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1.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 시기 전에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2. 주 십자가에 달릴 때 명패에 쓰인 대로 저 유대인의 왕이요 곧 우리 왕이시다
3. 지금도 살아 계셔서 언제나 하시는 일 나 같은 죄인 부르사 참 소망 주시도다
4. 주 예수께서 영원히 어제나 오늘이나 그 이름으로 우리게 참 복을 내리신다
(후렴)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귀 하신 이름 예수 아멘
잣시자 베튠은 화란 개혁 장로교회 소속 목사였다. 그는 다재다능한 학자였으
며, 또한 당시 명성을 떨치던 명설교가였다. 그가 지은 찬송시는 시편 148:13과
빌립보서 2:9을 근거로 작시되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높이셨다(엡1:22). 예
수께서는 가난하게 되셨다가 다시 부요해지셨다. 배척당하신 그분이 다시 영접
을 받으셨다. 사실 그분의 높아지심은 본래의 영광에 대한 회복이다. 그분은 죽
으심과 부활과 승천으로 만왕의 왕, 가장 큰 선지자, 온전한 대제사장이 되셨
다.
102.
이 찬송신느 이 곡의 작곡자를 변화시킨 유명한 찬송이다. 생활이 어려워 대학
을 중퇴하고 보험회사에 다니던 쉐어는, 우연히 NBC 방송국에서 '가라 모세'를
부를 기회가 있었다. 그의 노래가 대단히 큰 호평을 받아 대중가요 가수로 출연
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목사의 아들인 그는 심한 유혹을 느껴 어머니와
이 일을 상의했다. 어머니는 평소에 가장 좋아하던 시편을 아들에게 내어주었
다. 그 시가 바로 이 찬송시였다. 그는 감격스럼 마음으로 단숨에 그 시에 곡을
붙였다. 결국 그는 빌리 그레함 전도대의 일원이 되어 세계적 복음성가 가수가
되었다.
103.
통일찬송가에 실린 찬송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2세기 경의 찬송시이다. 오늘날
소개되는 가사는 수십 세기 동안 많은 번역자들에 의하여 의역된 것이다. 원(
原)작시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헬라 철학과 기독교 복음을 연결시키려고
노력했던, 신학과 철학에 있어서 뛰어난 인물이다. 그래서 그 당시 터툴리안으
로부터 절충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찬송시를 보면 참 목자
되신 주님께 인도받기를 간구하는 그의 깊은 신앙이 잘 나타나있다. 이 찬송시
의 원문은 클레멘트의 논문집 「교사」(The Tutor)의 부록으로 실렸었다.
104.
이 찬송시는 12세기의 작품으로 그 정확한 유래가 불분명하다. 중세 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찬가'(Magnificat)의 앞과 뒤에 짧은 교창(交昌)을 첨가시켜 불렀다.
이 곡은 예수 강림절에 사용된 교창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가사도 없이 단지
'오'라는 감탄사를 곡조에 맞추어 불렀다. 이 '오'는 온 교회가 주의 재림을 사
모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소리였다. 그런데 차츰 이 '오'뒤에 간단한 기도문이
여러 절 추가되었고, 나중에는 5절로 정리되었다. 정리된 가사의 원문(原文)은
각 절마다 메시아의 여러 명칭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105.
찰스 웨슬리는 형인 존 위슬리와 함께 옥스포드에서 공부했다. 존이 감리교를
조직한 사람이라면, 찰스는 감리교 부흥을 위해 찬송으로 이바지한 사람이었다.
이 찬송시는 누가복음 1:69을 배경으로 한다. '구원의 뿔이신 주님'이 강림하심
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다. 주님은 주의 백성들을 죄에서 해
방시켜 주시고 힘과 위로를 주셨다. 이미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훗날 '주
의 빛난 보돠 앞에' 성도들이 나아갈 때에 완성된 것이다. 찰스는 이성주의와
인본주의가 교회 안에 팽배하던 시대에 찬송으로 구주를 바라보는 신앙을 일깨
워 주었다.
106.
