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지는 바닷가에서 오랜만에 만난 오누이는 속을 열어 보이기가 어렵다. 그들에게서 그 여자로 지칭된 그들의 어머니는 자식인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약탈해 가는 가해자였다. 그 여자 때문에 아버지가 죽고, 집안의 재산도 모두 그 여자가 차지하였으며, 그 여자는 딸의 남자까지 가로챈다. 아버지도 재산도 남자까지도 어머니에게 빼앗긴 '그녀'는 긴 세월 어머니를 증오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검은 댕기 두루미에게서 배웠다는 '나, 이리로 죽으러 왔다'과 모든 것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 것처럼 말하지만 여전히 피해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어머니를 향해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오래 살면서 지켜보아 주는 것만큼 확실한 복수가 있을까. 나에게 상처를 입혀 주면서 허섭쓰레기 같은 이익을 챙기고 즐거워한 자들의 최후의 모습들을 지켜보는 그 통쾌한 슬픔'을 떠올리며 복수를 생각한다.
"용서해 드려. 그 불쌍한 사람." 그의 입에서 이 말이 흘러 나올까 싶어 겁났다.
오히려 동생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낼까 봐 겁난다. 그러나 동생은 기어이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그녀는 진저리를 친다. '그가 기어이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고 있었다. 그녀는 진저리를 쳤다.'
동생은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이 되었고, 어머니가 빼앗은 그녀의 남자는 죽었다고 말한다. 그들을 갈등하게 했던 요소가 모두 제거된 것이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길고 긴 싸움 끝에 그들에게는 허무만 남는다. 어디서 어떤 모양새로 살건, 사는 것 모두가 갇혀 사는 것이기는 하지만, 좀더 너른 땅에서 훨훨 날개라도 쳐보면서 사는 것이 좋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홀로 사는 늙은 검은 댕기 두루미에게서 "나 이리로 죽으러 왔다."는 환장하게 향기로운 말을 배운 그녀의 내부에서는 바지락과 생굴의 향기를 뿜어낸다. 늙은 딸은 비로소 증오를 버리고 어머니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구성
{검은 댕기 두루미}는 들머리와 마무리를 같은 장면으로 연출하였다. 들머리에서 소설의 분위기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대강을 보여주고 마무리에서 그것을 확인하는 형식이다. 들머리 다음에 여우에게서 과거의 글제가 적힌 종이를 빼앗으려다 실패한 선비의 설화 한 편이 배치되어 있다. 설화 다음에 딸과 어머니, 그녀와 그녀의 남자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녀가 그 여자를 떠난 까닭 등이 길게 설명되어 있다. 마무리에서 그녀는 그녀가 놓여 있는 장소의 일부분인 검은 댕기 두루미가 되어 설화 속의 여우가 된 동생과 마주 앉아 있다.
구조가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이 이야기는 어느 부분에서는 단숨에 넘어가지만 어느 부분은 너무 길게 늘어진다. 그 여자(어머니)가 어떤 여자인가에 대한 설명은 아쉬울 정도로 간단하다. 그 여자를 알 수 있는 장치는 김군과 관계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없다. 그러나 그녀(딸)가 가죽 짐 둘을 들고 신촌 일대를 헤맨 사건은 지나치게 길게 서술되어 있다. 물론 그 사건이 그녀가 집을 뛰쳐나오는 동기가 된 사건이므로 중요한 장치이기는 하지만 밀도 없는 사건이 지진부진 길기만 하다. 치밀성 있는 사건을 하나쯤 더 만들어 이야기에 설득력과 밀도를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문장의 특징
{검은 댕기 두루미}의 등장 인물들은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가슴에 불을 담고 있는 어머니는 그 뜨거움으로 남편도 자식도 태워 버리고 만다. 그 뜨거움 때문에 가슴을 데인 딸은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간다. 그 진하게 맺힌 감정들을 나타내고자 작가는 냉정을 잃고 스스로 격렬해 진다. 평범한 어휘로는 도저히 그 진한 감정이 제대로 표현이 안 될 것 같아 작가는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무모한 모험도 한다. 그 모험은 성공한 부분도 있지만 실패한 부분도 있을 수밖에 없다. 작가는 자기 기분에 취해서 자기만 알고 독자에게는 납득 안 되는 문장을 곳곳에 늘어놓고 말았다. 자칫 작가가 자기 감정에 너무 빠져 버리면 상황 묘사는 푸념으로 늘어질 우려가 있다. 강렬한 표현을 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정확한 표현을 놓쳤다.
○모순
소설이 주제를 따라 목적을 달성하려면 독자를 잘 설득해야 한다. 그 설득력이 있으려면 소설 나름의 질서와 합리적인 논리의 전개가 있어야 한다. 이는 엮어 나가는 이야기에 논리적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검은 댕기 두루미]는 어떤 모순을 안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 소설에서 여우의 설화는 영화의 배경 음악 같은 장치다. 그러나 어색한 대비로 그 의도가 빗나가고 있다. '그 여자'는 자신을 종이를 빼앗긴 여우로 비유한다. 빼앗긴 종이만 찾으면 '예전의 착한 암여우'로 둔갑하여 온갖 나뿐 짓을 다 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착한'의 의미와 '여우'의 이미지와 걸맞지 않을뿐더러 그 여자가 하겠다고 하는 행동이 착한 피해자의 행동은 전혀 아니다.
