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는 한민족의 역사 경전이면서 동시에 종교 경전이요 문화 경전이다!
환단고기는 우리 역사, 문화의 원형을 밝혀 주는 보배로운 사서이다. 특히 환단고기에서는 다른 사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역사 사실이 많이 실려 있다. 환단고기 역주본에서는 해제 편에서 ‘환단고기에서만 전해 주는 새로운 역사 진실’이라고 하여 이를 52가지로 정리하여 밝혀 주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이번 달부터는 환단고기의 진정한 역사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자.
8 고조선의 수도 이름과 위치를 밝혀 준다!
아사달은 평양이고 그 위치는 만주 대륙이었다!
其曰秤榦扶蘇樑者(기왈칭간부소량자)는 是謂辰韓古都(시위진한고도)니
亦卽(역즉) 檀君朝鮮所都阿斯達(단군조선소도아사달)이 是也(시야)오
亦卽(역즉) 今松花江哈爾濱也(금송화강합이빈야)라.
其曰錘者五德地者(기왈추자오덕지자)는 是謂番韓古都(시위번한고도)니
今開平府東北七十里所在(금개평부동북칠십리소재)의 湯池堡(탕지보)가 是也(시야)며
其曰極器白牙岡者(기왈극기백아강자)는 是謂馬韓古都(시위마한고도)로
今大同江也(금대동강야)니 乃馬韓熊伯多(내마한웅백다)의 祭天馬韓山(제천마한산)이
卽此(즉차)라.
『신지비사』[#1)
에서 저울대 부소량扶蘇樑이라 한 것은 진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그곳은 바로 단군조선이 도읍한 아사달이며, 지금의 송화강 하얼빈이다. 저울추 오덕지五德地라 한 것은 번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그곳은 지금의 개평부 동북쪽 70리에 있는 탕지보이다.
저울판 백아강白牙岡이라 한 것은 마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지금의 대동강으로, 마한의 웅백다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마한산이 바로 그곳이다. (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단군 할아버지께서 나라를 열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아사달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 밝혀 주는 사료가 없었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서 ‘아사달을 무엽산無葉山, 또는 백악白岳이라 하는데 백주白州에 있다. 혹자는 말하길 개성開城 동쪽에 있다고도 하는데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백주는 지금의 황해남도 배천군白川郡이다.
1) 6세 달문 단군 때 신지 발리가 지은 서효사誓效詞이다. 신지비사라는 이름으로 「고려사高麗史」에 일부가 전해 오지만, 그 전문은 오직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서만 만날 수 있다.
魏書(위서)에 云(운) 乃往二千載(내왕이천재)에 有壇君王儉(유단군왕검)이
立(입도아사달)都阿斯達達( 『經』云‘ 無葉山’, 亦云‘ 白岳’, 在白 州地, 或云‘ 在開城東’, 今白岳宮是)하시고 開國(개국)하사
號朝鮮(호조선)하시니 與高同時(여고동시)니라.---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이당고즉위오십년경인)(唐高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에
都平壤城(도평양성)(今西京)하시고, 始稱朝鮮(시칭조선)하시니라.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우이도어백악산아사달)하시고, 又名弓(우명궁)(一作方)
忽山(홀산)이오 又今彌達(우금미달)이니 御國一千五百年(어국일천오백년)하시니라.
일연 스님은 또 같은 글에서 ‘단군이 평양성(今西京)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여 아사달이 곧 평양인 것처럼 이야기하였다. 따라서 삼국유사를 통해서는 아사달의 위치를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한계이다. 『삼국유사』는 유사遺事라는 이름 그대로, 일연이 자신이 수집한 사료와 민간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전설, 설화, 야사 등을 자유롭게 서술한 책이다. 그만큼 사료로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삼국유사』에는 일부 잘못되거나 모호한 기록도 있고, 저자의 개인적인 주석도 달려 있다. 그러기에 『삼국유사』에는 왜곡歪曲과 오독誤讀의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실제로 일제가 『삼국유사』의 오류를 알리바이
2)
삼아 역사를 왜곡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환단고기』에서는 단군조선의 도읍 아사달이 지금의 만주 하얼빈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여기서 아사달의 뜻은 ‘밝은 땅’, ‘신성한 땅’이라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불함산 또는 완달산이 곧 아사달이다.
