다.
한편 안티고네의 약혼자 하이몬은 크레온의 아들이다. 하이몬은 크레온 아버지에게 안티고네를 용서 해줄 것을 호소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자살한다. 아들의 비극을 들은 어머니도 자살을 한다.
나중에 크레온도 암살 당하고 만다.
◉ 그리스 비극의 일반적 성격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의 수준 높은 연극을 보여준다. 이를 비극(tragedy)라고 한다. 비극은 꼭 슬프다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진지한 연극을 말한다. 비극의 반대는 물론 희극(comedy)이다. 현대의 비극과는 달리 그리스의 비극은 대체로 두 요소의 필연적인 대립, 충돌을 드러내고 충돌의 결과 파국으로 치닫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 반면 근-현대의 비극은 우연성이나 주인공의 성격 등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행동에서 비극이 발생한다.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두 세력의 화해없는 충돌과 이로 인한 파멸이라는 프레임에 가장 잘 드러맞는 연극이 바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드라마이다.
◉ 서양철학의 두 거봉 :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
아리스토텔레스이후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ㅡ필자의 견해에서ㅡ 독일의 헤겔, 이 헤겔의 (G.W.F.Hegel 1770-1831)의 철학은 엄청나게 난해하고 또 방대하다.
필자가 독일에 철학 공부하러 유학간 이유도 이 헤겔의 사상을 좀 알아보려는 참 단순한 동기에서 였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도 당시의 철학의 제반 사조들, 예를 들면 실존주의, 현상학, 고대철학 혹은 영미 분석철학 들은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서울대 대학원에서 이런 것들은 다 강좌가 열렸고 따라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헤겔 철학 강좌는 극히 적었고 게다가 필자의 서울대 지도교수였던 역사철학 이상철 교수는 필자를 지도하시다가 갑자기 타계하셔서 필자는 결국 독일까지 가서 9년간 헤겔 철학을 공부하였다. 헤겔 철학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책이 <정신현상학>과 <논리학> 이다. 전자가 더 난해하다.
희랍 비극 <안티고네>를 논하는데 왜 헤겔의 철학이 나오는가 하면 그가 쓴 안티고네 해설 및 변형이 엄청나게 유명하기 때문이다.
◉ 변증법 = 대화적, 타협적 사고의 체계
헤겔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문학 작품중 가장 숭고하고 모든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고 극찬을 마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필자가 볼 때 두 가지이다. ① <안티고네>의 문학성이 원래 뛰어나다 ② <안티고네> 작품이 헤겔 철학의 특징인 변증법(辨證法, Dialectic)에 아주 적합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부득불 변증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고 싶다.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노래 중에 “오 정반합”이 있다. 그 가사를 보면
“네가 속한 사회는 모두 정,반,합(正.反.合)의 흐름 속에서
끝도 없이 새로워져, 없던 길도 만들어가
나의 반(反)의 무게로 흐름들을 막아서는 안 되지”
이처럼 정반합(正反合)을 통해서 사물이나 세계가 발전해 간다고 보는 사상이다. 정과 반은 서로 대립되고 충동하는 두 세력이다. 정과 반은 서로 적대적이다. 적대적이고 서로 힘도 비슷한 두세력은 반드시 부딪힌다. 그러나 부딪히는 가운데 둘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여 공멸을 피하고 둘의 종합을 시도하여 더 높은 단계의 발전을 이루어 단다. 대충 이런 정도가 변증법의 윤곽이다. 그러나 실제 헤겔의 텍스트 내에서는 이게 무지무지하게 복잡하다.
위의 안티고네 요약 줄거리에서도 나타난 바처럼 안티고네는 테베 왕국의 공주로서 여성과 가정을 대표한다. 반면 크레온 왕은
공동체(왕국)과 남성을 대표한다. 즉 정과 반의 대립이 있다. 병증법의 본성은 이처럼 대립자(the opposites)의 상호 충돌과 그 결과 더 높은 단계로의 발전 ㅡ이를 지양(止揚) Aufhebungㅡ이라고 한다, 이 있다. 지양(Aufhebung)의 뜻은 세가지이다. ①폐지한다
②보존한다 ③ 높힌다 이다. 대립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편견들을 폐지하는가 하면 대립자들의 부분적인 진리는 보존되고 단 더 높은 차원에서 전체의 차원에서 다시 그 일방적인 주장이나 명제들의 진리가 높은 차원에서 살려진다. 어째보면 변증법이란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여 일치를 찾아내는 대화의 기술과 같은 것이다. <변증법 = 대화적, 타협적 사고방식>
문학작품은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무슨 이론이나 한 가지의 관점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안 된다. 그러나 <안티고네> 작품은 상당히 그런 해석이 잘되는 편이다. 그만큼 이 작품의 철학적인 특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즉 문학이 사상을 담고 있으며 그렇다고 단순한 사상 교육이 아니라 생동하는 개성을 통해서 사상이 표현되고 있다. 안티고네는 사상성과 예술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특이한 경우이다. 그래서 헤겔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문학 작품중 가장 숭고하고 모든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고 극찬을 한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철학이 문학 예술에 잘 녹아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이 반드시 역사상 가장 탁월하다는 것은 아니다.