이 찬송시는 독일어판 카톨릭 기도서에 실린 '마리아 찬미가'이다. 그러나 마리
아에 대한 성경적 진실만을 담고 있어서 수세기를 걸쳐 개신교에서도 자유롭게
불리어 왔다. 이 찬송시의 배경은 이사야 11:10이다. 이사야는 예수님을 '한
싹'이라고 불렀다. 이는 '연역한 어린 가지'를 뜻한다. 곧 예수님의 탄생은 연
약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시작되었다. 실제로 예수님의 시작은 하찮은 것
이었다. 그분이 태어나셨을 때 세상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미천하
게 시작된 '한 싹'은 꽃을 피우고 '그 부드러운 형기가 온 하늘을 채우게 되었
다'(3절).
107.
바이셀 목사는 시편 24:7을 배경으로 이 찬송시를 작시했다. 시편 24편은, 하나
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가하시기 위해 성전을 세우게 하사 자기 백성들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에 대한 찬미이다. '영원한 문'은 하나님이 거
하실 성전을 의미한다.
108.
이 찬송의 작시자와 작곡자는 모두 유명한 신학자들이었다. 특별히 작곡자 말란
목사는 유니테리아 이단에 대항하여 싸울 정도로 열렬했던 개혁주의자였다. 그
리고 작시자 와들로 목사는 성탄 예배를 위해 이 찬송시를 작시했다고 한다.
109.
알프스 기슭에 있는 작은 마을 오베르노프의 성 니콜라스 교회에는 26세의 조셉
모르신부가 목회를 하고 있었다. 어느 겨울 저녁, 교회의 오르간이 고장났다는
전갈을 받았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미사에 오르간을 사용하지 못
하게 된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모르 신부는 교인들을 심방하러 나섰다. 잠시
후 그는 가난한 출산모의 집에 도착했다. 그는 갓 태어난 아이와 산모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돌아오면서 그는 초라했지만 장엄했던 첫번 크리스마스를 생각하
며 펜을 들었다. 후에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이 찬송가가 이 때 지어졌던
것이다.
110.
뉴일클랜드 캐롤이라고 불리는 이 찬송은 뉴잉글랜드 출신의 의사이며 언론가인
홀랜드에 의해 작시되었다. 이 찬송시를 읽은 작곡자 해링콘 교수는 이 시에서
'육체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1904년 7월 어느 날, 해링톤 교수는 노드우드스톡의 별장에서 창 밖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은은하고 감미로운 선율이 떠올라 그것
을 악보게 적었다. 그리고는 '공중에는 한 노래가 들려오고, 하늘에는 한별이
빛나네, 성모의 간결한 기도와 어린 아이의 작은 울음 소리'라는 찬송시에 그
곡을 붙였다.
111.
동방 박사들은 먼 곳으로부터 새로 태어나신 메시야에게 경배드리기 위해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아기로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 아기에게 경배드
리기 위해 멀고도 험한 길을 찾아왔다. 그 아기는 자유를 잃은 지가 오래된 유
대 민족에 속했으며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아기께 엎드려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경배
와 예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받으실 만한 것이었다. 동방 박사들은 제한된 지식
으로도 이와 같이 행하셨다면 그들보다 더 큰 특권을 받은 우리는 더욱 그러해
야 할 것이다.
112.
이것은 미국 찬송 시인이 지은 최초의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작시자 에드먼드
시어즈는 하버드에서 공부했다. 목사가 된 후에 그는 웨일랜드와 웨스턴의 시골
에 있는 유니테리아 교회에서 목회 생활을 하였다. 1849년, 이 찬송시가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의 미국 사회는 남북전쟁 발발 직전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
이 찬송시는 평안과 위로를 전하는 사회적인 성탄 메시지가 되었다. 특히 4절의
'저 천사 기쁜 노래를 또다시 부르니 온 세상 사는 사람들 다 화답하도다'는 당
시 암울한 사회에 희망을 주었다. 찬소은 오늘 우리게도 평안과 위로를 준다.
113.
이 찬송시는 누가복음 2:7-16을 배경으로 작시되었다. 아기 예수는 궁전이 아닌
마구간에서 태어났으며, 요람이 아닌 구유에 뉘었다. 또한 천사들은 예수의 탄
생소식을 귀인이나 학자들이 아닌 가난한 목자들에게 맨처음 알렸다. 버림받은
자, 마음이 상한 자, 갇힌 자. 억눌린 자들을 찾아서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사 61:1). 항상 하나님 앞에 가난한 자임을 겸손히 깨닫는 자들만이 예
수님을 만날 수 있다. 율법이 교만한 자를 낮추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며, 복음
은 가난한 자들, 곧 자신의 궁핍을 깨닫는 자들을 위해 주신 것이다.
