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여성>(1939.4)
이 시는 낭만적인 정열과 꿈만 가지고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가혹한 현실에 뛰어든 나약한 존재가 현실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현대 과학과 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식민지 치하의 우리 젊은이들도 새로운 학문과 지식을 배우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조국의 식민지 현실은 가혹한 상황으로 악화되고 있었고, 당시 유럽에 등장한 파시즘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부추기며 현대 문명의 방향을 혼란속에 빠뜨리고 있었다. 이와 같은 시대 상황 속에서 김기림은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무력감과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시는 1930년대 주지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주지시의 특징인 이미지의 표현과 문명 비판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주관적인 판단이나 감정의 개입을 극도로 차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냉담하고 단정적인 어조를 취하게 된 것이다.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 김원호 지음
맹태영 옮겨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