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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43회
화방재-유일사-장군봉-천왕단-부쇠봉-
깃대배기봉-차돌배기-석문-석문동-
20231015
1.운무와 단풍이 어루러진 태백산의 가을
2021년 1월 17일 한겨울에 이 구간을 산행한 뒤 2년 9개월만에 다시 이 구간을 산행한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버스는 금봉이휴게소를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태백시 혈동 어평재휴게소에 도착했다. 이 지역민들은 이 고개를 화방재라 부르지 않고 어평재라고 부르는 이유를 2년 전 산행 때 배워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화방재라 부르고 도로표지판에 화방재라고 적혀 있어 화방재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그렇지만 강원 태백시는 일본식 고개이름인 태백산 ‘화방재(花房領)’를 ‘어평재(御坪峙)’라는 고유 명칭으로 부르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500여 년 전부터 ‘어평재’라고 불려 왔으며, 고개 아래의 마을은 어평리(御坪里)라고 옛 책자에 명기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단종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옛 전설이 어린 고개의 이름을 어평재(御坪峙)라고 바꿔 부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 고개에 꽃이 만발한다고 하여 일제 강점기에 화방재(花房領)라고 고쳐졌다고 전하며 또 일본 식물학자였던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조선총독부 초대 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의 이름을 차용·개칭하여 화방재(花房領)라고 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연유야 어떻든 고유한 옛 표기가 있었는데 일본이 자기네들 식으로 바꾸었다면 옛 지명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31번 국도 해발 936m 어평재의 이정목을 보고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올라서 첫 산봉을 오른쪽으로 돌아서 내려가면 해발 980m 사길령이다. 사길령에는 표석과 그 위에 사길령탐방지원센터가 있다. 사길령 표석 뒷면에는 사길령의 유래에 대하여 이렇게 새겨 놓았다.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교통의 요충으로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신라 시대에 태백산 꼭대기로 통하는 고갯길이 있어 천령(天嶺)이라 했는데 높고 험하여 고려 시대에 새로이 길을 낸 것이 사길령이다.” 천령 길이 높고 험하여 고려 시대에 새로 뚫은 길이므로 새길고개, 새길령(嶺)이 사길령(四吉嶺)으로 바뀌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사길령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태백시 혈동(穴洞) 방향을 내려 보니, 사길령 아래 오래된 노거수(老巨樹)가 서 있고 그 아래는 팔보암이 살짝 보인다. 피어나는 억새풀 꽃이 바람에 날린다. 일행들이 통과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바빠져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여 임도를 따라 오른다. 숲에는 나뭇잎들이 물들기 시작하여 붉노랗고, 낮게 엎드린 산죽 푸른 잎들은 반짝인다. 주변에 참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곳에 동쪽을 향하여 산령각(山靈閣)이 자리하고 있다. 그 옆에는 음나무(엄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있고 그 밑동에 돌무더기가 쌓여서 서낭당 역할을 하고 있다. 음나무의 가시는 잡귀를 쫓아낸다는 믿음이 있는 나무로, 산령각의 음나무는 사악함을 물리치는 신목(神木)으로 산령각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정성들여 쌓아놓는 돌 하나하나는 그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길손이 이 돌무더기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서 길을 가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민속도 전해진다. 이런 돌무더기가 있는 곳을 서낭당, 성황당이라 했다고 한다.
태백산 사길령 산령각은 이 고개를 넘나들던 보부상들이 장삿길의 안녕을 기원했던 당집이라고 한다. 산이 험하여 맹수와 산적들이 출몰하는 이 고갯길의 무사안전과 상업의 번창을 위하여 고갯마루에 당집을 짓고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산령각 당집의 산령은 태백산신 곧 단종대왕이다. 단종대왕의 혼령이 백마를 타고 태백산에 들어 태백산신이 되었다고 하여 산령각 내부에 단종대왕이 백마를 탄 그림과 태백산신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린다고 하는데 문이 잠겨 있어 들여다볼 수 없다. 산령각 앞의 널찍한 빈터의 역할이 무엇이었을까? 옛 시절의 길손들이 산신령께 무사안녕을 빌고 이 빈터에서 휴식을 취하였을 것이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도는 보부상들이 여러 정보를 주고받으며 각지의 소식도 듣는 정보교환처의 역할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령각 이정목을 보니 해발 1171m, 유일사쉼터2.0km, 천제단3.7km라고 적혀 있다. 천제단은 태백산 장군봉의 장군단일까, 아니면 수두머리봉의 천왕단일까? 햇빛은 빛나지만 바람이 싸늘하다. 유일사쉼터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에 취하여 쉬엄쉬엄 걷다 보니,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유일사주차장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정목에 유일사주차장1.2km, 유일사0.6km, 천제단2.3km이라 적혀 있다. 산령각에서 1.4km의 거리를 24분이 걸려서 이곳에 도착했다. 유일사쉼터로 가는 언덕에 올라서니 고개에서 동북쪽 전망이 트인다. 조금 전까지 맑은 날씨의 가을 하늘이었는데 갑자기 운무가 살짝 밀려오며 전망이 좋지 않다. 이곳에서 만항재-함백산 산줄기를 흐릿하게 가늠한 것이 그나마 행운이다. 이후에 태백산 장군봉 전망대에서는 짙은 운무에 뒤덮여 함백산 줄기와 그 일대를 조망할 수가 없었다. 유일사쉼터에 도착하여, 서쪽 아래에 있는 유일사(唯一寺) 경내를 내려만 보고 내려가 살피지 않았다. 설명안내판에 의하면, 1959년에 불사(佛寺)를 일으켰으니, 유일사는 연륜이 짧은 절이다.