동생이 느닷없이 찾아오자 그녀는 생각해 본다. "혹시 정리해고되어 심화를 풀려고 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동생은 "그는 그 여자에게서 물려받은 가죽상회를 걷어치우고 가죽제품과 밍크옷들을 수입해다가 팔고 있었"기 때문에 정리 해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개인 사업자다.
누나가 동생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그 말이 그의 가슴에 어떤 울림인가를 일으킬 만큼 그의 삶은 성숙해 있지 않았다. 어떤 지대한 목적인가를 위해 살뿐이었다. 흘레붙을 암컷을 구하거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냄새를 맡고 다니는 개처럼 고양이처럼.
성숙하지 못한 삶이 지대한 목적을 위해서 사는 삶인가? 개 고양이처럼 본능만을 좇는 삶이 지대한 목적을 위한 삶인가? 그의 삶이 어떤 삶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대한'을 잘못 썼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다.
아래 예문은 그녀의 넋두리 같은 생각을 서술한 문장이다.
·나에게 상처를 입혀 주면서 허섭쓰레기 같은 이익을 챙기고 즐거워한 자들의 최후의 모습들을 지켜보는 그 통쾌한 슬픔.
이 소설은 3인칭 작가 시점에서 서술되었다. 따라서 '나'라는 인칭대명사는 직접 인용문 아닌 지문에서는 나올 수 없다. 이 문장은 '나에게'를 살리려면 문장 부호를 써서 인용문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작가의 전지적 시점에서 서술되는 소설이라도 작가는 지나친 속단을 해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밤새도록 그녀에게 할 복수를 계획한 것이었다.
이 예문은 추측을 단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계획한 것이다.'를 "계획했을 것이다."로 추측을 나타내 주면 된다.
○간결성 또는 중복 표현
구태여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은 늘어놓거나 이미 한 말을 다시 것은 작품의 농도를 흐리게 하고, 읽는 사람은 지루하다. 가령 누나와 동생이 오랜만에 마주 앉아 누나가 동생에게 "한잔해라"하고 술을 권한다. 누나는 동생과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길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곳감을 우린 것 같은 양주'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다음은 이 소설에서 거의 도움이 안 되는 문장들이다.
·그의 차는 호마(胡馬)처럼 키가 크고 기운이 센 검정색의 지프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동생의 주장과 한잔하고 쉬었다 가라는 누나의 권유이지 동생의 자동차가 어떻게 생겼느냐는 전혀 알 필요 없는 군더더기다.
·그녀가 서울에 오기 전까지 그 여자와 그는 서울역에서 만리동으로 가는 길목에 방 한 칸을 얻어 살았다.
→그녀가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그 여자는 거처를 옮기지 않았으므로 나타낼 필요 없는 사실이다.
· "그 여자는 오늘밤 알몸이 되어 너를 유혹하려고 일부러 내기에 져준(저준) 거야. 그 여자는 황음병에 걸려 있어. 그 황음병 때문에 가까이 한 남자들을 다 잡아먹었어. 우리 아버지두 그래서 죽었단 말이야. 너도 조심해. 걸려들면 죽어. 그 여자 별명이 무언 줄 알아? 불여우야 불여우. 그 여자 그것은 문어 빨판 같다고 소문이 났어. 그 소문 때문에 광주에서 못 살고 이리로 온 것이야."
· 그녀가 여우년이라고 한 그 여자는 무서운 여자였다. 그 여자와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넋을 빼앗겼다. 그녀를 낳도록 해준 남자도 넋을 빼앗겼던 것이다. 김석호도 그랬다.
앞의 문장에서 아버지가 그 여자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뒤 문장에서 다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어느 한쪽은 군더더기다.
아래의 예문들은 구성 면에서 불필요한 문장은 아니지만, 문장 안에서 표현을 좀 더 간결하게 할 수 있는 문장이다. 밑줄 친 부분을 간결하게 고쳐 보았다.
·환풍기 소리와 오디오 소리가 서로를 깔아뭉개려 하고 밀어내려 하면서 한데 엉기고 겯고 틀었다(한데 엉기고 겯고 틀었다).
·그 여자 못된 짓 하지(못된 짓) 못하도록 하면서
·흰 목 위쪽의 얼굴만 내민 채(얼굴만 내민 채) 바람벽에 윗몸을 기대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부끄럼 한 점 없이 너털거리고 너스레를(너스레를) 떨다니
·장씨 목공소라는 글자들이(장씨 목공소라고) 삐뚤삐뚤 씌어 있었다.
·눈동자와 얼굴 근육들이 취기로 말미암아(취기로) 풀어진 그 여자는
·그녀는 그 여자와 그와 그녀가(주어가 '그녀'이기 때문에 다시 '그녀가'는 군더더기다.) 함께 살고 있는 공간이 짜증스럽고 불편해 견딜 수 없었다.