114.
113장과 같은 가사에 제임스 머레이가 곡을 붙였다. 예수님이 정확하게 언제 태
어나셨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12월25일을 성탄일로 정한 것은 4세기에 이르
러서이다. 그 당시 로마의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274-337)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하여 특별조사를 명했다. 왜냐하면
그전부터 교부들이 12월 25일이 예수님 탄생일이라 했기 때문이다. 이레네우스
와 히폴라투스가 그 대표적이다. 이레네우스는 폴리캅의 제자인데, 폴리캅은 사
도 요한의 제자이다. 특별 조사 결과, 12월25일이 성탄절이라고 공포되었다.
115.
왓츠가 18세였을 때, 영국 교회에서는 시편만을 찬송으로 불렀다. 그 시편가는
시적 감흥이나 운율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단지 히브리어의 의미만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가사였다. 그래서 왓츠는 찬송가 가사에 대해서 늘 불평이 많았다. 어
느 주일,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왓츠가 또 찬송가에 대해 불평을 늘어 놓자, 아
버지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왓츠야, 불평만 하지 말고 네가 더 좋은 가사를
지어 보라라." 이 말에 도전을 받은 왓츠는 시편을 근거로 신약적인 의미를 첨
가한 운율시를 짓기 시작했다. 이 찬송시도 바로 그때 왓츠가 시편 98편을 근거
로 지었다.
116.
이 찬송시의 작시자이며 작곡가인 홉킨스 신부는 제너럴 신학교에서 교회음악
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찬미가와 예배용 합창곡집을 만들었다. 이 찬송도 원래는
성탄 예배용 합창곡이었다고 한다. 이 찬송에 나오는 동방 박사는 과연 어떠한
사람들이었을까? '박사'를 뜻하는 헬라어는 '마고이'이다. 이 말의 어원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점성술을 연구하는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며, 또다른
하나는 '위대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마고이는 바로 천
문학자나 위대한 귀인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17.
이 캐롤은 18세기에 존 스테이너가 영국 전래의 찬송시에 영국 전래의 곡조를
편곡해서 만든 찬송이다. 존 스테이너는 옥스포드 대학의 음악 교수로서 수많은
예배 찬송을 작곡하였다. 이 찬송시는 복음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
된다고 알려 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사단의 세력에서 우리 모두를 구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이 기쁜 소식의 전달자는 천사들이었다. 천사들은 그리스도가
성육신하기 이전에 하늘에서 그 분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과 부
요함과 주권에 대해 알고 있었다(사 6:1-4).
118.
몽고메리는 아이작 왓츠, 찰스 웨슬리와 더불어 영국의 3대 찬송시인이다. 그는
신앙심이 깊고 강직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또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넘쳐
흘렀다. 그의 참송시는 장엄하면서도 경건한 영감이 깃들어 있다. 그의 시의 특
징은 풍요롭고 정교하면서도 장황하지 않고, 교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딱딱
하지 않으며, 정서적이지만 고상한 정감이 넘친다. 작곡가 스마트는 생애의 마
지막 15년을 소경으로 지냈다. 소경이 된 후에도 스마트는 작곡과 연주 활동을
계속했다. 이 곡도 그가 장님이 된 후, 몽고메리의 시에 감명을 받아 작곡한 곡
이다.
119.
알렉산더는 여사는 처녀 시절부터 이렇게 하면 어린이들에게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를 재미있고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다. 그녀는 아이리스의 주일
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사도신경을 쉽게 가르쳐 보려고 애쓰다가 이 찬송시를 짓
게 되었다. 이 찬송시는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를
가르치려고 지은 시이다. 그녀가 지은 찬송시의 특징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기억하기 쉽도록 간단하게,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
용하는 것이다. 이 찬송은 이제 어른들에게도 널리 애창되는 곡이 되었다.
120.
1865년 필라델피아 트리니티 교회의 브룩스 목사는 이스라엘 여행 길에 올랐다.
마침 성탄절을 이스라엘에서 보내게 되어, 베들레헴 교회의 성탄 특별 예배에
참석해다. 이 예배에서 그 젊은 목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을 받았다. 그후
3년이 지나고 1868년의 성탄절이 돌아와 그는 트리니티 교회의 성탄 특별예배를
준비하다가, 문득 3년 전 베들레헴의 감동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목자의 언덕
(예수의 탄생시 목자들이 별을 처음 본 곳)에서 내려다본 신비스런 베들레헴,
베들레헴 교회에서 드린 예배 …. 그는 즉시 펜을 들어 바로 이 시를 지었다.
