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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宣銅烈, 1963년 1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한국 프로 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이다.
전문가들의 평가[1]나 객관적인 수상 경력으로 보았을 때,[2]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던 투수들 중 하나 일 뿐만 아니라 전체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선수 중 하나로 여겨진다.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광주제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 팀인 한국화장품에서 활동하였고, 프로 시절 국내에서는 해태 타이거즈에 1985년에 입단하여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11년간 김성한, 한대화, 김종모, 이종범등과 함께 6번의 한국 시리즈 우승 (1986, 1987, 1988, 1989, 1991, 1993)을 이끌며 타이거즈 왕조를 건설한다.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1996년에 호시노 센이치(당시) 감독이 이끄는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인 주니치 드래곤스에 한국 프로 야구 선수 사상 첫 해외 진출을 전격 단행, 입단하여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였다. 1997년에는 시즌 최다 세이브인 38세이브를 기록하여 일본에서 첫 타이틀을 석권하게 되었고, 1999년에는 15년간의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주니치 드래곤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무등산 폭격기’ 그리고 ’멍게’라는 별명이 유명했고, 일본에서는 ‘SUN’이라는 표기에서 ‘나고야의 태양(名古屋の太陽)’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팬들로부터 둥근 얼굴과 온후한 인품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호빵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4년에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로 부임했고, 같은 해 11월 9일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승진된 후[3] 첫 시즌인 2005년 팀을 정규 리그 1위(74승 48패 4무)로 올려 놓은 후 다시 리그 2위 두산을 꺾고 그 해 한국 시리즈에서 4전 전승으로 우승하였다. 선발 투수진의 열세를 미리 파악해 오승환, 권오준, 박석진, 안지만 등의 불펜진을 효과적으로 가동한 덕분이었다. 이런 운용 특성을 두고 "지키는 야구"라고도 한다. 감독 데뷔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과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도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해태 타이거즈 시절 등번호인 18번은 KIA 타이거즈에서 영구 결번으로 남아 있다.
동양야구사에서도 보기힘들게 리그를 완벽제압한 선동렬은 통산 방어율 1.2 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다.
프로출범후 투수들의 기량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시점이라고 하나 통산수치 기준이어서 이는 놀라우며 특히 한시대가 아닌 한시즌에서도 쉽지 않은 기록이라는 점,'규정이닝'을 채운 8시즌 모두 방어율 수위를 독차지했다는 점에서 당시 한국 프로야구 내에서 리그와 시대를 초월하는 선수로서의 압도성을 알 수 있다.
10여년의 리그지배기간동안 94년이후 선동렬도 늙었다는 평가가 난무하는 상황하에서도 95년 다시 부활, 국보급 투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당시 소속팀의 상황과 국민적 응원으로 숙원이었던 해외 진출을 이루게 된다.
주요수상기록 (각종 타이틀 외)
승률카테고리는 추후 추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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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500이닝이상기준 (선동렬 통산 1,647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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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말이.. 필요없는.. 야구선수... 20년전.. 현재 프로야구선수 이상의 실력을 지녔던..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있기 힘들 그런 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