○흐름
두 차례나 샅샅이 뒤졌지만 그 골목길에는 동사무소가 없었다. 그녀를 그리로 들어서게 한 약도는 엉터리였다. 그녀가 배달해야 하는 가죽점퍼 공장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그 여자에게 농락을 당하고 있었다.
두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공중전화통으로 갔다. 가게에 앉아 악마처럼 싱글거리고 있을 그 여자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만 갈 뿐이었다. 땅바닥에 퍼지르고 앉아 울어버리고 싶은 것을 참았다.
목이 말랐다. 허기가 졌다. 구멍가게로 들어가 우유 한 봉지를 사서 목마름과 허기를 메웠다. 가죽짐을 그늘에 놓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폐광의 기나긴 동굴 같은 절망이 절벽처럼 눈앞을 막아섰다. 울분이 기름 저장탱크에 붙은 불처럼 덩이져 솟구쳐 올랐다.
파김치가 된 채 가죽짐을 끌고 가게로 돌아갔다. 가게문이 잠겨 있었다. 문설주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급한 배달을 나간다는 내용이었다. 보조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죽 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를 갈면서 그 여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독 오른 암표범처럼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의 젖가슴과 어깨를 물어뜯었다. 그녀를 밀어 내려고 하는 그의 손가락과 팔뚝을 물어뜯었다. 그는 그녀를 피하려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악! 왜 이래? 너 미쳤어?"
그는 데굴데굴 구르면서 몸부림치고 발버둥쳤다. 그녀는 그를 놓치지 않고 계속 물어뜯었다. 아주 죽일 참이었다.
그 여자가 이날 왜 그녀를 그렇듯 고문한 것인지 그녀는 훤히 짐작하고 있었다. 간밤 그는 그 여자에게 그녀가 한 말들을 모두 까발린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밤새도록 그녀에게 할 복수를 계획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물린 자리를 덮어 누르면서 울고 있는 그의 머리와 가슴을 주먹으로 치고 발뒤꿈치로 밟아버리고 얼굴에다가 침을 뱉었다.
"나쁜 자식! 네놈이 나를 그렇게 배신하고 니 명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지옥에도 못 갈 더러운 자식, 나 배신하고 그년 보듬고 천년 만년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녀가 무거운 가죽 짐을 들고 존재하지 않는 배달처를 찾아 헤매다가 돌아와 김군에게 화풀이하는 장면이다. 그 여자가 자신을 골탕먹이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를 그리로 들어서게 한 약도는 엉터리였다. 그녀가 배달해야 하는 가죽점퍼 공장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그 여자에게 농락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돌아가 김군을 보자마자 그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화풀이를 시작한 뒤에 새삼스럽게 '그 여자가 이날 왜 그녀를 그렇듯 고문한 것인지 그녀는 훤히 짐작하고 있었다. 간밤 그는 그 여자에게 그녀가 한 말들을 모두 까발린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밤새도록 그녀에게 할 복수를 계획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은 흐름을 되돌리는 것이다. 흐름이 자연스럽기 위하여 이 문장은 '그 여자가 이날 왜 그녀를 그렇듯 고문한 것인지 그녀는 짐작이 갔다. 간밤 그는 그 여자에게 그녀가 한 말들을 모두 까발린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밤새도록 그녀에게 할 복수를 계획하였을 것이다.'하여 '두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앞으로 옮겨 놓으면 흐름도 자연스럽고, 그녀가 김군을 보자마자 화를 내며 덤벼드는 까닭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 치밀성
그녀가 이박 삼일 동안 지방 여러 도시로 수금을 나갔다가 돌아온 어느 날이다. 계절은
"초가을이었다."로 되어 있다. 그 날밤 그녀는 그 여자와 김군이 어울려 노는 꼴에 비위가 상해서 침을 뱉어 주고 뛰쳐나온다. 친구 집에서 자고 이튿날 그녀가 가게로 가자 그 여자가 그녀에게 배달을 시킨다. 그때 라디오에서 "봄인데도 여름날같이 무더운 날씨라고,"라고 한다. 하룻밤 사이에 계절이 초가을에서 늦봄이 된 것이다.
·국밥 손님은 멍든 나그네의(눈두덩에 멍든 나그네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온 여우의 꼬리를 발견한 것이었다.
나그네를 꾸며 주는 관형절을 '눈두덩에 멍든'이라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앞 뒤 문장에서 반복되어 같은 여우를 지칭하는 구절이므로 같은 어휘를 써야 한다.
·북아현동 초등학교 뒤쪽 언덕 위에 있는 골목이 이것 말고 또 있을까. 이 학교가 '북아현초등학교'가 분명할까.
위 예문과 같은 예이다. 용어를 통일해야 한다.
○납득이 안 되는 문장
작가가 너무 흥분하거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여 이런 문장을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주인공의 감정이나 상황을 아주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심이 과하다 보니 문법의 범주를 벗어나 버린 것일까?
다음의 예문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나 어휘를 모은 것이다.
1. 그냥 바람 쐬러 나섰다는 그에게서 여러 번 포개 접어 숨긴 암수표 같은 음모의 부피와 그림자가 감지되었다.
·암수표'는 현재 우리말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난수표(亂數表)'나 '암수(暗數), 외수(外數)'를 잘못 적은 것인가.