유일사쉼터에서부터 경사가 가파르다. 천천히 비탈길과 돌계단을 올라 주목군락지가 시작되는 곳에 이른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주목들이 생명의 존귀함과 더불어 그 덧없음도 함께 일깨운다. 푸르른 주목 그리고 고목이 된 주목들의 풍경을 감상하며 이 순간을 삶의 아름다운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긴다. 장군봉에 이르기까지 운무에 덮인 주목 풍경은 이어진다. 장군봉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풍경 조망은 운무 때문에 물거품이 되었다. 2년 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운무의 태백산을 오른다. 어느새 태백산 최고봉 장군봉에 올라섰다. 장군봉 정상에는 장군단이라는 천제단이 있고, 해발 1567m 태백산 최고봉을 표시하는 장군봉 표석은 그 아래에 있다. 운무에 덮인 태백산에서 풍경 조망이 없어 걸음이 비교적 빠르다. 장군단과 장군봉을 거쳐 태백산 천왕단 앞에 섰다. 시간에 쫓기지만 천왕인 단군을 모시는 한배검 제단 위로 올라갔다. 붉은 글씨로 쓴 한배겸 비석이 운무에 가려 흐릿하다.
태백산을 신성시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신라는 통일 전에 경주평야를 중심으로 그 주위의 다섯 산봉, 동악 토함산, 서악 선도산, 남악 함월산, 북악 소금강산, 중악 단석산을 五嶽이라 하고, 五嶽의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산악숭배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삼국통일 이후 영토가 넓어지면서 五嶽은 동악 토함산, 서악 계룡산, 남악 지리산, 북악 태백산, 중악 팔공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때부터 태백산은 우리 민족의 숭배의 대상으로서, 나라에서 태백산 산신에게 제사를 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이어오다가 조선왕조 말 나라가 어지러울 때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동학을 이어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가 태백산 단군제단을 세우면서부터 태백산이 더욱 신성시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일까? 태백산 표석은 최고봉인 장군봉에 있지 않고 천왕단이 있는 영봉(수두머리봉) 아래에 세워져 있다. 이는 태백산을 신성시하는 대종교와 태백산 지역민들에게 태백산의 정상은 장군봉이 아니라 천왕단이 있는 영봉(수두머리봉)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2년 전에는 태백산 표석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산객들이 긴 줄을 이루어서 기념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번에는 태백산 표석과 함께 기념사진을 셀카로 남긴다.
천왕단 아래서 부쇠봉-문수봉 산줄기와 백두대간 산줄기가 잘 보이는데 이번에는 그 멋진 산줄기를 감상할 수 없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앞서간 일행들은 꼬리도 보이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태백산 영봉의 천왕단과 태백산 표석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문수봉 방향으로 길을 잡아 하단 방향으로 내려간다. 수두머리봉(영봉)을 내려서니 천제단인 하단이 있다. 태백산 천제단은 모두 세 곳, 장군봉의 장군단은 사람, 영봉의 천왕단은 하늘, 가장 아래 있는 하단은 땅, 이렇게 천지인(天地人)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라고 한다. 그래서 천신(天神) 한배검(단군)을 받드는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단, 남쪽에 하단이 있다. 태백산의 천제단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아마도 삼한시대부터 있어온 민속신앙이 천제단의 기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통일신라 때 태백산을 오악(五嶽, 토함산·계룡산·지리산·태백산·팔공산)의 북악(北嶽)으로 지정하여 나라에서 제사를 모시면서 태백산은 제사시설을 갖춘 영산(靈山)으로 받들어졌을 것이다.(*東嶽인 경주의 토함산 정상에는 탈해왕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 터가 있다.)
