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죽기 이틀 전에 전화해서 했던 말 “아버지, 아침은 잡수셨어요?”
“이렇게 될 줄 꿈에도 생각 못했지….” 이 한마디에 최국현씨의 심경이 모두 묻어나는 듯했다. 죽기 이틀 전 아들과 통화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은 전화기에 열이 날 정도로 유난히 통화가 길었다. 누나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후로 드문드문 안부전화를 해오긴 했지만 그렇게 길게 통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그때 아들의 마음을 알아챘더라면 하는 회한이 아직도 그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그냥 이것저것 시시콜콜 물어보더라고. 아침은 잡수셨어요, 반찬은 뭘로 잡수셨어요. 꼬치꼬치 묻는데 나는 그냥 대답이나 해줬지. 평소에는 간단히 안부만 묻고 끊는데 그날은 한 20분간 통화를 했네. 이런 일이 닥치니까 그날 일이 생각이 나…. 그렇게 아침 일찍 전화를 한 적도 없었거든. 그날 전화 받은 게 아침 일곱 시 반이야. 볼 일이 있어서 인천공항에 나가는 길이었으니까.
힘들다는 얘기는 없었나요
힘들다고 하더라고. ‘아버지, 그냥 좀 힘들어요’ 하는데 뭐가 그렇게 힘이 드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 누나가 없어서 그랬는지, 사회 생활하는 게 힘들어서 그랬는지…. 목소리가 안 좋았어. 다른 때 같지 않고 목소리에 도통 맥이 없더라고. 뭐가 그렇게 힘든지 물어나 볼 걸.
평소에도 전화를 자주 했나요
진실이 그렇게 된 후로는 전보다는 훨씬 자주 했지. 어느 땐 보름에 한 번도 하고 한 달에 한 번도 하고. 마음이 내키면 전화를 하더라고. 전화를 해도 1분, 2분이면 끊었는데 이번엔 그렇게 오래 통화를 했어.
전 부인하고도 연락을 하고 지내셨나요
애들 엄마하고 나하고는 연락을 안 해. 진실이 일 났을 때도 이모한테 연락을 받았고. 그런데 이번 진영이 일 때는 애들 엄마가 전화를 했어. 잘못된 걸 알고는 바로 전화를 한 거지. 울면서.
최진영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건 알고 계셨나요
나는 몰랐어. 몰랐지만 제 누나가 그렇게 되고는 마음이 무척 힘들 거라는 건 짐작했지. 자주 만나야 그런 것도 아는데…. 얘기 들어보니까 방에서 며칠씩 안 나오고 근래는 통 외출을 안 하더래. 제 어멈은 그걸 알았는지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는데 말을 안 듣고 안 갔나 봐.
집안에 혹시 우울증을 앓았던 가족이 있었나요
우리 집안에는 없어. 애들 엄마 쪽도 그렇고. 얘들이 처음이지. 유전이 아닐까 싶어 묻는 모양인데 우리 집안에서 우울증 때문에 잘못된 사람 하나도 없었어.
누나 떠나보내고 나서 찾아온 우울증 “엄마가 병원에 가보라고도 했다는데 안 갔다나 봐.”
최진영이 누나 최진실을 부모 이상으로 따르고 의지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건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누나는 그에게 삶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존재였다. 같은 분야에서 일을 했기 때문일까. 연예활동을 하는 데도 누나 최진실이 많은 도움을 줬고 최진영도 누나에게서 큰 힘을 얻곤 했다.
누나 떠나고 나서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어려서부터 누나한테 의지를 많이 했어. 남매니까 둘이 의지할 수밖에 더 있어? 어릴 때도 그랬고 커서도 누나가 많이 데리고 다녔지. 그런데 누나가 그렇게 되니까 기댈 데가 없는 거지. 내 추측이고 짐작인데 누나가 있을 때랑 없을 때랑 사회에서 대접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 다른 사람들 같으면 ‘이거 아니면 먹고 살 게 없나? 다른 일 하면 되지’ 하고 털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그러지 못하고 끙끙 앓았겠지.
혹시 경제적으로 힘들진 않았는지
경제적으로 힘들 게 뭐가 있어.
최진실씨 유산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요
내가 다 포기해줬잖아. 진영이가 나한테 서류를 들고 찾아왔기에 포기각서 쓰고 도장 찍어줬지. 그게 왜 그러느냐 하면, 조성민이가 아이들 친권을 포기했잖아. 그러고 나서 양육권이 나한테 넘어온 거야. 진실이 엄마가 내 호적에 있으면 양육권을 가져갈 수 있는데 나랑 이혼을 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권리 포기각서를 쓰고 자연스럽게 넘겨준 거지. 애들 양육권 넘어가면서 재산도 다 저희 엄마 쪽으로 갔겠지 뭐.
그는 지난 1998년 10월 이혼 후 지금까지 줄곧 가족과 떨어져 살아왔다. 때문에 자식들에게 원망을 사기도 했었다.
이혼하신 이유는 뭐였나요
진실이 엄마하고 나 사이에 갈등이 조금 있었지. 진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 나는 집을 나와 살았어. 그러니까 바로 이혼을 한 건 아니지. 상황 봐서 나는 재결합할 생각이 있었거든. 그렇게 생각하고 시도도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 그래서 결국 재결합은 포기하고 이혼을 했어. 그때부터 나는 나대로 살고 애들은 엄마하고 살았지.
그 후 계속 혼자 사셨나요
그렇지.
재혼은요
재혼은 무슨.
알려진 얘기로는 남매가 어린 시절을 굉장히 어렵게 보냈다고 하는데요
그건 아니야. 이 일대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해. 내가 개인택시 한 대랑 일반택시 두세 대를 가지고 움직였는데 뭘. 나는 평생 놀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물론 애들이 엄마랑 살면서 힘들었을 수도 있지. 그런데 나랑 같이 살 때 밥을 굶겼다면 내가 벼락을 맞아요.
계속 서울에서 사셨나요
그렇지. 예전에 안양 청계 쪽에 잠깐 있은 적 빼고는. 여기가 내 고향이야. 서대문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여기 토박이지.
청계에 사실 때가 언제인가요
10년 됐나? 그때는 땅 관리하느라고 거기 몇 년 있었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지.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진실이하고 진영이하고 다 와서 밤 꼬박 새고 갔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