2. 줄기차게 뻗어 가던 생각이 두루마리처럼 말리는 후회. 그 말림 현상이 속을 쓰라리게 했다.
이 문장은 '줄기차게 뻗어 가던 생각이 두루마리처럼 말린다.'라고 했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을 불쑥 '후회'가 끼어 들어 무슨 의미인지 모를 문장이 되었다. 그리고 줄을 바꾸자마자 이번에는 '파도가 두루마리처럼 하얗게 말리고' 있다. 이 '두루마리처럼 말린다'는 표현은 '생각'에나 '파도'에나 잘 어울리기는 한다. 그러나 다른 체언에 같은 서술어를 연거푸 사용하는 것은 작가 어휘 능력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3. 그녀의 몸에 뚫려 있는 모든 구멍들이 당사실 같은 파장으로 창기의 머릿속에 웅크리고 있는 음모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4. 이때 그녀의 몸에 뚫려 있는 구멍들이 문을 열고 땀이나 이슬 같은 것을 내뿜었다.
5. 그녀의 몸에 뚫려 있는 모든 구멍들이 땀을 뿜어냈다.
위의 예문들은 '그녀의 몸에 뚫려 있는 구멍'이라는 공통 어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4번 예문과 5번 예문에서 '구멍'은 같은 의미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3번 예문의 '구멍'은 다르다. 3번 문장의 구멍은 '당사실 같은 파장(파문)으로 음모의 옷을 벗기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 구멍은 단순히 땀이나 어떤 것을 내뿜는 구멍이 아니고 훨씬 적극적인 행동이 있다. 살피고 관찰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구멍'이라기 보다는 감각기관일 것 같다. 하나의 소설에서 같은 낱말이 다르게 쓰이고 있는 것은 독자의 소설 느끼기에 장해 요인이 되지 않을까?
·문전처럼 검붉은 해가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고 핏빛 노을이 타올랐다.
딸이 어머니를 떠나는 장면이다. 남자를 가로채고 무거운 짐을 들고 무더위 속을 헤매게 하는 어머니에게 딸은 '구렁이나 되라'고 저주하며 옷 가방을 챙겨 들고 나온다. 그 때 '검붉은 해'가 지고 '핏빛 노을'을 딸은 처연한 심정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 광경에서 '문전처럼'은 납득할 수 없는 낱말이다.
○문장부호
문장에서 문장부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1.에서 4까지의 예는 쉼표가 빠진 경우이다. 5부터 7까지의 경우는 인용문에서 인용 부호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이다.
1. "나 이리로 죽으러 왔다." →"나, 이리로 죽으러 왔다."
2. 오래 전부터 그 자리를 선점하고 있는 산딸기나무 소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들을
→산딸기나무, 소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들을
3. 바다 구름 달 억새풀 참새 까치 가끔 부리곤 하는 아주머니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그녀의 속마음을 뽑아 쥐고들 있었다. →바다, 구름, 달, 억새풀, 참새, 까치, 가끔 부리는 아주머니들은
4. 나 그냥 사방 문에 철창 해 가지고 그 여자 가둬 놨어 →나, 그냥
5.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흐흠흐흠 하고 실없이 웃고 →'흐흠 흐흠'하고
6. 그는 킁킁 빈대떡 냄새를 맡았다. →그는 '킁킁'하고 빈대떡 냄새를 맡았다.
7. 여우는 옆구리를 채인 채 켕 케겡 하고 →'켕 케겡'하고
<어색한 문장>
딱히 어디가 어떻게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색한 문장이 있다. 부정확한 표현 또는 애매한 표현이거나 모호한 표현, 과장된 표현 등을 들 수가 있다.
(1) 재떨이에 꽁초를 눌러 죽이는 그의 손가락을 내려다보다가,
→꽁초를 재떨이에 눌러 끄는 그의 손가락을 내려다보다가,
(2) 창기의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눈빛이 그녀의 눈알을 더듬었다
→창기의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눈빛이 그녀의 눈을 더듬었다.
(3) 한쪽 앞발로 종이 한 장을 들고 다른 한쪽 앞발로
→ 다른 쪽 앞발로
(4) 흘려 쓴 글자들이라 뜯어읽을 수가 없었다.
→ 알아볼 수가 없었다.
(5) 이것은 과거 시험에 나오게 될 글제일 터이다. 과거에 거듭 낙방한 어느 한 많은 귀신이 이렇게 베껴 낸 것일 터이다.
→이것은 과거 시험에 나오게 될 글제로 과거에 거듭 낙방한 어느 한 많은 귀신이 이렇게 베껴 쓴 것일 터이다.
(6) 새각시의 예쁜 얼굴과 늘씬한 몸매와 날아오는 아릿한 꽃향내에
→늘씬한 몸매와 아릿한 꽃향내에
(7) 몸에서 늘 비누 냄새 샴푸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몸에서 늘 비누 냄새, 샴푸 냄새가 났다. ('늘'과 '끊이지'는 중복된 표현이다.)