그런데 태백산의 제사시설인 천제단을 왜 이렇게 신성시하는 것일까? 짧은 지식을 동원하여 살펴본다. 몽골의 침략기 때 고려 국운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고조선을 세운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받들며 민족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지키려는 경향이 일어난다.(*<삼국사기>에는 빠져 있는 '단군신화'를 실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등의 서적 편찬도 일례가 될 듯) 이때 단군이 부각되지만 고려가 멸망하고 유교의 조선왕조에서는 단군은 변두리로 밀려난다. 그러다가 일본의 국권 침탈과 조선왕조 멸망시기에 단군을 받드는 종교인 '대종교’가 발흥하면서 단군을 구심점으로 하여 민족이 뭉쳐서 나라를 구하고 국운을 일으켜야 한다는 정신이 민족의 가슴에 불을 지피게 된다. 이 시기로부터 태백산에서 단군(한배검)을 받드는 천제단이 민족의 신성한 제사시설로 확고히 자리하게 된 것이 아닐까? 태백산의 천제단이 현재까지 계승되는 것은 단군 ‘대종교’의 영향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무식하면 용감하게 되고 빈 수레가 요란한 법, 얇은 지식으로 제 멋대로 생각해 보았다.
문수봉 갈림목에서 2년 전에는 그냥 통과했던 문수봉 방향으로 길을 잡아 부쇠봉(부소봉)에 오른다. 부쇠봉은 주변에 부싯돌로 쓰이는 돌이 많아 부쇠봉이라 불린다고도 하고, 단군의 아들 부소왕자의 이름을 따서 부소봉이라 이른다고도 한다. 단군을 받드는 신앙심이 산봉우리에 단군의 아들 부소의 이름을 붙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군의 아들 부소왕자는 형벌을 주관하는 관직을 맡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태백산 산봉 이름을 왜 이렇게 붙였을까? 태백산은 단군을 제사모시는 산, 그래서 단군은 수두머리봉(영봉)을 주재하고, 아들 부소는 부소봉을 주재하는 형국을 의도하여 태백산 전체를 단군 신앙으로 받들고자 함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천신(天神) 단군을 모시는 천왕단을 수두머리로 하여 그 맞은편에 부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태백산이 왜 민족의 영산일까? 순간을 스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우리 민족은 토속신앙심에서 유래한 산악숭배의 사상이 있으며(*天神 환인의 아들 환웅이 지상에 내려오는 태백산은 숭배의 대상으로 신성하다. 이 산의 위치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곳 태백산은 아니다.), 삼한-통일신라-고려-조선-현대에 이르는 동안 민족이 혼란과 위기에 빠질 때에는 그 극복을 위해 공동체 정신의 일체화의식( 儀式)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특히 몽골 침략 이후에는 그 극복의 정신적 구심점을 민족의 시조 단군에서 찾아 위기를 극복하고 나라와 민족의 부흥을 기원하는 제사를 단군에게 올렸다.(*開天節은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와 神市를 열어 弘益人間·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날이며, 환웅의 아들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이기도 함) 이 민족혼의 祭祀儀式이 천제단에서 치러졌는데 천제단은 단군을 받드는 제단으로 중심 제단이 태백산 천왕단이다. 그래서 태백산은 민족의 영산이요 민족 주체성과 자존심으로 우뚝 서있으며 태백산 수두머리봉은 민족혼을 일깨우는 으뜸 산봉이라 할 수 있다.(*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올린 제단으로, 현재는 이곳에서 매년 개천절에 제전이 올려지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가 채화된다.)
부쇠봉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서니 부쇠봉 전망대, 운무에 덮여 있어 풍경을 조망할 수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햇빛이 반짝이며 무대의 막이 열리듯 운무에 갇혀 있던 산봉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운이 좋다. 햇빛에 반짝는 문수봉, 조록바위봉, 달마봉, 진대봉, 청옥산 등의 산봉들과 백천 계곡을 조망하며 잠시 흥분하였다. 운무를 걷어내며 단풍이 물든 산봉들과 계곡이 햇빛에 반짝이는 풍경은 비밀의 숲처럼 신비롭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광명의 세계로 나온 듯 그 풍경은 신비롭게 눈부시다. 하지만 그 풍경 감상은 잠깐일 뿐, 이내 운무에 덮이며 풍경이 사라진다. 잠시나마 운좋게 풍경을 감상했다는 흡족감에 젖어 부쇠봉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부쇠봉 우회로와 만난다. 이곳에서부터 태백산국립공원 지역의 끝 지점인 깃대배기봉까지 천령(天嶺, 하늘고갯길)을 따라 내려간다.
신라시대에 강원도와 경상도 내륙을 이어주는 고갯길은 태백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마루 길로 이 고갯길을 천령(天嶺)이라 했다고 한다. 天嶺, 하늘고갯길이 높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새로 뚫은 길이 사길령(새길재), 태백에서 사길령을 넘어 영월 천평(天坪)으로 넘어 다녔다고 한다. 길손은 아침에 어평재를 출발하여 사길령 표석이 세워져 있는 사길령을 가로질러 1시간 50분이 걸려 태백산 장군봉의 장군단에 오른 뒤 수두머리봉의 천왕단을 넘었다. 이제 깃대배기봉으로 이어지는 하늘고갯길(天嶺)을 따라 내려간다. 하늘고갯길은 깃대배기봉에서 올라와야 제 맛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을 품지만 늘 깃대배기봉으로 내려간다.