後(후)에 神人王儉(신인왕검)이 降到于不咸之山檀木之墟(강도우불함지산단목지허)하시니
이후에 신인神人 왕검이 불함산不咸山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墟]에 내려오셨다. ( 『삼성기』
최남선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불함은 , 광명, 하늘, 천신天神, 태양, 백白 등을 뜻하고, 백두산을 지칭하는 태백太白은 신神의 산山을 의미한다고 했다. 불함과 완달은 둘 다 이두식 표현으로 같은 의미이다. 『환단고기』는 또 단군조선 시대에 수도를 세 번 옮겼다는 사실도 밝혀 준다. 처음 도읍 송화강 아사달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다시 장당경 아사달로 옮긴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 준다. 또 『환단고기』는 단군조선은 나라를 진한, 마한, 변한의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기 때문에 각각의 수도도 셋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 준다.
2) 일제는 삼국유사에서 우리 고대사의 지명을 한반도 안으로 특정한 일연의 주석을 근거로 반도사관을 확립하고 또 환국을 제석천에 비유한 불교설화를 근거로 환국에서 배달, 조선으로 이어지는 삼성조의 역사를 신화로 둔갑시켰다.
9 단군조선의 통치 제도 ‘삼한관경제’의 전모를 밝혀 준다.
마한, 변한의 왕 이름과 계보를 밝혀 준다!
先是(선시)에 區劃天下之地(구획천하지지)하사 分統三韓(분통삼한)하시니
三韓(삼한)에 皆有五家六十四族(개유오가육십사족)이러라.
이에 앞서 왕검께서 천하의 땅을 일정한 지역으로 경계를 정해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리셨다. 삼한에는 모두 5가五家 64족六十四族이 있었다. (『단군세기』)
檀君王儉(단군왕검)이 旣定天下(기정천하)하시고 分三韓而管境(분삼한이관경)하실새
乃封熊伯多(내봉웅백다)하사 爲馬韓(위마한)하시고 都於達支國(도어달지국)하시니
亦名曰(역명왈) 白牙岡也(백아강야)라
단군왕검께서 천하를 평정하고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릴 때, 웅백다熊伯多를 마한 왕(부단군)으로 임명하셨다. 도읍을 달지국達支國에 정하였는데, 백아강白牙岡이라고도 불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나라를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린 것은 삼신일체지도三神一體之道에 의한 것이다. 삼신일체지도는 ‘삼신이 한 몸으로 작용하는 원리’로서 한민족의 원형 우주론이자 신관神觀이다. 이는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 하나 속에는 셋이 깃들어 있고 셋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환단고기』 명구 속에 잘 드러난다. 삼신일체지도의 원형은 천부경의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태일) 사상이다. 즉 단군이 대단군이자 태일로서 진한에서 중심을 잡고, 부단군 두 분이 천일, 지일로서 각각 마한과 변한을 다스리며 대단군을 보좌한다.
『환단고기』는 또 마한 36대 왕들의 이름과 통치 연도를 밝혀 주고 변한 75대 왕의 이름과 통치 연도를 밝혀 준다. 마한의 초대 왕은 웅백다이고 변한의 초대 왕은 치우천황의 후손 치두남이다.
삼한관경제는 단군조선의 역사의 전모를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러한 삼한관경제를 꿰뚫어 보고, 『조선상고사』 ‘삼조선 총론’에서 자세한 설명을 남겼다.
신·말·불 세 한은 이두문으로 진辰·마馬·변卞 삼한三韓이라고 기록한 것이고, 신·말·불 세 조선朝鮮은 이두문으로 진眞·막莫·번番 조선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 『조선상고사』)
『환단고기』는 삼한관경제의 변천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밝혀 주고 있다. 초대 단군왕검부터 21세 소태 단군까지 1,048년간 지속되어 온 ‘송화강 아사달 시대’는 22세 색불루 단군 때 마감을 하고 둘째 도읍지인 백악산(녹산) 아사달 시대가 열렸다. 이어 44세 구물 단군 때 다시 도읍을 장당경 아사달(개원)로 옮겨 단군조선의 세 번째 아사달 시대가 열리게 된다.
五月(오월)에 改制三韓(개제삼한)하사 爲三朝鮮(위삼조선)하시니 朝鮮(조선)은
謂管境也(위관경야)라 眞朝鮮(진조선)은 天王(천왕)이 自爲(자위)하시니
而地則仍舊辰韓也(이지즉잉구진한야)며
政由天王(정유천왕)하야 三韓(삼한)이 皆一統就令也(개일통취령야)라.