121.
작시자 존 바우링응 13개 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었던 유능한 외교관이었
다. 그는 유니테리아 교도였지만 기독교에 가까운 신앙의 소유자였다. 유니테리
아 교란, 성경의 유일성을 부인하며 삼위 일체 교리를 부인하는 이단이었다. 또
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정신적인 감화로 이해하고, 윤회 사상을 믿
는다. 원가사는 번역가사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바우링은 이사야 21:11-12을
근거로 하여 이 찬송시를 작시했다. 그래서 원제목이 '피수꾼이여,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말해다오'(Watchman, Tell us of the Night)이다.
122.
웨이드는 32세에 라틴어로 이 시를 썼다. 그 당시 그는 프랑스의 듀에이에서 망
명 생활을 하고 있었다. 훗날 이 라틴 시에 매력을 느낀 프레드린 우클레이가
영어로 번역하여 보급시켰다. 이 찬송은 각 절마다 뚜렷한 주제가 있다. 1절은
베들레헴으로의 초청, 2절은 경배를 권면함, 3절은 신앙에 대한 증언, 4절은 새
로 태어나신 왕께 대한 경배가 그 주제이다. 특히 3절 가사는 니케아 신조에 근
거하고 있다. 니케아 신조는 성육신하신 성자를 "신중의 신이요 빛 중의 빛이시
며 지음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라고 말한다.
123.
아름답고 정감어린 이 찬송은 영국 전래의 찬송시에 옥스포드 대학의 음악 교수
인 존 스테이너가 자신이 편곡한 곡조를 붙여서 만든 것이다. 이 찬송시의 뱌경
은 누구복음 2:10-12과 마태복음 2:1-11이다. 후렴 가사인 '노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으나, 오늘날 '노엘'은 불어로서 성탄절이란 보편화된 의미
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첫번째 성탄절 때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너희를 위해 구주가 나셨다'는 소
식이었다. 구주란 말은 성육신(聖肉身)하신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강조하는 말이
다.
124.
종교 개혁이 일어났던 16세기 초부터 18세기 초까지는 시편에 곡을 붙인 찬송가
만을 사용했다. 1700년 테이트와 브래디는 「새번역 시편집」의 부록으로 16곡
의 찬송시를 첨가하였는데, 124장도 그 중의 하나였다. 테이트가 누가복음
2:8-12을 시적인 운율에 맞게 번역한 것이 바로 이 찬송시이다. 테이트는 이 찬
송시에서 '첫 성탄절'의 모습을, 눈으로 보듯 이해랄 수 있도록 사실적이고 간
결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찬송시는 시편만을 찬송으로 부르던 시대에서, 신앙
인의 신앙고백적인 작시(作詩)가 찬송으로 불릴 수 있는 시대를 열어 주었다.
125.
이 찬송은 수세기 전부터 프랑스에서 널리 불려 내려오던 캐롤이다. 통일 찬송
가에서 소개된 가사는 1937년 얼 보우맨 말레트가 영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우
리 말로 번역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날, 기독
교의 첫 캐롤이라고 할 수 있는 천사들의 찬송이 울려 퍼졌다. 한 천사가 구주
탄생의 메시지를 전하자 마자, 허다한 천사들이 내려와 찬송을 부리기 시작했
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눅 2:24상).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주를 보내주신 이 일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었
다.
126.
이 찬송은 영국 국교회에서 감리교로 개종한 찰스와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개종
한 멘델스존의 공동작품이다. 작시자 찰스는 1738년 5월에 성령의 역사로 인하
여 '마음이 뜨거워짐'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날부터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시를 짓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일생을 통해 6,500여 곡의 찬송시를 지었
다. 믿음에 대한 확신을 체험한 다음해인 1739년, 그는 믿음의 기쁨을 10절의
가사에 실었다. 휫필드는 이 찬송시의 1절 가사를 '천사 찬송하기를 거룩하신
구주께 영광 돌려 보내세'로 바꾸었다. 이 가사가 오늘날까지 불리게 된 것이
다.
127.