태백산국립공원의 영역이 어떻게 될까? “2013년 3월 광주 무등산이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태백산국립공원은 2016년 8월 22일 한국의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강원도 삼척시, 태백시, 영월군, 정선군, 경북 봉화군에 걸쳐 있으며, 1989년 5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될 때보다 4배쯤 넓은 부지로 확대되었다. 삼척의 대덕산부터 정선의 우암산과 금대봉, 영월의 만항재, 태백의 함백산과 수리봉, 장군봉, 수두머리봉, 부쇠봉 등을 거쳐 경북 봉화 깃대배기봉까지가 태백산국립공원 영역이다.” 그렇다. 부쇠봉 갈림목에서 깃대배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백두대간 산줄기이며 태백산국립공원에 속한다. 깃대배기봉으로부터 부쇠봉과 수두머리와 장군봉을 거치는 이 능선이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고개라는 뜻의 천령(天嶺), 하늘고개이다. 나는 깃대배기봉으로 내려가는 하늘고갯길을 걷고 있다. 天嶺을 내려가는 걸음은 삐끗거리다가도 경쾌하다. 하늘고갯길은 가을날 깃대배기봉에서 부쇠봉을 거쳐 장군봉의 태백산 등을 타고 넘어야 제 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품는다. 붉게 물든 단풍에 길손도 물들어 한 걸음 한 걸음 천령으로 올라가는 그 모습을 상상하면 언제나 그리움이다. 천령을 내려가는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아 속도를 내는 즐거움을 맛본다. 그 즐거움에 붉고 노랗게 물드는 단풍 감상에 소홀해진다. 이와 반대로 천령으로 올라온다면 하늘마루 고갯길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그때는 쉬엄쉬엄 단풍 구경에 더 몰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깃대배기봉과 차돌배기까지 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삶이란 시련과 극복의 연속,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삶이다. 깃대배기봉숲의 산죽밭, 신갈나무와 물푸레나무 군락지를 거쳐 순식간에 해발 1368m 깃대배기봉에 이른다. 아무도 없다. 산림청에서 세운 깃대배기봉 표석을 배경하여 홀로 셀카놀이를 잠시 즐기고 해발 1370m 두리봉 삼거리에 이르니 태백 한얼뫼오름회에서 세운 깃대배기봉 표석이 세워져 있다. 깃대배기봉 표석이 왜 2개일까? 산림청과 태백 한얼뫼오름회가 각각 깃대배기봉이라 한 곳은 표고 2m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강원도가 협찬하여 태백 한얼뫼오름회에서 세운 깃대배기봉 표석이 세워진 두리봉 삼거리를 깃대배기봉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태백산이 어디에 있는가? 태백산은 산명으로만 있을 뿐 태백산 산봉은 없다. 태백산국립공원에 대덕산, 매봉산, 비단봉, 금대봉, 함백산, 장군봉, 수두머리봉(영봉), 부쇠봉, 문수봉, 깃대배기봉 등이 속한다. 태백산은 장군봉, 수두머리봉, 부쇠봉, 문수봉, 깃대배기봉을 아우르는 산줄기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깃대배기봉에서 태백산국립공원을 벗어나 차돌배기로 향한다. 내려가며 뒤돌아보면 왼쪽의 깃대배기봉과 오른쪽의 두리봉이 두 젖가슴처럼 부풀어 있고, 오른쪽 서북쪽 방향에서는 신선봉이 어디론가 자유로이 흘러가는 듯 날아가는 듯 남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 고도를 낮춘 뒤 산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고, 푸른 산죽군락지를 지나고 산허리를 굽이돌아, 명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지루하게 걸었다. 깃대배기봉에서 차돌배기에 이르는 지역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를 서쪽 경계로 하여 동쪽으로는, 경북 봉화군 석포면, 소천면, 춘양면 지역이 자리하고 있으며, 차돌배기는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소천면 고선리, 세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것 같다. 차돌배기에 이르렀다. 깃대배기봉에서 차돌배기까지 1시간 7분이 걸렸다.