안티고네는 매국노로 낙인된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장례식을 치루어주려고 한다. 아무리 그가 국법을 어기고 외적을 끌어들여 권력을 잡으려는 나쁜 일을 했어도 죽은 오빠를 들판에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당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크레온의 말을 따르면
“폴리네이케스는 도망자였다가 들이닥쳐 조국 땅과 가문의 신들을 완전히 태워 없애려했고, 또 가족의 피를 마시고자 했으며, 다른 이들은 노예삼아 끌고 가려했으니, 이 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장례로써 예를 갖추지도, 애곡하지도 못하도록 이 도시에 선포하였오, 무덤없이 새와 개들에게 몸뚱이가 먹히고, 망가진채 구경거리가 되도록 말이오”. <안티고네>
그러나 여자지만 기품이 담대한 안티고네는 국법을 어기고 오빠이자 범죄인을 장사지내고자 하는 일에 반대하는 여동생 이스메네에게 이렇게 자신의 행동 계획을 변호한다.
“나는 오빠의 시신을 묻겠어. 이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아. 누이로서 그의 곁에 누울거야, 오빠의 곁에, 경건한 일을 하고도 범죄자가 된채. 이곳에 있는 자들보다 아래 계신 분들의 마음에 계신 분들의 마음에 들어야 할 시간이 기니까. 나는 거기 영원히 누워 있어야 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너는 그쪽이 더 좋아보이다면, 신들에게 바칠 명예를 무시하고 지네렴” <안테고네>
안티고네의 저자인 소포클레스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크레온의 국가 지상주의 사고보다는 인간적인 안티고네의 행동과 사상을 더 옳게 여긴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에서는 크레온에게 더 많은 점수를 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6. 25 전쟁과 이후의 좌익들의 비인간적인, 반인륜적인 행동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조국의 원수, 공산주의자들은 형제와 부모를 이념의 적이 되는 경우 무참히 인륜과 윤리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우익도 거의 비슷하다.
그 외에도 조선시대를 보면 어명(御命)을 어기는 경우나 역적이 되는 경우 본인은 물론이고 사돈에 팔촌 심지어는 죽은 자의 시체를 파내어 훼손시키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알기 때문이다.
◉ 인간의 법과 신의 법 (human law vs divine law)
그런데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죽은 자의 매장을 둘러싼 갈등은 헤겔에 의하면 인간의 법과 신의 법의 갈등으로 파악이 된다. 크레온은 조국과 공동체를 대변하여 법을 선포한다. 이 점에서 크레온은 폭군이 아니다. 자기 기분대로 명령을 발동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자신의 법령의 취지를 명백히 설명하고 심지어는 그 검증을 취해서 국가 원로들ㅡ 드라마 내에서는 코러스로 나타난다, 희랍 비극에서 코러스의 역할은 다양한데, 주로 주인공들의 행위에 대한 평가나 감동을 증폭시키고, 춤과 노래 등을 하며, 또 소위 “편집자적 논평” 같은 역할을 맡는다ㅡ 들의 자문을 구하고 승인을 받는다. 즉 입법의 민주적인 절차를 밟은 것이다.
따라서 크레온의 결정 즉 조국의 배신자는 장례식을 못해주고 들판에서 무덤없이 새와 개들에게 몸뚱이가 먹히고, 망가진채 구경거리가 되어야 한다 는 엄연히 법의 형식을 갖추었고 내용적으로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이는 한국의 부모, 친척간에도 무참하게 학살한 6.25 전쟁에서 견주어 보면 충분히 이성적인 제도이다.
그러나 안티고네의 입장도 그만큼 확고하다. 그래서 비극적 파국은 필연적으로 이미 처음부터 예고되어 있다.
그런데 안티고네의 죽은 오빠를 장례시킨다는 결단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린다. 즉 죽은 혈연의 매장이 단순히 혈연이나 가족의 윤리 문제일 뿐 아니라 종교적, 신적인 기원을 가진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배경이 없었더라면 안티고네의 “범죄 행위” (법실증주의에 근거하여)는 타당성이 많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그녀가 죽은 위에도 영혼이 살아있다는 지하계를 믿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강화된다.
크레온 : 그런데도 감히 이 법령을 위반했다는 말이냐?
안티고네 : 제가 보기에는 이것을 명하신 이는 제우스가 아니며,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인간들에게 그와 같은 법을 선포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당신의 포고가 그만큼 강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기록되진 않았지만 확고한 신들의 법을 필멸의 존재가 넘어설 수는 없지요. 왜냐하면 그 법은 어제 오늘만이 아니라 언제나 영원히 살아있고, 그것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니까요. 저는 그 어떤 남자들의 뜻이 두렴다고 신의 법을 소홀히 하여 신들에게 벌을 받지는 않겠노라고 결심했어요.