(8) 그녀는 가리키는 손가락 끝으로 그의 손바닥에다가 한 글자 한 글자를 아프게 각인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또는 '그녀는 집게손가락으로'
(9) 그 여자는 진달래꽃 그림 박힌 담요로 온몸을 감싸고
→무늬가 있는 담요로
(10) 그 여자에게서 멀어져 가게하고 싶었다.
→떼어놓고 싶었다.
(11) 그녀는 소주에 취하여 울면서 그에게 통사정을 하듯이 말했다.
→통사정을 했다.
(12) 그 여자의 말속에는 거추장스러운 딸을 죽음의 자리로 보내는 독한 어머니의 차가운 매정이 스며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의 말속에는 얄미운 딸을 죽이고 싶은 살기가 배여 있었다.
(13) 장부를 펼쳐놓고 계산기를 두들겨대기만 했다.
→계산기만 두들겨 댔다.
(14) 그에게서 날아오곤하는 비누 냄새와 샴푸 냄새가
→그에게서 나는 비누와 샴푸 냄새
(15) 하루라도 빨리 그 여자와 그의 옆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16) 버스는 유난스럽게 몸을 흔들어대면서 달렸다. 자기의 내부에 무거운 짐을 실은 그녀를 골탕먹이려 하고 있었다.
→버스는 유난스럽게 흔들어 대어 마음 무거운 그녀를 골탕먹이고 있었다. (버스는 스스로 생갹하거나 움직일 수 없는 무정 명사인데 유정 명사처럼 직접적인 능동 표현을 썼다.)
(17) 버스는 그녀가 땅바닥에 발을 디디자마자
→버스는 그녀가 땅바닥에 내려서자마자
(18) 허벅다리의 근육들이 금방 뻐드러 졌다.
→뻣뻣해졌다. ('뻐드러지다'의 뜻은 '굳어서 뻣뻣해지다'인데 동물이 죽었을 때 그렇게 됨을 표현하는 말이므로 산사람의 다리가 힘이 들어 팍팍하게 느껴질 경우에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19) 그의 젖가슴과(가슴과) 어깨를 물어뜯었다.
→그의 가슴과 어깨를 물어뜯었다. (남자의 가슴을 굳이 젓가슴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지.)
(20) 그 여자는 어떠한 소재로 그릇을 빚어 구워도 녹아 흘러내리게 해버리는 용광로 같은 가마였다.
→그 여자는 어떠한 강철도 녹아 내리게 하는 용광로였다. ('용광로'와 '가마'는 같은 믈건이다.)
○불필요한 보조 용언
한 어절로 충분히 표현이 가능한 데도 두 음절을 썼다.
·상처를 입혀 주면서(입히면서) 허섭쓰레기 같은
·너하고 그 여자하고의 관계가 어느 정도 깊어져 있는지(깊은지) 모르겠는데
·그녀는 훤히 짐작하고 있었다(짐작했다)
○수식어와 수식되는 말의 거리
수식하거나 지정하는 말과 수식되는 말의 거리가 멀면 뜻이 모호해진다. 수식하는 말은 가능한한 수식되는 말의 바로 앞에 와야 한다.
(1) 그의 칼끝처럼 파고들어 오는 눈빛이 싫어
(2) 두 개의 유리궁전 같은 횟집 사이에(유리궁전 같은 두 횟집 사이에) 끼여 있었다.
→집을 세는 단위로 개는 부적절
(3) 니코틴의 매우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4) 그녀의 코는 민감하게 떠도는 냄새를 맡았다.
(1) '눈빛'은 '그'의 눈빛이다. 따라서 '칼끝처럼 파고드는 그의 눈빛이 싫어'로 '그의'를 '눈빛' 앞으로 보내야 정상적인 문장이 된다.
(2) 집을 셀 때 한 개, 두 개하고 세지 않는다. '두 개의'에서 '개'는 빼어버린다. '두'는 횟집이 둘이라는 뜻이므로 횟집 바로 앞으로 옮긴다. 이 문장을 정리하면 '유리궁전 같은 두 횟집 사이에'가 된다.
(3) 냄새는 니코틴의 냄새다. '매우면서도 구수한 니코틴의 냄새가'라고 해야 한다.
(4) 냄새는 당연히 코로 맡는다. 이 문장에서 코를 드러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굳이 코를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 문장의 주어는 '그녀가'이면 족하다. 부사어는 서술어를 꾸미는 역할을 담당하는 문장 성분이다. 부사어 '민감하게' 서술어 '맡는다'를 꾸며 주도록 '민감하게'와 '떠도는 냄새를'을 순서를 바꾸어 '그녀는 떠도는 냄새를 민감하게 맡았다.'로 한다.
○잘못 쓰인 어휘
소설 문장에 쓰인 어휘를 '맞다' '틀리다'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같은 어휘라도 작가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또 다른 의미를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사전적 의미만을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어휘의 본래적 의미를 너무 많이 벗어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의미를 억지로 첨가하면 설득력이 없어진다. 또한 문법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어휘를 사용하거나, 주어와 호응이 안 되는 서술어를 쓰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부적절한 서술어>
·식용유를 넉넉하게 바르고(두르고) 불을 켰다
→부침을 하기 위해 냄비나 번철에 기름을 넣는 행위는 기름을 '바르다'보다는 '두르다'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 따라서 위 문장은 '식용유를 넉넉하게 두르고 불을 켰다'라고 하면 된다.