차돌배기에서 백두대간 산행을 마치고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석문동으로 하산한다. 차돌배기에서 석문으로 내려가는 산길은 무척이나 가파르다. 오른쪽 서북쪽으로는 신선봉의 자태가 아까와는 다르게 기울어지지 않고 우뚝 솟아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대상은 새롭게 의미를 준다. 이 당연한 원리를 사람관계에서 맺지 못하면 언제나 주관적 편견에 매몰될 것이다. 아름드리 금강송 춘양목을 감상하면서 급경사 비탈길을 내려가면 석문 이정목에 이른다. 석문은 어디일까? 석문은 석굴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석문 이정목 위쪽으로 석굴 2개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석문이라고 흰 페인트로 적은 돌이 이정목 바로 아래에 있다. 석문이라고 글자가 적힌 바위 양쪽을 석문이라고 하는 것이 우습다. 오히려 석문 이정목 위쪽의 석굴을 석문이라고 이르는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석문동 골짜기는 길찾기가 어렵다.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는 물, 산국과 벌개미취 꽃들을 살피며 계곡을 내려간다. 조심스럽게 방향을 내다보며 골짜기 아래 방향으로 진행하면 골짜기 갈림길 이정목에 이른다. 이곳을 지나면 임도가 나타나며 민가 한 채가 있다. 하산의 어려움은 이곳에서 끝난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2리 참새골 참새백평교까지 가을 10월의 햇빛을 즐기며 석문동길을 따라 내려간다. 가을 빛이 곱다. 술 생각이 절로 난다. 산악회 임시본부에서 제육볶음에 산국과 벌개미취 꽃잎을 띄운 꽃술을 마신다. 억새, 운무, 단풍, 주목, 햇빛 등 산행 풍경이 꽃술과 함께 가슴으로 넘어간다. 산행의 여운이 길게 메아리치고 꽃술에 흥취하여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8.67km
전체 소요 시간 : 6시간 17분
어평재 휴게소에 도착하여 GS주유소 옆에 위치한, 태백산 산행의 어평재(화방재) 나들목으로 이동한다.
국도 제31호선 태백산로가 어평재를 가로지르고 오른쪽 뒤에 함백산 만항재로 가는 지방도 414호선이 갈라진다.
화방재(花芳嶺)는 태백시 서쪽 끝에 있는 강원특별자치도(江原特別自治道) 태백시(太白市) 혈동(穴洞)에 있는 고개로, 국도 제31호선이 지나가고 고개 정상에서는 414번 지방도가 분기한다. 태백산 북서쪽, 함백산 남서쪽에 있고 백두대간이 통과한다. 고개 정상에는 태백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위키백과)
태백산 산행의 어평재 나들목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유일사 3.2km, 천제단 4.8km 지점이다.
태백산 산행의 어평재 나들목에서 올라서면 언덕에 화방재(花芳嶺)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화방재(939m)를 이곳 주민들은 주로 어평재라고 부르는데, 이는 서쪽 기슭의 어평이라는 마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평이란 태백산의 산신이 된 단종대왕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 땅(御坪)이다"라고 해서 '어평리(御坪里)'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고개를 어평재라 불렀다는 유래도 있고, <태백의 지명유래>에는 봄이면 고갯마루 부근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타올라 꽃방석 같다 하여 '화방재(花房嶺)'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방화선(防火線)을 설치하면서 현재의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며, '정거리재'라고도 한다. 이외에 '화비령'이라고도 부른다. 화방재에서 태백산을 거쳐 도래기재까지 이동하는 구간은 거리가 24.6km에 이르는 긴 구간으로 중간 탈출로는 곰넘이재가 있으며, 곰넘이재를 넘어갔을 경우에는 도래기재까지 이동하는 것이 탈출하기에 용이하다.
사길령 가는 숲길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표석이 세워져 있는 이곳이 사길령일까? 그런데 산령각이 있는 곳을 사길령이라 이르고 있다.
백두대간 사길령 표석 뒷면에 사길령의 유래가 적혀 있다.
사길령의 유래 :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교통의 요충으로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신라시대에 태백산 꼭대기로 통하는 고갯길이 있어 천령(天嶺)이라 했는데 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새로이 길을 낸 것이 사길령이다.
사길령탐방지원센터 언덕에서 동북쪽으로 펼쳐진 태백시 혈동 일대를 조망한다. 팔불암이 바로 아래에 있다.
사길령탐방지원센터 언덕에서 사길령 표석이 세워져 있는 곳을 조망하였다.
사길령에서 산령각 가는 임도는 가파른 꼬부랑길이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을 보며 산령각으로 올라간다.
산령각은 잠겨 있어 내부를 살피지 못하고 그 앞을 통과한다.
산령각 옆에 태백산 산령각 유래(太白山 山靈閣 由來) 설명안내판에는 이곳을 사길령이라고 이른다.