이 찬송가는 오스트리아뇖 국가의 곡조에 한국의 무명 작시자가 가사를 붙인 것
이다. 이 찬송가의 작곡자 하이든은 오스트리아 음악가중에서 가장 신앙심이 돈
독한 인물이다. "나는 하나님의 음악적 재능을 맡고 있는 청지기에 불과하다"고
그는 겸손하게 고백했다고 한다. 나폴에옹에 의해 수도 비엔나가 침공을 당하여
온 국민들이 불안과 근심에 싸이게 되었다. 그때 하이든은 자기 조국의 위기를
도우실 분은 하나님뿐이심을 확신하고, '하나님, 프란쯔 왕(당시 오스트리아
왕)을 지켜주소서'라는 곡을 작곡했으며, 1797년 오스트리아 국가로 제정되었
다.
128.
이 찬송시는 요한복음 12:12-19을 배경으로 한다. 1933년 캘빈 라우퍼 목사는
종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사건에 큰 감동을 방아, 승
리의 입성을 하신 주님을 따르는 삶에 대한 찬송을 썼다. 예수께서는 수난 주간
의 첫 날에 큰 잔치에 첨석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나귀를 타고 예루살엠에 들어
가셨다. 예수님의 입성은 자신이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유대인들에게 선포하는
사건이다. 그때 온 예루살렘 백성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맏이하며 로마
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될 것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의 승리는 궁극적인 승리였다.
129.
이 찬송시가 통일 찬송가에서 원자가 아주 다르게 번역되었다. 작시자 할로우
목사는 유능한 신학자이며 모고히자일 뿐만 아니라 저명한 사회학자였다. 오늘
날도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그의 사회학 저서가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청
교도 정신과 호란 개혁교회 정신과 프랑스 위그노 정신을 계속 실현시키고자 노
력했던 인물이었다. 이 시는 1930년대 경제 대공황으로 모든 국민이 실의애 빠
져 있을 때 그들에게 진리와 공의를 실현할 힘을 북동아 주기 위해 지었다. 함
감리교에서 맨처음 부리기 시작하자 차츰 다른 교회들도 가사를 약간 수정하게
부르게 되었다.
130.
작시자는 감옥에서 이 찬송을 지었는데, 종려주일 예배시에 많이 불린다. 가사
를 잘 음미해 보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마 11:1-10; 요 12:12-19)을 시
적으로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은, 그분이 다윗의 후손으
로 오신 메시야이심을 유대인들에게 선포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데
오도르프는 시편 24:7-10과 118:25-26을 인용하여, 예수께서 미리 예언된 왕이
시며 구원자이심을 강조한다. 원래 데오도르프는 라틴어로 된 78행의 대장시를
지었었다. 그것을 1854년 존 M. 닐이 간추려 영어로 번역, 보급시켰다.
131.
이 찬송은 마태복음 21:1-9: 마가복음 11:1-10; 누가복음 19:29-40을 배경으로
한 종려주일 찬송이다. 예수께서 지금까지는 자신에게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
지 않다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때는 자기가 왕이심을 공공연하게 선포하
셨다. 스가랴 선지자는 예언을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
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고 했다. 예수님이 다윗 왕가를 재건하려는 정치적 왕으로 오시는 것이 아
니라 겸손하신 평화의 왕으로, 곧 십자가에 처형당하실 왕으로 오신다는 뜻이
다.
132.
작시자 트렐펄 여사는 고아가 되어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
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두 번에 걸친 교통사고로 인하여 평생을 불구자로 지냈
다. 그러나 이와 같이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그녀는 항상 웃음과 유모어를 잃지
아니했다. 그녀의 어린 아이와 같은 밝고 천진스런 태도 때문에 주위의 많은 사
람들이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특히 그녀는 겸손한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였다. 이 찬송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어린 아이
와 같은 마음으로 묘사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어린 아이는 밀접한 관계가 있
다.
133.
작시자 심프슨 목사는 평생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초교파적으로 사역을 하
였다. 그가 뉴욕 중심가의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어느날 뉴욕의 빈민가에서
복음을 외쳤는데, 그의 설교를 듣고 무려 100여명이나 주님을 믿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시프슨 목사에게 새로운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러던 중
심프슨 목사는 히브리서 13:8 말씀을 읽고 감동을 받아 큰 교회 목회를 사임하
고 병원, 형무소, 빈민가 등을 순례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기독교 선
교 협회'(CMA)를 조직하여 전세계적인 활동을 벌였다.
