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6호BC 2000-BC 1900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기 네게 지시할 땅으로가라 ."
(창12:1) | |
――――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신문 ―――― |
오늘의 세계표정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찬란한데 나이 많은 한 늙은이가 민족을 이룬다고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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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민족의 시조가 되는 꿈을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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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 그는 선택의 사람인가? 아니면 기회주의자인가?-
(BC.2000-1900 년경)-자신의 정든 땅을 버리고 나라를 세우겠다고 집을 떠난 한 사내가 있어 근동의 모든 부족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나이 80세 10살 밑의 아내, 그리고 몇 되지 않은 시비들만을 데리고 아라비아 사막 쪽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가 신의 큰 계시를 받아 민족의 시조가 되리라는 암시를 받았다고 하지만 의문인 것은 그에게 아직 자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그들 부부는 이미 나이가 많아 늙었고 그의 아내 사래의 경우는 젊었을 적에 미모가 조금 남아있기는 해도 갱년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자녀의 생산 자체가 불투명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본토와 친척 그리고 아비 형제들을 떠나 알지도 못하는 서쪽 땅으로 떠나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웃들은 전했다. 어떤 이는 비록 그의 직계 조상들이 노아의 장손 집안으로 남달리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의 아버지 데라 대에 이르러서는 생활 방편으로 가정수호의 상징물인 목각으로 된 조각상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의아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브람 그는 과연 자신의 믿음대로 또 다른 한 민족의 시조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아라비아 사막의 해골로 변한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았다.
(사진은 기도하는 아브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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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터 |
아브람은 왜 가나안으로 가는가?
-그는 정말 신의 계시를 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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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900)-고대에는 조상들이 신과 직접 대면하여 말을 했다는 전설이 있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 주위에 여러 귀신들과 정했다는 무당들은 많이 있지만 사람을 창조하였다는 그 생명의 신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직접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갈대아 우르 사람인 아브람이 자신은 여호와란 신과 직접 대면하였으며
그에게 특별히 계시를 내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우르성(城)의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서쪽으로 떠났으며 그가
가게 될 최종 목적지는 팔레스틴 지역 가나안 땅이라고 밝혀졌다. 아브람이 신을 만나 이야기를 했다는 말에 대해 지구라트의
신전제사장들은 강력히 비판하며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월신(月神)이 참된 창조주이며 아브람이 말하는 '여호와'란 신은 거짓
신이므로 백성들이 이에 현혹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단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원로회에서는 아브람을 따라가는
사람이 없도록 령을 내렸으며 각성문을 책임진 군장들은 검문을 강화했다고 한다. 아브람 그는 과연 참된 신을 만난 사람인가?
아니면 미혹을 받은 사람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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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과의 인터뷰◀◀
나는 확신한다. 그러므로 간다.
CB(1900 마므레 특파원) 기자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근 1년째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아브람을 만나려고 급하게 낙타를 몰아 그를 만났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 어렵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왜 살기 좋은 하란을 떠났는가? ○신이 내게 말했다.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자신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다. ★신의 존재를 믿는가? ○한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나타나 똑같은 말을 한다면 당신이라고 믿지
않을 수 있는가? 이 나이에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새로운 인생을 찾겠다고 모험에 나서겠는가? ★신은 왜 당신을 택했다고 했는가? ○나를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할 민족이 일어나도록 해주겠다며 언약하셨다. ★왜 가나안으로 가는가? ○신이 지정해주신 땅이다. 그러므로 가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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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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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사학회, 비히스툰 석벽 비문 완역· 비교번역 성공
-고대언어의 비밀이 풀리면서 성경의 확실성이 더 굳어져-