이곳 태백산 사길령(四吉嶺)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높고 험하기로 유명하였지만 가장 가깝게 강원도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기에 길손의 왕래가 많았고, 특히 보부상들이 수십 혹은 수백명씩 대열을 이루어 계수(契首)의 인솔하에 넘어 다녔다. 산이 험하여 맹수와 산적 등이 많이 출몰하기에 그들은 고갯길의 무사안전을 위하여 고갯마루에 당집을 짓고 제사를 올리게 되었으며, 지금도 매년 음력 4월 15일 태백산신령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다. 현재 태백산사길령산령각계회에 보관 중인 천금록(千金錄)은 200여년 전부터 보부상들이 이곳 태백산산령각에서 제사를 지낸 기록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없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산령각 설명안내판의 설명처럼 이곳이 사길령인 것 같다. 산령각 앞은 넓은 빈터이다.
해발 1192m, 사길령 1.9km, 유일사 0.6km 지점으로, 왼쪽으로 1.2km 유일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운무에 가려 중앙 오른쪽의 만항재와 함백산이 흐릿하다. 왼쪽은 백운산과 운탄고도이지만 역시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왼쪽 건물이 유일사쉼터, 오른쪽 길은 유일사 내려가는 길이며 태백산 장군봉은 곧바로 직진한다.
내려가서 유일사를 살피고 싶지만 맨 꼴찌로 가면서 저곳을 탐방할 수는 없다.
유일사쉼터 오른쪽 유일사 내려가는 언덕에 태백산 유일사(太白山 唯一寺) 유래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태백산은 백두산의 한 맥으로 동해로 흐르다가 태백, 영월, 봉화 사이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산으로 정상에는 천제단과 문수봉이 있으며, 유일사는 서북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산 정상의 협곡으로부터 이루어진 황지연(黃池淵)은 동남방으로 흘러 낙동강의 발견이 되고 검룡소(劒龍沼)는 남북 쪽으로 흘러 한강의 원천이 된다. 유일사는 이렇게 신령스러운 곳에 1935년경 비구니 순일이라는 스님이 기도를 하면서 지내다가, 지리적으로 너무 험준하고 열악하여 떠나고, 터만 남은 자리에 1959년 한 불자(李小仙)가 영산의 정기를 받고 백일기도 중 꿈에 원효대사와 의상스님이 바위 밑에 앉아 수도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이곳에 다시 불사를 일으켜 유일사라 하였다. 그리고 주지인 비구니 법륜 스님은 1967년부터 거듭나는 도량으로 일구면서 대선스님과 함께 무량수전, 무이선원, 삼성각, 극락보탑 등 불사를 원만하게 이루었다. 아울러 유일사에는 지장보살도 초본불화가 현재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당골지구 세부안내도 왼쪽 산길로 태백산 천제단을 향하여 오른다. 이곳에서 1.7km 거리이다.
유일사쉼터부터 주목군락지 지역까지는 가파른 산길이다. 힘겹게 뎈 계단까지 올라와 호흡을 가다듬는다.
주목군락지가 시작되는 지점에 쉼터 뎈이 조성되어 있다.
쉼터 뎈 옆에 주목이 멋지게 솟아 있다.
장군봉은 아직 멀었는데 장군봉 안전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2년 전 그 모습대로 사스래나무가 그윽하다. 오른쪽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어 있다.
왼쪽으로 망경대는 600m 지점에 있으며 천제단은 위쪽으로 700m 지점에 있다.
바람에 휩쓸려 줄기가 구부러진 주목나무가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죽어 천 년의 주목나무가 의젓한 자태로 서 있다.
왼쪽에는 살아 천 년의 주목, 오른쪽에는 죽어 천 년의 주목이 서 있다.
죽어 천 년의 주목이 서 있는 장군봉 전망대에서 짙은 운무 때문에 함백산 산줄기를 조망할 수 없다.
장군봉 전망대에 조망지 위치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조망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
2021년 1월 17일 장군봉 전망대에서 함백산과 비단봉, 매봉산, 바람의 언덕을 조망한 풍경이다.
2021년 1월 17일 장군봉 전망대에서 백운산과 운탄고도, 만항재와 함백산, 비단봉과 매봉산을 조망한 풍경이다.
짙은 운무가 밀려든 장군봉 가는 길에 죽어 천 년의 고사목들이 즐비하다.
죽어 천 년 주목들이 즐비하고 오른쪽에는 사스래나무가 생명을 잇고 있다.
죽어 천 년 주목이 늠름하게 죽음을 넘어서 서 있다.
태백산 장군봉의 장군단을 뒤쪽에서 바라보며 앞쪽으로 간다.
어평재에서 1시간 50분이 걸려서 태백산 최고봉 장군봉에 올랐다. 이곳에서 수두머리봉 천왕단까지는 300m 거리이다.
태백산 최고봉인 해발 1567m 장군봉에 장군단이 남쪽을 향하고 있다. 설명안내판을 살피고 제단으로 올라간다.