·그에게 등을 두르고(돌리고) 바다를 향해 앉았다.
→마주 보던 사람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앉는 행위를 '두르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두르다'에 그에 알맞는 의미는 없다. 다만 목에 목도리를 감거나 숄을 어깨에 얹는 행위를 '두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문장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바다를 향해 앉았다.'로 바꿔야 한다.
·아픈 기억의 종양을 찢고(째고) 피고름을 짜내고 있었다.
→종양이나 부스럼 등을 베어 가르는 행위는 '째다'라고 한다.
·물 쳐서 갠 녹두가루(녹두 반죽)를 넣었다.
→물을 쳐서 갠 것은 이미 '녹두 가루'가 아니고 '녹두 반죽'이라고 해야 한다.
·녹두가루가(녹두 반죽이) 뜨거움을 못 견뎌하면서(못견뎌) 푸드덕거렸다.
→'못견뎌 하면서 푸드덕거렸다.'의 뜻은 '못견디다'와 '푸드덕거리다'가 별개의 행위로 두행위를 동시에 하는 것이지만 녹두 반죽은 뜨거움을 못견뎌서 푸드덕거리는 것이다. 즉 '못 견디기 때문에 푸드덕거리는 것이다.
·빼앗긴 그것을 되 빼앗으려고(되찾으려) 덤벼드는 것을
→빼앗긴 것을 다시 얻는 행위는 '되찾다'이다
·너무 난삽하게 흘려쓴 글자들이라 뜯어 읽을 수가 없었다.
→'난삽하다'는 '말이나 문장이 어렵고 까다로워 매끄럽지 못하다.'의 뜻이므로 글자를 '난삽하게 흘려쓴'은 적절하지 못하다.
·왕씨는 소스라쳐(소스라치게) 놀랐다.
·강나루에 이르렀을 때 왕씨는 소스라쳐(소스라치게) 놀랐다.
→'소스라쳐'는 동사이므로 부사형으로 바꾸어 서술어를 수식하게 해야 한다.
·그 문을 살피고 난 그녀는 의아했다.(의아해 했다.)
→'의아하다'는 형용사이다. 그녀가 의심스럽게 느낀 사실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동사가 와야 한다.
·담 위에서 흐드러진(흐드러지게 핀) 핏빛 덩굴장미 꽃들이
→'흐드러지다'는 형용사이므로 동사 '핀'을 수식하려면 부사형으로 표현해야 한다.
·내 사람 하나를 붙여 주어야(붙여 두어야) 하는데…… 니가 내 사람 노릇을 좀 해라.
→'붙여 주다'는 상황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그 여자가 우리집 돈을 모두 빼내다가 쓰고 있기' 때문에 감시하기 위해서 사람을 붙이고자 하는데 '붙여 주다'는 적절하지 않다. '그 여자'를 위해서 사람을 붙이는 것이 아니고 말하는 '그녀' 자신을 위해서 '붙여 두는' 것이다.
·하루 한두 차례씩 목욕탕엘 다녀오라고 돈을 잡혀 주곤 했다.
→'잡히다'는 '도망치거나 달아나지 못하게 붙들다'는 의미를 가진 '잡다'의 피동형이다. '잡혀 주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붙들고 있게 한다'는 뜻이 된다. 목욕을 하라고 돈을 주는 것은 '쥐어 주다'라고 해야 한다. '날마다 목욕탕엘 다녀오라고 돈을 쥐어 주곤 했다.'
·그와 그녀가(그 여자가) 문을 안에서 걸어잠근 채 벌였을 음험한(음탕한) 일이 떠올랐다.
→'음험하다'의 뜻은 '마음이 음충맞고 사납다'의 뜻이므로 그와 그녀가 벌였을 일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이 문장은 그녀가 김군과 어머니 그 여자가 벌였을 일을 상상하는 장면이다. '그와 그녀'는 '그와 그 여자'의 잘못이다.
·이때껏 맺어온(이어온) 모녀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가 부드러워져야 한다. 간밤의 일을 잊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 그녀와 그 여자는 친 모녀 관계이다. 인위적으로 맺은 관계가 아니다.
·그 집 전화번호 가르쳐 줄께(그 집 전화번호 알려 줄게.)
→'가르치다'와 '알려주다'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대학 시험에 실패하고, 진학을 포기해 버린 채(실패하여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엘 갔을 때,
→시험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 되어 진학을 포기했으므로 종속적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대등하게 이어진 연결어미 '-고'를 써서는 안된다
·다리 근육들이 지쳐 늘어졌다.(당기고 아팠다.)
어색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오래 걸으면 다리 근육이 당기고 통증을 느끼기 마련인데 근육들이 늘어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번호를 잘못 눌렀는(누른) 모양이구나.
'누르다'의 과거형은 '눌렀다'이다. 이는 절대적 시제로 종결형 어미로 표시되지만 상대적 시제는 관형사형으로 표시된다. '누르다'의 관형사형 과거 시제는 '누른'이다.