한 통신사에 따르면 창조사학회(회장 장국원)는 4개 고대어로 전해지고 있는 옛 페르시아제국의 비히스툰 석벽(다리오 석벽) 비문의 완역과 비교번역에 성공했다.지난달 현지답사에서 정밀촬영을 끝낸 학회는 최근 고대페르시아어와 아카드어,엘람어로 된 비문과 함께 이집트에서 발견된 같은 내용의 아람어 공문서를 번역해 언어학적으로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끝냈다.다리오왕의 치적을 쐐기문자로 기록한 이 석벽은 1백50여년전 영국의 고고학계에 의해 개략적인 내용이 소개되긴 했으나 완벽한 비교번역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아람어를 비롯한 기존의 번역 내용에 오류가 많아 대폭적인 수정을 가했다.이 작업은 하버드대에서 고고학을 공부,고대어에 정통한 창조사학회의 배철현박사가 맡았으며 곧 `TIME' 등 해외 유수 언론에도 그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라고한다.페르시아제국의 고대 페르시아어와 엘람어,신바빌로니아제국의 공용어였던 아카드어,이집트의 아람어 등의 정밀분석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확실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참고: Mesopotamia, Umma Probably Old Babylonian, ca. 1800 B.C. "School Tablet, Probably with a Sumerian Proverb" Clay, 3-9/16 inches diameter Collected by William A. Shelton, funded by John A. Manget, 1921.114 Collection of the Michael C. Carlos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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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000년경)고대 종교국가의 탄생 러시
고대 종교 국가는 각각 종교적 종파를 따로 가지고 있었던 농업을 주로 하는 지역사회로 시작되었다. 서서히 지역 종교와 그 종교 지도자가 마을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마을 전체가 그 종교의 신에게 바쳐졌고, 곧 그 종교가 결국은 그 지역사회를 통치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농업의 신과 농업의 여신들을 예배하였다. 그들의 종교의식은 그해의 농업의 스케쥴에 따라 집행되었다. 조그만 도시 국가가 점점 커짐에 따라 그들의 종교도 풍요로워지고 힘도 점점 커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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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이 인류최초로 문자 생활했다는
주장 있으나 수메르어가 더 먼저 일수도 있어" --------------------------------------------------------------------------- 역사상 최초로 문자를 사용한 민족은 이집트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AP통신에 따르면 독일 고고학연구소 귄터 드라이어 소장은 15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남부 아비도스의 스콜피언(전갈) 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점토판의 그림들이 인류에 의해 쓰여진 최초의 문자”라고 밝혔다.드라이어 회장이 밝힌 이 점토판의 탄소측정 연대는 기원전 3천3백~3천2백년.지난 85년부터 드라이어 소장과 그의 연구진은 아비도스 지방의 묘지에서 우표크기만한 점토판과 명문이 새겨진 도기 3백여점을 발굴해 왔다.드라이어 소장은 “산과 식물,동물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이들 초기 문자형태는 이집트 파라오 시대에 사용된 상형문자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음을 입증하는 최초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
그는 또 “이들 대부분에는 스콜피언 왕에게 세금 명목으로 바쳐지는 기름과 린넨 등의 숫자와 바치는 사람 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며 “이들의 문자는 창조적 욕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분석했다.지금까지는 현재 이라크 지역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인들(현재의 이라크 지역)이 인류최초의 문자생활을 한 민족으로 역사학자들의 인정을 받아왔다.그러나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천년 이전에 문자를 쓰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됐을 뿐 정확한 연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여서 문자의 기원이 5천년전 이집트임을 밝힌 이번 발견을 두고 논란이 예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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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문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집트는 이미 왕조체제를 굳혀-
(BC 2500-1900년경)-홍해가 가로막고 있는 관계로 이집트는 북아프리카를 차지하여 안정된 발전을 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는 전했다. 수메르가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일찌감치 패권다툼에 휩싸여 하루도 분쟁이 그칠 날이 없었지만 이집트는 독자적으로 북아프리카를 통일하여 왕권을 수립한 것이다. 힉소스 왕조는 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여 지중해의
맹주로 떠오르고 있었다. 더불어 문화가 발전되어 인근지역뿐 아니라 지중해의 크레타까지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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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브라함의 고향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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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기문자와 고대성경의 기록
-쐐기문자의 기록 발견으로 인하여 성경의 확실성이 더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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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하는 이야기,대홍수를 피해 방주를 만드는 이야기,이스라엘의 왕들이 관련된 전쟁 이야기 등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은 쐐기문자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의 문자로 기록된 토판문서의 해독을 통해 그 역사성이 차례로 확인됐다.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는 그리스어로 `강 사이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대부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인 오늘날의 이라크에 속하는 지역이다.바로 이곳이
유대인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이 살았던 메소포타미아이다. 이곳에선 인류 최초의 문자인 수메르어가 점토판에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목공소에서 사용하는