태백산 천제단(天祭壇) 국가민속문화재 제228호 : 태백산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제단이다. 천제단은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왕단을 중심으로 한 줄로 놓여 있다. 천왕단의 북쪽에 장군단이 있고, 천왕단의 남쪽에 하단이 있다. 제단을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태백산은 예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섬겨져 제천의식의 장소가 되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사료에서 부족국가 시대부터 이곳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기록하는 것으로 미루어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개천절에 나라의 태평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 해마다 열리는 강원도민체전의 성화에 불을 붙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장군단(將軍壇) : 장군단은 천왕단에서 북쪽으로 300m가량 떨어져 있는 제단이다. 태백산에서 가장 높은 장군봉에 놓여 있으며 천왕단보다 규모가 작다. 3m 남짓한 높이로 자연석을 쌓아 남쪽으로 직사각형으로 단을 조성하였다. 내부에는 자연석을 쌓아 만든 사각 제단이 있고, 이 위에 자연석이 비석처럼 세워져 있다. 어떤 장군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사각형 제단 위에 자연석 세 개를 비석으로 세워 놓았다.
해발 1567m 장군봉 표석은 장군단 아래에 세워져 있다.
태백산 최고봉 장군봉에 바람이 휘몰아친다. 태백산 장군봉에서 장군봉 표석과 함께 기념한다.
태백산 수두머리봉의 천왕단으로 내려가다가 뒤돌아서 태백산 장군봉의 장군단을 올려보았다.
천제단 안전쉼터에서도 전망이 좋은데 짙은 운무 때문에 조망할 수 없다.
해발 1560m, 태백산 수두머리봉으로 올라가 천왕단을 살핀다.
장군단이 사각형으로 쌓았는데 천왕단은 원형이다. 설명안내판을 살피고 제단으로 올라간다.
태백산 천제단(天祭壇) 국가민속문화재 제228호 : 태백산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제단이다. 천제단은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왕단을 중심으로 한 줄로 놓여 있다. 천왕단의 북쪽에 장군단이 있고, 천왕단의 남쪽에 하단이 있다. 제단을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태백산은 예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섬겨져 제천의식의 장소가 되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사료에서 부족국가 시대부터 이곳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기록하는 것으로 미루어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개천절에 나라의 태평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 해마다 열리는 강원도민체전의 성화에 불을 붙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천왕단(天王壇) : 천왕단은 3기의 천제단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의식의 중심이 되는 제단이다. 2m 남짓한 높이로 자연석을 쌓아 남쪽으로 원형 단을 조성하였다. 내부에는 자연석을 쌓아 만든 사각 제단이 있고, 이 위에 작은 비석이 올려져 있다. 이 비석은 대종교가 천왕단을 단군을 모신 장소로 성역화하며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비석에 적힌 '한배검'은 대종교에서 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사각제단 위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한배검'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한배검은 대종교에서 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태백산의 최고봉은 장군봉이지만, 천왕단은 영봉이라고도 불리는 수두머리봉에 있고 태백산 표석은 그 아래 세워져 있다.
태백산 수두머리봉의 천왕단과 태백산 표석을 배경하여 태백산 산행을 기념한다.
왼쪽은 당골 광장 방향, 백두대간은 오른쪽 문수봉 방향으로 이어간다.
2021년 1월 17일 하단으로 배려가며 바라본 문수봉(왼쪽)과 부쇠봉(오른쪽) 모습이다.
2021년 1월 17일 하단으로 내려가며 바라본 백두대간 부쇠봉-깃대배기봉-차돌배기-신선봉 모습이다.
하단은 천제단 중 남쪽 가장 아래 자리하고 있다. 하단은 제단의 담이 없이 제단만 있으며 규모도 가장 작다.
태백산 천제단(天祭壇) 국가민속문화재 제228호 : 태백산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제단이다. 천제단은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왕단을 중심으로 한 줄로 놓여 있다. 천왕단의 북쪽에 장군단이 있고, 천왕단의 남쪽에 하단이 있다. 제단을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태백산은 예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섬겨져 제천의식의 장소가 되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사료에서 부족국가 시대부터 이곳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기록하는 것으로 미루어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개천절에 나라의 태평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 해마다 열리는 강원도민체전의 성화에 불을 붙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단(下壇) : 이 제단은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지금은 천왕단 아래에 있는 제단이라는 뜻에서 '하단'이라고 부른다. 천왕단의 남쪽 아래로 150m가량 떨어져 있다. 하단은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는데 태백산 천제단의 다른 두 제단과 달리 담이 없고 규모가 작다.
자연석을 빗돌로 세워 놓았고 그 앞에 '경심(敬心)'이라고 적힌 작은 돌이 있다.
부쇠봉으로 향하다가 뒤돌아서 하단을 바라보았다. 하단 아래에는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오른쪽은 부쇠봉 우회길, 왼쪽은 문수봉 가는 길이다. 부쇠봉을 거쳐 대간길로 내려오기로 하고 왼쪽으로 향한다.
왼쪽은 문수봉 가는 길, 오른쪽 부쇠봉 방향으로 향한다.
