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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을 참 매력적이다. 크크크 웃다가, 심각한 표정도 짓기도 하며, 몰입해서 읽게 만들었다. 세상을 사는 데 웃는 것보다 더 좋은 비법은 없다는 그의 생각은 차례에도 잘 드러난다. 1. 사기 공화국 풍경 2. 사람들, 이야기들 3. 검사의 사생활 4. 법의 본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기상천외한 사기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소위 ‘당청꼴찌’라는 실적이 좋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읽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더니, 뒤로 갈수록, 사회와 법에 대해 글쓴이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웃음이 나오면 생각보다 빨리 대화가 열린다.’라는 그의 글이 생각나, 유쾌하게 당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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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는 자신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라는 것이었다. 나사못의 임무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이 맡은 철판을 꼭 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대한민국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 검사란 사람 공부하기 좋은 자리이구나라는 생각 정도를 하게 되었다. 검사실은 학구적인 분위기도 없고 과거에만 천작하지만, 법이 우리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는 자리이다. 뭐랄까,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사회 현실과 요청에 기초한 법철학을 시작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의 수사 방법은 극히 단순하다. 피의자들과 기록에 언급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수건을 긁어모으는 것이다. 마치 사금을 캐는 사람처럼, 수천 페이지의 기록들을 모아서 거르는 일을 반복하며 진실의 무게로 가라앉은 사실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작은 조각들을 모으고 모아서 전체 퍼즐을 맞추면 거짓을 꿰뚫는 창이 된다. 물론 사소한 부작용도 있다. 내 수사 방법이 다른 방, 다른 청에 있는 사건과 기록들을 모아들이는 것이라서 우리 방 실무관들은 모두 폭주기관자처럼 달려야만 한다.
▣ 별다른 소명의식이나 야망 없이 시작한 것치고 오랫동안 검사실을 지킨 것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가끔은 이 짓이 어렸을 때 꿈꿨던 우주여행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하고 소란하며 불규칙하고 무질서한 검사실에 앉아 있으면 우주로 쏘아 올린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한 것 같다. 검사실에서 마주하는 인생의 파열들이 직선적이고 단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들여다볼수록 다양하고 모순적이다. 복잡하고 비틀어진 세상은 성층권에서 바라보나 50km 아래 검사실에서 바라보나 같은 모양이다. 선악과 미추가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댓글처럼 그리 쉽게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검사실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나기 같은 반복되어도 늘 새로운 여행 같았다. 물론 그 여행을 거치면서 더러 감탄하고 때로 깊은 슬픔에 빠지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성장하거나 진화하지 못했다. 부족한 것은 더 많아졌고, 혼란스러움은 요동이 심해졌으며, 사람에 대한 기대와 불신의 경사는 더 급해졌다. 여전히 그대로인 아쉬움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그러니 어쩌면 남아 있는 그 온기가 이 책을 쓰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글을 읽으며 ‘생활의 달인’이 생각났다. 수백 부의 신문을 배달하며, 오토바이에서 원하는 곳에 신문을 던져 척척 넣는 그런 달인. 생활의 반복을 통해 달인이 된다. 그러나 반복을 한다고, 모두가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다른 요소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성을 다해 반복하는 사람이 달인이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생활형 검사, 대한민국의 나사못’이라고 생각하며, 검사는 사람 공부하기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는 그는 하루하루 자신의 터전에서 ‘우주여행’하듯 세상공부를 해왔다. 그리고 사금을 캐는 사람처럼 ‘수천 페이지의 기록들을 모아서 거르는 일을 반복하며 진실의 무게로 가라앉은 사실들을 찾아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달인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는 나에게도 적용이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일에서 나는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노력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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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인간’에 대한 질문과 같다고 한다. 법뿐 아니라 모든 인문학이 그럴 것이다. ‘존재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마 박 여사의 딸처럼 열심히 살다가 남루해지고 낡아가는 것이 정답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내 아이가 커가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답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나를 매일 밤마다 목격한다. 그래도 이제는 실망하지 않는다. 한편으론 아빠가 되어가는 것이다.
▣ ‘법대로 하자’는 말은 매우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도발이다. 법대로 하자는 것은 상대방과의 공존과 상생은 개뿔, ‘널 반드시 박멸시키겠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 의한 분쟁 해결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보다 새로운 분쟁과 갈등을 낳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정권이 바뀌면 늘 하는 전 정권에 대한 사정수사가 우리의 정치를 얼마나 극악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떠올리면 법에 의한 해결의 잔인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문제는 법률서비스란 되도록 받지 않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목적지가 바로 집 앞이라면 굳이 차를 타고 갈 필요가 없듯이, 법률서비스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되도록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법률서비스는 보약이 아니다. 불가피할 때 부작용을 각오하고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일종의 치료약이다. 많이 이용한다고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지만 변호사가 늘어나면 굳이 다툴 것이 없이 합의로 해결할 문제도 소송이나 고소로 이어지게 된다.(소송은 재판을 말하고, 고소는 피해자가 범죄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리는 것을 말한다.) 소송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이라곤 다시는 송사에 휘말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정도일 것이다.
