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대화, 자기 성찰의 일례
-은사 법정스님 5주기에 부쳐
덕현스님
“스님!”
“어이, 덕현! 잘 지냈는가?”
“네. 스님께선요?”
“덕현이 잘 지냈으면 나도 잘 지낸 거지.”
“스님 지금 어디 계세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보고도 모르는가? 덕현이는 지금 어디 있는데?”
“아, 스님 이렇게 뵙고 있습니다. 이제 전 괜찮은데, 스님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스님 뵙고자 하면 어떻게 말할까요? 벌써 스님 가신 지 5주기가 됐어요.”
“본 대로 말해. 다 자기 눈높이에서 보는 거지. 그리고 내가 가긴 어딜 가?”
“네. 전 항상 스님이 곁에 계신 것 같아요.”
“어허, 이 사람. 그건 망상이지. 내가 있고 남이 따로 있으면 거긴 진짜 내가 있는 데가 아니야.”
“그럼 스님 재도 지낼 필요가 없는 건가요?”
“그것도 인연 따라 되게 놔 둬. 기러기는 하늘가로 날아갔는데 발자국이 아직 모래톱에 남아있네.”
“전 길상사에도 안 가요. 불일암에도 못 가고, 해제 하면 몰래 수류산방 주변에나 한 번 가볼까 싶어요.”
“자승자박이지. 글쎄, 길상사에선 왜 나갔는데?”
“다 자기 업에 스스로 묶여 사는 거겠죠. 원願이 약해서 업業을 이기지 못한 것 같아요.”
“원력이나 업력이니 구분하지 마. 생사를 넘어서 보면 둘이 아니야.
되어가는 일이 다 알고 보면 내가 바라던 바지.”
“그냥 이대로 살아요?”
“가장 큰 목표와 방향감만 잊지 않으면 돼. 법화림, 법화도량은 잘 굴러가?”
“바퀴가 둥글지 못해서 가끔 비틀비틀 해요.”
“그렇게 굴러가다보면 둥글어지는 거지. 남 탓하거나 길 탓하지 말고.”
“길 탓은 잘 안 하는데, 남 탓은 아직 가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차피 같이 가기로 했으면 남 탓은 안하는 게 좋은 여행이야.”
“내 팔자려니 해요?”
“정해진 팔자가 어디 있어? 팔자를 고치는 게 원력 아니야?”
“남한테 감사하고 항상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건 좋은 일인가요?”
“속에서 그런 마음이 일어나면 좋은 일이지.
사실 사바세계에서 행복의 표징이란 오직 그것뿐이야.”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은 어때요?”
“그건 썩 좋지 않아. 과거에 매인 마음이고, 밖이나 타인에게 빼앗긴 마음이고, 지금 이 자리에 온전히 있지 못하는 마음이지.”
“용서란 무엇이에요?”
“다른 사람 그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녹여주는 일이지. 나에게 매이거나 짓눌려 있지 않도록, 그 마음을 돌이켜 편안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 함께 있도록 받아들이는 일.”
"스님은 다 용서하셨어요?”
"내가 뭘 용서해? 내가 용서한다고 말하면 그 사람 마음이 편안하겠어?
용서란 내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스스로 녹아 없어져 편안하고 행복할 때, 자취도 표시도 없이 일어나는 거지.”
“지금 스님께는 처음 드리는 말씀인데, 법화림, 법화도량의 ‘법화法華’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여기 우리 안에서 꽃 피어 빛나라’는 뜻이에요.
일체 중생을 성불로 이끄는 ‘법화경’에서 빌린 이름이기도 하지만요.”
“어이, 거기 왜 나를 끌어들여?
‘덕화림德華林’, ‘덕화도량德幻場’이라고 하지 그랬어?”
“죄송합니다. 불가佛家의 일이 사제관계를 벗어나 되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럼 내가 고맙다고 해야 돼? 난 불가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
“스님, 다시 이 세상에 오셔도 승복 입고 살 거라고 하셨잖아요?”
“옷이 나를 가둬? 승복은 복전의福田衣야. 중생들이 복의 씨앗을 뿌리는 밭이 되리라고 입는 옷일 뿐이지. 가장 자유롭고 당당한 옷이 승복 아니야? 나는 언제나 내 옷을 걸치고 내 길을 갈 뿐이야. 누구한테 나를 따르라고 한 적도 없어.”
“저도 그냥 제 길만 갈까요?”
“나한테 물어서 가면 그게 덕현이 길이야?”
“그럼 뿔뿔이 헤어져서 가요?”
"길 가는 것이 순간순간 헤어지고 새롭게 만나는 일의 연속이지. 그 속에, 만남도 이별도 없는 것이 대도大道이고 진정한 자기 길이야.”
“법화림, 어떻게 할까요? 길상사랑《맑고 향기롭게》떠나면서, 그래도 스님유지를 받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부담에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게 길상사 대신 ‘법화도량’이고, 《맑고 향기롭게》대신 ‘법화림’인데…….”
“나한테 묻지 말라고. 그렇게 갖다 붙이지도 말고. 나, 길상사, 《맑고 향기롭게》만든 것 후회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아. 난 지금 여기 있을뿐이라고. 덕현이도 거기서 한번 떠났으면 제 길을 가야지.”
“네, 스님.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빠서 그만 가봐야 돼요.”
“그래. 살아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의 시간은 언제나 바쁜 법이지.”
“이렇게라도 만나, 언제나처럼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스님,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덕현이도 잘 지내. 덕화림인지 덕현림인지도 이왕 생긴 거면 잘 굴려가 봐.”
“새봄이 와서 남쪽으로 매화 보러 가게 되면 그때 또 스님이랑 같이할게요.”
“아직 덜 바쁜 모양이네. 법화가 어디서 피고 세상의 꽃이 다 어디서 피어?”
“제 안에서 핀다고 하시려고요?
그래도 저는 남쪽으로 갈 거예요. 스님도 그러셨잖아요?”
“할 수 없네. 그럼 그때 봐.”
소식지 法華법화 2015 / 4
출처 http://m.cafe.daum.net/beophwarim 법화림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