부쇠봉 헬기장을 가로질러 오른쪽 위 부쇠봉으로 오른다.
해발 1546.5m 부쇠봉 정상에는 삼각점과 정상 표석이 세워져 있다.
부쇠봉 정상에서 정상표석과 함께 기념한다. 이곳에서 20여 분 동안 점심을 먹고, 부쇠봉 전망대로 내려간다.
부쇠봉 아래에 있는 전망대에서 조망하지만 운무에 덮인 산봉들을 확인할 수 없다. 이 아래는 백천 계곡이다.
부쇠봉 전망대에 조망지 위치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갑자기 해가 빛나며 왼쪽의 문수봉, 조록바위봉, 달마봉, 진대봉, 청옥산 등의 산봉들과 백천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의 조록바위봉, 달마봉, 진대봉, 중앙의 청옥산이 가늠된다.
태백산 하단에서 내려오는 부쇠봉 우회길과 만났다. 왼쪽은 현불사, 오른쪽은 천제단, 직진하여 깃대배기봉으로 내려간다.
태백산 장군봉에서 깃대배기봉으로 이어지는 천령(天嶺) 능선에서 부쇠봉(왼쪽)과 문수봉(오른쪽)을 올려본다.
참나무들이 황색으로 물들고 있는 천령(天嶺) 능선의 산죽밭을 지난다. .
깃대배기봉을 200m에 앞에 두고 해발 1368m의 산죽밭이 펼쳐져 있는 숲을 지난다.
이 지역은 해발 1,368m 산죽(일명 : 조릿대)과 여러 식생들이 어우러진 고지대 생태학습장이다. 상층에는 신갈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중층에는 돌배나무, 물푸레나무, 자작나무, 하층에는 미역줄나무, 노린재나무, 국수나무, 다래나무, 당단풍류 등이 분포하고, 초본류로는 얼레지, 개별꽃, 산당귀, 우산나물, 넓은잎외잎쑥, 쪽도리풀 등 수십 종의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림청에서 세운, 해발 1368m 깃대배기봉 표석이 서 있다. 그런데 두리봉 삼거리에도 깃대배기봉 표석이 세워져 있다.
왼쪽은 백천탐방지원센터(현불사) 방향 두리봉 0.5km, 백두대간은 오른쪽 차돌배기 방향으로 이어간다.
두리봉 삼거리에 태백시 한얼뫼오름회에서 세운, 해발 1370m 깃대배기봉 표석이 세워져 있다.
두리봉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차돌배기 방향으로 이어간다. 이곳까지가 태백산국립공원 지역이다.
태백산국립공원 밖으로 나왔다. 황색으로 물드는 단풍잎들이 곱다.
뒤돌아서서 깃대배기봉(왼쪽)과 두리봉(오른쪽)을 나뭇가지 사이로 살폈다.
현위치번호 부쇠봉-구룡산 5-12 표지목을 지난다.
현위치번호 부쇠봉-구룡산 5-12 표지목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바라보면 신선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다시 뒤돌아서서 깃대배기봉과 두리봉을 바라보았다.
현위치번호 부쇠봉-구룡산 5-13을 지난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빙 돌아가면 차돌배기에 이른다.
백두대간 신선봉이 오른쪽에서 손짓한다.
오른쪽은 백두대간 신선봉 방향, 왼쪽은 하산 지점인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석문동 방향이다.
석문 2km, 석문동 4km 거리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백두대간 태백산 구간 산행을 마치고 석문으로 하산한다. 차돌배기는 차돌이 많아서 유래된 지명일까? 산길에 차돌이 많다.
백두대간 신선봉이 의젓하다.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지역이다.
신선봉에서 차돌배기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다시 바라보았다.
차돌배기 1.5km, 석문동 2.5km 지점이다. 석문일까? 석굴일까?
석문 이정목을 내려와서 뒤돌아보면 바위에 석문이라고 흰 페인트로 적혀 있다. 저곳이 석문이 아니라 그 위쪽을 이를 것이다.
석문동 2km, 석문 500m 지점이다. 이 계곡을 지나 석문동길 임도를 따라간다.
석문동길 415 지점에서 왼쪽으로 1km 지점에 있다는 신선천(神仙天)은 어떤 곳일까?
석문동길을 따라 내려오면 석문교 건너편에 석문오토캠핑장이 있다.
오미골농원 입구를 지나와 뒤돌아본다.
석문동길에 상수도 배관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석문동길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참새백평교를 건너 참새골길에 산악회버스가 대기 중이다.
참새백평교를 건너 참새골길을 따라 산악회버스가 대기 중인 곳을 찾아간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2리 참새골길 14번길 입구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산행을 마치고 제육볶음과 김치를 안주로 하여 벌개미취와 감국 꽃잎을 띄운 꽃술을 마시고 흥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