134.
이 찬송시는 마태목음 26:36-44; 히브리서 4:15을 배경으로 작시되었다. 작시자
테이펀 목사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후에 목사 안수를 받
았다. 그의 학력은 국민학교 1학년 중퇴에 불과하다. 그는 역경 속에서 주님의
위로를 몸소 체험한 사람이었다. 이 찬송은 예수께서 집히시기 바로 직전에 겟
세마네 동산에서 인간적인 고민과 고통을 직접 체험하시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 이러한 것을 겪으셨기 때문에 고통과 번민에 빠진 자기 백성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위로해 주실 수 있는 것이다.
135.
이 찬송이 발표된 직후, 미국에서는 불신자들까지 이 찬송의 멜로디를 좋아하게
되었다. 베나드 목사는 목회 초기부터 십자가의 오묘한 의미를 온전하게 깨닫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며 연구하였다. 그는 매우 헌신적으로 목회했으며 부흥사로
도 꽤 큰 명성을 얻었다. 한 때 그는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것이
십작가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단
느것의 의미하는 바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는 십자가가 단순히 기독교의
상징이 아닌 복음의 핵심이라는 진리를 발견하였다.
136.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모진 설움을 당하는 흑인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들의 설움을 신앙으로 승화시킨 흑인 영가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
나 평생을 노예로서 고달픈 인생을 보낸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억울한 일
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죄 없으신 주님이 억울하게 십작다에 달려 온작 고초를
당하시는 모습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주님의 고난
이 흑인들을 초함한 주의 백성을 위하신 대속의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움
가격하게 되었다. 이 찬송은 마태복음 27:54-56을 배경으로 한다.
137.
존스톤 여사는 평생을 주일학교 교육에 헌신하였고, 꾸준히 영감넘치는 찬송시
를 작시하면서 아름다운 생애를 살았던 성도였다. 그녀는 62세의 노년에 이 찬
송시를 지었다. 이 찬송시는 로마서 5:20; 사도행전 15:11을 배경으로 하였다.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말했다. 죄가 홍수처럼 밀
러와 인류를 뒤덮을지라도, 은혜는 그 죄의 홍수를 물리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삼킬 만한 능역이 있다. 이렇게 놀라운 진리에 감격한 존스톤은 이 찬송을 '놀
랍다 주님의 큰 은혜'라고 시작했다. 이 은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을 수 있
다.
138.
어떤 사람들은 (안토니 후크마 같은 사람들) '벌레 같다'는 표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을 잘못 평가한 것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이 '벌
레'라는 말로써 깊은 신학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애벌레가 부화하
여 나비가 되듯이, 벌레 같은 옛 사람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새사람이 된
다는 진리이다. 자신이 '벌레'같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시22:6) 하나님의 은
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
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엡 4:20)이 될 수 있다.
139.
작시자 허시 여사는 신경염으로 오랜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살았으며, 결국은 이
병으로 인해 양로원에서 세상을 따났다. 허시 여사는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심한 지병을 주신
것까지도 감사하며 살았던 모범적인 성도였다. 그녀가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
서도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일까? 이 찬송시에서도 고
백하고 있듯이, 그녀를 위한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갈보리 고난을 잊지 않고
항상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성도들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어둔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한다.
140.
이 찬송은 십자가의 고난과 성도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본래 하
나님이신데 자기를 비어 사람의 몸으로 오셨으며(빌2:7), 성도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엡 5:2). 십자가 자체가
사랑의 승리이다.
141.
왓츠는 이 찬송시에서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감동을 묘사했다. 곧 벌레같이 쓸
모없는 옛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는 사
실이다. 미국의 유명한 여류 찬송시인 패니 크로스비 여사는 바로 이 찬송을 듣
고서 회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142.
이 찬송시는 누가복음 23:33-45과 마태복음 27:50-51을 배경으로 작시되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두 가지 징조가 나타났다. 하나는 온 땅이
어두워진 일이고, 또 하나는 성전 휘장이 갈라진 일이다. 전자는 인류의 죄를
감당하신 예수에 대한 하나니므이 진노의 상징이며 후자는 예수에 의하여 열려
진 새 복을 상징한다. 갈보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 찬송시의 근
본흐름이다. 후렴의 원가사를 보면, 전반부는 어두움의 갈보리를, 후반부는 사
랑의 갈보리를 묘사했다. 그리고 그 사랑에 감사하여 헌신을 다짐했다.