(색불루 단군이) 5월에 제도를 고쳐 삼한을 삼조선이라 하셨는데, 조선은 관경管境(영토 관할)을 말한다. 진조선은 천왕(22세 단군)께서 친히 다스리고, 통치 영역은 옛날 진한의 땅 그대로이다. 정치는 천왕에게서 나오니 삼한이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명령을 받았다. (『단군세기』)
改國號爲大夫餘(개국호위대부여)하시고 改三韓爲三朝鮮(개삼한위삼조선)하시니
自是(자시)로 三朝鮮(삼조선)이 雖奉檀君(수봉단군)하야
爲一尊臨理之制(위일존임리지제)나 而惟和戰之權(이유화전지권)은
不在一尊也(불재일존야)라
구물 단군께서 국호를 대부여大夫餘로 바꾸고, 삼한三韓을 삼조선三朝鮮으로 바꾸셨다. 이로부터 삼조선이 비록 대단군을 받들어 한 분이 다스리는 제도는 그대로 유지하였으나 화전和戰의 권한(병권兵權)은 단군 한 분에게 있지 않았다. ( 『단군세기』)
고조선의 국운은 삼한관경제의 성쇠와 운명을 같이해 왔다. 색불루 단군 때는 삼한에서 삼조선으로 국가 제도가 바뀌었으나 삼조선이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같은 명령 체계에서 운영되었다. 비록 무력 혁명을 통해 집권했으나 삼한관경제의 큰 틀이 유지된 것이다. 색불루 단군 때 ‘8조 금법’의 법 체계가 정비된 것은 이러한 정치 상황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43세 물리 단군 때는 나라 전체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사냥꾼 우화충이 반란을 일으켜 단군께서 피난 중에 붕어하시는 사태가 벌어졌다. 구물 장군이 간신히 난리를 진압하여 이후 44세 단군으로 추대되었으나 국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이때부터 삼한의 병권兵權을 각기 독립시켜 삼조선 체제로 국가 틀을 바꾸게 되는데 이는 삼한관경제의 골간이 무너진 상징적 사건이다. 원래 삼한관경제는 삼신일체 사상에서 유래했고, 이는 삼신상제님을 숭배하는 문화가 근본이다. 결론적으로 상제님을 모시는 신교문화가 흐려지면서 삼한관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나라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신지 발리가 지은 서효사의 말미에서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는 내용이다.
永保三韓義(영보삼한의)라야 王業有興隆(왕업유흥륭)이로다
興廢莫爲說(흥폐막위설)하라 誠在事天神(성재사천신)이로다
길이 삼한관경제 보전해야 왕업이 흥하고 번성할 것이옵니다.
나라의 흥망을 말하지 말지니 천신(삼신상제)님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하겠사옵니다. ( 『단군세기』 6세 단군 ‘서효사’ 중)
아사달의 뜻고조선의 도읍지를 가리키는 이름. 때로는 도성都城이나 도읍의 주산主山을 가리키기도 한다. 단군조선은 제정일치 사회로 신교문화가 지배하던 때이다. 이에 따라 아사달은 군왕의 치소治所이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과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당시 사회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다. 아사달은 지리적 특성과 그 기능에 따라 여러 의미로 설명된다.
❶ 아사달은 밝고 환한 땅(산)이다. 아사달은 아시밝(첫 빛)에서 유래하였다. 아사달은 ‘아사+달’로 ‘아사’는 ‘아침[朝]’, ‘밝음’을, ‘달’은 ‘산’, ‘땅’을 뜻한다. 이를 한자로 나타낸 것이 ‘조선朝鮮’이다.
❷ 아사달은 신성한 곳이다. 겨레의 시조이자 하늘의 대행자가 머무는 곳이며 하늘(삼신상제)에 제사하고 조상을 섬기며 하늘의 뜻에 따라 다스림을 펼치던 곳이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서는 ‘아사달은 삼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라 했다.
❸ 단군왕검이 머무는 도성이란 의미에서 임검성壬儉城(왕검성王儉城, 왕험성王險城)으로 불린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서는 “아사달은 삼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며 후세 사람들이 왕검성이라 일컬었는데 이는 왕검의 옛 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❹ 아사달은 넓게 확 트인 땅이다. 아사달은, 몽골어나 거란어로 ‘확 트인 밝은 벌판이나 장소(나라)’를 뜻하는 ‘아사다라As-tala’와 음이 유사하다. 『요사遼史』에서는 ‘아사阿斯는 넓다, 혹은 관대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아사달을 한자로 옮긴 것이 ‘평양平壤’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넓은 벌판’, ‘큰 땅’을 의미하는 평양이 만주 집안, 요령성, 대동강 평양 등 여러 곳에 등장한다는 사실도 ‘평양’이 특정한 지명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일 가능성을 높여 준다. 실제로 평양이 대읍大邑, 장성長城을 뜻하는 보통명사라는 점이 언어학 연구를 통해서 밝혀지기도 했다. (환단고기 역주본, 상생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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