<낱말을 잘못 골라 쓴 경우>
아래의 예문들은 낱말를 잘못 쓴 경우이다. 낱말 하나 하나에 대한 의미 파악이 제대로 안되어 있어 이런 오류가 발생하게 된 것 같다.
1. 골목이 이것 말고 또 있을까.(여기 말고)
2. 쾌속선 두 척이 푸른 물굽이(물결) 속에 묻혀 있는
3. 알아볼 수 없는 글씨들이(글자) 씌어 있었다.
4. 고량주를 권커니 잣거니(권커니 작커니) 했다.
5. 햇빛이 뜨거운 데다 무더웠다.(햇볕이 뜨거웠다.)
6. 저쪽에서 전화를 받은 남자 목소리가
"여기는 가정집이야. 확실하게 알고 전화를 걸어. 죽도록 밤일하고 들어와서 막 눈을 붙이려고 하니까 이런 정신나간 년이……."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7. 학교 뒤쪽 언덕에는 양철이나 슬래브지붕을(지붕에 양철이나 슬레이트를)얹은 자그마한 블록 벽돌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서 있었다.
1. 골목을 가리켜 '이것저것'으로 지칭하는 것은 잘못이다. 골목은 장소이므로 '여기저기' 또는 '이 골목 저 골목'이라고 해야 한다.
3. '글씨'는 '글자의 모양'이다. 쓰는 것은 '글자'이지 글씨를 쓰는 것은 아니다. '글씨'는 '글씨가 예쁘다' 또는 '글씨가 잘 써졌다'라고 해야 한다.
5. 뜨거운 것은 '햇빛'이 아니라 '햇볕'이다.
6. 목소리가 직접 소리를 지를 수는 없다. 남자가 소리를 지르면 남자 목소리가 나온다.
7. 8. '슬래브지붕'은 지붕 상판이 평평하게 된 철골구조의 한 건축 양식을 말하는 것이므로 '슬래브지붕'을 얹을 수는 없다. '슬레이트(지붕·천장·내장·외장 등에 사용되는 천연 또는 인조 돌판)'의 잘못인 것 같다.
<표준말>
·코가 오똑했고,(오뚝했고,) 입술이 얇다라면서(얄따라면서) 붉었다.
·버스 안의 공기는 후덥지근했고,(후텁지근했고)
→'오뚝하다'와 '얄따라랗다', '후텁지근하다'가 표준말이다.
○불필요한 복수 표현
군중, 국민, 머리카락 등 어떤 낱말은 복수 표현을 따로 하지 않아도 낱말 자체가 복수를 포함하고 있다. 또 낱말 앞에 관형어로 수량을 나타내고 있을 때도 복수를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의자들 여덟 개(의자 여덟 개), 전화기, 텔레비전, 미니 오디오들이 의좋게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람은)신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든지
·짐 둘을(짐을) 통로 안쪽 가장자리에 쌓았다.
·등 쪽에 늘어뜨려 놓은 생머리카락들이(생머리카락이)
·삼단처럼 치렁거리는 머리칼들이(머리칼이) 얼굴을
·눈동자와 얼굴 근육들이(근육이)
·여자들의 속옷 가게를 차리고 싶었다.(여자)
○조사
조사는 경우에 따라 생략할 수도 있다. 조사를 생략하여 소설적인 긴장감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조사를 생략하여 의미가 애매해지거나 모호해질 수도 있다. 아래 예문은 조사가 생략된 경우, 불필요한 경우, 잘못 사용된 경우를 찾아낸 것이다.
·비밀 번호 적은(비밀 번호를 적은) 종이를
·화장할 비용 넣어 놓은(화장할 비용을 넣어 놓은) 통장,
·그녀는 그에게 그녀의 영혼(영혼이) 담긴 주머니끈을 통째로 잡혀 주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 둘이가(둘) 다 미워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둘이가(둘) 다 알몸이 된
·그로 하여금(그를) 그 여자에게서 멀어져 가게하고 싶었다.
·부드러움과 따스함을(부드러움과 따스함으로) 포장한 목소리였다.
·그녀의 이마와 콧등에서는(그녀의 이마와 콧등에)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그 여자에게로(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여자의 얼굴로(얼굴에) 뿌렸다.
·그녀는 그 여자에게로(여자에게) 전화기 소형금고 장부 의자 방석 쓰레기통 가죽들을 들어 던지며 악을 써 댔다.
○주어가 없는 문장
우리말 문장에서는 주어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 주어를 생략하기 위해서는 앞 뒤 문장에서 충분히 주어를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앞 문장과 주어가 같을 경우에는 주어가 없어도 문장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앞 문장과 주어가 다를 경우에는 주어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또 새로운 문단이 시작될 경우에도 주어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즐겁게 웃을 때에도 슬픈 그늘이 어려 있곤 하는 그의 얼굴을 밝게 만들어 주고 싶어졌다.
→이 문장에서 그의 얼굴을 밝게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은 '그녀'다. 그런데 바로 앞 문장에서
고아원에서 자란 이야기를 해준 것은 '그'다. 이런 경우에는 주어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이박 삼일 동안, 울산 부산 마산 전주 광주의 가죽점으로 수금을 나갔다가 밤 늦어서 돌아왔다.
