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과 비교되는 조선 사람들의 식사량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먹으려고 드는 습성은 천하에서 제일간다. 근래에 유구(琉球·오키나와)에 표류해 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너희 나라 사람은 항상 큰 사발에다 쇠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마구 퍼먹어대는데, 그렇게 먹고서야 어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어려서 배불리 먹는 습관이 들면 위장이 차츰 커져서 채워지지 않으면 굶주림을 느낀다. 차츰차츰 습관이 들어 차츰차츰 굶주림을 느끼면 굶어죽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습관이 들어 위장이 커지는 사람이 있다면 습관이 들어 위장이 작아지는 사람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비록 늘 굶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너무 과하게 먹는 음식을 덜어내는 것이야 불가능하겠는가?”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이런 말을 했겠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당시 밥을 많이 먹은 것은 반찬을 적게 먹었던 탓이 있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은 바다 건너 원정을 나온 터라 군량미 보급이 부족했지만 조선군에 비해 훨씬 적게 먹었기에 오래 버틸 수 있었다. 한 끼 식사에 조선군은 쌀 7홉(당시 한 홉은 60cc 정도)이었는데 일본군은 고작 2홉밖에 되지 않았다. 실제로 조선은 동북아 3국 중에서 가장 밥을 많이 먹은 나라였기에 대식국(大食國)으로 불리었다. 다른 나라에서 하루 먹을 양식을 한 끼에 다 먹었다는 것이다. 일본에 다녀온 김세렴이란 사람이 보고하기를 “왜인들은 한 끼에 쌀밥 두어 줌밖에 먹지 않더이다”고 했고, 청나라에 다녀온 실학자 홍대용은 “그들의 밥그릇이 꼭 찻잔만 하더이다”고 했다.
조선의 임금 중에서 가장 장수한 영조대왕(83세)은 소식가였다. 영조는 가뭄이 들면 하루 다섯 번 먹던 수라를 세 번으로 줄이고 반찬 수도 반으로 줄였으며 심지어 간장만으로 수라를 받기도 했다. 조정 대신들 중에도 청빈하고 검소하게 살았던 분들 중에 장수한 분들이 많았다. 청백리에 선정된 분들 중에 상당수가 장수했는데, 황희(90세), 맹사성(79세), 이원익(88세), 김상헌(83세) 등이다. 그리고 우암 송시열,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같은 분들도 소식했고 장수했던 분들이다.
1,400여년 전에 무려 102세까지 장수했던 당나라 명의 손사막(581-682) 선생은 식사는 자주 하되 70-80% 정도로 적게 먹으라고 하였다. 밥은 적게 먹되 반찬은 많이 먹으라고 하였고, 특히 배가 고프면 식사를 하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의 한 분인 소동파는 ‘절음식설(節飮食說)’이라는 글에서 하루 동안 술 한 잔, 고기 한 조각만 먹겠다고 하면서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법이라고 하였다. 이익 선생은 가난한 살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절식한 것은 아니고, 의학에도 능통했던 그의 학문으로 보면 소식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좋다는 것을 알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순조 임금 때 이양연(1771-1853)이라는 문신은 ‘절식패명(節食牌銘)’이란 문구를 지었다. ‘적당히 먹으면 편안하고 지나치게 먹으면 편치 않다. 의젓한 너 천군이여 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適喫則安 過喫則否 儼爾天君 無爲口誘)’고 씌어 있다. 젊은이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한 사람이 이 팻말을 두드리고 거기 적힌 글을 소리 내어 읽음으로써 좌중의 사람들에게 과식하지 말 것을 경계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밥 먹기 직전에 밥맛 떨어지는 얘기를 한 셈이다. 여기서 천군은 몸의 주재자인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런 패를 지었던 그는 당연히 83세까지 장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