나무못인 쐐기와 모양이 닮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쐐기문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진흙으로 만든 서판에 뾰족한 갈대 펜으로 글씨를 새기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자다.처음의 형태는 있는 그대로 사물모양을 그린 상형문자로
누구든지 그림을 보고 그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는 뜻글자였다.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림이 여러 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쐐기문자로 변하면서 언어의 성격도 우리에게는 생소한 음절문자로 발전됐다. 음절문자란 한글이나 영어와 같은 소리글자와 중국의 한문과 같은 뜻글자가 한데 어우러진 언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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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망원경은 3천년전 발명
“인류 최초의 망원경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의해 발명된 것이 아니라
이미 3천년 전에 발명됐다”
로마대학의 지오바니 페티나토 교수는 현재 대영박물관 55호실 메트로폴리탄 갤러리 9번 케이스에 보관중인 천연 수정렌즈(사진)가 인류 최초의 망원경이라고 주장했다.그는 고대 아시리아인이 천문학에 정통했던 이유를 그 시대에 만들어진 이 렌즈가
증명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만약 그의 주장이 맞는다면 망원경 발명의 역사는 2천5백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니므롯(노아의 자손 이름)의 렌즈'라는 이름의 이 렌즈는 영국의 전설적인 고고학자 존 레이야드 경이 1850년에 지금의 이라크
영토 내에 있는 옛 니므롯 궁전에 대한 대규모 발굴과정에서 발견한 것.페티나토 교수는 이 렌즈가 당시 발명되었던 망원경의
일부인 것이 확실하며 그 이유로 아시리아인의 토성에 관한 해박한 천문지식을 거론했다.당시 아시리아인은 토성을 `고리를
시종으로 거느린 신(神)'으로 묘사했다는 것.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아시리아 관련 고고학 전문가들은 이 수정렌즈가 천문용으로 쓰기엔 조악하고 화상도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단순히 확대경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망원경이
존재하지 않는 `니므롯의 렌즈'와 갈릴레오 망원경 사이의 2천5백년 동안의 간극도 설명이 어려운 미스터리다. /BBC온라인
휴대용 천문 관측기 천문관측 삽화 경덕왕 23년 뉴턴의 망원경 별의 움직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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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의 서기(書記)학교 최고 인기
수메르에선 출세를 위해 서기(書記)학교(學敎)에 자녀를 보내는 일이 많아 졌다고 한다. 글씨와 산법(算法)을 가르치는 서기관(書記官)학교에서는 소위 빽이 없으면 입학도 힘든 형편이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입시위주의 과열경쟁이 일어나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이 있는 가운데, 서기관 학교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 | |
★역사추적(TIME LINE)★
영생에 대한 간절한 바램을 담은 무덤
▶고대인들의 매장풍습이 날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러
- 하지만 순장(殉葬)과 같은 잘못된
관행도 생겨 사회문제화 -
수메르 사회에서는 매장 풍습이 점점 발전하여 매장시에 그 사람의 생전의 유물이나 기타 물품들을 같이 매장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계속해서 삶을 살게될 것이라는 '영생'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하지만 이러한 매장 풍습이 지나쳐 실력자들이나 왕들의 경우는 심지어 그가 거느리던 시비나 첩까지 산채로 매장하는 순장(殉葬)이 퍼지게 되어 크게 고대사회의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러한 순장에 대해서 여론이 나빠지자 산사람을 순장하는 대신 사람의 모양을 빚은 인형이나 토용(土俑)을 대체해 묻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무덤을 호화롭게 치장하고 분묘를 크게 꾸미는데 이것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산사람이 자신의 가문을 드러낼 목적으로 만드는 수가 더 많았다고 보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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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 갑골문자 개발
거북껍질에 쓰여진 글자
-중국의 한문의 기초가 된 글자-
거북의 배껍질(甲)이나 소의 어깨뼈를 구멍내어 그것을 불에 태우는데
이때 갈라진 형태를 보고 점을 치다가 발전된 것이 '갑골문자;이다.
글자라고 하기에는 조악한 형태의 그림문자이지만
중국한자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史料)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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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만은 압시다 □□
인류의 문명은 세라믹 문명의 발전과 함께
ㅡ- 도자기에서 반도체까지 --
유사이래 인류의 문명발전은 세라믹 기술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인류가 에덴에서 붸겨 나온 이후 열매 채취에서 경작생활로 바뀌고 다시 홍수 이후에 수렵과 목축으로 경제가 바뀌면서 필수적으로 용기가 필요하게된다. 곡식을 저장기 위해 혹은 음식을 들어먹기 위해 각각의 필요 때문에 토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굽지 않은 토기였으나 점점 불에 굽는 기술이 발전되었다. 초벌에서 두벌로 다시 도자기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흙을 불로 소성가공하여 오늘날에는 반도체를 만들고 있으니 결국 인간은 흙을 이용하여 문명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결국 세라믹문화를 창조하는 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번도 한 것이다. 반도체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인터넷은 오늘날 정보혁명이라는 말로서 그 가치를 새롭게 하고 있을 정도이다. 한때 고려청자로 세계의 세라믹산업을 선도하였던 한국이 이제 반도체와 인터넷으로 세계의 일류대열에 올라설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한문 속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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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두그루의 나무+示신.나타냄.
