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접전에서 유용한 수류탄을 더 먼 거리에 있는 적에게 쓸 수는 없을까.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이런 필요성에 의해 등장한 것이 총류탄이다. 손 힘에 의해 던져지는 것이 수류탄이니 총의 힘으로 쏘아지는 탄이 되는 셈인데 일반적으로 총구에 끼운 뒤 공포탄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발사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물론 6·25전쟁에서도 널리 쓰였다.
우리 군은 1949년 주한미군이 철수할 때 15만7800여 발을 인수, 6·25전쟁 때 활용했다. 하지만 총류탄은 6·25전쟁을 계기로 효용성을 의심받게 된다. 미군은 6·25전쟁을 치르면서 총류탄이 원하는 사거리에 미치지 않고 명중률도 높지 않은 데 실망했다. 수류탄과 박격포의 사거리 사이 공간의 적에 대해 좀 더 빠른 속도로 더 멀리, 더 정확하게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화기가 요구된 것이다.
이에 50년대에 개발된 것이 M79유탄발사기다. M79는 병사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하나의 독립된 화기로 40mm 유탄을 사용한다. 길이 73.1cm, 최대 사거리는 373m. 조작이 간단할 뿐만 아니라 분당 7~8발을 쏠 수 있는 등 베트남전에서 효율성을 입증해 보였다.그런데 M79 사수는 권총 외에 별도의 화기를 소지하지 않아 지근거리에서 적에게 급습받았을 때 취약하다는 단점을 노출시켰다.
여기에서 마침 M16소총의 실전화에 맞춰 소총에 유탄발사기를 부착해 소총은 소총대로, 유탄발사기는 유탄발사기대로 상황에 부합하게 운용할 수 있는 화기가 개발됐다. M203이 그것이다. M203만의 무게가 1.36kg으로 M16A1소총과 결합해도 4.3kg에 불과하다. 단발 사격식으로 최대 사거리는 400m이지만 점표적에 대한 유효사거리는 150m 정도다.
우리 군의 경우 M79와 M203을 베트남전 참전을 계기로 파월 장병들의 분대 공용화기로 가장 먼저 장비한 후 국산화를 통해 육군 전체 편제화기로 자리했다. M79의 국산화는 74년에, M203은 M16A1소총의 국내 생산 후인 78년에 이뤄졌다. 하지만 현재 이 두 유탄발사기는 현역에서 물러난 상태다.
M79는 M1소총·칼빈 소총과 함께 도태됐으며, M203은 국산 K-2소총 개발 및 전력화에 따라 이에 맞게 등장한 K201유탄발사기에 자리를 내주었다. 84년부터 전군에 보급돼 보병분대당 1정씩 운용되고 있다. 한편 미 육군은 83년 M79나 M203과 같이 단발로 운용되던 유탄발사기를 자동으로, 또 고속으로 연속 발사해 운용할 수 있는 MK19 Mod3 40mm 고속유탄발사기를 갖추게 된다.
본래 이 고속유탄발사기는 63년부터 미 해군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 베트남전에서 MK19 Mod1이 운용돼 위력을 발휘했다. 미 육군은 이 화기에 확신을 갖지는 못했으나 70년대 후반 구소련의 AGS-17 30mm 고속유탄발사기에 자극을 받아 76년 완성된 MK19 Mod2형을 육군에 맞게 개발토록 한 후 채택했다.
총만의 무게가 약 33kg이며 삼각대 포함 62.4kg으로 무겁지만 최대 분당 325~375발을 쏘아댈 수 있다. 최대 사거리는 2200m(유효 1600m).우리 군도 고속유탄발사기의 필요성을 비교적 일찍 인식해 86년부터 90년까지 개발, 야전부대에 전력화했다. K-4가 그것으로 보병사단의 핵심 지원화력으로 채택돼 운용 중이다. 외양과 제원이 MK19 Mod3과 유사하다.
사진설명:육군17사단 장병들이 K-2소총에 장착된 K201로 유탄을 발사하고 있다(위).K-4 고속유탄발사기와 함께 야외기동훈련에 나선 육군3사단 장병들.부대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