143.
존 엘러톤은 「성경 공부 모임을 위한 찬송집」을 펴낼 정도로, 찬송시를 통하
여 성경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이 찬송시도 역시 그리스도의 고난과 형벌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생갱하게 성경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찬송시는 마태복
음 27:35-46을 배경으로 작시되었다. 십자가에서 많은 무리들에게 조롱과 멸시
를 당하신 예수께서는, 정오부터 세시까지 심한 흑암 속에서 표현할 수 없는 처
절한 고통을 당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받으셨고(갈 3:13),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찔리셨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하셨다(사 53장).
144.
패니 크로스비는, 작고자 허워드 돈이 이 곡조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듣고
서, 거기에 맞추어 이 찬송시를 작시했다. 패니는 맹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영적인 면에서 어느 누구보다고 밝게 눈을 뜬 사람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
의 신앙고백적인 찬송시를 써서 많은 성도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찬송시는 "그
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노라"(갈 6:14)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패니 자신의 신앙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원제목도 '십자가로 가까이'이다. 하나
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떨고 서 있는 진실한 성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
하고 있다.
145.
이 감동적인 찬송시의 원저자는 12세게의 인물 베르나르이다. 베르나르는 경건
하고 순결하며 헌신적인 삶을 통하여 기도와 전도에 힘쓴 사람이었다. 그는 그
당시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영적인 필요와 육적인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온 힘
을 다하였다. 그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연합한 공동체임을 특히 강조하였으며,
스스로 공통체를 구성하여 그 안에서 생활하였다. 이 찬송가 곡조는 후기 르네
상스 시대의 유명한 독일 작곡가 한스 L. 해슬러이다. 신앙심이 돈독했던 바하
는 이 곡조에 감명을 받아 자신의 '마태 수난곡'에 다섯 번이나 인용했다.
146.
알렉산더 부인은 처녀 시절에 주일하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사도신경을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기 위해 이 찬송시를 작시했다. 비록 어린이들을 위해 쓴 찬송시이
지만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격찬을 받을 정도로 시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시이
다. 그녀는 일생을 바쳐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도우며 살았다. 원 작곡자는 군노
로서 그의 어린 딸이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아버지
앞에서 이 찬송시를 암송해 주었다. 어린 딸이 암송해 준 이 시를 듣고난 군노
는, 너무 감명을 받아 그 자리에서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147.
이 찬송시는 갈라디아서 4:16에 근거하여 개인적인 신앙심을 묘사한 시이다. 이
곡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편곡한 찬송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이스라엘 사람들
이 성전과 회당에서 부르던 멜로디를 그레고리우스 1세가 6세기 경에 정리하여
교회에 도입시킨 교회 음악이다.
148.,
바우링 경이 마카오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바닷가에서 아주 오래된 수도원을
보았다. 수도원의 높은 십자가 탑만은 보존되어 있었다. 바우링 경은 그 청동
십자가를 보다가 감동을 방아 '주가 지신 십자가'를 연상하며 이 찬송시를 지었
다고 한다.
149.
호레이서스 보나는 생키의 부탁을 받고 이 찬송시를 썼다고 한다. 그 당시 보나
목사는 예언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던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
의 부활과 재림에 대해 특별한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 생키의 부탁을 받은 보나
는 베드로전서 1:3, "찬송하리로다…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둡나게 하
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를 근거로 부활의 기쁨을 찬송하였다. 곧 그는 주님
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어두움과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깽지고, 그 대신 빛과 용
서와 영생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음을 노래했다. 주님의 부활은 새 시대의
도래이다.
150.
작시·작곡자 로우리 목사는 버크넬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수재였으며 예리한
통찰력과 뛰어난 지도력을 지닌 목회자였다. 이 찬송가는 1874년 부활절 기간에
만들어졌다. 로우리 목사는 밤에 기도하면서, 누가복음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는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즉시 펜을 들어 힘찬 멜로
디에 부활의 승리를 담았다. 로우리 목사는 전반부와 후렴부로 나누어 죽음과
부활을 대보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 찬송은 남북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우
울해진 미국 국민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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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교회음악세미나
찬송가 해설 101 - 150장
지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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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2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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