→새로운 문단이 시작되는 곳이다.
○맺음말
썰물로 드러난 회갈색의 바지락 양식장에 앉아 있던 두루미 한 마리가 그녀의 집이 있는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위의 예문은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그녀'에 대한 아무런 소개나 설명 없이 처음부터 '그녀'로만 등장한다. '그녀'는 여자를 가리키는 인칭대명사다. 대명사는 명사를 대신하여 나타내는 말이다. 대명사가 쓰이기 위하여는 먼저 대신할 명사가 제시되어야 한다. 인칭대명사 는 먼저 고유명사가 있어야 그 사람을 지칭하는 인칭대명사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고유 명사 없이 대명사가 쓰인 것은 '그녀'라는 인칭대명사를 고유명사와 같은 자격으로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녀'를 '선우창희'와 같은 자격으로 처음부터 썼다. 또한 '그 여자'는 그녀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고유명사 자격으로 썼다. 그런데 한 곳에서는 '그녀'와 '그 여자'를 혼동하여 잘못 쓰고 있다. 명사와 대명사를 적절하게 사용하였다면 이런 실수는 없었을 것이다.
때로 낮은 목소리가 오히려 호소력이 있을 수 있다. 이 소설은 강약 조절 없이 내내 강한 어조로만 말을 하고 있어 귀가 따가울 정도다. 그녀의 감정은 상당히 격앙되어 있다. 동생과 마주 앉아서도 그 여자를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용서는커녕 동생의 그 여자의 말을 꺼낼까 보아 겁이 났고, 동생이 말을 꺼내자 진저리를 쳤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여자가 치매로 폐인이 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여자를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진저리치던 격앙된 감정은 어떻게 삭였는지 바지락과 굴 향기 나는 속을 열어 보인다. 주인공의 느닷없는 변심에 독자는 어안이 벙벙하다. 작가가 목소리를 낮추어 소근소근 속삭여 주었다면 독자는 쉽게 설득되었을 것이다. -끝-
[작가 소개]
한승원 [韓勝源, 1939.10.8 ~ ]
전남 장흥에서 8남매 중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명심보감》을 배웠다. 1954년 장흥고교에 입학, 당시 문예부장이던 선배 송기숙을 만나 교지 《억불》을 창간하고, 수필을 발표하며 문학수업에 열중하였다.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김동리에게 소설을 지도받았다. 19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되었고, 초등학교 교사 발령을 받았다.
1968년 대한일보에 《목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69년 단편 《무적》 《이색 거미줄 소묘》를 발표하고, 광주 춘태여고로 직장을 옮겼다. 1970년 단편 《미친 소리》를 발표할 무렵부터 풍자적인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1971년 단편 《멍청강과 이거식》 《거미와 시계와 교사들》을 발표하고, 1972년 첫 소설집 《한승원창작집》을 출간했으며, 광주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소설문학》 동인을 구성하고 활동하였다. 1974년 연작소설 《한1-어머니》를 집필하면서부터 풍자와 우화적인 표현방법에 회의를 느끼고 민족정서의 뼈대인 한(恨)의 문제에 천착하며 판소리에 빠져들었다. 1975년 연작소설 《한2-홀엄씨》 《한3-우산도》를 발표하면서 고향인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한 토속적인 세계와 역사의식을 통해 민족적인 비극과 한을 소설화하는 데 자신감을 가지고 독자적인 소설세계를 이루었다.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문학인생은 고향인 남해 바닷가에 뿌리를 두었다. 그의 소설은 운명의 올가미에 한이 서린 인간상을 통해 인간의 존재 근원을 이야기한다. 데뷔작 《목선》에서부터 《앞산도 첩첩하고》(1976) 《기찻굴》(1978) 《포구1》(1982) 《해변의 길손》(1987) 《새끼무당》(1994) 등의 중단편과 자전소설인 장편 《해산 가는 길》(1997)과 《사랑》(1998) 《꿈》(1998) 등에 이르기까지 수백 편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전남 장흥의 남해 바닷가를 고향의 언어인 토착어를 구사하며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다루었다. 그리하여 남해 바닷가는 한국소설사에 원형상징성을 띠는 한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97년 그의 고향에서는 포구 갯바위에 문학비를 세웠다.
1980년 《그 바다 끓며 넘치며》와 《구름의 벽》으로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누이와 늑대》로 대한민국문학상(1982), 《포구의 달》로 한국문학작가상(1983), 현대문학상(1988), 《해변의 길손》으로 이상문학상(1988), 《포구》로 한국해양문학상(1997)을 수상했다.
저서에 소설집 《한승원창작집》(1972) 《앞산도 첩첩하고》(1977) 《여름에 만난 사람》(1979) 《신들의 저녁노을》(1980) 《신화》(1981) 《불의 딸》(1983) 《포구》(1984) 《우리들의 돌탑》(1989) 《해산 가는 길》(1997) 등이 있고, 수필집 《허무의 바다에 외로운 등불 하나》(1993) 《키 작은 인간의 마을에서》(1996) 《스님의 맨발》(1998) 등이 있으며, 시집 《열애일기》(1991)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199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