헤겔은 여기서 안티고네의 신의 법에 대항하는 하나의 개념을 주조해낸다. 즉 인간의 법이다. 실제 이것이 보통 말하는 법의 개념에 일치한다. 즉 통치자가 입법가들이 입안, 혐의하고 (대중의) 묵시적인 시인을 받아서 공표되는 법이다.
여기에 비해 안티고네가 말하는 법은 실은 극히 개인적인 신념이나 사상을 말한다. 그래도 어쨌든 그녀 역시 법을 가지고 법을 대항한다. 이럴 경우가 실은 자주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제 강점기난 독재 시대에는 실증법이 실은 악법이었다. 그 때는 개인의 양심이나 사상은 법과 많이 달랐다.
안틱네는 크레온이 선포한 법이 신들의 법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신들의 법의 객관적 존재 문제이다. 아무도 그런 법을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기록도 없다. 이런 법을 흔히 불문법(unwritten law)이라고도 한다. 그녀가 주장하는 법은 크레온의 법과 다르다. 이는 가족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은 이를 여성으로 대표되는 가족의 규범와 크레온으로 대표되는 공동체의 규범의 충돌로 본다.
안티고네가 증거로 채택하는 법은 어제 오늘만이 아니라 언제나 영원히 살아있고, 그것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니까요. 라고 한다. 이런 믿음의 근거에서 안티고네는 국가와 왕의 법령을 감히 거역하는 범죄(혹은 정의? )를 감행한다. 안티고네가 말하는 신의법은 공동체 국가에서는 당연히 효력을 상실한다. 그것은 그녀의 내면적인 가치의 세계이자 양심의 소리이며 주관적 확신의 세계이다. 그러나 사람은 한 인격으로서 국가의 법을 반드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단 국법을 어기는 벌은 그 경우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즉 안티고네는 오빠를 묻는 일을 목숨을 걸고 감행한다. 마치 일제시대 일본이 제정한 국내법을 어기고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에 비유될 수 있다.
헤겔의 해석은 크레온의 법은 보편성 즉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서 누구나 지켜야 할 보편성을 상징한다. 여기서 공동체 또는 국가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를 말한다.
반면에 안티고네의 법 즉 신의 법(divine law)는 가족 구성원이 지켜야 할 개인적인 가치를 상징한다. 즉 개별성을 상징하다.
For Hegel the conflict between family and polis, particular and universal, is also a conflict between divine law and human law as represented in the conflict between woman and man. Nature, according to Hegel, assigns woman to divine law and man to human law.
헤겔에게 있어 가족과 폴리스,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갈등은 여성과 남성의 갈등에서 대표되는 신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 사이의 갈등이기도 하다. 헤겔에 따르면 자연은 신성한 법칙에 여성을, 인간에 대해서는 인간을 할당한다. (파파고 번역기)
그런데 헤겔의 역사 철학에 의하면 고대, 즉 기독교 전의 이방적인 사회에서 이런 갈등은 화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신이 인간이 되는 그리스도적인 중보자 사상이 도입된 후에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하여간 헤겔의 말을 따르면 개별성과 보편성의 결합되는 구체적 보편자 ( konkrete Allgemeinheit, concrete universality)가 기독교에 와서야 일어난다고 한다. 이 논쟁은 다음으로 미룬다.
헤겔에 따르면 신적인 법칙도 인간적인 법칙도 그 자체로 완벽하지는 않다. 인간적 법칙이 신적인 법칙을 억누려려고 해도 실은 불가능하다. 그 법을 안지키면 죽인다 라고 해도 안지키는 사람이 나온다.
안티고네에 의하면 가족의 윤리 혹은 인륜(人倫)이라는 이 법은 지하세계의 신들이 제정한 것이다. 여기서 지하세계란 지옥이 아니라 죽은 후에 도달하는 영적인 세계 혹은 내세를 말한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안티곤를 바위로 된 지하 감옥에 가둔 크레온은 결국 자신의 아들과 아내마저 상실당하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를 헤겔은 국가의 권력이 가정을 파괴할 때 결국 그 공동체는 붕괴한다 라고 해석을 한다. 왜냐하면 국가 공동체 역시 가정으로부터 구성원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즉 가정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양육하여 시민으로 키운다. 이 시민이 공동체를 이루어 간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가정과 개인의 양심을 파괴하는 법은 실은 불법이다. 크레온의 입법 역시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국가의 존립을 위한 법을 제정하더라도 예외 규정을 두어야 했었다. 즉 죄인이라고 해도 그 가족들은 시신은 수습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구체적인 경우를 고려하지 않는 법의 맹목적인 형식주의(Formalismus, formalism)이 무서운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 비극의 감상과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효과를 카타르시스 라고 한다. 흔히 정화 라고 번역한다. 사람들은 끔찍한 비극의 과정과 결말을 통해서 삶과 공동체 그리고 가정 혹은 개인의 양심을 한번 더 숙고할 기회를 가지는 한편 공포와 분노, 흥분과 슬픔 등의 감정을 체험할 것이고 이를 통해서 내면 세계가 정화되는 예술적인 승화(sublimitation)의 체험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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