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곳은 가까운 곳에도 있다.

볼만한 곳은 가까운 곳에도 있다. 산천을 찾아 구경할만한 명승지가 반드시 궁벽하고 먼 지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금이 도읍한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도 진실로 구경할만한 산천이 없는 것은ㅇ 아니다. 그러나 명예를 다투는 사람은 조정에 모이고 이익을 다투는 사람은 시장에 모인다. 비록 형산衡山. 여산廬山. 동정호洞庭湖. 소상강瀟湘江이 반 발짝만 나서면 굽어볼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어서 우연히 만날 수 있는데도 그런 것들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어째서 그러는가? 사슴을 쫓아가면 산이 보이지 않고, 금金을 움켜쥘 때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가을의 털끝은 살피면서 수레에 실은 나뭇짐은 보지 못한다. 이것들은 마음이 쏠리는 곳이 있어 눈이 다른 데를 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경성京城 남쪽에 한 연못이 있는데 백묘는 된다. 그 연못가로 빙 둘러 있는 것들은 여염집들로서 고기의 비늘 같이 착잡하고 빗살 같이 나란히 있는데, 짊어지고 이고 말을 타고 걷는 사람들이 그 곁을 왕래하며 줄을 이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그윽하면서 넓은 경내가 그 사이에 있는 줄을 알겠는가? 그 후 정축년(고려 충숙왕 6년. 1337년) 여름에 연꽃이 한창 피었을 때 현복군玄福君 권후權侯가 그곳을 발견하고 매우 살아하여 바로 그 연못 동쪽에다 땅을 사서 누각을 지었다. 그 누각은 높이가 두 길이나 되고 넓이가 세 길이나 되게 만들었으되, 주춧돌은 안 받쳤지만 기둥은 썩지 않게 하고, 기와는 이지 않았지만 이엉은 새지 않게 하였으며, 서까래는 다듬지도 않았는데, 화려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았다. 대개 이와 같은데, 그 연못에 가득한 연꽃을 다 포괄하여 앞에 두었다. 이에 그 아버지 길창공吉昌公과 형제와 동서들을 그 누 위로 청 해다가 술자리를 베풀어 즐겁고 유쾌하게 노느라고, 날이 저물어도 돌아가는 것을 잊을 지경이었다. 그때 아들 중에 큰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있어 운금雲錦이라는 두 글자를 써 달아 누각의 이름으로 삼았다. 내가 시험 삼아 가서 보니 붉은 꽃향기와 푸른 잎 그림자가 넓게 연못 속에 끝없이 비치는데, 어지러이 흩어지는 바람과 이슬이 연파煙波에 움직이니, 이름이 헛되지 않다고 할 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용산龍山의 여러 봉우리가 청색을 모으고 녹색을 바르고 처마 밑으로 몰려들어, 컴컴할 때와 밝ㄷ을 대와 아침과 저녁에 따라 늘 각각 다른 모양을 나타낸다. 또 건너편 여염집들이 나타내는 자세한 모습을 누각에 앉아서 하나하나 셀 수도 있으며, 지고, 이고, 타고, 걸으면서 왕래하는 사람, 친구를 만나 서서 말하는 사람, 어른을 만나 절하는 사람들이 모두 형태를 숨길 수 없으니, 바라보며 즐길만하다. 그러나 저편의 그 사람들은 연못만 잇는 것을 보고 누각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니, 어찌 또 누각 안에 사람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구경할만한 명승지는 반드시 궁벽하고 먼 지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조정과 시장 사람들이 언제나 보면서도 그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여 그런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아마도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 두어 사람들에게 경솔하게 보이지 않았음인가?“ (하략) 이제현의 <운금루기>이다. ‘나무만 보다가 보면 울창한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제주도에서 2년 반 정도 세 들어 살던 집주인은 칠십년 대 말 신 제주가 건설되면서 땅 값이 올라 부자가 된 제주 토백이었다. 하지만 서울과 광주에는 다녀왔으면서도 천백고지나 오일륙도로를 넘어 두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 서귀포를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 가는데도 한 번도 구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침 쉬는 날 버스를 타고 서귀포 구경을 하며 너무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는데 제주도에 산다고 꼭 서귀포나 성산포를 안 보았다고 해서 그리 손해 볼 것도 없는 삶이고, 그렇다고 잘 살았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진면목을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볼 것이 없다고 다른 나라 여행에만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마뜩치 않을 때가 있다. 사시사철이 변하기 때문에 그만큼 볼만한 곳이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25년 동안을 돌아다녔는데도 아직도 내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작은 나라는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만 나가면 그 어디고 간에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안 펼쳐지는 곳이 없는 내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은 어쩌면 이 땅에 태어나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이자 국토 사랑의 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도 늦바람이 불어서 22일부터 30일까지 또 다시 중국의 운남성으로 가기위해 여장을 꾸리고 있으니, 병술년 동짓달 스무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