창2:16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금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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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이트:▶http://www.emory.edu/CARLOS/ODYSSEY/NEAREAST/writ.html ▶http://guardians.net/egypt/ ▶http://www.library.nwu.edu/class/history/B94/ ▶http://www.bible-history.com/resource/ah_egypt.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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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자료ㅡㅡㅡㅡㅡㅡㅡㅡ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의 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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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2007/04/17 (화) 22:24
http://blog.empas.com/kyhming/19512736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갈대아(Chaldea, 창11:31)는 바사(페르시아) 나라 서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하류 사이에 소재한 지역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즉 오늘의 이라크와 이란의 남서부 지방이다. 메소포타미아는 헬라어로 ‘강 사이의 땅’이란 뜻이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Ur)는 이 갈대아 지역에 있는 도시로 당시 크게 번성했다. 갈대아 지역의 북쪽은 산지와 구릉,사막지대가 계속되는데 남쪽은 저지대로 광대한 습지대이다. 산지의 강우량이 많아 저지대에는 농경이 성행하며,이 지방의 특산물로 종려가 많다. 동쪽과 북쪽의 산지는 오늘의 유전지대이다.
우르는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350km 정도의 먼 거리에 있는데 내가 우르를 방문한 것은 가장 무더웠던 2001년 8월 한여름이었다. 당시에도 이라크의 남쪽 지역의 정세는 불안하여 나와 일행은 위험한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이용했다. 아니나다를까 당일 우르를 가던 스페인 순례팀은 빠른 고속도로를 이용하다가 테러를 당했다. 섭씨 55도가 넘는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 4시간 이상을 견디며 마침내 아브라함이 살던 우르의 유적지에 도착했다. 얼마나 더웠는지 후에 필름을 현상해보니 일부는 더위에 변색되고 말았다.
우르는 아브라함이 출생한 고향으로(창11:27,31:15) 성경에는 ‘갈대아 우르’라고 기록되어있다. 옛날부터 메소포타미아의 고도였음이 분명하다. 본래 홍수 이전부터 성읍이었던 우르는 대홍수로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일반적으로 우르는 고대 수메르와 바빌로니아(바벨론)의 도시로 한때 문화가 번성했으며 주전 2600∼2400년경에는 바빌로니아(수메르)의 강력한 지도국가로 등장했다. 그러나 같은 수메르의 도시국가인 라기슈에 멸망하였고,우르 제3왕조(주전2500∼1950년),곧 아브라함 시대 이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성읍으로 토지는 매우 비옥하고 주민의 생활은 부유하였으며 농업,공업,어업의 중심지였다. 여기에서 대상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배는 구리와 돌을 싣고 바사만을 항해하였다. 그후 바빌로니아 전역은 함무라비의 바빌로니아 제1왕조에 의해 통일되었는데,이때 우르는 수메르인의 반란 중심지로 철저히 폐허되고 뒤에 신바빌로니아 때 재건되었으나,페르시아(Persia) 때에는 다시 쇠퇴하였다가 주전 4세기경에는 폐허가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시 가장 번성했던 살기 좋은 우르를 떠나도록 명령하였고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생활의 터전인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왔다. 가나안은 모든 조건에서 우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못한 곳이었다. 그러나 훗날 역사는 무엇이 하나님이 축복하신 땅인지를 보여주셨다. 곧 바벨론과 함께 아브라함 당시 그렇게 번창하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한 중심에 있던 우르는 역사의 흐름 속에 파괴되고 오랜 세월이 지나는 중에 사막의 모래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근래에 펜실베니아 대학 박물관과 대영 박물관의 공동 발굴대(C.L 울레이 박사 지도하에 12년간:1922∼1934년)는 폐허의 고적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두 개의 주요한 신전은 달신 난날(Nannar)과 여자 달신 닌갈(Ningal)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리와 골목마다 잡신을 섬기는 조그마한 제단들이 즐비하였고,전설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가 이런 신의 우상을 제조 판매했다고 전한다.
우르의 대표적인 유적은 유네스코 지정문화재이기도 한 지구랏트이다. 우르의 지구랏트는 전형적인 고대의 탑신전으로 현재 가장 높은 언덕이 되었으며,아브라함 시대에는 이 성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을 것이다. 이 신전은 벽돌로 만든 축대가 층을 이루고 축대에는 나무를 심고 맨 꼭대기에는 달신의 성역이 있었다. 원래는 3단으로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맨 밑의 기저층만 남아 있다.
우르의 지구랏트에서 불과 100여m 정도에는 아브라함의 집터가 있고 그 옆에는 왕들의 무덤이 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고향을 떠난 우르는 오늘날 인류 최초의 문명의 발생지였던 찬란한 문명은 사라지고 그나마 남아있는 유적은 이라크 전쟁으로 다시한번 파괴를 당했다. 이런 우르의 폐허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 문명은 결코 영원하지 못함을 새삼 느끼며 숙소인 바그다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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