▣ 상대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상대의 말을 경청하려면 상대가 지닌 진짜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상대의 의도는 대개 예측한 것과 다르고, 그 사람의 표면적인 말과도 다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늘 자신의 의도나 목적을, 특히 경제적인 동기라면 더욱, 숨긴다. 늘 대의와 도덕부터 내세우기 때문에 실제 의도를 알기 어렵다. 그래서 대화를 시작하는 첫 1분 안에 상대방의 의도를 짐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촉진을 하듯 이 말 저 말 던져보고 그 반응을 파악해야 한다. 문제는 그게 스무고개가 아니라 세 고개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세 마디 안에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상대방은 금세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검사가 자신의 의도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오해하고, 또 자신의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의도나 자신에 대한 정보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 자기를 무시하거나 무관심한 것이라고 판단해버린다.
▣ 대부분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부족함’보다 ‘불공정함’에 분노를 느낀다고 한다. 법이 정의는 아니지만, 정의를 제거하면 법은 제대로 서지 못한다. 그럼 정의는 무엇일까? 정의는 기본적으로 ‘부정’의 논리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부정의’가 무엇인지는 대부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는 부정의가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각한 홍길동을 벌세우는 것은 부정이 아니나, 홍길동과 전우치가 모두 지각했는데 홍길동만 벌세우는 것은 부정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 사람들이 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간과하는 것은, 법은 불구이자 어느 하나만이 옳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분쟁 해결 방법이라는 점이다. 일도양단과 이분법적인 해결 이외에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법은 아직도 유일한 분쟁 해결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에 대한 의문이나 반성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헤겔이 말했듯이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그것이 널려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가장 적게 인식된다.
▣ 형사 사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력한 국가권력으로부터 약한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적법절차이다. 그 일을 하라고 월급 주면서 공무원으로 만들어 준 것이 검사 제도이다. 검사가 바로 세워야 할 정의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절차적 정의’이다. 처벌이란 이렇게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밝혀진 범죄자에 대해 일련의 고통을 부과하는 것이다.
▣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검찰, 경찰, 국세청 같은 공권력 기관이 아니라 시민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물론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우리나라 헌정 체제상의 한계를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그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시민 스스로 자신의 힘을 국가권력에 갖다 바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 어리석은 행태를 가장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고소인의 권한 확대이다. 늘어나는 고소를 당장 줄일 수 없다면 최소한 시민들 스스로 직접 분쟁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 갑자가 금주법 이야기를 꺼낸 것은 현상과 원인에 대한 판단, 그리고 그에 대한 처방을 잘못 내릴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밤중에 나방이 들끓을 때는 살충제를 뿌리는 것보다 불을 끄는 것이 낫다. 살충제를 아무리 뿌려도 불빛이 있는 한 나방이 물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살충제에만 의존하다간 나방은 못 잡고 사람만 잡을 수도 있다. 불을 끄면 전기도 아끼고 나방 꼴도 안 볼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서 검찰이 하는 일이 많다고 하나 결국 우리 사법 제도의 핵심이자 대들보는 법원이다. 아무리 큰 보름달이라도 흐린 해보다 밝을 수는 없다. 검찰의 업무가 형사 사건에 국한된다면 법원은 민사, 형사, 행정, 특허, 가사, 소년 사건 등을 모두 담당한다. 결국 우리나라 사법 제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법원의 개혁이 사법 제도 개혁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들보 썩어 가는데 마루만 바꾼다고 새 집 되는 건 아니다.
▣ 미국의 법사학자 로렌스 프리드먼은 “사회는 명백히 원하는 범죄의 양을 스스로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범죄의 양이 많아지면 범죄에 둔감해지고 법을 경시하게 된다. 또한 범죄를 지나치게 많이 원하면 검찰이나 수사기관의 힘이 거대해진다. 그 부작용으로 검사들은 엄청난 업무 강도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관둬라. 검사 일 하고 싶은 사람 줄을 섰다.”라거나 “왕관을 원하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은 하지 마시라. 왕관을 써야 하는 것은 국민이다. 그게 헌법 제1조가 말하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를 통해 법을 생각해보았다. 친구가 법정이 설 일이 있었다. 그래서 법을 알고 싶었다. 법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으며 법에 대해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점을 발견했다. 법은 문제를 푸는데 가장 먼저 필요한 해결책이 아니라, 부작용을 각오하고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일종의 치료약이라는 것을.
법조인이 진실을 밝히고, 거짓을 가리려는 노력을 한다면, 교사는 학생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학생이 가진 어려움을 발견하는 노력을 한다. 이 글을 통해 나의 일, 나의 마음 가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그가 자신의 일을 통해 사람 공부를 하고, 세상 공부를 하는 것처럼 나도 나의 일을 통해 할 수 있는 부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